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73) -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6)
1. 삼례 거쳐 호남 제일성으로(왕궁 보석 박물관 - 전주 풍남문 29km)
8월 24일(목), 맑고 더운 날씨다. 아침 6시, 숙소를 나서 인근의 주유소 옆 식당에서 아침(메뉴는 백반)을 들었다. 오전 7시, 보석박물관을 출발하여 통정 쪽으로 향하였다. 고속도로 옆 길 따라 4km쯤 걸으니 통정마을, 오랜 비석이 두세 개 시 있는 길 가 집의 아주머니가 이몽룡이 지나갔던 길이라고 설명한다. 구전으로 이어졌을까.
통정마을에서 삼례 쪽으로 소로를 따라 걷는 중 승용차를 타고 가던 청년이 차를 멈추고 이순신 백의종군길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 묻는다. 팸플릿으로 설명을 가름.
오전 9시 경 호남고속도로 삼례 톨게이트 옆을 지나 마을 쪽으로 들어서니 역참로, 옛 파발 길인 것을 일깬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앞 공터에서 잠시 휴식,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다.
역참로 따라 한참 걸으니 삼례읍소재지에 이른다. 우체국 지나 새로 지은 삼례역에 이르니 오전 10시, 역사 안의 파발마와 역졸을 실물크기로 제작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삼례역참이 조선시대 삼남지방의 중요한 교통, 통신요충인 것을 확인하는 듯, 백의종군길 감수자는 삼례역이 꼭 들러야 할 곳임을 강조한다.
삼례역에서 삼례교로 가는 길이 복잡하다. 이정표로 확인하고 주민들에게 물어가며 삼례교에 이르니 10시 40분, 다리 건너기 전 버스 정류소에서 잠시 휴식하는 동안 먹구름이 몰려온다. 5분여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리 쪽으로 걸어가니 다리 입구에 전주시 덕진구라 경계표지가 크게 적혀 있다. 걸어서 10여분 걸리는 큰 다리, 만경강을 가로지른다.
다리 건너편에 이르자 전날 저녁을 대접했던 한민수 사장이 승용차로 뒤좇는다는 연락이다. 일행 중 한 분이 저녁 식탁에 모자를 놓고 온 것을 전해주려 달려오는 길이다. 모자를 찾은 일행은 아침에 모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밥맛을 잃었는데 일부러 전해주러 온 것에 크게 감사한다. 일행 모두 동감.
모자 전하러 먼 길 달려온 한민수 사장(붉은 상의 입은 이)
어느새 점심시간, 이곳에서 걷기를 중단하고 승합차로 식당을 찾아 이동, 5분여 거리의 목초마을이라는 음식점에서 갈비탕, 육개장 등으로 점심을 들고 12시 반에 삼례교 옆의 만경천변 가로수 길에서 오후 걷기에 나섰다. 벚나무가 잘 자란 천변로는 군산까지 이어지는 명품 벚꽃 길, 바람이 산들 부는 그늘 길이 한더위를 식혀준다.
한 시간여 천변로를 걸어 큰 길로 나오니 체감기온이 급상승, 숨이 가쁘다. 미니스톱에 들러 아이스크림으로 체온을 조절한 후 번화가인 팔복동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참 걸으니 다시 추천대교 건너 다시 천변, 두 시간 넘게 이어지는 전주천이다. 기온이 더 올랐을까, 숨이 콱 막히는 무더위에 일행 모두 지친 표정, 배준태 단장이 묻는다. 전주가 왜 이렇게 더운가요? 네, 예전에는 대구와 쌍벽을 이루었지요.(1960년의 여름을 이곳에서 보낼 때 아스팔트가 녹아 신발이 찐득거린 기억을 되살리며)
걸으면서 살핀 전주천변의 능수버들이 운치 있고 목적지 부근의 차량 통행이 제한된 홍살문 거리가 고풍스럽다. 그 거리 지나 오후 4시 반, 옥루에 호남제일성이라 크게 새긴 풍남문에 이르다. 걸은 거리는 29km.
풍남문에 도착한 일행
입구에 적힌 풍남문의 유래는 이렇다.
‘풍남문 보물 제308호
이 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1389년(고려 공양왕 1년)에 관찰사 최유정이 처음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1768년(영조 44년)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하였다.
성문 위에 세운 누각 위층의 기둥이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근처의 숙소(청수여관)에 여장을 풀고 몸을 씻으니 피로가 몰려든다. 잠시 휴식 후 인근의 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식사, 숙소의 작업환경이 여의치 않아 식당 탁자에서 참가기를 적는다. 전날보다 더운 날씨, 내일은 또 어떤 날씨일까!
* 전주는 고향의 도청 소재지, 중학교 2학년 때 장학생 선발시험차 선생님 따라 처음 밟았다. 홍안소년이 60년 세월을 격하여 백의종군길 이음단으로 시가지를 관통하여 입성할 수 있음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선상규 회장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2. 춘향로 따라 임실문화원에(전주 풍남문 – 임실 읍사무소 31km)
8월 25일(금), 맑고 더운 날씨다. 밤새 폭우가 내렸는데도 깊이 잠들어 몰랐다. 아침 6시, 콩나물국밥집으로 유명한 삼백집을 찾았다. 지금은 전국체인망을 가진 기업형 식당, 60년 전통의 창업자(이봉순)가 아무리 많은 손님이 찾아와도 하루 삼백 그릇 이상은 팔지 않아 간판 없는 국밥집을 삽백집이라 부른데서 연유한 옥호다. 예전에는 아침 손님에게 모주를 대접하던 기억이 있어 주모에게 이를 일깨니 2천원 받는 모주 한 잔을 서비스로 따라준다.
식사 후 풍남문에 이르니 오전 6시 40분, 평소보다 빠른 시간에 임실 쪽으로 출발하였다. 풍남문은 정유재란(1597년) 때 불탔던 곳, 임란전후의 숱한 피해현장의 하나다. 전주천을 따라 30여분 걸으니 울창한 산기릇ㄱ 아래 도로변에 좁은목이라 적힌 팻말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정란이 남원 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던 장소라는 설명이다. 이순신 백의종군길 곳곳에 서린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누나.
임실은 전주-남원의 중간지점, 남원까지 이어지는 산업도로의 갓길이 질주하는 차량으로 위험하다. 그 길 따라 한 시간여 걸으니 완주군 상관면에 접어든다. 면소제지에 제법 큰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연유가 궁금하나 아는 이가 없다. 치안센터에 들러 지역의 특성을 물으니 편백숲이 울창하다는 답, 임실군 경계까지 세 시간 넘게 걸어가는 꽤 큰 면이다.
며칠째 높은 기온, 오전부터 기운이 부쳐 걷다가 자주 멈춘다. 위험한 산업도로에서 잠시 벗어나 천변을 따라 걷는 중 천렵하기 좋은 물가에 평상이 여러 개 놓인 휴식처가 눈에 띤다. 주말이 아니라서 비웠을까, 임자 없는 휴식처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다시 산업도로 걷기, 11시 반경 도로변의 식당가에서 점심(메뉴는 전주비빔밥)을 들고 12시 반에 오후 걷기에 나서니 슬치 재 길이 6km 이어진다는 도로안내판이 보인다. 한 시간여 걸으니 슬치마을이라 표시한 고개 마루에 이른다. 고개를 경계로 완산군 상관면에서 임실군 관촌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개에서 잠시 휴식 후 산업도로 옆의 내리막길 따라 30여분 걸으니 관촌면사무소 소재지, 충무공이 백의종군길에 이곳에서 머문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슬치 고개에서 휴식하는 모습
이곳에 관광명소 사선대가 있다. 그곳에서 가까운 사선문 길목에서 잠시 휴식하는 사이 반가운 손님과 마주쳤다. 광주에 사는 아내와 사촌 동생 내외가 일행을 응원, 환영하러 이곳까지 찾아온 것, 시원한 음료와 과일로 목을 축이며 무더위에 지친 일행들이 활력을 얻는다.
광주에서 온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임실읍까지 10여km, 걷는 도중 35사단, 호국공원의 안내판이 보인다. 방방곡곡이 나름의 중요지역이로다. 마지막 힘을 내어 열심히 걸으니 5시 반에 임실읍내의 문화원을 거쳐 읍사무소에 이른다. 걷기 완료, 31km.
도착지점 가까운 곳에 저녁식사를 마련하였다. 광주에서 온 가족들이 대접하는 것으로. 막걸리를 곁들인 한정식이 저녁 메뉴, 일행 모두 힘든 행군 마치고 즐거운 식탁이다.
숙소는 팬션, 공간이 넓고 쾌적하다. 밤늦게 수박파티, 24일 일정 중 11일 지나고 거리는 320여km로 반절이다. 전반기 코스가 약간 긴 편, 남은 여정 평안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