5일 강경(江景)을 찾아갔다.
대전에 사는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殘在), 유산(遺産)하면, 곧잘 군산(群山)을 떠올린다.
허나, 일제(日帝)의 수탈(收奪)과 민족의 저항(抵抗)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있는 곳이 바로 강경이다. 우린 강경을 지척(咫尺)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강경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강경하면 우선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젓갈'이다. 그러나 강경의 젓갈산업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강경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쇠퇴했다. 이어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이후, 생계를 위해 과거 수산물을 저장하고 숙성시켰던 전통을 바탕으로 젓갈산업을 일으켰고, 강경을 지탱해주는 중심산업이 되었다. 젓갈가게가 무려 140여곳이란다.
'강갱이'란 말을 들어보셨는가. '강갱이'는 강경(江景)지역을 오래전부터 일컫는 말이다. 강경을 전라도 사투리로 '강갱이', '갱갱이'라고 한다. 지금도 연로한 분들사이에선 곧잘 그렇게 불리어진다. 갱이는 가장자리(邊, 가 변)를 뜻한다. 따라서 강갱이는 '강의 가장자리', 즉 '강의 변두리'를 의미한다. 강경은 공주, 부여를 지나 군산으로 흘러나가는 금강하구의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여건덕분에 일찍이 수운(水運)이 발달해, 조선후기엔 대구, 평양과 함께 전국 3대시장의 하나로, 또한 원산과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근대상업도시였다. 일제강점기시절, 미곡수탈의 중심지로 활용됐던 강경 포구에는 하루 100여척의 배가 드나들었으며, 정주인구가 3만, 유동인구가 10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놀라움이 앞선다.
일제에 의해 대륙침략의 시설로서 철도가 놓여지면서, 조선의 기존 전통도시들은 하루아침에 쇠락(衰落)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반면 철도주변엔 신흥도시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한 예가 대전(大田)이다. 철도부설로 인해 급격히 성장한 신흥근대도시가 됐다. 반면 천년고도(古都) 공주는 쇠락했다. 철도로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강이나 큰 내를 끼고 발달해온 기존 도시들의 쇠퇴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강경, 그 곳은 묘(妙)한 곳이었다. 강가에 위치했으면서도 일정시절 오히려 더욱더 번화한 지역이 됐으며, 발전해 나갔다. 왜 그랬을까? 대규모 범선(帆船)이 금강하구에서 강경까지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는 지리적 상황이 일정시대말까지 크게 융성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일본이 산업화에 따른 농촌인구 감소로 자국내 식량이 부족해짐에 따라, 조선을 식량공급기지화했다. 강경은 일본으로 쌀을 실어나르는 대표적 포구로 활용됐다. 수탈의 현장이었다.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강경으로 들어와 거주함에 따라, 수많은 일본식 가옥들이 들어서고, 강경에 근대적 행정, 금융, 교육기관을 비롯해 경찰 등 통치기구가 설치됐다. 전통포구였던 강경은 근대적 시설이 갖춰지는 상업포구로 그 변모를 거듭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여기저기 쇠락(衰落)의 흔적들만 찾아질뿐이다. 자꾸만 옛날의 역사현장들이 사라진다.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영광의 시절이든, 불행의 시절이든 모두가 우리의 역사다.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해선 안된다. 우린 역사속에서 많을 걸 배운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해 나간다. 일제에 지배당했던 역사는 분명히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나 우린 이를 회피(回避)해선 안된다. 고통의 역사, 슬픔의 역사에서 배태(胚胎)된 유물, 유적들을 '네거티브(negative) 문화재'라 칭한다. 요즘은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행정기관이 강경지역을 '근대역사의 현장', '근대생활사박물관'으로 가꾸려고 노력중인 거같다. 다행스런 일이다. 건강한 역사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때다.
일정때 전국의 수재들이 모였던 강경상고. 그 출신들이 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의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다.
문득 돌까마귀 고문님과 자하잘님이 생각난다. 자하잘님은 요즘 소식이 없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
강경상고 교장관사다. 한식과 일식의 가옥양식이 혼합된 모습이다.
상고라서 주판알을 형상화했다
요즘 역사, 문화에 열공하고 계시는 지성미님
전형적인 일식지붕 형태
스승의 날 유래는 강경여고에서 시작됐다. 비석에 그 역사가 적혀있다.
등록문화재 제60호 강경초교 강당
강당 외벽엔 6.25때의 상흔이 남아있다
강당내부
체력은 국력! 어렸을 때부터 눈에 익었던 구호다
국민교육헌장. 어린 시절, 이거 외우느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침례교회는 강경에서 시작됐다
일제의 수탈현장인 미곡창고시설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주변이 황산포구이고, 그 근처에 복국으로 유명한 '황산옥'이 있었다고 한다.
겉은 좀 허접하게 보였지만, 맛집이었다
옛 강경포구 선창가를 걷다
옛 강경포구자리. 배를 잡아매었던 계류석이 옛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아름다운 강경성당의 모습
첫댓글 인문고다니던 나 강경상고가서 부기 주산 자격증획득 해 취업~
사진을 보노라니 감회가 새록새록 ~~~
마중물님의 폰에서 보고픈
지성미님을 만났네요.
강경과 강갱의 다른면도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추억의 강갱이 역사와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함에 감탄했읍니다.
시간내어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