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웜(Blueworm)-05
"노보텔호텔. 글로벌 특이 미생물학회 빌딩과 가장 가까운 호텔이지요. 주변에 한인식당들이 많아요."
"영 핀치 남쪽에 있는..."
"예. 맞아요. 내가 이미 예약을 해두었으니 가기만하면 됩니다."
"예. 저도 알아요. 그 호텔. 노스욕센터 옆에 있잖아요."
"이제 안심하고 탈거지요? 주차요금은 분당 계산하거든요."
"예. 좋아요. 가요."
오랫만에 반가운 이름을 들으며 대화를 한 지영은 이제 기분이 좋아졌다. 블루웜까지 찾았고 공항에서 헤매임없이 바로 숙소로 편히 갈 수가 있으니 밤이지만 제대로 토론토의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김지영이 의학박사이지만 겨우 28살이다.
"아저씨는 어디 사세요?"
지영은 조수석에 앉아 스쳐지나가는 어두운 도로의 불빛을 보면서 물었다. 지금은 깊은 밤. 어코드의 전자 시계는 01시 40분이다.
"쏜힐 들어봤어요? 베이뷰와 죤스트릿 노스?"
"아하- 그 청와대라 불리는 콘도?"
"어휴- 의학박사인 줄만 알았는데 지명학도 공부했는가 봅니다. 어떻게 거길 알고 있어요?"
"유티 대학 때 공부가르치던 8학년 학생집이 그 콘도에 있어서 알아요. 분위가 아주 좋던데요. 주변 환경도 좋더라구요."
"맞아요. 8년째 그곳 원룸 콘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자주 옮겨 다니질 못해요."
"왜 원룸에서 살아요? 원룸이라면 방 하나 그리고 거실 그렇잖아요?"
지영은 의아해서 고개를 돌려 제임스를 봤다. 그런 지영을 제임스도 고개를 잠시 돌려봤다. 그리고 얼른 전방을 주시하여 계속 운전하였다. 그 때 제임스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눈속에서 마주오는 헷라이트에 비춰 반짝한 그의 눈물을 보았다. 지영은 얼른 고개를 돌려서 검게 보이는 차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임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은 아니야. 지영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나중에... 김 박사님이 떠나시기 전에 말 할 기회가 있을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피곤하시지요?"
지영은 그가 침묵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좋았다.
"아니예요.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월요일 아침에 첫 미팅이 있으니 시간은 충분해요. 아저씨~ 아직팀하튼 커피점 있어요?"
그들이 죤+우드바인 코너에 있는 팀하튼 커피샾에 들어서니 네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시각은 새벽 2시였다. 제임스는 미디움싸이즈에 트리플 트리플을 샀고 김지영은 스몰싸이즈 블랙을 사서 어둠만 보이는 창가에 마주보고 앉았다. 지영은 비로서 제임스 아저씨를 찬찬히 볼수 있었다. 제임스도 지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아저씨. 우리 결투 전이예요. 그렇지요?"
지영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커피를 잡으며 양 어깨를 들썩이며 제임스가 대답하였다.
"무슨 결투?"
"우리는 서로 약점을 찾거나 흠집을 찾거나 하느라 뚫어지게 얼굴을 보고 있었잖아요. 저에게서 뭘 찾았어요? 아저씨-"
"김지영~"
제임스는 인자한 아저씨가 되어 사랑 가득담긴 목소리로 불렀다.
"예."
나직하게 지영이 수줍듯 대답하였다.
"나는 김지영 박사의 얼굴에서 김선애 시인의 모습을 찾고 있었습니다. 김 박사는?"
그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지영이 그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었다. 그의 음성은 참 매력있고 남성답다 생각하고 있던 지영은 결국 엉뚱한 말을 하여 분위기를 깼다.
"블루웜을 어떻게 아셨느냐고 제가 물었잖아요. 아저씨는 나중에 말해 준다고 하셨고. 지금 말씀해 주세요."
"흠. 드디어 김 박사가 먼저 공격을 하시는군요. 좋아요."
애틋한 분위기는 깨어져 버렸다.
"어머니에게서 김지영 박사가 글로벌 미생물학회의 중요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토론토에 도착한다고 말하며 건강하게 보람을 가지고 한국에 무사히 귀국하여 만나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하였고 짐작하는 것이 있어 학회를 뒤졌지요. 자세하지는 않았지만 김지영 박사의 슈퍼박테리아에 관한 한국의 현재 상황도 봤지요. 결국은 그런 일 혹은 사건 때문에 학회의 회의에 참가하려 오는구나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블루웜이라고 말하였으니 제 짐작이 숨쉬고 있는 거지요. 더 궁금한 것 있습니까?"
제임스가 차분히 생각을 말해주고는 커피를 마셨다. 지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제임스가 놓치지 않았다.
"무슨 고민인지 말해봐요.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지영이, 제임스 어깨너머 어둠을 보던 눈을 돌려 제임스를 향해 입을 여는 순간.
"아. 잠깐. Let’s get a breaktime for 10 minutes. Okay?"
"what's going on to you?"
놀라서 지영이도 역시 영어로 물었다. 갑자기 한국사람끼리 왠 영어람... 속으로 두털거리며...
"담배... 잠깐만 맑은 밤 공기 좀 쐬고 오겠습니다."
제임스가 얼굴을 지영이에게 가까이 하며 사정하였다.
"저도 같이가요."
"응! 담배 피워요?"
"ㅎㅎㅎ. 아니예요. 저도 맑은 바람이 필요해서요."
마캄시의 새벽공기는 온화하고 신선하였다. 제임스가 사는 곳에서 차로 10분 노보텔 호텔에서 20분 거리에 팀하튼이 있었다. 오늘 지금은 토요일 새벽. 한 주의 힘든 일을 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것이다.
"아저씨. 서울과 달리 공기가 참 맑고 상큼해요."
담배를 피며 생각에 잠겨있는 제임스를 지영이 깨웠다.
"피곤하시지요? 졸리기도 하고?"
"아니예요. 시차 때문인가 봐요. 아직은 싱싱해요. 그런데, 침대에 누우면 잠에 떨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잠들기 싫어요."
지영은 정말 지금은 잠들고 싶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의 평화와 부드럽게 흐르는 맑고 신선한공기 그리고 든든하게만 느껴지는 제임스 아저씨가 있는 지금을 좀 더 향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만났지만 이야기할 수록 정이가는 아저씨였다. 그러나 제임스에 대한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저씨. 직업은 뭐에요?"
이런. 이런 타입은 의사의 것이 아닌데... 지영은 막 담배를 마치고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그가 천천히 지영이쪽으로 돌아서며 미소지었다. '어휴- 저걸 살인미소라 하나?' 그의 미소는 모양만 갖추었지 미소가 아니었다. 묘한 표정이었다. 무표정과 멍한 무념의 상태에서 입술이 살짝 그리고 눈가가 조금 움직였을 뿐이다. '저게 살인미소일거다' 지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천하다 생각하는 구두닦이. 다운타운에서 구두닦는 일을 합니다. 놀랐지요? 어머니가 말씀 안하셨어요? 실망이 크겠군요."
"전혀. 어떤 기대도 안했는데 실망이 있을 수 있어요?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가 소설 쓰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괜찮은데 누가 안 괜찮을까요? 쓰는 것은 누구나 하지요."
"혼자사세요?"
지영은 사실 그의 직업을 알고나자 실망하였다. 적어도 반듯한 사업을 하지 않겠나 짐작했었는데, 알고나니 솔직히 그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처음보다는 하향쪽으로 달라졌다. 그래서 내친 김에 물었다. 그는 들고 나온 커피를 마시고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혔다. 지영은 이제 담배냄새가 느껴졌다.
"이곳 캐나다에 혼자 온 것은 아닌데 지금은 혼자입니다."
지영은 이제 피곤하였다. 그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잖는가. 제임스. 그는 지영을 노보텔 호텔에 데려다 주고 체크인을 마칠 때까지기다렸다 떠나며 필요할 때는 부담없이 전화하라며 쪽지에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며 노란 서류봉투를 같이 주었다. 지영은 카드키로 302호 룸을 열고 들어가자 그제서야 졸음이 밀려왔다. 그냥 침대에 누워자고 싶었다. 지영은 천정을 향한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갑자기 자기 전에 제임스가 준 봉투가 궁금하였다. 싸이드 탁자에 놓은 봉투를 잡고 붙인 곳을 조심해서 찢어 열었다. 그 속에는 검정색 아이폰 4, 충전기, Sifa 20불 짜리 국제 전화카드 5장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캐나다 20불이 30장 CD600이 들어있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지영은 놀랐다.
지영은 시간을 보니 한국의 어머니에게 전화해도 될 것 같았다. 어머니의 전화에서는 '하늘이 준 운명의 사랑.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하는 곡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이상한 음악을 전화하는 사람이 듣게한다고생각하다 놀랐다. '어. 내가 한국에서 전화할 때는 이 노래가아니었는데...'
"여보~ 세요."
어머니의 음성은 맑고 부드럽고 지영이 생각에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좀 이상함을느꼈다.
"어머니. 나야! 지영이. 김지영."
"어머! 지영이니? 어디야?"
"엄마는~ 여기 토론토야. 노스욕에 있는 노보텔호텔. 좀 전에 제임스 아저씨와 헤어졌어."
"별 일은 없는거지?"
"응. 지금은 없는데 별 일이 있었어. 제임스 아저씨가 해결해 주셨어요."
"제임스 아저씨 어떻든?"
"엄마는 그게 제일 궁금하시지요? 좋았다가 그냥 보통이야. 엄마는 왜 미리 나에게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응. 너가 만나서 스스로 알게 되는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너 실망했구나."
"응. 그랬었는데, 지금은 별로 관심없어. 곧 바쁘게 될거니까. 엄마! 나 너무 졸려요. 이제 잘께요."
지영은 그대로 잠에 떨어졌다.
블루웜이 점점 커다랗게 자라 숙주인 인간의 몸을 터트리며 튀쳐나오는 것을 입을 벌린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벨이 울리고 있었다. 지영은 얼른 일어났다. 꿈이었다. 싸이드테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굿모닝. 김지영 박사님."
토론토였다. 그리고 한국말로 아침인사를 할 사람은 제임스밖엔 없었다. 당연히 짜증썩인 목소리가 되었다.
"아저씨! 왠일이예요. 자는 중인데..."
지영이 잡은 휴대폰의 시간을 보니 아침 7시였다.
"김지영 박사님. 월요일 아침 8에 미팅이있잖습니까? 서두셔야 합니다."
그렇다. 그럼 월요일 아침이란말인가. 지영은 급히 일어났다.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학회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저씨. 제임스 아저씨! 어디계셔요?"
"호텔 입구 주차장에 있습니다."
휴우- 안심이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내려갈께요."
특히 챙길 것은 없었다. 샤워하고 한국서 입고 온 차림 그대로인채 트리플레드 러게지에서 준비한 옷 몇가지만 호텔방 서랍에 남겨두고 쇼울더 빽과 트리플레드를 끌고 내려갔다. 마음은 급했다. 좀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추스리고 미팅에 참여하려 했던 계획이 초장부터 어긋났다.
"아저씨. 어디있는지 아세요?"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지영은 고맙다는 인사보다는 과연 찾아 갈 수가 있는지 늦지는 않을려는지가 더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 호텔을 택했습니다. 가는동안 머리속을 정리하시지요. 20분 정도 걸릴테까요."
제임스는 개인운전사가 된 것같이 꼭꼭 존댓말을 썻다.
글로벌 특이 미생물 연구학회는 핀치와 더프린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동쪽에 있었다. 잔디밭이 잘 깔린 넓은 공원과 그 공원 한가운데에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 북쪽편에는 유티(University of Toronto)의 자연과학연구소 건물이 있었다. 호수를 끼고 달려 동쪽편의 백색 2층건물 앞에서 지영은 내렸다. 너무 급한 마음에 제임스가 어떻게 할 건지도 물어보지 못한 채 글로벌 특이 미생물연구학회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윌 케일러 교수가 라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겼다.
“Good morning, Dr. Kim! I’m so glad tosee you. Are you okay?”
“Good morning, Pro. Will Kayler. I’malso good to see you again. Long time no see ya. Isn’t it?”
그들은 서로 반가워 얼싸안고 뺨에 키스까지 하였다. 그럴 것이다. 작년, 서울에서 보고 토론토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서로가 짐작도 하지 못했을테니까. 윌 교수는 지영을 이층 복도 끝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은 하얀색의 벽에 4개의 80인치 이상 가는 큰 스크린이 붙어있었고, 창가에 붙어 오픈된 책상에는 3개의 컴퓨터가 초기화면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여기가 김 박사님이 사용하실 공간입니다. 어떠세요?”
지영은 기가막혔다. 전혀 예상하지도못한 일이었다. 단순히 블루웜에 대한 현재 한국 상황을 에비든스와 함께 보고하면 끝나는 줄로 생각했었는데, 뭔가 다르게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윌 박사가 자판을 두드리자 스크린에는 세계지도가 나타났으며, 다른 스크린에서는 어딘지 모르는 병원의 수술장면이 떳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지영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블루웜의 사진 화면이 확대되어 나타나 있었다. 그 블루웜은 지영이 한국에서 이메일로 전송한 것이 틀림없었다.
“What’s going on, Pro. (Professor)Will.?”
“아~ 잠시후 상황 설명을 할 것입니다. 우선 빽을 내려 놓고 회의실로 갑시다.”
그가 안내한 회의실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이미 와서 앉아있던 5명의 사람들이 일어나 김지영 박사를 반겼다. 지영은 자기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에 또 놀랐고 그 중 두 사람은 국제의학잡지에도 연구논문이 실리며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회의실안 벽에도 80인치 정도의 스크린 두개가 붙어 있었다.
“자. 지금부터 김지영 박사가 명명한 블루웜에 대한설명을 들어봅시다.”
역시 윌 교수였다. 그가 자리에 앉자 김지영 박사는 숨쉴 틈도 주지않은 이 상황이 몹시 심각하다는 생각과 그에 의한 전율이 엄습함을 느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 정해 준 자리의 의자위에 점퍼를 벗어두고 트리플레드를 열었다. 그리고 얌전히 있는 투명한 작은 병을 꺼냈다.
“이것이 진짜 블루웜입니다. 자멸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이 후에는 이 블루웜은 인간숙주안에서 스스로 멜트되며 초록색의 액체화로 됩니다. 이 초록색 액체에 접촉된 내장기관은 즉시 녹습니다. 치명적이죠. 원숙주는 어디인지? 어떻게 인체로 잡입했는지 그 경로를 찾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약 2cm이지만 성숙하여 자폭한 성채는 약 3.2cm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각각 다른 지역 다섯 곳에서 발생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비슷한 경우가 중국과 비에트남과 필리핀에서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들 발견자들은 아직 확실한 존재를 알지 못하여 미확인 물체로 한국미생물학회에 물어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들은 슈퍼박테리아의 변종 성장개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타는 이미 제출한 보고서를 참고해 주십시요.”
지영은 자리에 앉으며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설명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이 상황이 보통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방금 김지영 박사로 부터 블루웜에 대한 설명과 한국상황을 간단히 들었습니다. 질문있습니까?”
윌 교수가 말했다. 그가 이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윌 교수로 부터 더 듣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