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회귀 여행
일월 중순 셋째 토요일은 대한이다. 대한은 24절기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이월 초순 든 입춘에 새로운 한 해 배턴을 넘겨준다. 새해의 기준이 양력으로는 일월 첫날에 시작되었으나 책력 절기로는 입춘부터 보기도 한다. 물론 음력 기준으로는 다가올 설날부터 기점이기에 아직 스무날 남짓 남았다. 추분 이후 길어져 왔던 밤이 정점을 지났던 동짓날은 작은 설로 이름 붙여 쇠었다.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때가 일월 초순으로 소한 절기에 해당한다. 그 이후 우리 지역 겨울 아침 기온은 빙점 부근을 오르내리다가 대한을 고비로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다가 입춘 무렵에 퇴각함이 상례다. 그런데 올해는 따뜻한 소한을 넘겼고 대한에는 겨울답지 않게끔 비마저 내린다. 비가 그친 이후 닥쳐올 한파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긴 하지만 올겨울은 비가 잦고 따뜻한 편이다.
주중 두 차례 수요일과 토요일 집 근처 농협 마트에서 알뜰 장터가 열려 가끔 나가 장을 봐 나른다. 우리 집은 홈 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에 익숙하지 않아 손발이 고생함은 감수한다. 겨울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가 동이 나 아침 식후 다른 일과에 앞서 한 상자 사 놓았다. 즐기던 술을 끊고 대신으로 먹는 군것질이 고구마와 커피라, 바닥 나 아쉽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그제도 비가 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우천으로 하루 걸러 도서관으로 나가게 될 형편이다. 고구마를 현관에 옮겨 놓고 집으로 빌려와 읽던 책을 챙겨 배낭에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흐린 하늘에 비가 그쳐 주어 우산은 펼치지 않고 손에 든 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보도를 걸었다. 반송 소하천에 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와 쇠백로는 어딘가로 떠나 보이질 않았다.
거리는 아침인데도 주말이라 차량이나 행인이 드물어 한적했다. 대중교통 운행 체계 개선을 위한 공사로 혼잡을 빚는 원이대로도 소통이 원활했다. 시행청에선 정해진 준공 기일을 맞추려면 주말도 쉬지 않고 시공하고 싶어도 임금 체계나 고용 여건이 녹녹하지 않을 듯했다. 불편을 겪는 운전자나 보행자로서는 주말이나 야간에도 작업을 계속해 하루빨리 공사를 끝냈으면 싶다.
창원 레포츠파크에서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으로 향했다. 알뜰 장터 시장을 봐 나른 관계로 평소 업무 개시 시각에 맞추던 입실보다 1시간 정도 늦었다. 도서관 열람실은 주말이라 주중보다 이용자가 늘어나 보였다. 지정석처럼 앉는 2층 창가 열람석으로 가 배낭에 넣어간 책과 돋보기를 꺼냈다. 집에서 못다 읽은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쓴 책이었다.
가끔 신앙인 일대기나 그분이 쓴 책을 읽기도 하는데 불교와 연관된 인물이 많은 편이다. 산을 자주 찾다 보니 웬만한 대찰이나 근교 암자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 그러함에도 스님을 직접 대면해 얘기를 나눠본 경우가 드물다. 펼쳐 본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을 쓴 주경 스님은 수행에 익숙했고 절집 살림에도 깊숙이 관여해 이판사판(?) 다 밝아 대중에게 전할 말이 많았다.
수행승의 책을 접은 뒤 야담으로 읽는 세상사 ‘조선의 단편 1’을 펼쳤다. 조선 후기 한문으로 전하는 짧은 이야기를 우리 글로 바꾼 책으로 분량이 많아 1, 2권으로 나눠 묶어져 있었다. 성균관대에서 한문을 전공해 동국대에서 문예창작을 지도하는 정국환 교수가 책임 번역한 책이었다. 한문 원전일지라도 더듬더듬 짚어가며 읽어도 해독이 될 내용이라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겼다.
조선은 유교 사회였다. 중국에서 출현한 유가 사상은 동아시아의 생활윤리이자 정치철학이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고유성을 간직해 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교적 통치 이념에 균열이 생기면서 신분제 사회도 변혁기를 맞았다. 500년 전후 저잣거리 뒷골목에 살다 간 사람들이 모습을 봤다. 벼슬을 차지하려고, 재산을 모으려고,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이루려고 … 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