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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오장(仕有五瘴)
官吏들의 다섯 가지 풍토병이라는 뜻으로, 官吏들의 고질적인 병통을 일컫는 말이다.
仕 : 벼슬 사(亻/3)
有 : 있을 유(月/2)
五 : 다섯 오(二/2)
瘴 : 풍토병 장(疒/11)
북송 때 매지(梅摯)가 소주(韶州) 자사로 있으면서 '장설(瘴說)'을 지었다. '장(瘴)'은 남방의 풍토병을 일컫는 말이다. 글에서 그는 지방관의 다섯 가지 풍토병(仕有五瘴)에 대해 말했다.
첫째는 조부(租賦) 즉 세금 거두기의 병통이다.
다급하게 재촉하고 사납게 거둬들여, 아랫사람에게서 착취하여 윗사람에게 가져다 바친다(急催暴斂, 剝下奉上). 윗사람은 밑에서 바치는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능력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 잠깐이다.
둘째는 형옥(刑獄)의 병통이다.
법 집행이 공정치 않아 생기는 문제다. 무슨 말인지 모를 법조문을 멋대로 들이대 선악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深文以逞, 良惡不白). 의도를 갖고 법을 임의로 적용하니 옳고 그름이 밝게 드러날 리 없다. 진실이 뒤바뀌어도 바로잡히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뇌물과 협잡이 횡행한다.
셋째는 음식의 병통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질탕하게 취해 노느라 나랏일을 저만치 밀쳐둔다(昏晨酣宴, 弛廢王事).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할 일은 적체되고, 백성들이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질서가 붕괴되고 기강이 무너진다.
넷째는 재화(財貨)의 병통이다.
백성의 이익을 침해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侵牟民利, 以實私儲). 나랏일을 하면서 사익을 채우려는 심보는 고금을 떠나 늘 문제다.
다섯째는 유박(帷薄), 즉 남녀 문제로 생기는 병통이다.
비첩을 잔뜩 가려, 소리와 여색을 즐긴다(盛揀姬妾, 以娛聲色). 권력의 힘으로 여색에 빠지면 답이 없다.
이렇게 다섯 가지 병통을 지적한 뒤 글을 마무리했다. "이 중 하나만 있더라도 백성이 원망하고 귀신이 노하니, 편안하던 자가 반드시 병들고, 병든 자는 틀림없이 죽고 만다. 벼슬하는 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풍토병에다 허물을 돌리곤 하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송나라 때 부홰(傅翽)가 전임자인 유현명(劉玄明)에게 치민(治民)의 요결을 물었다. 유현명은 당시 치적이 천하 제일이란 명성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내게 기묘한 방법이 있소. 하루에 밥 한 되만 먹고 술은 마시지 말 것, 이것이 으뜸가는 계책이라오."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율기(律己)는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이란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斷酒絶色 屛去聲樂
齊遬端嚴 如承大祭
罔敢游豫 以荒以逸
술을 금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가무(歌舞)를 물리치며 공손하고 단엄하기를 대제(大祭) 받들 듯하며, 유흥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히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총명에는 한도가 있고 일의 기틀은 한이 없는데, 한 사람의 정신을 다하여 뭇사람의 농간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술에 녹아떨어지고 여색에 빠지며, 시 짓고 바둑 두어서 마침내 옥송(獄訟)은 해를 넘기며 시비(是非)는 뒤바뀌어 소송거리는 더욱 많아지고 일의 기틀도 더욱 번잡해질 것이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은가. 닭이 울면 일어나 정사를 처리하고 집안일은 아예 물리쳐 버리며, 주색 때문에 스스로 피곤하거나 행락(行樂)으로 몸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어느 일은 처결해야 하고 어느 공문은 보고해야 하며 어느 부세(賦稅)는 가려내야 하고 어느 죄수는 풀어 주어야 하는지 등을 때때로 살펴서 급급히 처리해야 할 것이요, 내일을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고 처리되지 않는 일이 없고 자기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다."
부승우(傅僧祐)와 그의 아들 부염(傅琰), 염의 아들 부홰(傅翽)는 다 수령이 되어 모두 특이한 치적(治績)을 나타냈었다. 그때 사람들이, "부씨(傅氏) 집안에는 '치현보(治縣譜)'가 전해오는데 그것은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유현명(劉玄明)은 치민(治民)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건강(建康)과 산음(山陰)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치적이 천하제일이었다. 부홰가 그의 후임으로 산음령(山陰令)이 되어 유현명에게 묻기를, "원컨대 구정(舊政)을 신관(新官)에게 알려 주시오" 하니,
유현명이 대답하기를, "내게는 기묘한 방법이 있는데 그대의 가보(家譜)에는 없을 것이오. 오직 날마다 한 되 밥만 먹고 술은 마시지 말 것, 이것이 제일 상책이오" 하였다.
매지(梅摯)가 소주 지주(韶州知州)로 있을 때 장설(瘴說)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벼슬살이에 다섯 가지 고질적인 병통이 있다. 급히 재촉하고 함부로 거두어들이며 아랫사람에게서 긁어다가 윗사람에게 바치는 것은 조부(租賦)의 병통이요, 엄한 법조문을 함부로 사용하여 선악을 분명하게 못하는 것은 형옥(刑獄)의 병통이요, 밤낮으로 주연을 베풀고 국사를 등한히 하는 것은 음식의 병통이요, 백성의 이익을 침해하여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재물의 병통이요, 계집을 많이 골라 음악과 여색을 즐기는 것은 유박(帷薄)의 병통이다. 이 중에 하나만 있어도 백성은 원망하고 신(神)은 노하여, 편안하던 자는 반드시 병이 들고 병이 든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벼슬살이하는 자가 이것을 모르고 풍토의 병을 탓하니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상산록(象山錄)에,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인식하여 청취(淸趣)인 양하지만, 다시 객기를 낳아서 그것이 오랜 습성이 되면 폭음하는 주광(酒狂)이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게 되니, 진실로 슬픈 일이다. 마시면 주정하는 자, 마시면 말이 많은 자, 마시면 자는 자도 있다. 주정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폐단이 없다고 생각하나, 잔소리나 군소리는 이속들이 괴롭게 여기고, 술에 곯아떨어져 깊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들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 지르고 마구 떠들어대며 부당한 형벌과 지나친 곤장질을 해야만 정사에 해를 끼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다산필담(茶山筆談)에, "매년 12월과 6월 두 철에 시행되는 팔도(八道) 포폄(褒貶)의 조목을 보면 '과도한 징수(斛濫)는 비록 공평해졌으나 주도(酒道)는 경계해야 한다(斛濫雖平 觴政宜戒)' 하였고, '다스림을 원하지 않음이 아니나 술을 좋아함을 어찌하랴(非不願治 奈此引滿)' 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잇달아 있는데도 다시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또한 무슨 심정인가?" 하였다.
옛날에 한 현령이 술에 빠져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는데, 감사(監司)가 그의 치적(治績)을 고사하여 쓰기를, "술이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 하여, 온 세상이 웃음거리로 삼았다.
창기(娼妓)들의 음란한 풍습은 삼고 선왕(三古先王)의 습속이 아니다. 후세에 오랑캐의 풍속이 점차 중국으로 젖어 들어와서 드디어 우리나라에까지 미친 것이다.
수령이 된 자는 결코 창기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한번 가까이하게 되면 그 정령(政令) 하나하나가 의심과 비방을 살 것이며, 비록 공정한 일일지라도 모두 계집의 말에 떨어진 것으로 의심을 받을 것이니 또한 민망하지 아니한가.
매양 보면 소박하고 순진하여 바깥 출입이 없던 선비가 처음 기생을 가까이하면 홀딱 빠지고 말아 잠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한 것을 철석같이 믿으니, 기생이란 사람마다 정을 주어 사람의 본성이 이미 없어지고 따로 정부(情夫)가 있어서 밖으로 누설되지 않는 말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밤중에 소곤거린 말이 아침이면 이미 성안에 온통 퍼지고 저녁에는 사경(四境)에 쫙 퍼지는 것이다. 평생에 단정하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니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릇 기생이란 요염한 것이니 눈짓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초하루 보름의 점고(點考) 때를 제외하고서는 일체 문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자제나 친척 손님들이 기생을 가까이하는 것은 더욱 엄하게 막아야 할 것이니, 만일 금계(禁戒)가 본래 엄하면 설혹 범하는 자가 있더라도 깊이 빠져들어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발각이 되면 여러 사람 앞에서 꾸짖지 말고 다만 밀실로 불러놓고 그가 금법을 범한 것을 책망한 후, 그 이튿날 말을 주고 여장을 준비시켜 곧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정사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법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는 것이 다시 없이 좋은 방편이다.
조 청헌공(趙淸獻公)이 촉(蜀)을 다스릴 때, 한 기녀가 살구꽃을 머리에 꽂았으므로 공이 우연히 희롱하기를, "머리 위의 살구꽃이 참으로 행(幸)이구나(髻上杏花眞有幸)" 하니, 기녀가 즉시 응하기를, "가지 끝의 매실(梅實)은 중매가 없을쏜가(枝頭梅子豈無媒)" 하였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공이 노병(老兵)을 시켜 그 기녀를 불러오게 하였는데 2고(鼓)가 되도록 오지 않으므로 사람을 시켜 재촉하고는 공이 방안을 거닐고 있다가 문득 소리 높여 부르기를, "조변(趙抃)아, 무례해서는 안 된다" 하고, 곧 불러오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그때 노병이 장막 뒤에서 나오면서, "저는 상공(相公)께서 몇 시각이 못 되어 그런 마음이 식으리라 짐작하고 실상 부르러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였다.
조 청헌(趙淸獻)이 매양 색욕을 끊을 때면 침상(寢床) 위에 부모의 화상을 걸어 두고 스스로를 감계(監戒)하였다.
유봉서(柳鳳瑞)가 북평사(北評事)가 되어서 한 요사스러운 기생을 만나 헤어나지 못하여, 그 아버지인 정승 유상운(柳尙運)의 화상을 걸어 놓고 밤낮으로 쳐다보며 울었으나 (유 정승이 그가 여색에 빠져서 혹할 줄 미리 알고서 임지(任地)로 떠나던 날 화상을 주었다) 끝내 금하지 못하고 마침내 임지에서 죽었으니, 아 슬픈 일이다.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지방을 맡아 다스릴 때 빨래와 바느질하는 두 계집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계집을 좋아하였다. 밤중에 정욕이 동하자 일어나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면서, "장영은 소인이다, 소인이다" 하고는, 드디어 그만두었다.
정선(鄭瑄)이, "정욕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채우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고 참고 넘기면 반드시 즐겁다.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지방을 진무(鎭撫)할 때에 유연(遊宴)이 베풀어지면 사녀(士女)가 좌우를 에워쌌지만 3년 동안 그들을 돌아다본 일이라곤 없었다.
'상산록'에, "수령이 성부(城府)를 출입할 때나 여염집들을 지날 때에 담장 머리, 거리 위에 여자들이 있는 것을 알더라도 눈길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장영(張詠)이 익주지주(益州知州)로 있을 적에 요속(僚屬)들이 그의 준엄한 성품을 두려워하여 감히 비첩(婢妾)을 거느리지 못하였다. 공은 사람들의 인정(人情)을 끊게 하고 싶지 않아서 드디어 여종 하나를 사서 시중을 들게 하였다. 이로부터 요속들이 점차 시중하는 계집을 두게 되었다.
촉 지방에 있은 지 4년 만에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돌아가면서 그 여종의 부모를 불러 재물을 주면서 시집을 보내게 하였는데, 그 여종은 그대로 처녀였다.
정언빈(程彥賓)이 나성(羅城)에 사자(使者)로 나갔을 때 좌우가 세 처녀를 바쳤는데 모두 예뻤다.
공이 그 처녀들에게, "너희는 내 딸과 같다. 어찌 서로 범할 수 있겠느냐?" 하고 손수 문을 잠그고 한 방에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부모들을 찾아서 돌려보내니 모두 울면서 감사하였다.
한지(韓祉)가 감사(監司)로 있을 때에 시기(侍妓) 수십 명을 항상 한 방에 두고 끝내 범하는 일이 없으니 여러 속관(屬官)들도 감히 여자와 가까이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조용히 속관들에게 묻기를, "오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더러 여색을 가까이해 본 일이 있는가?" 하니, 모두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한지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 내 자신이 금하고 있다 하여 다른 사람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난잡하게 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나 색정을 참기 어려움이 이러하단 말인가. 내가 일찍이 호서 아사(湖西亞使)로 있을 적에 토지를 점검(點檢)하는 일(檢田都會)로 청주(淸州)에 보름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재색(才色)이 뛰어난 강매(絳梅)란 기생이 늘 곁에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잠결에 무심코 발을 뻗으니 문득 사람의 살결이 닿았다. 물어보니 강매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주관(主官 청주원을 가리킴)이 잠자리를 모시지 못하면 장차 죄를 주겠다고 명하시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몰래 들어왔습니다’ 하였다. 나는 ‘그것이야 쉬운 일이다’ 하고 곧 이불 속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후 13일 동안 동침하였으나 끝내 어지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서 돌아올 적에 강매가 울기에 내가 ‘아직도 정이 남아 있느냐?’ 하니, 강매가 대답하기를 ‘무슨 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료했기 때문에 울 뿐입니다’ 하였다.
주관이 희롱하기를, ‘강매는 좋지 못한 이름을 만년에 남기고 사군(使君)은 좋은 이름을 백대에 끼쳤구나’ 하였다."
조운흘(趙云仡)의 호는 석간(石澗)으로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있으면서 빈객들과 접촉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백성을 번거롭게 괴롭히지 않아 지금까지도 청백하다고 일컫는다.
하루는 부(府)의 기생들이 자리에 앉아서 서로 희롱하며 웃으므로 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한 기생이 대답하기를, "소첩이 꿈에 주관(主官)을 모시고 잤는데, 이제 친구들과 함께 해몽(解夢)을 해 보았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공이 붓을 찾아 들고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마음이 영서(靈犀)같아 뜻이 통했는데(心似靈犀意已通), 비단이불 함께하기 쉽지 않구나(不須容易錦衾同), 태수(太守)의 풍정(風情)이 박하다 이르지 말라(莫言太守風情薄), 예쁜 여인의 길몽(吉夢) 속에 먼저 들었거니(先入佳兒吉夢中)."
박신(朴信)이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는데 강원도 안렴사(按廉使)가 되었을 때 강릉 기생 홍장(紅粧)을 사랑하여 정이 자못 두터웠다. 임기가 차서 돌아가게 되자 부윤(府尹) 조운흘이 거짓으로, "홍장은 이미 죽었습니다" 하니 박신은 슬퍼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강릉부에 경포대(鏡浦臺)가 있는데 부윤이 안렴사를 청하여 나가 놀면서 몰래 홍장에게 곱게 단장하고 고운 의복 차림을 하도록 하며, 따로 놀잇배 한 척을 마련하고 또 눈썹과 수염이 허연 늙은 관인 한 사람을 골라 의관을 크고 훌륭하게 차리도록 한 다음 홍장과 함께 배에 태우게 하였다.
또 배에는 채색 액자를 걸고 그 위에 시를 지어 쓰기를, "신라 성대(聖代)의 늙은 안상(安詳)이(新羅聖代老安詳), 천년 풍류를 아직도 못 잊어(千載風流尙未忘), 사자(使者)가 경포대에 노닌다는 말 듣고(聞說使華游鏡浦), 난주(蘭舟)에 다시 홍장 싣고 왔네(蘭舟聊復載紅粧)" 하였다.
천천히 노를 두드리며 포구(浦口)로 들어와서 바닷가를 배회하는데 풍악 소리가 맑고 그윽하여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하였다. 부윤이, "이곳에 신선이 있어 왕래하는데 바라다만 볼 뿐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하니, 박신은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다.
갑자기 배가 순풍을 타고 눈깜빡하는 사이에 바로 앞에 다다르니, 박신이 놀라, "신선이 분명하구나" 하고 자세히 보니, 바로 기생 홍장이었다. 한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생각하건대, 박 안렴사는 본디 색에 빠진 사람이지만, 조공(趙公)이 꾸며서 상관을 놀려준 것도 잘못이다. 내가 서읍(西邑)에 있을 때 이런 일을 겪었는데, 기생을 아프다 핑계하고 모시고 놀지 못하게 하였다가 놀이가 끝나서야 바른대로 말했더니 안찰사(按察使)도 사례할 뿐 노엽게 여기지 않았다.
정한강(鄭寒岡)이 안동 부사(安東府使)가 되었는데 관사에 전부터 ‘기녀(妓女)’라 불리는 꽃나무가 있었다. 공이 그 꽃나무를 베어버리게 하였다.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사람이 빠지기 쉽기가 여색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그 이름을 미워해서 베어버렸을 뿐이다" 하였다.
성악(聲樂)은 백성의 원망을 자아내는 풀무이다. 내 마음은 즐겁지만 좌우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고, 좌우의 마음이 다 즐겁더라도 한 성(城) 안 남녀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으며, 한 성 안 남녀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겁더라도 사경(四境) 안 만민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다.
그 중에는 혹 가난하여 춥고 배고프거나, 형옥(刑獄)에 걸려 울부짖고 넘어져서 하늘을 보아도 빛이 없고 참담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는 자가 있어서 한번 풍악을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부릅뜨고 길에서 욕하며 하늘에 저주할 것이다.
배고픈 자가 들으면 그의 주림을 더욱 한탄할 것이요, 옥에 갇혀 있는 자가 들으면 그의 갇혀 있음을 더욱 슬퍼할 것이니 '맹자(孟子)'의 금왕고악장(今王鼓樂章)을 깊이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화(白華)에, "궁중에서 종을 두들기면 소리가 궐문 밖까지 들려 온다" 하였고, 주역(周易) 예괘(豫卦) 초육(初六)에는, "즐거움을 입 밖에 내면 흉하다" 하였다.
매양 보면, 수령으로서 부모를 모신 사람이 부모의 생일에 풍악을 베푸는데, 자신은 효도라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부모를 저주하게 한다면 이는 불효가 아니겠는가. 만약 부모의 생일에 양로(養老)의 잔치도 겸하여 행한다면 백성들이 저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일장(白日場)을 베풀고 선비를 시험보이는 날에도, 바야흐로 음식상을 올릴 때에 잠깐 풍악을 베풀 것이요 자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할 필요는 없다.
당(唐)나라 설평(薛平)은 3진(鎭)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는데도 집에서 풍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헌종(憲宗)이 그의 치행(治行)을 보고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발탁하였다.
유관현(柳觀鉉)은 성품이 검약(儉約)하였다. 그는 벼슬살이할 때 성대한 음식상을 받고는,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 하였고, 기생의 노래를 듣고는, "논두렁의 농부 노래만도 못하다" 하였다.
▶️ 仕(섬길 사/벼슬 사)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뜻을 나타내는 士(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선비(士)가 학문에 힘쓴 후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士(사)는 관리(官吏), 仕(사)는 벼슬하는 일의 뜻으로, 본디는 士(사)와 仕(사)는 하나의 말이었으나 나중에 士(사)는 명사(名詞), 仕(사)는 동사(動詞)로 나눈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仕자는 '섬기다'나 '벼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仕자는 人(사람 인)자와 士(선비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士자는 고대에 형관(刑官)들이 차고 다니던 무기를 그린 것으로 '선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선비'는 학식과 무예를 겸비하고 있던 사람을 일컫던 말이었다. 仕자는 이렇게 학식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 士자에 人자를 더한 것으로 임금을 모시던 관리를 뜻한다. 그래서 仕(사)는 ①섬기다, 일하다, 종사(從事)하다 ②벼슬하다 ③살피다, 밝히다 ④벼슬(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그런 일) ⑤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받들 봉(奉), 받들 봉(捧)이다. 용례로는 벼슬아치가 정한 시각에 사무를 마치고 퇴근함을 사퇴(仕退), 벼슬아치가 규정한 시각에 출근함을 사진(仕進), 벼슬아치의 출근을 기록하던 종이를 사기(仕記), 벼슬자리에 있던 날 수를 사일(仕日), 벼슬아치의 명단을 사판(仕版), 남을 위하여 일함이나 노력함을 봉사(奉仕), 자기가 맡은 일에 부지런히 힘써서 일함을 근사(勤仕), 벼슬을 하여 관직에 나아감을 출사(出仕), 벼슬자리를 구함을 구사(求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을 치사(致仕), 벼슬을 시켜도 나서서 하지 아니함을 불사(不仕), 낮은 벼슬아치가 구실을 내놓고 물러감을 퇴사(退仕), 그 날의 일을 끝냄을 파사(罷仕), 벼슬아치가 임기를 마친 뒤에도 계속하여 그대로 근무하는 일을 잉사(仍仕), 아침 일찍 출근함을 조사(早仕), 규정된 시각보다 늦게 출근함을 만사(晩仕), 관리는 빈한해도 녹을 먹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관리된 사람은 덕을 천하에 펴야 한다는 말을 사비위빈(仕非爲貧),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학우등사(學優登仕), 남행으로 처음 벼슬길에 오름을 일컫는 말을 남행초사(南行初仕), 여러 해를 벼슬살이 함을 이르는 말을 적사구근(積仕久勤)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五(다섯 오)는 ❶지사문자로 乄(오)와 동자(同字)이다. 숫자는 하나에서 넷까지 선을 하나씩 늘려 썼으나 다섯으로 한 단위가 되고 너무 선이 많게 되므로 모양을 바꿔 꼴로 썼다. 五(오)는 나중에 모양을 갖춘 자형(字形)이다. ❷상형문자로 五자는 '다섯'이나 '다섯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五자는 나무막대기를 엇갈려 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나무막대기나 대나무를 일렬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보통 1~3까지는 막대기를 눕히는 방식으로 숫자를 구분했지만 4를 넘어가면 혼동이 생겼다. 이것을 구별하기 위해 막대기를 엇갈리게 놓는 방식으로 표시한 것이 바로 五자이다. 갑골문에서의 五자는 二사이에 X자를 넣은 방식으로 표기했었지만, 해서에서는 모양이 바뀌었다. 그래서 五(오)는 다섯이나 오(伍)의 뜻으로 ①다섯, 다섯 번 ②다섯 곱절 ③오행(五行: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④제위(帝位: 제왕의 자리) ⑤별의 이름 ⑥다섯 번 하다, 여러 번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떳떳한 도리를 오륜(五倫), 한 해 가운데 다섯째 달을 오월(五月), 그 달의 다섯째 날 또는 다섯 날을 오일(五日), 음률의 다섯 가지 음을 오음(五音), 다섯 가지 곡식(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오곡(五穀), 다섯 가지의 감각(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오감(五感), 다섯 가지 빛깔 곧 푸른빛 누른빛 붉은빛 흰빛 검은빛의 다섯 가지 색을 오색(五色), 다섯 가지 계율이나 계명을 오계(五戒), 퍽 많은 수량을 나타내는 말을 오만(五萬), 다섯 가지 욕심이라는 오욕(五慾), 사람이 타고 난 다섯 가지 바탕을 오사(五事), 짙은 안개가 5리나 끼어 있는 속에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대하여 방향이나 상황을 알 길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오리무중(五里霧中), 오십 보 도망한 자가 백 보 도망한 자를 비웃는다는 뜻으로 조금 낫고 못한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오십이 되어 천명을 안다는 뜻으로 쉰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을 오십천명(五十天命), 다섯 수레에 가득 실을 만큼 많은 장서를 일컫는 말을 오거지서(五車之書), 좀 못하고 좀 나은 점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오십소백(五十笑百), 닷새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열흘만에 한번씩 비가 온다는 뜻으로 기후가 순조로움을 이르는 말을 오풍십우(五風十雨) 등에 쓰인다.
▶️ 瘴(장기 장)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병질엄(疒; 병,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章(장)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瘴(장)은 ①장기(瘴氣: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 ②풍토병(風土病: 어떤 지역의 특수한 기후나 토질로 인하여 발생하는 병) 따위의 뜻이 있다. 통자로는 鄣(고을 이름 장/막을 장) 등이다. 용례로는 장기瘴氣를 품은 안개를 장연(瘴煙), 독기를 품은 산과 바다의 기운을 장람(瘴嵐),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를 장기(瘴氣), 장기瘴氣가 서린 안개를 장무(瘴霧), 장기가 낀 바다를 장해(瘴海), 장기瘴氣를 마셔서 앓는 학질을 장학(瘴瘧), 장기瘴氣에 중독되어 생기는 유행성 열병을 장역(瘴疫), 장기가 있는 시골을 장향(瘴鄕), 바다의 습기와 열로 말미암아 생기는 장기를 해장(海瘴), 산중의 독기나 산의 악한 기운을 산장(山瘴), 더운 지방의 개펄에서 나는 독한 기운을 염장(炎瘴), 나쁜 병을 일으키는 기운을 독장(毒瘴),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를 연장(煙瘴), 官吏들의 다섯 가지 풍토병이라는 뜻으로 관리들의 고질적인 병통을 일컫는 말을 사유오장(仕有五瘴)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