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첨장군 묘(충남 문화재자료 31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강민첨장군 묘역 전경 |
고려시대의 무신인 강민첨(姜民瞻, ?∼1021) 장군의 묘이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현종 3년(1012) 안찰사로서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여진을 격퇴하였다. |
▲ 강민첨장군 묘역 입구 모습 |
▲ 재실과 홍살문을 지나 계단을 오릅니다. |
현종 9년(1018)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격파하였다. 그 공로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우산기상시가 되고 추성치리익대공신에 기록되었으며, 이듬해 병부상서가 되었다. |
▲ 계단 중간 부분 좌측에 말묘(사진 좌)와 마부의 묘(사진 우)가 있습니다. 말묘는 여러 곳 있으나 마부 묘는 처음 봅니다. |
▲ 강민첨장군 묘역으로 오릅니다. |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는데, 반구형의 봉분 아랫부분에 잘 다듬은 둘레석을 둘렀다. 묘의 앞에는 상석·장명등이 있고, 좌우로 동물상·동자상·망주석·인물상이 있다. |
▲ 강민첨장군 묘역 전면 및 측면 모습 |
▲ 봉분 좌측의 구 묘비와 봉분 우측의 신 묘비 |
묘역 앞에 1957년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비문은 강민첨 장군의 24대손 태현이 썼고 글씨는 25대손 태석이 새겼다. |
▲ 강민첨장군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
강민첨 초상(보물 588호) |
과거에 급제한 후 쓰던 모자인 복두에 정장을 하고 홀(笏)을 들고 앉아서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이다.
의자 등받이에 있는 호랑이 가죽은 18세기 초상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비록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고려시대 초상화가 희귀한 상황에서 고려 공신상 형식과 표현형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그림이다.
◀ 문화재청 사진 |
진주 은렬사 강민첨 영정(경남 유형문화재 453호) |
단령에 홀을 쥐고 있는 고려시대 백관의 공복차림의 진주 은렬사 소장 강민첨 영정은 보물 제588호 은열공 영정과 매우 유사하며 표현기법이 우수한 수작에 속한 작품이다.
◀ 문화재청 사진 |
강민첨 탄생지(경남 기념물 14호) |
고려시대의 명장 은열 강민첨(?∼102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현재 탄생지에는 사당과 유허비(선현들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가 있고, 사당 뒷편 바위에는 ‘강은렬공유지’라는 글자를 새겼다.
1980년대에 사당, 정문, 재실을 새로 짓고 깨끗이 하였다.
◀ 문화재청 사진 |
강민첨장군 묘역 위치도 |
|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산34 지도 우측 하단의 A 봉분이 강민첨장군 묘입니다. |
지도 우측 상단의 A 위치에 강민첨장군 묘역이 있습니다. 신양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