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휴즈(1905~1976)]
하워드 휴즈는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출발했다. 텍사스에서 석유 시추 장비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둔 아버지 덕분에, 그는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자산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휴즈는 상속 자산을 지키는 관리형 부호가 되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드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그의 가장 큰 집착은 항공이었다. 휴즈는 항공사를 소유한 사업가이기 이전에, 직접 비행기를 설계하고 조종하는 파일럿이었다. Hughes Aircraft Company를 설립한 그는 군수·항공 기술 연구에 깊이 관여했고, 1935년에는 H-1 Racer로 세계 최고 속도 기록을 세웠다. 1938년 세계 일주 비행은 그를 단순한 억만장자가 아닌, 미국적 모험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언론은 그를 ‘하늘을 정복한 남자’로 묘사했고, 대중은 그에게 영웅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항공 사업은 곧 집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제작된 초대형 수송기 H-4, 이른바 ‘스프루스 구스’는 기술적 필요와 개인적 집념이 뒤섞인 프로젝트였다. 목재로 만든 거대한 비행기는 단 한 차례 시험비행만 했을 뿐,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 실패는 휴즈의 경영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였고, 현실적 판단보다 자신의 확신을 우선했다.
이러한 성향은 상업 항공사 TWA 경영에서도 반복됐다. 그는 혁신적인 항공기 도입과 노선 확장을 추진했지만, 조직 운영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의사결정은 지연됐고,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다. 시스템을 바꾸려 했지만, 정작 시스템 속에서 함께 일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영화 산업에서도 휴즈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Hell’s Angels에서 그는 실제 전투기와 파일럿을 동원해 항공전을 촬영했고, 제작비와 일정은 끝없이 늘어났다. Scarface에서는 검열 당국과 싸우며 갱스터 영화의 고전이 되었고, The Outlaw에서는 제인 러셀을 발굴해 파격적인 이미지로 홍보했다. 그는 영화 제작자라기보다, 자신의 집념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기획자에 가까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사업과 연애가 만난다. 휴즈에게 여배우들은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이미지와 가능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는 스타를 사랑했고, 동시에 스타를 만들어냈다.
캐서린 헵번과의 관계는 휴즈의 연애사 가운데 가장 진지한 장면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했지만, 동시에 서로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헵번은 휴즈의 천재성과 모험심에 매료됐지만, 그의 통제 욕구와 불안정함에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이 관계의 파국은 휴즈가 감정의 영역에서도 타협하지 못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제인 러셀과의 관계는 훨씬 더 ‘휴즈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발굴했고, 이미지를 설계했고, 검열 논란까지 계산에 넣은 듯 행동했다. 러셀은 연인이자 프로젝트였다. 이는 그의 연애가 사업적 사고와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에바 가드너와의 연애는 격렬했고, 파괴적이었다. 가드너는 휴즈의 통제를 거부했고, 휴즈는 그 자유를 견디지 못했다. 이 관계는 휴즈의 소유욕과 불안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사랑은 그에게 안식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리타 헤이워스, 진저 로저스, 진 할로, 그리고 마릴린 먼로와의 소문까지 포함하면, 휴즈의 연애사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관통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이름들 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누구도 그의 곁에 오래 남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The Aviator는 휴즈의 젊고 역동적인 시기, 즉 항공 기록과 영화 제작, 상원 청문회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휴즈는 천재적이고 고독하며, 병과 싸우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휴즈는 전체가 아니다. 실제 휴즈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기묘했던 시기, 즉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제국을 건설하고, 호텔 방에 은둔하며, 세균 공포와 모르핀 중독 속에서 붕괴되어 간 말년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는 ‘몰락한 노인’보다 ‘비극으로 향하는 천재’를 선택했다.
강박증 묘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속 강박은 정확하지만, 관객이 이해 가능한 선에서 멈춘다. 실제 휴즈는 머리카락과 손톱을 자르지 않았고, 침대에서 배설을 해결했으며, 인간다운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됐다. 영화는 이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이는 왜곡이라기보다, 휴즈를 끝까지 ‘영화적 인물’로 남기려는 선택에 가깝다.
연애사도 낭만화된 거리두기를 유지한다. 영화 속 휴즈는 상처받은 연인이다. 그러나 실제 휴즈는 때로 통제적이었고, 여성의 삶과 커리어에 깊이 개입했으며, 관계를 파괴하는 쪽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1960년대 이후, 휴즈는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해 호텔과 카지노를 인수하며 또 하나의 제국을 구축한다. 동시에 Hughes Medical Institute를 통해 자산을 재편하며 방위산업과 의료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남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재단은 오늘날까지도 과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기관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이 확장될수록, 인간은 사라졌다. 그는 점점 외부와 단절되었고, 세균 공포와 강박증에 사로잡혀 호텔 방에 은둔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한 남자는, 결국 아무와도 함께하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