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3월 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전은 1번선발의 19년 야구인생에서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됐습니다. (물론 나이가 19살 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스포츠를 통해서 눈물을 흘린적이 딱 두번 있습니다. 첫번째는 99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로마이어의 3루타가 터졌을 때, 그리고 두번째는 WBC 한일전 8회 1사에 이승엽의 타구가 도쿄돔 외야로 꽃혔을 때 입니다.
이승엽에게 걸렸던 두 번의 찬스에서 저는 정말 목이 갈라질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절실하게 응원했고, 세번째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옆 칸에 앉은 일본 관중들이 계속 저를 쳐다봤고, 심지어 한국 응원단들도 저를 신기하게 쳐다볼 정도였죠. 그런데 그토록 절실하게 바라던 한 방이, 그것도 야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카타르시스인 홈런이 그 시점에서 나왔을 때, 저는 그냥 울어버렸습니다. 옆자리 한화팬, 앞자리 두산팬, 대각선의 엘지팬, 그리고 옆 칸의 유학생과 교포들까지 전부 껴않고 계단에서 미끌어져 떨어지면서 울었습니다. (아파서 운건 아닙니다 -_-)
다들 아시겠지만, 그날 경기는 야구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선발투수가 다소 부진한 상황에서 그래도 잘 틀어막았고, 구원투수들이 추가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위기의 순간에서는 대단한 호수비가 나왔습니다.
스타 선수들이 찬스를 이어갔고 득점을 해줬으며, 결정적일때 부진했던 슈퍼스타는 진짜 필요한 <딱 한방>을 터뜨리며 상대를 침몰시켰죠. 여기에 일본킬러이자 <올해부터 한화이글스에서 뛰는> 구대성이 굉장한 힘을 보여줬고, 결국 경기는 <한국의 에이스가 일본 최고의 타자를 힘으로 눌러버리면서> 끝났습니다. 정말 각본을 짜서 진행해도 이것보다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죠.
게다가 이번 한일전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한판이었다고 봅니다. 일본을 이겼다는 것, 1라운드를 전승으로 통과했다는 것 말고 또 다른 의미 말입니다. 야구의 광팬이 아닌 일반인들 중에서도 최소한 몇명은 그날 경기를 보고 <야~ 진짜 재밌다>라는 감정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결코 낮지 않았던 시청률을 감안할 때 야구에 관심없던 누군가에게 야구가 재밌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습니다.
2002년에 시청앞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쳐댔던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 전에는 이영표가 누군지, 비에리가 누구인지 몰랐을겁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분들은 축구를 즐겼고, 이번 WBC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야구에 대한 관심을 어느정도 끌어 올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화의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보다 더 명승부였습니다.
그날 경기가 끝난 후 도쿄돔의 풍경은 2002년 월드컵과 똑같았습니다. 우리 응원단들이 쓰던 응원용 수건과 막대기을 교포들이 선물로 달라며 가져갔고 그분들은 응원단과 함께 어울려 춤추고 소리지르며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애국가를 부르고, 아리랑을 부르고,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면서 도쿄에서 미친듯이 어울렸습니다.
야구 한 게임 이긴걸 갖고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한테 이길 게 없으니까 고작 야구 한번 이겨놓고 난리 피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현장에 있던 우리 응원단들은 정말 벅찬 가슴으로 응원했습니다.
그저 트로트 한 곡에 불과한 윤수일 씨의 <아파트>를 부르며 <으쌰라 으쌰>를 외칠 때도, 모 대학교의 응원가일 뿐이었던 <아리랑 목동>을 부르며 옆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때도, 쉰 목소리로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을 외칠 때도, 저는 정말 기분이 너무 업 된상태였고, 심하게 말하면 그냥 <미친>상태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니까 다리가 풀려 계단을 올라갈 수 없고,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더군요.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3시간 동안 저는 그냥 완전히 정신병자 처럼 놀았습니다.
내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야구> ,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묘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숙명의 대결 <한일전>, 짜릿한 1점차 역전승, 시원한 홈런, 대단한 호수비, 이치로의 레이저빔 앞에서 살아난 육중한 2루주자, 일본 최고의 타자를 마지막 순간에 잡아낸 코리안특급까지, 정말 야구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경기였고, 승리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해준 한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진영의 호수비에 기립박수를 치던 일본팬들, 경기가 끝나고 우리를 찾아와 <굿 게임>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악수를 청하고 응원용 수건을 기념품으로 달라던 일본의 서포터들, 자기집 안방에서 미친듯이 노래부르며 춤추고 노는 외국응원단에게 고까운 시선을 보내지 않고, 오히려 그 틈에 끼어 같이 박수 쳐주고 하이파이브를 제안하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일본의...뭐랄까...상당히 샤프하고 깔끔한 인상의 응원구호와 응원가도 귀에 남네요.
(야구장 통로에 뭘 흘리거나 떨어뜨리면 바로바로 와서 닦던 수 많은 알바생들, 그리고 맥주통을 들고 다니며 파는 아름다운 여성분들도 기억에...쿨럭...남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번 한일전은 정말 제 머릿속에 최고의 승부로 남을 한 판이었습니다. 아마도 십수년쯤 흐르면, 김재박의 개구리번트, 한대화의 역전 스리런과 더불어 이진영의 호수비와 이승엽의 장쾌한 투런이 <추억의 야구영상>의 한 면을 장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고의 승부와 짜릿한 감동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좀 더 많은 한화팬분과 함께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저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설탕인형님도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그 점은 좀 아쉽네요. 다음에는 더 많은 분들과 그런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짝짝짝..달리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잘다녀오셨군...담엔 설탕도 꼭 달구다녀.
저도 딱 두번있습니다..운적이 장종훈 은퇴식날 퍼레이트하면서 야구장돌던때 눈물이 ㅠㅠㅠ 또 한번은 99년 한화가 첫 우승하던 그때...정말로 눈물이...ㅠㅠ 이번 한일전은 무척 기쁜 나머지 가슴만 뭉클하더군요..
아무래도 우리 한화경기때도 그렇게 응원 시작해야하는거 아니에요? ㅋㅋㅋ 정말 저도 티비로 보면서 야구장같이 응원하다가 어머니한테 혼났씁니다;; 직접가서 봤음.. 정말...ㅠㅠ
몇년뒤 이승엽이 들어가있는 그자리에 한화의 김태균이 홈런을 날려줬으면..ㅋㅋㅋ암튼 이승엽역시 스타는 달리 스타가 아니네요...필요할때 한방..ㅋㅋ
날 버리고, 혼자 일본으로 날라 버리다니;; 흠! 기억해두겠어!!! -_-ㅋ / 무튼, 부럽다규~ㅠ
엑스포츠에서 보다가 홈런 쳤을땐가 끝날땐가 확실지 않은데 갑자기 관중석에 어떤 이쁘장하게 생기신 여자분을 비추는데 근처에서 방방뛰시는 1번선발님 봤습니다... 어찌나 좋아하시는 모습이 나오던지...
일본가서 보고오셨나봐요~
헉 핸폰으로 카페 글 보다가 실수로 신인투수님 꼬리말을 삭제했네요ㅡㅡ 죄송합니다 뭘잘못눌렀나봐요ㅡㅡ
흠... 대단하시군... 일본까지 가서 응원을 하시다닝... 능력이 되시나부다... 부러울따름...
에이... 그거 야구 아니에요...야구만화지...어떻게 그렇게 경기가 진행이 되요. 말도 안돼...<-- 대한민국이 안되는게 어딨니? 다 되지... 정말 잠자던 갓난아기 조카가 깨서 울정도로 소리질렀어요...^^
수고 하셨어요. 1번선발님 때문에 이긴 기분이 듭니다.
그렇죠. 저 역시 옛날 청주 세광고등학교가 전국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충북고교야구 역사상 첫우승 했을 때 이후에 오랜만에 감격했습니다. 너무 좋아 그동안 끊었던 술을 몇 잔 먹었습니다.
아~~부럽다는 말이었어요...머, 죄송할것 까지야...^^;
킬킬킬 ㅇ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