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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에 사랑한다는 말 만큼 자주하는 말이 있다면 '보고 싶다'가 아닐까요?
덕질은 험난한 일상에 지친 나를 '구원'할 장르가 아닐까요?
나의 최애, 나의 본진을 향한 애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망상 작가 달글, 몽글몽글 몽상가게(몽달)에서 홍보 나왔습니다.
몽달을 홍보하기 위해 우리 작가들은 영화 속 명대사를 인용해보았습니다!
또 그 명대사를 인용해 서로 다른 장르, 몽자(달글러)의 최애로 창작글을 지어봤습니다.
그럼 예쁘게 봐주세요!
"난 보고싶다는 말이 사랑한단 말보다 더 진짜 같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누아르>
<판타지>
CITY NOIR
대한민국 누아르는 천박하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고귀한 인품을, 온몸에 새긴 검푸른 문신은 드높은 명성을, 허리춤에 지닌 잘 갈린 칼 한 자루는 절대불변의 정의를 의미하는 천박한 세계이다. 두 주먹으로 골골목을 제패하던 <야인시대>를 지나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신세계>로 몸집을 불린 범죄조직은 우리 도처에 늘 존재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화려하게 조작된 세계를 접하고 동경 혹은 환상을 품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현실이 얼마나 천박한지는 헤아리지 않은 채 열광할 뿐이다. 어느새 조직은 교묘한 수작질까지 더해 죄 없는 사람도 옥중에 밀어 넣는 수준에 다다랐다. 혓바닥으로 하는 정치, 바다와 하늘로 밀반입하는 상품, 여전히 먹히는 주먹이 괄호를 비집고 나온다.
광광대는 스피커를 가만 쳐다보는 여자, 그 안광이 꺼졌다가 켜지길 반복하는 조명처럼 형형하다. 볼륨에 목적이 있는 건지 불만이 있는 건지 모를 무표정이 땀내를 풍기며 춤추는 사람들과 아주 다른 분위기다. 테이블 아래 굴러다니는 술병과 주인 잃은 소지품 따위를 주섬거리던 직원이 여자에게 홀린 듯 시선을 두었다가 술에 찌든 춤사위에 치이고 고개를 돌렸다. 어둠과 빛이 무작위로 공존하는 공간은 목석에 지나친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얘, 얘! 먹먹한 귓등에 새 소리의 진동이 번지고 나서야 여자가 반응한다. 풍선껌을 씹는 앞니와 유행지난 스키니진. 꽤 교태스러운 남자다. 남자는 허물없이 다가서 여자의 손아귀에 얇은 티슈를 쥐여줬다. 문자나 전화는 기록이 남는단 점에서 시작된 거래였다.
"봐도 꼭 이런 데서 봐야겠니?"
".........."
"비밀 지켜. 너희 보스가 알면 나 제 명에 못 산다."
꼬인 날파리 내쫓듯 팔랑팔랑 손을 휘저은 남자는 사실 목숨보다 화장실에 가는 게 우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관된 태도를 지키는 여자는 곧바로 클럽 출입문으로 향하면서 티슈에 적힌 메모를 확인하고 냄새나는 플로어에 증거를 던졌다. 그것은 금방 잘게 조각났다. 쌀쌀맞은 밤공기는 흥을 덮어쓴 악행을 이따금 들추는데 보통 사람들은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광란의 밤을 즐겼다. 거기에 역한 술 냄새가 여자의 옷자락에 밴다. 아지랑이처럼 비틀리는 인영이 그득한 거리.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여자는 이제 정면을 응시하고 나아간다. 차트에 오른 인기가요 백 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드물게 앵커가 또박또박 전하는 뉴스도 들린다.
얼음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화단에 걸터앉아 질문에 답한다. 모르겠는데요? 취객을 상대로 원하는 답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늦은 밤을 쏘다니는 멍청이들이다. 여자는 시야에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옆 골목에는 이미 붉은 등이 꺼진 택시에 팔을 휘젓는 사람들이 클럽과 술집 대기 줄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막차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 또한 그림자가 빽빽하고 지하철역 입구에는 여흥과 미련이 북적인다. 보폭을 넓혀도 갈 길이 구만리다. 자꾸 사탕과 전단물과 손을 뻗치는 목이 직선 보행을 꺾은 탓이다.
"아가씨. 저기요."
여자의 눈매가 금방이라도 정의를 휘두를 것처럼 날카로워진다. 듣지 못한 척하면 수상하고 돌아보면 탄로 날 것이 많다. 취하지 않았고, 중심이 곧고, 모든 몸짓이 투명하다. 양손이 느리게 주머니에서 빠지자마자 여자는 달린다.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준비했던 멍청이들도 매서운 직감이 들어 뛴다. 인형 탈을 쓰고 내미는 전단물이 잠시 틈을 벌려도 그들은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를 숨 가쁘게 추격한다. 멍한 얼굴로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인영들. 일상을 떠드는 입입들. 틱틱 찍히는 카드 명함들. 공기를 거칠게 뒤흔들며 지나가는 여자와 멍청이들을 호기심에 돌아보는 수는 매우 적다. 여자가 개찰구를 훌쩍 뛰어넘고 평화로이 퇴근을 기다리던 역무원이 소리칠 때가 돼서야 흩어지는 바람만을 겨우 흘깃거릴 수 있었다.
닫히는 문틈으로 기민하게 승차한 여자는 밖에서 허탈해하는 멍청이들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을 정돈했다. 빈자리에 앉아 반대편 벽에 붙은 광고를 쳐다보며. 여자는 어린 시절 <구미호 외전>을 즐겨봤다. 현실적인 소재 위에 덧붙여진 판타지가 좋아서였다. 성인이 된 이후엔 코미디가 가미된 <극한직업>을 여러 번 보았다. 농담 섞인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듣고 보며 혼자 웃는 것이 좋아서였다. 유일한 낙이자 취미이다. 때아닌 추격전을 벌일 만큼 처절한 장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벽면에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광고가 촘촘하다. 또 다른 탑승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화면 속 이야기에도 큰 파란이 일었다. 괄호는 점점 희미해진다.
"큼, 크흠."
오염된 세계가 고스란히 투과하는 눈을 감고 원하는 만큼 쉬고 싶었다. 헛기침 소리론 다음이 퍽 예상되는데, 여자는 문득 자신의 처지가 사무치기라도 한 듯 한숨을 더했다. 핸드폰이 신체 일부가 되고 거북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살짝만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고귀한 인품과 드높은 명성이 들어온다. 굽어진 사람들은 절대 엑스트라가 될 수 없기에 질 나쁜 것들만 남아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면 인상 더러운 남자들이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게 불편해 다른 칸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여자는 뒤로 기대어둔 머리를 세우고 천천히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너무 한심해서 저들에게 비소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쩐지 정의가 뭉뚝하다. 하나도 아프지가 않다.
여자에게 두꺼운 주먹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환하게 느껴지던 조명이 간헐적으로 깜빡거렸다. 힘을 잔뜩 실은 근육이 마구잡이로 스치거나 부딪히면서 옷자락이 바드득 소리 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은 바닥 밑을 달린다. 휘어지는 선로를 따라 중심이 기울어진 거대한 쇳덩이가 진동하며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검정으로 물든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이 울린다. 악인 한 명이 고통하면 다른 악인이 기합했다. 달려드는 악의를 재빨리 회피하고 거뜬히 넘어뜨릴 순 있지만 이런 일을 여럿 맞닥뜨리는 건 더 이상 반겨주고 싶지 않다. 누그러뜨렸던 호흡이 다시 엉망으로 차오른다. 시간이 흐른 후 잇따른 충격이 저 아래서부터 깊고 둔중한 지진을 빚었다고, 사람들은 증언할 것이다.
"야! 소리 좀 더 키워봐!"
여자의 낯이 해쓱해졌다. 횡단보도 위엔 싸구려 배달 오토바이를 탄 양아치들이 폭주족을 연상케 하며 소음을 뿌린다. 시끄러운 힙합이란 것도 참 찌질했다. 저속한 가사와 겉멋 든 선율이 부디 밤 내린 도심 전체를 뒤흔들지 않기를 바란다. 비죽 삐져나온 잔머리를 쓸어 넘기는 동안 한 남자도 노란 블록 위에 섰다. 슬리퍼를 신고 꽁초를 꼬나문 양아치들의 오토바이가 텅 빈 삼거리 중앙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이윽고 초록 불이 켜졌을 때 여자와 남자는 정해진 규칙을 깨뜨리지 않고 길을 건넜다.
"구린내."
남자가 혼잣말했다. 이륜 바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면서 인 바람이 또 여자의 머리칼을 훑었다.
"향수라도 뿌려?"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매연이, 고무 타는 내음이 자욱하다. 돌아보는 여자와 다르게 남자는 그저 가던 길을 갈 뿐이다. 상호 간 예의는 눈곱 만큼도 보이지 않는 여자와 남자. 길을 모두 건넌 뒤에도 둘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었다. 남자의 기척을 살피는 심드렁한 눈빛이 모호해진다. 앞으로 고정된 줄 알았던 초점이 거스를 수 없는 중력에 이끌리듯 흔들린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 제법 고된 길을 왔고 피곤이 역력한데, 남자도 험한 목에서 고생깨나 하며 구른 듯 말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쪽 다리를 살짝 절었고, 입꼬리와 콧등과 광대뼈에 생채기가 나 있다. 그런데도 퍽 보기 좋다. 여자의 등과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훅 꺼진다.
"보스는."
"휴가."
"어디로."
"이탈리아."
".........."
"대부라도 본 거겠지."
허. 여자의 잇새로 탁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취미가 같다는 점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이다. 보스라고 칭하는 사람을 따르는 둘의 관계가 이로써 명확해졌다.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들개 같은 타인, 그 간극에는 평범한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유대가 있다. 그러나 끈끈하지 않다. 지긋지긋한 이 세계는 곁에 존재하는 서로를 계속해서 의심해야 하는 행태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사건이 잦은 것도 한몫한다. 태평하게 휴가를 떠난 보스도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대부>라니. 곧 도심 한가운데서 총성이라도 터질 듯하다.
둘은 담을 높이 쌓은 보스의 요람에 닿았다. 주변을 경계하는 남자가 굳게 닫힌 문 옆에 기댄다. 여자는 입속으로 자신이 내던진 메모를 웅얼거린다. 보안시스템 차단 비밀번호. 터치식 키패드에 기억을 나열한다. 그때 남자는 적막해진 뒷골목을 두고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는 여자를 흘겼다. 웬만해선 이런 인물을 쓰지 않는 룰이 암묵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차별적인 소신은 없다. 하지만 여자를 대개 약점과 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끝끝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이 세계를 통치하는 강자에 부합한 조건은 머잖아 변할 거라고 직감한다. 부잣집 초인종 같은 소리가 날 줄 알았지만 문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열린다. 타이밍이 좋다. 이탈리아에 가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든 대한민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의 성공 확률은 현저히 적다. 이 나라가 아무리 천박해진다 한들 누아르는 몹시 마이너한 장르였으니까.
"아 씨....."
보스의 책상까지 정복한 여자가 생각지 못 한 오류를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합선이 일어난 듯 표정이 심각해진다. 다사다난했던 과정이 결론을 배배 꼬아버린 듯하다. 이마를 짚고 신중하게 생각에 잠긴다. 남자는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가 진열장을 구경했다. 화려한 장면을 보며 환상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직접 행동하는 걸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최근까지 보스와 함께였던 남자는 사사로운 일정과 다른 취미도 어렵지 않게 공유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칠흑을 걷어내고 싶은 욕망이 배로 늘어난다. 한 줄기 빛이라도 들면 어둠이 얼마나 무용한 건지 모두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여자는 그렇게 판단해왔다. 악인의 서사를 거절하는 사회 속에서 제 목적을 견고하게 쌓아왔다. 뭘까. 그게 뭐였을까. 땡그랑. 생각과 다른 흐름이다. 조금 놀란 여자는 바닥에 떨어진 금고의 작은 문고리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보스가 일반인 테니스 대회에 출전해 받아온 트로피를 든 채 어깨를 으쓱거린다.
"얼굴은 왜 그래."
"뭐? 아... 이거?"
남자는 트로피를 내려놓고 보스가 즐기는 시가 냄새를 맡던 중이었다. 얼굴은 물론 온몸이 성치 않아 곳곳이 욱신거렸다. 고통을 무시할 순 없어도 사뭇 절친해서 타협점을 찾아 오래전 무뎌진 감각이 여자의 염려에 되살아난다. 널찍한 가죽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보스는 데이트를 많이 하잖아. 중년의 매력이 있나. 맞춤 정장에 뱃살 따라 주름이 져도 옆구리는 따뜻할 거야. 그 이상한 취향 때문인가. 그런 것도 한 수 배워야 하나.
여기있다. 미끼를 덥석 문 남자의 대답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금고만 뒤적이던 여자는 이 세계 사람들 손보다 훨씬 작고 얇은 손에 착 감기는 물건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보스가 <대부>를 본 건 훨씬 오래전일지도 모르겠다. 날카로운 총성이 이미 힙합과 인기 가요와 클럽 음악에 동화된 다음일지도. 몸집은 작지만 분명한 무기이다. 총. 다음 세계를 열고 다음 시대를 설계할 소재. 여자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챙겼다.
"...뭘 봐?"
여자와 남자는 같은 계획을 세우고 금고를 탈취하고자 약속한 적 없다. 서로를 알아도 쉼 없이 의심했고, 경계했고, 신뢰하지 않았다.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나 동행했다고 하기엔 그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둘은 지나온 과정을 으레 떠들듯 말하지 않았으며 앞으로의 목적 또한 암시하지 않았다. 생김은 알아도 이름은 모른단 뜻이었다.
"너."
"그러니까 날 왜."
"이렇게 자꾸 보다 보니까 더 보고싶어져서."
색깔 잃은 여자의 무표정이, 어떤 상황에도 강인함을 고수하던 얼굴이 휘어진다. 웃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여자가 웃었다. 남자에게.
"난 보고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더라."
탕. 남자의 가슴 한 켠에 무언가가 관통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거기에선 새카만 저의가 흘러나올 것 같다. 몹시 마른 뺨이 옅게 붉어지고, 동공이 활짝 열리고, 반지르르한 입술이 벌어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충격과 진동이 구멍을 드나들었다. 오늘의 목적을 달성한 여자는 담담하게 몸을 일으켜 달빛이 네모나게 조각난 창을 잠깐 등지고 있다가 무력화된 남자의 곁을 스쳐 갔다. 덩달아 뒤척이며 일어선 남자는 헐거운 금고와 책상에 시선을 두어 가슴께에서 일어난 감정을 회피했다.
"부스러기 흘렸어."
당장 이곳을 떠야겠단 생각만 하고 있던 여자는 저도 모르게 흘린 지갑을 건네받았다. 달빛의 역광이 계속되는 공간, 가까워진 남자는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형상을 한 채 여자를 본다. 미묘하게 떨리는 남자의 어깨를 감지한 후 여자의 가슴에도 싹이 튼다. 단호하게 짓밟아 마땅한 것이다. 그게 뭘까, 의심하고 경계할 여지가 없다. 진짜라고 믿어 줄 가치가 적기에. 이 세계가 그러했기에.
"미쳤어."
먼저 보스의 요람을 나선 여자가 지갑을 확인하고 낯을 붉혔다. 모든 계획이 완벽해야만 한다.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고, 끝까지 어둠을 헤집어야 한다. 여자는 유일한 개인 소지품이었던 지갑을 열었다. 중년의 남성과 앳된 여자가 함께인 사진 한 장과 참수리 마크가 찰나에 반짝였다.
<수원경찰청 수사부 강력계 1반 김여주>
ㅡ 뭐 좀 건졌어?
"아니."
ㅡ 지난번에 네가 말한 애는.
"걔도 뭐..."
ㅡ 여차하면 걔라도 밟아.
"그럼 아파할 텐데."
ㅡ 네가 그 새끼들 걱정할 팔자야?
"형."
ㅡ 남천 보스는 그렇다 치고, 네가 피도 안 마른 애들 찌르고 다닌단 소문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며칠째 행방 묘연, 연락 두절. 너 진짜 미친 거냐?
"나중에 전화할게."
ㅡ 야, 끊지 마. 끊으면 넌 내 손에 먼저 죽어!
남자는 한발 늦게 밖으로 나와 어두운 지평선 너머로 멀어지는 왜소한 인영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보고싶어서. 한 번만 더 웃는 걸 보고싶어서. 차가운 얼굴로 피우는 꽃에 날아들고 싶어서. 그러다 죽더라도. 그래서 남자는 요란한 통화를 마치고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납부를 독촉하는 신용카드와 구겨진 현금 오천원이 가진 전부. 그리고 검붉은 얼룩으로 더러워진 참수리 마크.
대한민국 누아르는 천박하다.
그리고 이건 거듭 지워지는 괄호를 덧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천경찰청 수사부 강력계 1반 변백현>
젊은 너의 나이테는
김민정은 언제나 유지민이 졸고 있을 때 나타났다. 오랫동안 아침 없는 삶을 살아온 지민에게 오전 내내 쏟아지는 졸음이란 불가항력적이었다. 체육관 앞 벤치에 고개나 목 또는 허리를 꺾어가며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언니언니,”
꼭 두 번 연달아 불렀다. 오로지 말로만. 몸을 흔들어 깨우는 것도 아닌데 눈이 반짝 떠졌다. 응 왔니, 반기기도 전에 출처 모를 이상한 주문 따위를 읊어댔다. 이를테면,
“악마 소환법을 알아냈어. 준비물. 죽은 피 여섯 방울, 살아 움직이는 네발짐승의 피로 그린 마법진, 수명의 일부를 감싼 비단, 푸주 한 봉지.”
지민은 눈곱을 떼다가 별안간 ‘푸주’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분명 익숙한 내용인데. 기억을 더듬는 사이, 어느덧 민정은 소환법의 단계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부디 거래에 응해주십시오.’라고 외친 뒤 두 번 절한다. 직후 비단이 붉게 물들면 성공이다. 높은 확률로 분홍 머리의 여성 외양을 한 악마가 소환될 것이다.”
아, 생각났다. 애리가 닝이랑 마라탕 끓이려다가 별안간 소환당했다던 그 주문이구나. 번번이 허탕 치던 하양 강아지가 이번엔 꽤 그럴싸한 주문을 찾아왔다. 실소를 터뜨리자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민정이 톡 쏘아붙였다.
“나 진지하거든?”
“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알아 오니?”
“언니는 몰라도 돼.”
“강아지, 선 그어?”
“응.”
민정은 대충 대꾸하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척 보기에도 해묵었다. 점심시간이 막바지에 달했다. 민정은 고동색 다이어리를 탁 소리 나게 덮고 일어나 작별을 통보했다. 낡은 실내화가 총총 멀어져간다. 어깨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이 걸음마다 초봄의 바람결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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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 기억하는 한 민정은 언제나 혼자였다. 교우관계가 나쁘지 않은데도 곁에 사람을 두지 않았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아이들 틈에서 부표처럼 유리되어 있었다. 자꾸 눈길이 갔다.
둘의 첫 만남은 늦은 겨울로 거슬러 간다. 배경은 아주 이른 아침, 달동네 골목길이었다.
본디 지민의 소속은 명계이다. 저승 시왕의 직속 판관으로 인간의 업을 재판했다. 과거형인 까닭은 염라에 의해 힘이 소거된 채 인간계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도저히 안쓰러운 사연들을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어서 몇 번-꽤 많이- 인간사에 개입했더니 격노한 염라가 인간과 부대껴 살면서 그들의 삶에 무감해지라며 이승으로 내쳐버렸다.
땅에서 솟았더니 아침에 가까워지는 새벽이었다. 능력에 제약이 걸린 터라 그야말로 혈혈단신이었다. 당장 먹고, 자고, 어떻게 생활하라고. 마른 바닥에 발길질을 쏟아내던 다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이런들 무슨 소용이랴. 장승처럼 우뚝 선 가로등 불빛이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자니 하늘에서 열쇠가 뚝 떨어졌다. 뭐. 어쩌라고. 이 동네 열쇠 구멍은 다 쑤셔 보라고? 막막함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애꿎은 열쇠만 노려보는데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통통통 걸어오더니 휴대전화로 변했다. 집어 들어 화면을 켜자, 자동으로 길 안내가 시작됐다.
숙소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30분은 꼬박 걸어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의아했다. 왜 하필 그 달동네에서 눈을 뜬 걸까. 지민은 자석처럼 처음 눈을 뜬 모퉁이로 이끌렸다. 매일 새벽을 걸어 그곳으로 향했다. 늦겨울 악을 쓰는 칼바람을 맞으면서 모퉁이 가로등 아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봄이 왔다. 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전봇대에 기대어 담벼락 위를 지나는 길고양이랑 눈 키스나 하고 있었다.
고요하던 골목길이 소란스러워졌다. 달동네의 가장 꼭대기서부터 다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발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하얀 강아지 같은 여자애가 감색 교복 차림으로 내리막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며칠 그 애를 관찰했다. 강아지는 밤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골목길을 내달렸다. 하루도 빠짐없었다. 참 부지런하다, 생각했다.
일주일쯤 지켜봤을 때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따라 버스에 올랐다. 걘 익숙하게 출입문 바로 옆좌석에 앉았다. 지민은 강아지의 바로 뒷자리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밭은 숨을 고르던 강아지가 별안간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몸과 팔을 꼼지락거리며 가방을 벗더니 좌석을 빙 돌아 지민에게 걸어왔다. 그 궤적을 좇던 지민의 시선이 버스 내부를 비추는 반사경으로 돌아갔다. 거울 속엔 텅텅 빈 좌석과 강아지뿐이다. 당연하다. 지민은 얼마 남지 않은 능력으로 줄곧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사이 강아지가 지민의 곁에 밀착해 섰다. 서서히 허리를 굽히며 팔을 뻗는다. 마디가 도드라진 손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 열린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지민은 가만히 이마 위로 흩어지던 숨결만 되새겼다.
강아지는 머지않아 잠들었다. 색색, 고른 숨소리가 너무도 잘 들렸다. 버스는 계속 달렸다. 승객이 많아졌다. 다양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타고 와르르 내렸다. 강아지는 여태 한밤중이다. 버스가 크게 회전할 때마다 고개가 사정없이 꺾였다. 조금 안쓰러웠다. 그간 새벽길을 내달리던 연유를 단박에 납득했다.
슬그머니 강아지의 옆자리로 옮겼다. 지민의 어깨 위로 강아지의 고개가 안착했다.
강아지와 똑같은 감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꾸물꾸물 내리는 문으로 모여들었다. 내릴 때가 된 모양이다. 깨워야겠다. 잠시 인간들의 눈을 가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기댄 아이와 시선을 맞추려 고개를 기울였다. 김민정, 아까 봐두었던 명찰 속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였다. 민정이 눈을 떴다. 내리는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으아, 내릴게요! 죄송합니다!”
눈빛만큼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부리나케 내려버렸다.
이후로 지민은 감색 교복을 차려입고 민정과 함께 버스를 타고 교문을 넘었다. 민정이 수업을 듣는 동안 지민은 체육관 앞 벤치를 지켰다.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점심을 먹은 강아지가 고동색 다이어리를 들고 찾아온다.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란히 혹은 마주 앉아 얼토당토않은 주문을 읊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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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면서 본 민정의 안색이 파리했다. 가라앉은 목소리 끝이 미미하게 갈라졌다. 이따금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다. 영문을 물었다. 갑자기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얼음장 같은 물로 머리를 감았단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지민은 손을 뻗어 얼어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능력을 두른 손짓 몇 번 만에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말랐다.
3월 춘풍이라기엔 바람이 몹시 차다. 교문을 넘으며 오늘은 운동장에 나오지 말고 교실에서 쉴 것을 권유했다. 건물 앞까지 따라가며 단단히 일렀지만, 말을 들으면 똥강아지가 아니다. 기어코 찾아온 강아지의 어깨 위로 담요를 겹겹이 둘렀다.
민정이 읊는 주문은 하나같이 아무 효력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민은 단 한 번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들었다.
낭송하던 입술이 다물렸다. 민정의 시선이 다이어리에서 지민에게 옮겨온 순간, 물었다. 왜 그런 주문을 수소문하는 거야?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나직하게 대답한 민정이 손목시계를 매만졌다. 애틋한 손길이었다. 사연이 있구나. 궁금해졌다. 비겁하지만 편법을 써보기로 했다. 민정아, 불러 마주친 시선을 타고 강아지의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허름한 방 안. 병색이 완연한 여성과 어린 민정이 마주 앉아 있다. 여성의 얼굴이 흐리다.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이 민정의 손목에 시계를 둘러준다. 민정이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손목시계였다. 찰나의 편린이지만 충분했다. 현실로 되돌아왔다.
민정의 기억은 아주 선명했다. 감정도 강렬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은 흐렸다. 사무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응. 너무너무 보고 싶어.”
“난 보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아.”
옅은 미소를 머금고 침묵을 지키던 민정이 한참 만에 입술을 뗐다.
“언니. 벚꽃이 피면 같이 사진 찍자.”
잊어버리지 않게. 우리를 사진으로 남기자.
/
기침이 오래간다. 지민은 민정의 목 위로 머플러를 둘러주었다. 입은 물론 코와 귀까지 칭칭 감으니까 민정이 까르르 웃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머플러 밖으로 흘러내렸다. 민정은 느닷없이 단발머리가 되어서 나타났다. 감고 말리는 데 오래 걸려서 잘랐단다. 아침에 추운 화장실에 오래 있는 게 싫었다나. 불현듯 보일러가 종종 말썽을 부려서 온수가 안 나온다던 말이 떠올랐다.
꽃 피는 춘삼월에 눈이 내린다. 요사이 때아닌 한파가 들이닥쳤다. 추운 날씨 때문에 체육관 안으로 자리를 옮긴 지도 사흘째다.
가만히 보니 민정의 눈이 흐물흐물했다. 동그란 이마를 짚자 무겁게 내리감는다. 아니나 다를까. 열이 끓고 있다. 조퇴한 민정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에게 요청해 수액을 처방받았다. 복약법을 알려주는 약사에게 물어 10대 아이에게 적합한 영양제도 샀다. 묵직한 약국 봉투를 매달고 죽집도 들렀다. 종류별로 사서 함께 오르막길을 올랐다.
민정이 냉장고에 소분한 죽을 차곡차곡 쌓았다. 지민은 손을 거들고 싶었으나 한사코 만류하는 기세에 방으로 떠밀렸다. 기억 속 그곳이었다. 작은 옥탑방은 몇 걸음 옮기지 않아도 모든 가재도구가 손에 닿을 만큼 아담했고 낡았다.
책상 위에서 민정의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고사리 손때가 잔뜩 묻었을 시계가 손수건 위에 고이 놓여있다. 시곗바늘이 틱, 틱, 소리를 내며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그거 건전지가 다 됐나 봐.”
민정이 콩콩콩 세 걸음 만에 다가와 재잘거렸다. 슈퍼에서 건전지는 샀는데 자칫 망가뜨릴까 봐 겁이 나서 건드리지 못했단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고쳐주었을 텐데. 자잘한 잡기는 가능한 수준이었던 능력이 오늘 아침 완전히 말소됐다. 염라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일 시계방에 가보려고.”
“같이 갈까?”
“좋아! 너무 좋아!”
단숨에 약속을 잡았다. 민정이 해사하게 웃으며 달력에 일정을 기록했다.
“언니, 밥 먹고 갈 거지?!”
대답을 듣지도 않더니 도로 부엌으로 뛰어가 버린다. 잠시 후 냉장고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국자를 찾는지 수저통을 요란하게 달그락거린다. 지민은 소리만으로도 민정의 행동이 보이는 듯했다. 메모로 가득한 달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부엌 쪽에도 귀를 열어두었다.
3월 17일 학부모 상담 주간
3월 25일 전국 연합 학력평가
3월 27일 담임쌤 상담☆
3월 29일 지민 언니랑 시계 고치러!!♥
4월 8일 영어 듣기 평가
4월 15일 엄마 기일
지민은 아기자기한 글씨를 읽어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민정의 콧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활력을 찾아서 다행이다. 흥이 점점 오르는지 노랫말이 붙었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 가는데. 청아한 목소리가 퍽 구슬픈 가사를 읊는다. 예쁜 목소리로 노래하니 처연하게 느껴졌다.
/
밤새 눈이 내렸다. 창밖이 온통 하얗다. 길이 미끄러울 텐데 민정 혼자 내리막길을 잘 내려올 수 있을까. 약속 시간까지는 한참인데 기다릴 수 없었다. 민정에게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출발했다.
눈이 와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서릿발이 낀 옥탑방의 얇은 문을 퉁퉁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다. 외출했나? 화면을 두드려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직 읽지도 않았다. 곧장 전화를 걸었다. 집 안에서 벨 소리가 어렴풋하게 흘러나왔다. 씻는 중일 수도 있으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기척도 여전히 없다. 등골이 싸해진다. 발치의 빈 화분을 들어 문고리를 내려쳤다.
민정은 이불 위에 고이 누워있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곱게 눈을 감고 있었다. 하얀 얼굴이 하얗다 못해 신기루처럼 희미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닥이 얼음장 같다. 바닥을 더듬던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먹통이 된 보일러 조절기를 연타해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종종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던 민정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순간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지 말걸. 어제 민정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서지 말아야 했다. 숙소로 데려가야 했다. 아니. 하다못해 밤새 곁을 지켜야 했다. 그랬다면 민정은……. 지민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 소용없는 가정을 반복했다. 안일했던 판단들이 차곡차곡 과오가 되어갔다.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어쩌면’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민정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꽁꽁 언 유리알 같다. 차갑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앵두 같았던 입술이 빛을 잃고 검게 죽어 있다.
늦었다. 지민의 세상이 서서히 흑백으로 물든다. 그가 오래된 교회처럼 부서져 내렸다.
"날 구원해주게?"
영화 <더 폴>
<센가물>
<판타지>
get back
메시아의 탄생을 기준으로 날을 세자면 2025년, 센티넬-가이드가 등장한 지는 어언 100년. 수많은 센티넬-가이드를 떠나 보내고서야 생겨난 정부 산하의 센터는 역사가 더 짧았다. 30년. 공식과 비공식을 따지기엔 타이밍이 늦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넘어지셨어요? 너무 많이 긁히셨다. 아프셨을 것 같은데···.”
“···가이딩 하느라.”
“아···.”
수많은 혐오는 이름과 주제만 바꾼 채 유지된 걸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센터 내에는 가이드 혐오가 만연했다.
내가 센터에서 지낸 기간은 길지 않다. 늦은 발현, 희귀한 능력, 낮은 등급. D등급 리커버리인 나는 센터의 계륵 같은 존재였다. 큰 도움은 안 될텐데 비공식 집단에게 넘겨지면 아쉬운 그런 존재라, 팔자에도 없던 의국 지박령이 됐다. 그런 존재라, 가이드와의 접촉이 잦았다. 고등급의 리커버리는 센티넬에게 붙기 바빴어서.
“으음···. 죄송해요, 제가 등급이 낮아서 치유가 좀 더디네요.”
“괜찮아요. 이 시간에 저도 좀 쉰다고 생각하죠, 뭐.”
“바쁘신가봐요?”
“네. 등급이 높은 편이라 이리저리 불려다니죠.”
그제야 그의 이름과 등급을 확인했다. 오시온, S등급 가이드. 높은 편이 아니라 그냥 높은 거잖아···. 센터가 이랬다. 나는 C등급 센티넬 얼굴도 보기 힘든데 귀하디 귀한 S등급 가이드는 턱턱 만났다. 뭐가 중요한 지 사리분별도 못하고 보조 배터리 취급 해대는 게 이리도 티가 났다.
손목에 남은 상흔과 허벅지에 길게 남은 자상, 부어오른 뺨까지. 미간을 찌푸리며 이능을 사용하면 더디지만 상처가 생기기 이전의 피부로 되돌아 가는 게 보였다. 피는 피대로, 까진 살갗은 살갗대로 엉겨붙어 손대기도 어렵던 그 상흔들이 천천히 퍼즐을 재조립하는 것처럼 말끔해져갔다. 그는 그게 신기한 듯 곧은 손가락이 상처 부근을 맴돌았다.
“신기하시면 만져봐도 돼요.”
“아. 느낌이 신기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되돌아 가는 것 같아요.”
“그게 맞아요. 제 등급의 한계인지, 상처 이전의 피부로 되돌리는 정도만 되더라구요.”
“···한계가 아닐수도 있어요. 무언갈 되돌리는 일은 귀하니까요.”
“네?”
“시간 되실 때 이능 검사 다시 받아보세요.”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만 겨우 그친 수준이라 붙잡으려 따라 일어서면 그가 대뜸 손목을 내밀었다. 미친듯 울리는 알람에 덩달아 심장이 거세게 운동했다.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그가 겪을 조롱과 혐오가 무거워 잡지 못하고 보냈다. 그의 긴 상흔이 눈을 감으면 잔상으로 남았다. 조롱과 혐오는 이렇게 무엇이든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입을 싹 닫는다고 사라질 것들이 아니다.
며칠간은 눈 붙일 시간도 없이 바빴다. 가이드 폭주라는 새로운 케이스를 발견해 센터 의국이며 랩실, 학자들까지 분석하기에 바빴다. 정작 그 폭주했다던 가이드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여러 연구실을 거쳤겠구나, 짐작이나 했지.
센티넬에 대한 연구나 즐비했지, 가이드에 대한 연구는 손에 꼽았던지라 진척이 없어 꽤 골머리를 앓았다. 거진 보름이 지나서야 이능 검사를 받으러 갈 짬이 났다.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 하며 몸을 좀 풀었다. 간만에 침대에 누워 잠들었더니 그간 쌓인 피로가 오히려 더 몸을 쑤시게 만들었다.
“끄응···.”
“오셨어요? 오늘 이능 검사 하신다고 하셨죠?”
“아, 네.”
“검사실 들어오실게요.”
이능 검사는 입소 할 때 신체 검사처럼 진행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능 검사 또한 높은 등급의 센티넬이나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거다. 망할 계급주의는 실존한다.
팔에 구멍이 몇 개나 뚫린 지 모르겠다. 검사를 위한 채혈이라며 주삿바늘을 꼽고, 수액 맞으라며 꼽고. 이능 사용하느라 가이딩 수치가 떨어졌으니 가이딩 앰플 맞으라며 꼽고. 내일 멍이나 안 들었음 좋겠다는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못할 엄살이나 피웠다.
“최근에 가이딩 언제 받으셨어요?”
“딱히 제가 찾아가서 받은 적은 없어요. 가이드분들 의국 오시면 그냥 자연스럽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따로 말은 안해도 방사 가이딩을 해주시는 것 같던데요? 항상 가이딩 수치가 올라가 있었어요.”
나의 말에 순간 얼어붙었던 직원의 행동이 이전과 다르게 빨라졌다. 차트에 급히 써내려가는 무언 글씨와 다른 차트를 살펴보기도 했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를 빠르게 훑어내렸다. 뭔 상황인지는 몰라도···, 그닥 좋은 시그널은 아닌 것 같은데. 짐작은 이내 이름을 바꿔 끼우고서 다시 등장했다.
“요즘 가이드들 방사 가이딩 막, 함부로 해주지 않아요.”
“···네?”
“센티넬들이 가이딩 갈취하고 가이드가 먼저 유혹한 거라고···. 말해서 정상참작된 사례가 최근에 있어서요.”
“말이 돼요?”
"그···. 이능이 리커버리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지독한 현실의 냄새에 숨이 턱 막혀오고 빛이 점멸하기를 잠시, 뒤이어 따라오는 문장에 나는 기어코 말을 잃고야 말았다.
세계를 구성하는 능력 중 가장 거대한 능력은 공간과 시간이다. 두 개의 능력은 사실상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간을 다루면 시간에도 손을 뻗을 수 있고, 시간을 다루는 자 또한 공간을 조절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시간을 다루게 되면 이능을 남모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모두의 시간을, 세계의 시간을 되돌려 버리면? 사람들은 그냥 돌려진 시간을 모른 채 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시간을 돌린 사람은 영원히 쌓여가는 기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고.
나는 내 이능의 제대로 된 이름을 알게 된 이후, 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 건지.
“오시온 가이드요? 연구동 가보세요.”
“연구동 어디요. 정확히 말씀 좀 해주시죠, 급해서요.”
“며칠 전까진 2층 연구실에 있던 것 같은데요.”
그래, 아무래도 잠들었던 이 능력을 깨워낸 건 당신 같았다. 친절하지 못한 말투로 답하는 직원에게 힘 뺄 시간이 없었다. 연구동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연구실? 폭주한 가이드에 대해 연구라도 하는 걸까, 왜 현장을 뛰던 사람이 거길 가있나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뭔가 잘못 됐다고 느낀 건, 계속해서 점멸하는 등과 텅 빈 복도. 신발 밑창이 마찰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연구실 서너 개를 돌아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복도 맨끝, 암흑 속에 위치한 218호. 무거운 철문을 힘 줘 열자, 듣기 싫은 쇳소리가 예민한 감각을 찔러댔다. 여러겹 잘 뭉쳐있던 마음에 찔린 상처가 난다. 그 사이로는 불안이 스몄다.
“···오시온 씨?”
“······.”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는 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볼이 움푹 패이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살갗이 멍 투성이였다. 나는 엄살에서 끝난 일이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 앞에 다리를 접어 앉아 시선은 맞췄다. 그의 경계 어린 시선이 그가 겪은 일을 대변했다. 팔을 뻗어 오시온의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었다.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베인 자국이 가득했다.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지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아간다. 차분하게 해야한다. 작은 소리도 전체를 울리는 이 공간에서 목소리를 냈다.
“저···, 이능 검사 하고 왔어요.”
“······.”
오시온의 팔 위로 손을 가져가 이능을 사용했다. 서늘한 무언가의 줄기가 손끝을 통해 빠져나감을 느낀다. 손을 왼쪽으로 조금씩 돌리면 그 속도에 맞춰 생채기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살가죽의 시간을 되돌렸다.
“저 시간을 다룬대요. 리커버리가 아니래요.”
“······.”
“타임 컨트롤이래요.”
손을 거두자 멀끔해진 피부가 자리했다. 마치 그가 이 세계에서 당했던 모든 학대가 없어진 것처럼. 억울할 정도로 깨끗해진 피부를 그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차갑기 짝이 없는 조소에 가까웠다. 그 새까만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날 구원해주게?”
사연이 등록되었습니다
[ 한 밤의 라디오 2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2부 주제는 ‘용기’죠. 사연으로 오늘의 게스트, ■■■님께서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 네 당연하죠. 오, 정성이 가득한 손편지네요. 제가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편지로 사연을 보내는 경우는 드문 기억이 있어요. 오늘이 참 인상 깊을 것 같습니다. 아, 사설이 길었죠. 바로 읽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거긴 좋은 날일까요?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궂은날이에요. - ]
안녕하세요. 거긴 좋은 날일까요?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궂은날이에요. 오늘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정말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만화 영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용기가 샘솟길 바라고 있어요. 저는 남들보다 일상을 영위하는 데 기력이 많이 들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다른 사람은 손 쉽게 잘 하는데 유독 저만 안 되는 것. 약점이나 단점으로 불리는 것들이요. 저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무사히 보내는 게 벅찰 때가 많아요. 쉼이 필요하지만, 쉴 수가 없네요... 이 편지 하나 적는 것조차 많은 심력이 필요해서 옆에서 친구가 봐 주고 있어요. 여기까지는 자력으로 썼지만 다음부터는 친구의 손길이 들어갔을 지도 몰라요.
날이 풀리면 가장 먼저 친구들이랑 손 잡고 거리를 거닐고 싶어요. 푸른 잎을 떨치며 바람과 대화 하는 나무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카페에 가고 싶어요. 아, 친구들은 아무 문제 없어요! 지금 각자 살기 바빠서 만나기 힘들지만요. 제 무리는 저 포함해서 4명인데 아주 돈독해요. 서로를 잘 알다 보니 조금만 달라져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어서 좋아요. 치어리더부 부장인 친구가 있는데, 요새 연습이 많아서 그런가 피곤해 보여서 걱정이에요. 불러도 반응 없이 지나친 적도 있거든요. 저도 졸리면 주변이 안 들려서 공감이 가요. 간식이라도 챙겨서 응원을 가야겠어요. 치어리더부는 멋진 퍼포먼스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해요. 언제든 강당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학교의 구성이 되는 건 몹시도 즐거운 일이죠. 남들과 구별되고 독보적인 매력을 갖출 수 있잖아요. 치어리더부가 연습 중에는 음악 소리에 묻혀 대화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냐면, 강당을 지나기 위한 귀마개도 따로 있어요! 학교 매점에서 구매했는데 아주 효과적이에요. 우리 학교에 방문하신다면, 치어 연습 관람을 추천드려요. 음악에 녹아들어서 치어리더부가 음악인지, 음악이 치어리더부인지 구분이 안 가요. 가끔 친구의 몸에서부터 음악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만큼 연습을 많이 했다는 거겠죠. 정말 대단해요. 치어리더부 하면 팀워크도 빼놓을 수 없죠. 유대감하면 치어리더부. 라는 수식이 있을 정도로 단단해서 오죽하면 ‘부장과 부원은 한 몸이다’ 라는 소문도 돌 정도라니까요. 제 친구가 혼자 있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소문이 사실일지도요! 적게는 두명 많게는 전부 다 같이. 화장실조차 부원과 함께라, 친구에게만 전하고픈 소식도 건네주기 어려워요. 이건 조금 아쉽네요. 기억하세요. 어디선가 힘찬 음악이 들린다면, 100% 확률로 제 친구가 있을 거예요. 당신이 다른 곳에 있다고 인지한들, 소리가 들렸다면 그곳은 강당이에요. 친구는 연습벌레니까요. 아, 강당은 구관 뒷편에 있어요!
구관은 옛날에 지어졌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건물인데, 우리 학교의 자랑이에요. 건물도 커서 학생 여럿이 복도를 가득 메워도 발 디딜 틈은 있답니다! 전 항상 뛰느라 풍경을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멋있는 장식물도 곳곳에 있어요. 언젠가 한번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요. 강당 근처에는 매점도 있어요. 쉬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매점으로 뛰어가는 건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전 오전에 미리 가서 쓸어담고 친구들을 찾으러 가요.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정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 조금 힘들지만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져요. 일단 귀마개 하나, 손전등 하나, 여분 배터리 여러개, 친구가 좋아하는 사탕, 퍼즐 한 조각을 구매해서 주머니에 잘 챙겨요. 매점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로 들어가면 쉬는 시간이 끝날 거예요. 학생은 수업시간에 교실에 있어야죠! 오전에 열심히 수업을 들으면 오후부터는 자율 학습이 가능해요. 이제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돼요. 시행착오 끝에 만든 루트를 소개해 드릴게요. 제 친구들은 기숙사, 보드게임부, 치어리더부에 있어요. 보드게임부부터 치어리더부를 지나 기숙사에 다다르면 효율적으로 접촉할 수 있어요. 친구들에게 매점에서 산 물건들을 나눠주면 제 하루는 끝나요. 학교가 오래됐다 보니 학교의 구성인 저희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거든요. 다행히 매점 물건들이 도움되는 것 같아서 매번 하고 있어요. 가끔 치어리더부 부원을 마주칠 때도 있어요. 부장이 아닌 부원은 혼자 있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친화력이 좋아서 언제나 다른 부원들을 부를 수 있어요. 부원들이 모이고 모이다가 제 친구까지 온 적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강당에 서 있어서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신기하죠. 부원은 치어가 아니고 세이렌인 것 같아요. 항상 음악 소리가 들리고 점점 커지더니 어느순간 강당에 와 있어요. 신비롭지만 어딘가 아득한 기분이 들어요.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보드게임부 친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얘기한 적도 있어요.
원래 우리 우주는 한 점에서 시작됐다는 거 아시죠? 한 점에서 큰 폭발이 일어난 빅뱅을 지나 온도가 떨어지고 별이 만들어져 우리 행성까지 만들어졌잖아요. 이 한 점은 뭐길래 한 우주를 탄생시켰을까요. 점은 무심코 지날 수 있는 찰나일진대 이 찰나가 커지고, 터지고, 반복되어 영원을 이루고 있네요. 우리는 아직 한 점 속에 있을 지도 몰라요. 영원이 끝나는 순간이 올까요? 그걸 인식할 수 있을까요? 끝이 났다는 감각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생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두려워요. 일상을 바라지만 안식을 원했던 거면 어쩌죠? 할 수 있는 게 나아감 뿐인데 방향을 잃어 회전하고 있었다면요? 한 걸음 내딛는 게 망설여져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겠죠. 직진만이 정답이 아니니까요. 한 점을 향해 달리다 보면 깔대기처럼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고, 좌우를 살피면서 폭 넓게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다고 친구가 그랬거든요. 인내 하나는 자신 있어요. 전 혼자보다 다 같이가 좋으니까 힘 닿는 데까지는 시도해 보려구요. 이 친구가 봐 주는 타로는 까마득한 미래를 흐릿하게나마 건져 올리는 듯 해요. 보드게임부를 찾아가면 항상 퍼즐을 맞추고 있어요.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추기 전에 얼른 가서 전달해 줘야 해요. 친구가 퍼즐을 보고 하루 운세를 봐 주거든요. 부실에 있는 퍼즐은 색이 어두워서 잘 읽히지 않아요. 태양이 넘실 대는 모양인데 꼭 그림자 같아요. 언제든 팔을 뻗어 친구를 데려갈 것만 같아요. 매점 퍼즐은 같은 모양, 다른 색이라 이런 기분을 떨쳐낼 수 있어요. 좋은 운세를 점치는 날이면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부실도 저희를 배려해 주는 듯이 포근하고 안온해져요. 역시 학교의 구성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가 지면 저희는 기숙사에 들어가야해요. 기숙사 학교거든요. 방 안에서는 휴대폰 사용 금지이지만 다들 몰래 요령껏 써요. 이런 틈이 있어야 숨도 쉬죠~ 그치만 제 친구는 원칙주의자라 규칙대로 살아요. 다들 할 때 혼자만 안 한다니까요. 그래서 전 그 친구한테 밤에 연락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아, 딱 한 번 있었는데 너무 놀라서 귀신인 줄 알았어요. ‘너 누구야? 내 친구 아니지.’ 라고 답장했었어요. 놀랍게도 친구가 맞았고 같이 얘기하느라 해가 뜨는 줄도 몰랐었어요. 그 날만은 같이 사탕을 먹지 않았었어요. 매일 사탕을 나눠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 해요. 저는 딸기맛을, 친구는 소다맛을 택해요. 친구는 인공 딸기 느끼한 단 맛을 싫어해요. 혀가 아릴 정도로 쓰게 느껴진대요. 선홍빛을 넘어 엄청 붉거든요. 소다맛은 구름을 떼온 듯이 부드러운 하늘색이에요. 맛을 바꿔본 날에는 이유 모를 안락함이 제 몸을 지배했었어요. 아주 효과 좋은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랄까요…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고 뭐 어떤가 싶어지고… 친구가 앞에서 맛 없다고 인상을 팍팍 쓰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숙면을 취했을 거예요. 학생 분들은 딸기맛을 추천드려요. 보기보다 인공 딸기 향이 많이 나지 않고 정신이 번쩍 들어요. 시험 기간에 딱이죠! 매점의 베스트 셀러예요.
주기적으로 섭취한다면 감각도 익숙해져요. 감각을 갈고 닦다보면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어요. 인지하지도 못 했던 안대를 벗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 유레카를 외쳤던 학자가 된 것 같아요. 제가 해야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 내고 외워요. 미래의 제가 떠올릴 수 있게. 메모는 필요치 않아요. 학교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되니까요! 저는 한 사람이기 전에 학교의 구성이니 사감은 배제하는 게 맞죠! 아니야. 아니, 네, 맞아요. 맞습니다. 저는 학교의 구성이죠. 기계의 낡은 부품은 교체하듯이, 구관의 녹슨 부분을 교체해야될 때가 왔어요. 삐꺽이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요. 고장의 표현이니까요. 학생이 많든, 적든 저는 알아차릴 수 있어요! 지나가는 부원을 불러 모으고 부실에 숨겨져 있던 퍼즐을 찾아내고 사탕을 바꾸면 수리를 마칠 수 있어요. 이리저리 뛰다보면 숨이 차오르지만 펄떡이는 심장 박동이 제가 의무를 수행했다는 방증이니까요. 임무 완료를 위해 몇번이고 시행착오를 반복해요. 아아. 지금도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네요.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 볼까요. 아주 가까이 있어요. 귀를 막아도 막아도 커지기만 해요. 저를 따라다녀요. 뜀박질에 맞춰 크게 들려요. 찾았어요! 제 심장이네요! 얼른 이 소리를 없애야만 해요. 우선 제 의무부터 마쳐야겠죠. 암요.
게중에는 성공한 날도 실패한 날도 있지만, 구관을 수호하는 제 임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낡은 심장따위 없더라도 구관이 존재한다면 저는 언제든 살아가요. 멋진 경관을 지키는 것만큼 영화로운 일도 없죠! 친구들도 얼른 이 매력을 알기 바라요. 다음에는 신관을 소개해 드릴게요. 아, 시간이 벌써 다 되었네요. 다음에 또 봬요!
[ 네,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연은 여기까지네요. 어떠셨나요?
- 우선.. 굉장히 친절한 학생이네요. 혹여나 학교에 방문할 외부인을 위한 참고서 같아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죠. 이 학생은 이미 용기가 차고 넘치는 것 같은데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잖아요. 학교의 구성이 되고자하는 자아와 그러길 거부하는 자아. 거부하는 쪽이 사력을 다해 남긴 편지라고 느꼈어요. 저도 인간에서 탈바꿈한 이력이 있어 이입이 수월했습니다. 늦었지만 첨언하자면, 학생이 바라는 바를 위해서는 일상을 깨트릴 변수가 필요해 보여요.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단 건… 음… 변수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건승을 빌 수밖에 없죠. 간만에 흥미로운 사연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벌써 마칠 시간이 다 되었어요. 저희 한 밤의 라디오에서는 매주 골동품을 수집하고 사연으로 정리해서 소개 해 드리는데요. 예상하셨겠지만 오늘의 골동품은 편지였습니다! 이번 사연은 물건의 특성을 살려 수집한 편지 그대로 전해드렸습니다. 날 것의 생생함이 밤을 더 즐겁게 만들었길 바랄게요.
이 편지는 폐교된 기숙학교 정문에서 발견됐습니다. 과연 이 학생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요? 승리의 순간은 누가 누렸을까요?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게 친구들은 맞았을까요? 청취자 게시판에서 같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이런 게 참, 골동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찰나의 순간을 엿보며 여윤을 만끽하는 것. 청취자 여러분 덕에 저도 진귀한 경험을 해 보네요. 네, 그럼 한 밤의 라디오는 다음 주에도 새롭고 입에 감도는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였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나페스 알페스 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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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 <사연이 등록되었습니다>의 이해를 돕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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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몽달 들어와
몽자들 놀고 있어
나도 놀아
갑자기 누가 글 쓰자고 해
조용해
당연해
나도 글 안 써
그래도 재밌어
또 놀아
글윗미 해
몽자랑 글 써
고민 생겼어
검달 가
고민 해결 완료 ✔
갠찬갯어?
여기 글 쓰는 법을 모르는 딩초달글인대,
여기서 나가려 합니다 몽자를 더 이상 못 보겠습니다 몽자가 존잘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존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몽자를 사랑하는 심장을 찢어내려 합니다 여러분들 몽자를 아껴주세요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저처럼 죽을 만큼 사랑하게 되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겁니다 그와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눈물만 흘리다 결국 그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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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몽달진짜좋은데오면완전행복할
텐데진짜진짜복이쌓일텐데웃음꽃필텐데
왔으면좋겠는데다들기다리고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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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너의 나이테는<< 글 보고 제목 보니까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음
하… 몬자들 나빼고 다 “신”이엇잖아………
뉴몽보고싶은몽자들춤춰!
춤춰!
아진짜개재밋내 몽자들 오타쿠벅차오르게하내
-한시간째이리저리맛보는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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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몽달진짜좋은데오면완전행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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