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란 산스크리트어로 뱀(특히 코브라)이라는 의미인데, 불경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갈 때 ‘용’이라는 한자로 번역되었다. 또한 드래곤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나가라는 말에서 서양의 드래곤이 파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뱀이 아니라 정령의 하나인 뱀신을 일컫는 말이다.
나가의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평범한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코브라의 특징을 나타내는 둥그렇고 평평한 부분이 목 주위에 있다. 그리고 그것의 변형으로 많은 목(대개는 일곱 개나 아홉 개)을 가진 큰 뱀으로 표현되는 일도 있다.
완전하게 사람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는데, 초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변신한 존재의 목 언저리에 둥그런 코브라 모양의 후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후광은 여러 마리의 뱀이 부채 모양으로 모여 있는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뱀의 수는 반드시 홀수이며 대개는 다섯 마리거나 일곱 마리, 혹은 아홉 마리다. 그러나 그 중간을 취해서 하반신이 뱀이고 상반신이 인간인 라미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후광은 코브라의 형태를 취한다.
나가는 남성에게 사용되는 말이며, 여성은 나기(Nagi)또는 나기니(Nagini)라고 부르는데 용모가 아름답다고 한다. 또한 나가 중에서 특히 유력한 존재를 나가라자(Nagaraja: 뱀왕)라고 부른다. 나가라자는 불경에서 용의 왕으로 표현된다. 유명한 것으로는 8대 용왕인 난다, 우파난다, 샤가라, 바스키, 탁샤카, 아나바타프타, 마나스빈, 우트파라카를 들 수 있다.
힌두교에서는 나가가 파탈라라고 불리는 지하세계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나타나는 곳은 하천이나 샘, 바다 등이다.
파탈라의 최하층에는 아난타(Ananta: 무한)혹은 세샤(Sesa: 잔여)라는 이름으로 모든 용왕을 통솔하는 왕이 있는데, 이 왕은 머리로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아난타는 최초의 뱀이자 최후의 뱀이다. 힌두교 교리를 보면 세상은 2천4백만 년마다 흥망을 되풀이한다. 그 종말을 맞아 혼돈에 찬 바다 한가운데에 떠오르는 존재가 바로 이 아난타이다. 비슈누 신은 이 아난타 위에 누워서(아난타는 비슈누 신을 지킨다) 다시금 세계 창조를 꿈꾼다. 이윽고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브라마 신(불교에서 말하는 범천)이 나타나서 다시 세상을 창조한다.
나가가 가진 능력 중에서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빨이 가지고 있는 독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일반적인 코브라도 독이 매우 강력하다. 하물며 나가는 자신이 사는 샘을 끓어오르게 하고, 그곳에서 흘러나가는 냇물 주변의 나무들을 독으로 태워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의 힘으로, 사람을 독의 해로부터 지킬 수 있게 축복하는 힘도 있다. 힘이 강한 나가라자 중에는 축복을 내려 싸움이나 사냥을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있다.
나가는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어, 몸을 콩알처럼 작게 하거나 아예 감출 수도 있으며 승려(바라문)나 큰 배 등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어떤 나기니는 여성의 몸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힘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남자로 변신해서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탁샤카라는 나가라자는 작고 검은 벌레로 변신해서 궁정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그 독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인도의 궁정을 완전히 태워 없앴다. 그런 다음 탁샤카는 하늘을 향해서 날아올랐는데, 이를 보면 비행 능력도 있었던 모양이다.
칼코타카라는 나가라자는 자신을 살려준 인간 왕 나라(Nara)를 물었는데 이 행위가 도리어 나라 왕에게 특수한 효과를 주었다. 사실 이 왕은 칼리라는 이름을 가진 도박 악마에게 씌워서 왕국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그런데 이 나가의 독이 칼리에게만 작용하고 나라 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칼코타카는 다시 나라 왕을 소인으로 변신시킨 뒤 다른 사람이 모습으로 궁정으로 들여보내서 그에게 보좌를 되돌려준다. 이런 이야기로 봐서는 다른 사람을 변신 시키는 힘도 있었던 듯하다.
이처럼 나가의 성질은 성스럽다거나 사악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독이 가져다주는 성질은 사악한 것이지만, 힌두교의 교리에서는 이것이 만물 창조 때 비슈누 신이 나가에게 준 성질이므로 나가 자신을 비난할 이유로는 보지 않는다. 이런 나가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신들의 법력이나 승려의 주문을 쓰는 수밖에 없다.
거꾸로 성스러운 예로는 부처를 지킨 무차린다 뱀왕을 들 수 있다. 부처가 무차린다가 사는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있을 때 폭풍이 몰아닥쳤다. 무차린다는 몸으로 부처를 둘러싸고는 목을 뱀처럼 넓혀서 7일 동안 폭풍에서 지켜주었다.
대승불교에 따르면 이때 인간들은 아직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때 인간에게 주어졌던 가르침이 소승불교이며, 나가 등이 배운 것은 대승불교였다. 나중에 인간도 배울 만한 그릇이 갖춰지자 나가르쥬나(용수)라는 성자가 나타나서 “모든 것은 비어있다”는 대승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나갔다.
참고로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면 죽은 다음에 나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엘라파트라’라는 나가라자가 그랬는데, 부처 출현 당시에 죄가 사해져서 원래의 인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가의 조각상은 신전이나 사원을 호위하기 위해 종종 그 입구에 놓아두기도 한다. 그리고 천계의 호위를 담당하는 일도 있다.
나가의 천적으로는 가루다를 들 수 있다.
- 판타지 라이브러리 1권 ‘판타지의 주인공들’ 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