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테디 라일리' 를 꿈꾸는 멀티 뮤지션 전영진
마감작업이 한창이었던 차에 UCC 한편을 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 네티즌들이 올리는 재미난 영상들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곤 했는데,
그날 따라 어찌나 덥고 짜증이 나는지 글이 제대로 써지질 않아 많은 양의 원고 정리를 잠깐 뒤로 하고 '딱 한시간만' 이라는 심산으로 UCC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조금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약간 통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 뮤지션이, 기타는 물론이고 키보드와 베이스, 그리고 키-드럼(워크스테이션의 건반을 이용하여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음원 툴을 이용한 재미있는 마이킹까지, 한마디로 못하는게 없는 '만능 뮤지션'의 모습으로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각각의 악기 연주 역시 일정 기간 경력이 없으면 소화하지 못할 수준의 레벨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 별 것 아닌 연주(아직 '지망생'의 단계인 당사자에게는 싹을 밟을 지도 모르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은 사실이니)에 언론의 호들갑이 도를 넘어섰던 임정현이나, 어떻게든 UCC를 띄우는 데에 이용당했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여고생 기타 지망생 등의 '레베루'와는 사뭇 다른 포스를 뿜어내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렇지. 그는 바로 2004년 3월 음악 마니아들에게 각광받았던 신세대 듀오 얼바노(Urbano)의 전영진이었던 것이다!
글 : 배영수(기자) / 사진 : 김희진
아마 얼바노(혹은 전영진과 함께 얼바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색소포니스트 김중우의 커먼그라운드)의 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얼바노는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었던 2002년 6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마이너 데뷔 음반(이후 이 앨범은 2004년 2집과 함께 공식 메이저 발매된다.) 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지명도를 넓혀 나갔다. 그들은 바비 브라운 혹은 듀스 등의 음악적 색감이 살아있는 뉴 잭 스윙 스타일과 퓨전 재즈 등의 요소를 적극 반영하여 도회적인 분위기의 음악으로 어필했지만, 단 한 차례의 공연 이후 멤버들의 스케줄과 소속사 변경 등의 일로 계속적인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둘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이미 20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현재도 특유의 우정은 변함없지만, 이후 김중우가 13인조 혼섹션 밴드 커먼 그라운드에 집중하고, 전영진 자신은 게임 음악 업체(한게임)의 회사원이 되면서, 두 장의 앨범 외에는 공식적인 움직임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당시 인기 게임이었던 [당신은 골프왕], [지뢰 찾기] 등의 게임 음악이 그의 창작품이었다.)
이후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넘어선 녹음 전문 공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퇴사 후 2005년 10월 [조이 트랙스]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조PD, 전제덕 등의 앨범에서 일부 트랙이 레코딩되기도 한 이 곳은 최근에 론칭을 시작했고, 당연히 이번 그의 솔로 데뷔 앨범 [All-In-One]도 여기서 녹음 된 것. 이 솔로작은 2004년부터 구상을 시작했고, 처음에는 디페시 모드나 아하, 듀란 듀란 같은 신스 팝/뉴웨이브 등의 음악을 해 볼 생각도 갖고 있었다고. 그러나 자신이 보다 잘 할 수 있는 음악이 펑키와 뉴 잭 스윙 등의 음악이었음을 깨닫고 2005년애 현재의 스타일로 회귀, 2년 정도의 공을 들인 끝에 앨범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보에는 장비가 그리 좋지 못했던 초창기 상태의 녹음 소스가 그대로 들어가기도 했다고 하는데,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보코더의 사용 등 신스 팝의 요소가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앨범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이번 앨범은 보컬과 모든 악기 연주, 편곡, 녹음 등 모든 프로듀싱 과정을 혼자 다 해냈다. 당연하게도 UCC 영상을 통해서 선보였던, 멀티 인스트루멘틀리스트로서 모자람이 없는 실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해낼 수 있었으며, 이번 앨범에서 가장 중점을 둔 '원맨 밴드로서의 유기적인 조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직접적인 주조법이었던 것이다. 작곡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예를 들어 UCC 영상 'Warming-Up'에서도 보여졌던 베이스와 기타, 건반 등의 유니즌 프레이징, 수록곡의 이해와 편성 등은 오히려 혼자 진행했을 때 장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전영진이 적지 않게 신경을 쓴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데뷔작은 본인이 의도한 대로 비교적 잘 나왔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전영진 자신이 가장 지향하는 작업은 밴드 형식의 녹음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강조한다. 실제 커먼 그라운드의 전신이라 할 수 있었던 펑크 사이즈드(Funk Sized - 참고로 커먼 그라운드는 서영은의 앨범에도 참여했던 혼 섹션 전문 밴드 호니 플레이(Horny Play)와 '중화반점'이라는 명곡(?)을 남긴 루이스(마준성)가 몸담았던 펑크 사이즈드가 결합한 결과다.) 라는 팀의 데모 녹음때도 자신은 프로듀서의 역할만 했다며, 차후 2집을 만들때는 자신의 측근들, 섭외 가능한 친한 가수 등을 모두 불러모아 일종의 '떼거지'로 앨범을 진행할 생각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얼바노와 전영진의 앨범을 비교하면 사운드의 질감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칼박 그루브'로 대표되는 사운드 메이킹과 텐션 코드(특히 그의 작품에는 세븐 코드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곡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를 곧잘 이용하는 특징을 가진 그였기에 그 성향이 잘 살아난 이번 솔로작만 봐도, 실제 'My Sugar' 와 같은 R&B 발라드 트랙에서는 얼바노 1집의 '불면'과 비슷한 작법과 진행을 볼 수 있으며, '널 사랑해'와 같이 인상적인 브리지(Bridge-다른 말로, 좀 틀린 용어이긴 하지만 '싸비'라고도 부른다.) 는 '후회 후회 또 후회'나 ' 내탓이지 뭐' 등 얼바노의 대표 넘버들이 주었던 인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는데, 이미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 영민하게도 전영진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누가 들어도 "아, 전영진이 만들어었구나" 라고 피드백을 보여준다면 대단히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공식처럼 따르던 형식들이 있다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살제로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는 질감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발산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기전 글쓴이는 그와 관련한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 성급한 이들은 벌써부터 전영진을 '한국의 프린스(Prince)'로 부르며 추켜 세우고 있었다. 이에 그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신 역시 존경하는 인물이고, 또한 본인이 80년대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보니 일어난 결과가 아니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연주자라기 보다는 프로듀서의 입장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의 연주를 담은 동영상이 연주자와 지망생을 위한 사이트인 [뮬] 같은 곳에서 주목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물론 '한국의 프린스'라는 닉네임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목표는 '한국의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박진영이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로 꼽으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지게 된 테디 라일리는 가이(Guy)와 블랙스트리트 등을 거친 '뉴 잭 스윙의 제왕'으로 불리는 프로듀서로, 마이클 잭슨, 넵튠스, 제이-지 등과도 함께 음악 작업을 했던 전설의 인물이다. 이쯤 되면 극성 팝 마니아들은 "에이, 지가 어떻게" 하며 냉소를 던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 볼 때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 이제 갓 30이 된 나이에 세련된 감각과 창의적인 사운드 메이킹을 겸비하고 있다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JK 김동욱과 조PD, 변재원 등 역량있는 가수들이 과거 그의 힘을 필요로 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싹은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음악 마니아들은 '전영진'이라는 이름을 꼭 기억해 두시라. 적어도 그는 그 '기억해준 대가'를 저버리지 않을 뮤지션임은 분명하다.
첫댓글 기사에 사진도 자~알 나왔어요 !!!!! 여러 모습의 영진뉨~ 기타, 키보드, 마이크, 헤드폰~~ ^^
정말 잘 나오셨더라구요.^^ 기억될 수밖에 없는 뮤지션!!!
전영진 이름석자 기억해 두겠음.자자손손 대를 물려 기억하게 하겠음!
역시 음악전문잡지다운 바람직한 기사네요.와우-!
많~이 깎아주셨습니다. 참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