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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1: 5 자기의 신을 부르고
욘 1: 5 자기의 신을 부르고 -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
뱃사공들은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들의 신을 불렀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의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
사공들이 각각 자기 신을 불렀다는 말은 자기들의 신앙에 따라 기도 한다는 말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을 바다에 던진 것은 믿음을 지키려고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버렸다는 뜻이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며 또 종교적 존재이다.
환난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다. 이론적 무신론자는 있어도 실제적 무신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큰 폭풍과 풍랑으로 인해 파선의 위험이 있었던 그때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또한 요나가 배 밑층에 내려가 잠을 잔다는 것은 현재 요나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1]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들이 혼돈의 세력을 패배시킴으로써 질서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혼돈의 세력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억제되었을 뿐이므로 언제라도 잠재된 위협이 나타나리라 생각했다. (H. L. Elison).
(1)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두려워하여"[야-레](Then-were afraid)는 {자} 위험하다, 놀라다, {타} 경외하다, 무서워하다, 엄위하다, 놀라게하다. 란 뜻으로 바다의 풍랑을 잘 알고 있는 사공이 풍랑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사공이 배의 노를 젓듯이, 성도들도 각자 믿음의 배를 노 저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공이 풍랑을 두려워하듯이 성도들도 환난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이는 환난이 왔을 때 환난을 은혜로 받지 못하는 사람은 환난 그 자체가 큰 두려움이 된다는 말로서, 바다에는 풍랑이 일어났으나 요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공들은 바다에 풍랑이 일어난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으며 이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지 몰랐으므로 각자 자기 신을 불렀다.
바다의 풍랑은 요나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사공들은 자기 신들을 부르는 가운데 각기 자기 신앙에 따라 기도하며, 자기 신앙대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처럼 해결하는 방법은 각자의 신앙에 따라 다르다.
배에 있던 선장과 사공과 요나였는데 선장은 배의 키를 잡고 배를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목회자의 상징이고, 사공은 노를 젓는 사람으로서 각기 자기의 신앙을 따라 믿는 성도의 상징이다.
요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는 사람으로 자기 신앙을 스스로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 한 사람을 돌이키기 위하여 환경을 이용하시는데, 이때 많은 사공이 고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기르시고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을 바로 기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동원하시는데, 바로 된 성도 한 사람을 위하여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다.
반면에 성도 한 사람이 믿음을 지키지 않을 때 많은 사람이 고난을 겪게 되지만, 성도 한 사람이 믿음을 바로 지킬 때는 많은 사람에게 평안을 준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2) 자기의 신을 부름
"신"[엘로-힘](his god)은 {남}{복}[명] 하나님, 신들, 천사들이란 뜻으로 각자의 신앙에 따라 기도한 것이다.
각자가 자기 신을 부른다는 말은 여럿이 한 배에서 기도하지만, 각자의 신앙을 따라 부르짖는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각자 다르기에, 기도 하는 내용이 다르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면도 다르다.
따라서 사건은 같아도 깨달은 바가 다르므로 각자 자기의 신앙을 따라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다.
사공들은 자기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최선을 다했다.
* 행 12: 11-15 –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헤롯 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는 잡아 옥에 가두었는데, 이때 다른 제자들은 마리아의 집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옥에서 풀려난 일이 있었다.
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왔을 때,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는 지금까지 베드로가 풀려나기를 기도하였기 때문에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는 베드로가 풀려났다고 기뻐하였지만, 사도들은 베드로가 순교하기를 기도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왔다는 계집아이의 말을 믿지 않고 베드로가 순교하였으므로 그의 천사가 왔다고 하였다.
이처럼 같은 문제를 놓고 기도하더라도, 신앙에 따라 기도의 내용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2]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배를 가볍게 하려고"[칼-랄](to lighten it) 는 감하다, 덜다, 제거하다, 빠르게 하다, 가볍다, 민첩하게, 저주하다, 벌을 내리다란 뜻이다.
"물건"[클리](the wares)은 {남}[단}[명] 패물, 집물, 기구, 물건, 그릇, 기계란 뜻으로 배 안에 있던 물건을 바다에 던졌다.
왜냐하면 배가 무거우면 거친 풍랑을 견디기 어려우므로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배 안의 물건을 바다에 버린 것이다.
풍랑으로 인하여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의 물건을 바다에 던지게 한 것은, 세상 물건이 믿음의 배를 무겁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시로서, 그 배가 무거웠던 것은 배 안에 세상 보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믿음의 배에는 무슨 물건이 들어 있을까?
믿음의 배에 세상 물건이 신령한 것보다 많이 들어 있으면 풍랑을 만나게 된다.
세상 물건이란 세상 권세나, 명예, 세상 욕심 등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버려야 배가 평안해진다.
또한 세상 물건은 영원하지 못하며 때가 되면 다 버리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 안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는 행위는 신앙적으로는 물욕에서 벗어나는 행위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세상 물건을 버리게 하신다.
이와 같이 환난을 통하여 성도의 신앙에 혼합되어 있던 잡것들을 제거하여 주신다.
요나가 탄 배를 가볍게 하려면 배 안의 물건을 바다에 던진 것 같이, 성도들도 풍랑을 헤쳐 나가려면 자기 믿음의 배를 가볍도록 세상 물건을 버려야 하는 것은 세상 물건을 버린 만큼 신령한 은혜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배가 신령한 세계를 향하여 갈 때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세상 물건을 버려야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부자 청년이 영생 얻는 방법을 예수님께 물었을 때, 재물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는 교훈을 받고도, 재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돌아갔다.
* 마 19: 21-22 –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만약 세상 물건을 다 버리면 무엇을 먹고 마시겠냐고 하겠지만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자기가 세상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소유권과 자기가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용권을 버리라는 말이다.
즉 소유권과 사용권이 자기에게 있으나, 이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말고 주인의 뜻에 따라 쓰라는 것이다.
소유권과 사용권을 주님의 뜻대로 쓴다면 세상 물건을 신령한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소유권과 사용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 내게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여기거나,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이 내게 맡기신 주님의 것으로 여기고, 내게 맡긴 주님의 것을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청지기 사상이라 한다.
* 마 13: 44-50 –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말씀은 자기 소유로 있던 것을 다 팔아야 천국 보화가 있는 밭을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해도, 자기 생각대로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의 것에 대한 사용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장차 다 빼앗길 것이며, 자기를 위해 사용한 모든 것도 다 썩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쓴다면 그것은 전부가 영생이 된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소유권과 사용권을 버렸으면 환난 풍파가 불어와도 믿음의 배는 잔잔할 것이다.
또 자기 이름으로 된 것이 없다 할지라도 마음 속에 세상 욕심이 차 있으면 세상 부자로 사는 것이요 세상 것을 버린다는 말은 물질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고 심령으로 빈곤한 자를 말한다.
이는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소유권과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마음이 부자라는 말이다.
성도 중에 소유권과 사용권을 아직도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다면 믿음의 배를 무겁게 한 것이며, 소유권과 사용권을 버린 성도는 믿음의 배를 가볍게 한 것이다.
소유권이나 사용권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진리의 깨달음이 없으면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바다를 헤쳐 나가지 못하여 신앙생활이 어렵고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3]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깊이 잠이 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라담'(*)이라는 동사가 암시하듯이, 요나는 선원들까지도 두렵게 만들 정도로 거센 폭풍에 그만 힘을 잃고 의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H. L. Elison),
* 창 2: 21 - 여호와 하나님이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 창 15: 12 - 해 질 때에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 삿 4: 21 - 그가 깊이 잠드니헤벨의 아내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근본적으로는 그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는 상황 속에서 허탈감과 그로 인한 무력감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는 처지에서 가능한 자신을 깊이 숨기려는 심정으로 배 밑층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자 선장과 사공은 각기 자기의 신을 부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의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데,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편안히 잠만 자고 있었다.
사공들은 바다의 풍랑이 두려워 애쓰고 있는데, 요나는 편안히 잠자고 있었으니, 본래 잠자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몰라서 편안한 것인지, 아니면 믿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나는 그들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요나가 배 밑층에 내려가 잠자는 것은 요나의 신앙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나의 신앙 자체가 내려갔어도, 그에게는 선지자로서의 기본 신앙이 있기에 편안히 누워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요나가 자기 잘못을 숨기고 자기만 편하게 배 밑층에 내려가서 깊이 잠이 든 것은 그의 신앙이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계시로서, 영적으로 사망의 세력에 깊이 빠져 잠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사망의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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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일 가득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활기차게 출발하는 즐거운 날 힘찬 하루 보내시어
굿 데이 해피 데이 되시고 매일 매일 외치는 소망도 바라는 데로 원 하는 데로 모두 이루어지는 하루
작은 소망이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최고의 하루 만사형통 하기를 매일 매일 바라는 일이 성취 되는 하루
즐거웁게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 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