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리카 10여 나라를 가 봤고 아프리카가 좋고 그래서 나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다.
'아프리카 국경선은 왜 직선일까'와 1884년 베를린 컨퍼런스.
1884년 베를린 회의는 독일 제국 베를린에서 열린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 회의로, 당시 독일 제국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도했다.
이 회의에서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콩고분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분할 문제를 논의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를 보고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른 대륙에 비해서 유독 직선으로 된 국경선이 많기 때문이다.
국경선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면, 산과 강 등 지리적인 원인나 민족 혹은 문화적인 요소로 인해 굴곡질 수밖에 없다.
자로 잰 듯이 그어져있다면 이는 분명 인간이 개입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서구 열강들에 의한 국경선 설정이었다.
이렇게 서구 열강들의 분쟁이 지속되자 당시 유럽 평화의 중심축이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는 1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을 비롯한 유럽의 13개국, 그리고 미국과 오스만튀르크였다)이 참가해 아프리카 지배에 관한 쟁점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는 ‘베를린 의정서’로 정리되었다.
의정서에 따르면 ‘콩고자유국’에 대한 벨기에의 지배를 인정하되 콩고에 면한 적도아프리카 지역에는 프랑스의 권리가 인정되었고, 콩고 강 하구에서는 포르투갈의 지배권이 인정되었다.
또한 서남아프리카에서는 니제르 강을 기준으로 상류 일대는 프랑스, 하류 일대는 영국이 지배권을 가졌으며, 북위 5도 이남의 중앙아프리카 일대에서 조약 체결국들의 자유무역이 인정되었다.
논란이 된 것은 ‘실효적 지배’였다.
의정서에 논의되지 않은 지역은 실효적 지배 원칙에 따른다고 정했는데, 이는 그 땅의 소유에 대한 판단 기준이 ‘실효’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즉, 원주민과의 협약, 관리사무소 설치, 교역로 확보 등의 여부에 따른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서구 열강과 원주민들의 치열한 항쟁이 발생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영역 분할이 지도 위에 그은 선으로 결정되었고, 그 선의 근거가 위도와 경도에 따른 경우가 많아 아프리카는 다른 어느 대륙보다 직선 경계선이 많은 대륙이 되었다.
또한 베를린의정서에 따라 정한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원주민의 문화와 인종은 고려하지 않고, 열강들의 이익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의 정치적 불안과 분쟁을 낳고 있다.
이를 보면서 역시 나라는 자체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