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아동센터의 학습지도를 바라보며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습지도'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빈곤의 대물림 방지를 위해 공부를 등한시 할 수 없다는 주장,
성적이 향상되면 그 어떤 문제가 있는 아이라도 인정받으니 공부시켜야 한다는 주장,
부모님들이 원하니 해야 한다는 사정,
아동의 학교 성적을 향상시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평가제도...
기관과 지역마다 나름의 상황과 여건이 있을테니 싸잡아 비판하기도 두렵다.
다만, 지금 내 생각은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이 '공부방'이라고는 하나
초기 취지였던, 우리 동네 아이들이니 우리가 잘 키우자는 지역사회 운동 차원의 역사와 달리
점점 갈수록 무료보습소, 저소득층(취약계층) 대상 학습방처럼 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더군다나 지역사회에 학원이 있고,
때론 아이의 이웃, 부모님이 학원을 운영하시거나
유사기관(방과후 아카데미, 학교 방과후교실, 보육교실)이 있다면
학습지도를 지역아동센터의 전유물이나 주력할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설악산배움터가 원통에 이사왔을 때
동네 이장님이 학원하는 후배들이 주변에 있는데
안 그래도 어려운 요즘, 행여나 영향을 받진 않을지(배움터를 학원 경쟁자로 생각하시고) 걱정하셨었다.
# 아이들의 일상, 그 가운데 지역아동센터는?
우선 지역아동센터가 처한 현실, 상황은 잠시 뒷전으로 하더라도
'학습'을 두고, 아이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도 학원, 방과후 교실, 학습지, 문제집...
예전의 어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아이가 공부를 적게 한다고 보기 어려운 시대다.
오히려 아이가 해야 할 공부의 절대적인 양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 학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가 때때로
"오늘은 피곤해요. 공부를 너무 많이 했어요."
"아, 방금까지 공부하고 왔어요." 한다.
늦도록 공부했다고 느껴 지친 아이의 마음을 달래기보다
이미 공부에 지친 아이를 붙잡고 "오늘은 이만큼 공부해야지" 하고 아이와 기싸움하기 쉽상이다.
아이를 잘 달래어 공부하게끔 하려고 각종 보상(먹을 것, 스티커 등)을 걸기도 한다.
아이 일상에서 공부(학습)의 비중, 양이 날로 늘어가고
아이는 늦도록 하는 공부에 지쳐있는 이 시대 상황에
지역아동센터마저 아이의 공부를 채근해야 할까?
# 학습지도, 예전에 이렇게 했었다
'설악산배움터는 학습지도를 전혀 하지 않는가?'
원통에 있는 지금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 용대리에 있을 때는 했었다.
지역 여건상 학원이 전혀 없고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이 있으나 활성화되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무렵, 기관에서 이미 부모님들께 동의를 구해 구입한 문제집이 있었다.
부모님들이 큰 돈 내고 사놓은 문제집까지 있으니
그 해는 학습지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습도 아이의 일상과업으로 여긴다면 아이의 일상을 돕는 일로써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법을 조금 바꿨다.
먼저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진지하게 의논했다.
"OO야, 학교에 있는 동안 공부하고 왔다는 거 잘 알아.
그래서 방금 전까지 공부하고 온 아이에게 또 공부하자 말하는 게 걸려.
내가 아이라도 놀고 싶고 쉬고 싶을 때가 있는 걸.
나는 OO만 할 때 학교마치면 해지도록 놀았거든.
내 마음은 이런데,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사주신 문제집이 있으니
막상 안 하자니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OO가 가장 공부를 덜 한다고 느끼는 요일이 언제야? 그 요일만 공부를 하는거야.
근데 여러 과목을 하자는 게 아니라
OO가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잘 할 수 있을 만한 과목을 하나 정하는 거지.
공부할 양도, 진도도 미리 상의해서 다음 주에 할 양을 정하는 건 어때?
학교에서 배웠는데 누군가 한 번쯤 더 설명해주거나
풀어서 말해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을 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하니 아이도, 나도 한결 나았다.
어른입장으로 의무적인 공부를 시키기보다
아이의 일상, 의견을 존중해 의논해가며 학습계획을 수립해 실행하니
아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공부 양과 수준이고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 여기는지 편안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 지역아동센터가 쫓아야 하는 가치는? 아이의 학습을 돕는다면 그 원칙은?
지금이야 학습지도를 전혀 하지않는 편이지만
'학습지도'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역아동센터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는 어떤 가치일까?
'경쟁에서 승자로 살아남는 법?'
'그 어떤 직업과 일이든 더불어 사는 법?'
아이를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으로,
아이가 사는 지역사회를 아이와 더불어 살게 돕는
'공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지역아동센터라면
'경쟁'이라는 화두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나서서 돕는 경우도
기관과 지역, 상황과 사안, 여건에 따라 있을 수는 있겠다.
피치못해 돕게 된다면 지역아동센터마저 아이의 공부 과업을 별도로 만들기보다
기왕 해야 하는 아이의 일상과업(학교 숙제, 학습지 등)을 잘 돕는데 관심을 두자.
그리고 아이의 삶이니 아이에게 잘 돕고싶은 뜻과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와 개별적으로 상의해서 학습계획을 수립, 실행하자.
# 학습지도를 사회사업답게 하려면?
학습지도, 만약 이렇게 한다면 아이의 주변 관계까지 살펴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당사자인 아이와 의논하고,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처럼 아이를 잘 알고 아이와 가까운 분들과 먼저 상의해야하지 않을까.
묻고 의논하더라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
안그럼 몽땅 우리 몫이요, 우리 일 되기 쉽다.
공부를 도와주기 싫다는 것도 아니요,
공부를 도와줄 능력이 안 된다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정체성과 한계 그리고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그냥 발벗고 나서 도울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진짜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인지,
우리 말고도 누군가 하고있던 일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이의 학습을 돕더라도 '우리가' 공부를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물으면
'아, 해줄 수 있나보다.' 생각하기 쉽다.
대신 이렇게 묻고 의논하면 어떨까.
"지금 담임 선생님은 네 공부를 어떻게 돕고 계시니?"
"부모님께선 네 평상시 공부에 대해 어떻게 관심가지고 계셔?"
"혹시 주위에 네 공부 가끔씩이라도 도와주던 사람 있니?
친구든 동네 형누나든 교회 집사님이든..."
"네 공부를 잘 돕고픈데 우리가 그걸 맡아서 하는 곳은 아니니 부모님과 상의해봐도 될까?"
공부로써 아이를 도왔던 관계,
아이의 공부에 관해 관심을 가졌던 이들을 먼저 만나서 묻고 상의드리고 싶다.
...
실제로 부경이 공부를 도우려고 할 때 그렇게 했다.
부경이에게 먼저 묻고 부경이와 상의했다.
"지금 담임 선생님께서 부경이가 어려워하는 과목을 알고 계시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부경이 부족한 공부를 따로 돕고 계셔?"
"최근까지 부경이 공부를 도와주었던 사람이 있니? 있다면 교회, 학교 친구 누나 형이니?"
"부경이 초등학교 예전 담임 선생님 중에 부경이 공부를 잘 도와주셨던 분이 계시니?"
"부경이 공부에 관해 부모님과 상의드려도 좋을까?"
부경이 이야기를 들으니 가끔이라도 부경이를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교회수련회에서 만나 가끔 놀러오는 경기도 사는 누나 친구 또래의 형,
서울약국 나영희 약사님,
의정부에 사는 부경이 친척이 그동안 부경이를 도왔고
부경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담임이신 김혜숙 선생님께서
부경이 공부에 애정을 갖고 많이 도와주셨다고 한다.
부경이 어머님을 찾아뵜다.
부경이에게 묻고 상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어머니께 다시 여쭈었다.
배움터가 아이들과 활동을 하는데 집중하는 곳이라 학습에 치중하기 어렵다 설명드리고
부경이 공부를 돕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교육 쪽으로 잘 몰라 그러니 부경이 공부를 도와주셨거나 도와주실 만한 분이 계신지 여쭈었다.
어머니 말씀으론 교회 식구들은 바쁜 시기라 힘들 것 같다셔서
중학교 중간고사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을 한 번 찾아뵈면 어떻겠느냐 여쭈니 그럼 좋겠다 하신다.
함께 학교선생님 뵙는 건 부담스러우실 수 있으니
부모님 대신 찾아뵙더라도 충분히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움직여야겠다.
원통중학교 담임 선생님을 뵙고 상의드린 후 그 결과에 따라
부경이 예전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상의드려야겠다 싶다.
이렇게 하는 게 우리가 맡아서 가르쳐주는 것보다 쉬운가? 그렇지 않다.
두루 찾아다녀야 하고, 학교 선생님들께서 시간을 내도록 해야하고
아이와 부모님께 거듭해서 여쭙고 상의드려야 한다.
이렇게 하던 와중, 부경이 아버님과 다시 상의했더니
부경이가 공부 때문에 기죽지 않기를 바라고
부경이는 공부 말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 하신다.
그 뜻에 나도 동의하고 부모님과 당사자도 그러길 원하니
더이상 학습을 돕는 일을 주선하고 거들지 않기로 했다.
#
지역아동센터의 뜨거운 감자, 학습지도.
상황과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내 생각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다.
지금 현재로서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 할 수 밖에.
앞으로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은
'학습복지'도 당사자인 아이가 이루거나 아이의 삶에 가깝게 되도록,
'학습복지'를 매개로 아이와 지역사회가 더불어 살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다.
[같이 읽어볼 글]
지역아동센터 학습지도에 관한 짧은 생각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청소년,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 청소년
첫댓글 부경이 아버지, 반갑습니다.
지역아동센터 학습지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 글을 준거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김동찬 선생님이 쓴 글은 없나요?
여기에 다 모아서 링크하면 좋겠습니다.
복지요결의 "지역아동센터 사회사업편 3. 학습지도" 글을 여기에 답글로 올리니 그것도 링크해 주세요.
김동찬 선생님 글과 선생님 글을 링크했습니다.
저는 저 글을 기억하는데, 선생님이 기억하시는 글도 맞으신가요?
게시판 목록에서 한 줄을 복사하여 붙이는 게 좋습니다.
번호, 제목, 이름, 날짜까지 나옵니다.
김동찬 선생님은 연관된 글을 이런 식으로 모으는데, 본 기억이 있지요?
네 기억납니다.
그러려면 키워드 검색을 잘 해야 추려내는데 좋겠네요.
주상이의 생각, 실천 멋있어요. 도담다담에서는 학습지도 하지 않아요.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센터에 오는 청소년 중 눈높이, 과외 하는 경우 있어요. 시험기간에는 도담다담 오지 않고 독서실 다니는 경우도 있구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때때로 도담다담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요. 다 어울어져 편안하고 좋아요.
저도 지역아동센터 운영하는 입장에서 늘 고민하는게 학습입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자유롭게 놀리고 싶어도 저희 센터 위치나 여건상 그러질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내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자유롭게 지내는 것 같지도 않아 늘 고민합니다.
고민하신다는 이야기가 반갑습니다.
고민하신 만큼 무언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의정부 두레교실 지역아동센터입니다. 저희도 고민중인 문제이고 교사들간에 토론을 거쳐 내년부터는 바꿔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학습지도로 힘겹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도 고민이 많습니다. 교사들이 함께 토론하기에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좋은 결론을 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글을 좋은 재료로 여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론하고 상의해보신 결과, 저도 듣고 싶습니다. 기다릴게요.^^
얼마전 해송지역아동센터의 선생님께 교육 받았습니다. 신나는 책가방이라 ~ 저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다보니 관심이 갑니다.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 들었습니다. 참고하세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입니다. 센터장님은 애들 성적 떨어지면 부모님들이 학원으로 돌리는 사례가 있었다며 학습을 강조하시지만 공부를 강제적으로하는 아이들이 안타깝습니다. .
이미 공부에 지친 아이를 붙잡고 "오늘은 이 만큼 공부해야지" 하고 아이와 기싸움하기 쉽 상이다.
아이쿠..맞아요.
센터에서 학교숙제가 우선이지만
하루에 풀도록 정한 분량이 있어요. 되도록 공부를 피하고싶은 아이, 정해졌으니 꾸역꾸역 공부하는 아이...
공부를 의무적으로 하지않으면 좋겠지만 센터에서 오래동안 센터장님이 고수하는 바라 중간에서 마음이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 몫으로 일상으로 돕는 고민이 더욱 필요하겠습니다.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