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미래지향적 제목 속에는, 지금은 봄이 아니라는 암울한 현실진단이 깃들어 있다. 훌륭한 트럼펫터가 되고 싶지만 유명한 교향악단의 오디션에서는 떨어지고,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에서 트럼펫을 불고 싶지는 않은 이현우의 현실은 답답하다.
그는 음악에 대한 오기와 자존심은 있지만 우유부단하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해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의 미래 없는 삶,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절망한 애인은 이제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길가의 가로수에 등을 기대고 담담하게 [잘됐다]라며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그러나 사실, 속으로 깊숙이 상처를 받은 그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도계로 도피한다. 도계중학교 관악부 임시교사로 부임한 이현우가, 아이들과 음악 연습을 하며 함께 지내는 날들은 상처의 치유과정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지도하면서 조금씩 삶의 윤기를 찾아간다. 폐광촌의 삭막한 삶 속에서 따뜻한 인간의 체취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지도한 관악부가 대회에 출전해 수상을 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통해 상처 많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생기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현우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결말은, 그래서 상처를 치유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가 강원도 폐광촌에서 발견한 것은 소박하지만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꽃피는 봄이 오면]은 이런 서술적 내러티브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은 행간에 숨어있는 여운을 파악할 때 훨씬 깊어진다. 이현우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꽃피는 봄이 오면]의 영화적 특징은, 시적인 서술방식이다. 류장하 감독은 행간의 여백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산문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 씬 사이로 보이지 않게 이야기들을 끼워 넣는다. 우리는 씬과 씬 사이의 여백을 통해 사건전개와 캐릭터의 울림 있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영화문법은 친절한 방법은 아니어서 대중적이지 않지만, 여운을 길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소수더라도 인상 깊게 영화의 여운을 간직하기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영화는 하나의 통일된 기운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주제를 힘 있게 몰아붙이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파편적으로 여운을 남길 뿐이다. 이현우의 캐릭터를 살아있게 하는 최민식이라는 훌륭한 배우의 힘 때문이지만, 그것마저도 후반부에서는 빗나간다.
일상-비일상-일상의 회귀과정을 통해 삶의 싱싱한 건강함을 되찾는 주인공의 오딧세이는, 탄광촌인 강원도 도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인생의 막장이라는 탄광촌의 검은 풍경은 사라지고, 소박한 시골 인심이 지배하는 따뜻한 공간만 화면에 노출된다. 우리는 왜 강원도 도계가 영화의 공간으로 선택되었는지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약사 수연과의 로맨스는 잇는 듯 없는 듯 하다. 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꽃피는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족 :
[꽃피는 봄이 오면]의 소재가 된 강원도 도계중학교의 관악부 팀은, 실제로 올해 대한민국관악경연대화 금상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며, 최민식이 맡은 이현우 선생님의 모델은 건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재건 선생님이다. 이 영화는,강릉 KBS가 제작한 다큐멘타리 [희망의 기록-폐광촌 아이들과의 1년]과 인간극장 [건빵 선생님과의 약속]에 소개된 바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신인 유장하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 등에서 조감독을 맡았었는데, 허진호 감독의 장점인 섬세한 일상의 관찰을 물려 받았지만, 여백 있는 공간의 창조로 내면의 울림을 주는 공력은 물려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