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말씀에 이어 예수님은 다시 오실 날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슬기로운 열 처녀 비유로 알려져 있는 오늘 말씀의 첫 단락은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혼 할 때는 혼인식 전날 밤에 신부는 들러리 10명 정도와 함께 횃불을 들고 동네 입구에서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이 오면 들러리들과 함께 혼인식이 열리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 때 들러리들은 횃불을 들고 신랑과 신부가 가는 길을 밝혀 주고 또 혼인식에서도 환하게 빛을 밝혀 주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기름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풍습을 가지고 비유하고 계십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처녀는 들러리들입니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와서 열 처녀 모두 잠 들었습니다(7). 밤 중에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일어나 신랑을 맞으러 나가려고 하니 그 중 다섯은 기름의 여분을 준비하지 못해 횃불이 꺼져 갑니다. 그 중 다른 다섯은 여분이 있어서 등불을 켤 수 있었습니다. 신랑이 오고 나서야 기름을 사러 간 미련한 들러리들은 결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신랑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기반한 이야기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13). 깨어 있다는 것은 단지 잠을 안자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염두에 두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니 항상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다른 나라에 갔다 올 동안 자신의 종들에게 각각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겨주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맡은 자도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인이 와서 정산할 때 다른 달란트를 남긴 자들은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의 주인의 엄함과 악함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비유는 주님이 오실 때 우리의 행실과 주님에 대한 이해로 우리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임을 말해 줍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양과 염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역시 마지막 날과 관련 있습니다. 마지막날에 주님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고 양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소는 주님을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 기준은 주님의 형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행실입니다.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으로 간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 형제, 자매에게 예수님께 하듯이 잘 대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 복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는 주님께서 알지 못할 때 다시 오신다는 것과, 오시면 반드시 정산 하시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는 것,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삶이 변화됩니다. 주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이 땅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른지, 그분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더 깨어 있어 준비하고 있어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