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프랑크 하위스(Anne Frank Huis)는 프린센 흐라흐트(Prinsen Gracht ; 왕자들의 운하)를 따라 자리하고 있는 건물이다. 항시 건물을 빙돌아 서있는 많은 관람객들의 대기 행렬을 볼 수가 있다. 또한 바로 근처에는 서교회(이 교회 앞에는 안네의 동상이 조그맣게 서있다) 역시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운하와 함께 도보 관광여행 코스로 추천할 만 하다.
안네 프랑크(1929~1945)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유대인 박해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 중 한명이다. 우리에겐 그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쓴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져 있다.
안네는 프랑크푸르트의 유태계 독일인 실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게르만 민족 우월주위를 내세워 유태인 박해 정책을 펴자 안네의 가족은 1933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조차 1940년 5월 독일 나치들에 점령당하고 그때부터 이곳에서도 유대인 탄압이 심해졌다. 프랑크 가족은 아버지 오토의 사무실 뒤 으슥한 방에서 숨어 지내면서 이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다. 바로 이 건물이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와 그의 아내 에디트 프랑크 홀랜더 그리고 두 딸 마르고와 안네가 1942년 7월 6일부터 숨어지낸 곳이다. 그후 헤르만과 어거스트 반 펠스, 그들의 아들 페터, 그리고 프리츠 페퍼가 합류하여 함께 숨어서 살았다.
이 건물은 두 부분, 즉 앞채와 뒤채로 이루어져 있다. 오토 프랑크의 회사는 1층의 웨어하우스와 그 위층의 사무실 및 창고와 함께 이 집의 앞채에 있었다. 웨어하우스는 건물의 어디로든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 뒷채의 이층에서 여덟명이 함께 숨어서 살았던 것이다.
2년 넘게 그렇게 지내다가 그들은 밀고 되어 가족과 함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이송되었으며, 그 뒤 언니와 함께 재이송된 독일의 베르겐베르젠 여자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15세의 꽃같은 어린 나이로 채 피워보지 못한채 지고 만다. 독일 사람들은 그 은신처를 비울 것을 명령했고 가구들은 모두 처분되었다.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은신처가 그대로 비어 있기를 원했다. 안네의 집은 1960년 이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은신처로 옮기기 직전인 1942년 6월 12일 안네의 나이 13세가 되는 생일날 부모에게 선물받은 일기장에 안네는 숨어 지내면서 느끼고 경험한 하루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일기장을 꽉 채운 후에는 노트나 종잇조각에 썼다. 밀고당해서 체포될 때까지 2년간 은신처에서의 생활과 가족, 고립감, 그리고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두려움에 관해 썼다. 안네의 일기엔 특이한 환경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의 풍부한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이 배여있다. 안네의 일기는 1947년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어, 그후 반 유태주의와 인종차별, 파시즘과 전쟁을 고발하는 책으로서, 또한 사춘기의 뛰어난 기록으로서 각국어(6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연극, 영화화되어 전세계인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이곳에 가면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가면 사무실이 있는 앞건물과 안네가 숨어 있던 뒷건물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회전식 책장으로 은밀히 가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안네가 일기를 썼던 다락방도 그대로 있다. 은신처에 있는 계단은 매우 가팔라서, 안타깝게도 걷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뒷채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또한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는 원칙적으로 카메라나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
* 자료제공 : - 민박, 그 이상의 즐거움 네덜란드 "스카이(Sky) 민박" -
첫댓글 안네프랑크의 집 안갔었는데 ..ㅎ 네덜란드는 개인적으로는 약간 별로였던... -_-
정말여행잘다여오셔서반갑고요 사진잘받읍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