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왔다. 순백의 눈이 내려 흙이며 수풀, 댓잎, 나뭇가지, 생활의 마당과 구불구불한 골목, 먼 산등성이와 깊은 골짜기가 온통 순은으로 빛난다. 내면에 살던 동심도 하얀 목을 빼 설레는 눈빛을 하고 이 세계를 바라본다.
대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눈사람이요, 우주는 때가 조금도 묻지 않았으니 곱게 핀 한 송이 백련이다. 모든 존재가 높고 고결하다. 산사에는 법당 지붕, 탑, 암자로 가는 길이 흰 빛에 덮여 눈부시다. 범종 소리와 독경 소리는 더욱 청아하다. 천연한 것은 이처럼 고요하고 아늑하다. 여기에 어디 분별이 있는가. 여기에 어디 거짓과 다툼이 있는가.
나는 거소에 돌아와 외투를 벗어 속진을 털어내고 손과 발을 씻고 가만히 설경을 마주한다. 몸과 마음의 열이 내리고, 숨결이 고르게 돌아오고, 가시덤불처럼 수선스럽던 안과 밖이 잔잔한 수면처럼 앉고, 어느새 깨끗한 충만이 넘칠 듯이 가득하다.
- 2024.11.28. 불교신문 〈문태준 시인〉-
The Pianist Soundtrack - Ballade No.1 in G Minor (O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