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과 정신을 둘로 나누어 정신과 영혼이 우세하다는 이성주의는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기초로하여 근세를 지배해 왔다. 몸담론은 이성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몸을 통해 세계와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특히나 인간을 잉태하는 여성의 몸은 숭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온 몸의 뼈와 근육이 늘어나고 죽음을 방불케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귀한 생명 하나가 지상에 나온다.
월경, 임신, 출산, 폐경 등의 통과의례는 여성의 삶에서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초경(初經)을 지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 기능에 변화되고 심신에 많은 증상들을 동반한다.
난소도 노화 되어 여성호르몬분비가 저하되고 배란이 이루어지지 않는 폐경(閉經)에 이르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노화과정에서 생식능력이 없어지는 순간을 즈음해 세포의 신진대사가 급격히
둔화되고 몸의 이곳 저곳이 고장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여성은 생산력과 성적매력의 상실, 늙음의 표식으로
심리적으로 큰 불안과 공황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보통 준비없이 갑작스레 맞게 되는 폐경은 또 다른 사회소수자로서 맞는 위축과 소외감을 동반한다.
홍현숙 작가는 ‘폐경이라는 늙음의 징조를 나의 몸을 통해 재현하고 이중의 소수자가 아니라 지혜의 전사로서의
늙은 여성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폐경이라는 상실감과 쓸쓸함에 읍소하여
공감을 자아내려 하지 않고, 유쾌하고 우울하지 않은 톤으로 폐경을 삶의 지혜를 부여받는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첫 번째 비디오작품은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실제 합정동에서 발견한 한 간판에서 시작한다.
헐렁한 파란꽃무늬 원피스와 양산을 쓴 아줌마(작가)가 등장해 남의 집 담을 넘거나
중랑교 철제난간에 위태하게 매달리고, 급기야 경쾌한 멜로디에 맞춰 이집 저집 지붕위를 넘나드는 비행술을 선보인다.
경계를 초월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폐경기 여성의 위치를 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닫는 의미의 폐경(閉經)이 아니라 경계를 허문다는 뜻의 폐경(廢境)이란 동음이의의 제목을 덧붙인다.
장수탕이란 낡은 목욕탕 속 여인들의 씻는 행위는 종교에서의 세례(洗禮) 그것처럼 신성할 수 있다.
빨간 피는 생명력의 원천이고 지혜의 샘으로 뱀파이어나 요괴들이 탐하던 귀한 것이었다.
이제 그 피를 내보내지 않아도 되는 폐경은 지혜와 자유의 힘을 얻는 의식일 수 있다.
폐경 즈음의 일반 여성들의 일상적인 수다는 그들의 공허와 삶을 나누고 공감하는 또 다른 의식이다.
여성들조차도 세대에 따라 무지하거나 소통하지 않음으로 변화를 나누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며
격없는 수다 또한 긍정적 의례에 하나일 수 있다. 전쟁터로서 규정되고 사회적으로 옭죄인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고 삶의 주최로 다시 서는 시발점으로서의 ’폐경의례’, 작가는 보다 깊은 시선으로 이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홍현숙은 이전 옷과 식물을 주소재로 활용한 공공미술에서 활동하며 순환의 싸이클과 자연의 소리에 충실한
작업들을 추구해 왔다.
이번 전시 또한 그러한 주제에 역행하지 않는다. 작가 본인이 가장 잘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을 다루고
경계를 넘어선 폐경을 의식화함으로써 인생 백세 시대 새로운 절반의 시기에 경계를 넘어선 또 다른 시작의 문을 열어 놓는다. 노화는 거부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이다.
폐경은삶을 잉태하는 미션을 마감하고 진정한 나의 삶에 대한 감사와 죽음을 준비하는 성스런 의식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나니 독수리 날개 치듯, 뱀같은 지혜로 힘차게 도약하는
인생의 전환점에 스마트하게 대처하기를,
그대는 지금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