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그친 산으로
간밤까지 비가 내리다가 새벽에는 그쳐가는 일월 셋째 금요일이다. 대한을 하루 앞두었는데 지나간 소한에도 겨울다운 추위는 실종되고 따뜻하게 넘겼더랬다. 이번 주말을 넘긴 다음 주중 강추위가 예보되긴 해도 올겨울은 옐리뇨 영향인지 비가 잦은 난동(暖冬)임이 분명하다. 한겨울 내리는 비는 산불 예방에나 도움 될까마는 싶어도 대기 중 미세먼지를 씻어줌에 감사해야 하겠다.
어제는 비가 오는 관계로 아침부터 도서관에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금요일은 웃비가 그쳐주어 이른 시각 근교 산행을 나섰다. 구름이 낀 날이라 여명이라도 동이 트는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집 근처에서 진해 장천동으로 가는 151번 버스를 타고 시청 광장을 돌아가니 야광 불빛에 비친 사랑의 온도계는 아직 비등점에 미치지 않고 있었다. 설날까지는 목표액이 다 채워졌으면 싶다.
남산동 버스터미널을 지나서 성주동 공단에 이르자 근로자들이 다수 내리니 차내 혼잡은 다소 덜했다. 이른 아침에 가끔 공장이 밀집된 지역을 통과하다 보면 평일과 휴일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주중은 회사로 출근하는 이들로 승객이 붐볐으나 주말과 휴일은 그렇지 않아 주행 속도도 빨랐다. 일반인들은 회사로 출근하고 있었으나 나는 나대로 자연학교로 등교하는 학생임을 자부했다.
안민터널 사거리에서 내려 남천이 흘러오는 천변을 따라 성주사 수원지로 거슬러 올랐다. 개울가는 창원공단 조성 당시 마을을 떠난 천선동 주민이 세운 유허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그 곁에는 원주민이 뿔뿔이 흩어진 이후에도 마을을 찾아와 동신제를 지내는 당산목이 나왔다. 곰절로 불리는 성주사가 들어서기 이전 토속 신앙을 믿어온 선대들은 부처님도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성주사 수원지 둑 아래는 개통을 앞둔 제2 안민터널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이른 아침인데도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수원지를 돌아가는 어디쯤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를 정비하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었다. 주차장에서 근년 세운 일주문에 단청은 칠이 되지 않은 산문으로 드니 법회가 없는 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량도 신도도 드나들지 않아 한적했다.
절집 계단으로 오르니 잿빛 옷을 입은 처사가 마당을 쓸었는데 빗질이 지난 자국이 뚜렷했다. 지난가을 어느 아침에는 두 스님이 마당을 쓰느라 수고하던 것을 본 바 있는데 그 스님은 동안거에 들었는가도 싶었다. 법당을 향해 손을 모은 뒤 지장전 앞으로 가니 저 멀리 불모산 정상부 걸쳐진 구름이 벗겨지면서 햇살이 살짝 드러났다. 샘터의 물을 한 모금 떠 마시고 뒤뜰로 올라갔다.
관음전 뒤에서 응진전을 비켜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비공식 등산로 드니 잦은 겨울비로 계곡에는 물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낙엽 활엽수가 울창하게 높이 자란 숲을 지나다가 삭아 쓰러진 참나무에 붙은 운지버섯을 찾아내 약차로 달여 쓸까 싶어 따 모았다. 여름 숲에서는 자색으로 갓을 펼친 영지버섯을 볼 수 있으나 겨울에는 운지버섯이 눈에 띄는데 둘 다 약용 건재로 유용하다.
예전에는 방송국 송신탑이 차지한 불모산 정상부도 거뜬히 올랐으나 이제는 산 아래서 쳐다보고 만다. 산 중턱 어디쯤까지 올라 되돌아 내려오는 등산로가 있긴 해도 거기까지도 부담이 되어 마음을 비우고 산기슭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아마 무덤을 찾아가는 성묘객이 다녀 길이 난 듯했다. 산등선에 이르니 바깥 주차장에서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다.
산기슭으로 내려가면서 젖은 가랑잎 숲길을 걸으니 등산화에 와 닿는 촉감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다 드러난 바윗돌에 앉아 숲으로 들어와 남긴 사진을 몇 지기들에게 안부로 전했다. 쉼터에 일어나 산허리로 걸쳐진 숲속 길로 합류해 불모산터널 근처에서 불모산동 저수지로 내려섰다.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는 기축골 한 식당으로 들어 자연학교 학생도 한 끼 때웠다. 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