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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는 존중되어야... 파푸아뉴기니아 여행-
-설악산이 보인다-
한 달간의 일정으로 파푸아뉴기니아와 호주를 여행할 예정 이었으나 사업상 바쁜 일이 생겨 파푸아뉴기니아만 여행을 하고 20여일 만에 귀국을 한다. 호주를 못간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올해 말에 다시 한 번 갈 계획이다. 그간의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하여 지인이 있는 곳으로 혼자 간다. 이미 가본나라이기에 친근감도 들고 오지 탐험을 나서는 기분으로 이번 여행에 임한다. 16일 아침, 열대지방으로 가는 것이기에 간단한 옷차림으로 나서니 날씨가 매섭다.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중간 기착지인 일본으로 향한다.
세시 경 강원도의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날도 맑고, 설악산인 듯,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오늘 토요산행으로 은하수인 들이 북 설악의 매서운 겨울 향기를 담고 있는 모습이 보일듯하다. 저기에 들꽃사랑님도 산행을 한다고 하던데...ㅎㅎ “그러시오! 당신네들은 추운 곳 에서 노시오 나는 더운 나라에 가서 고생을 하고 오리다.” 20여 시간 후에는 40여도를 오르내리는 열사의 나라에 발을 딛을 것이다. 일본으로 가는 중, 옆자리에 한국여인이 앉았다. “역시 나는 걸 사랑이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다음은, 상상을 하시길 바란다. ㅎㅎ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4시간 정도를 머무른 후, 밤 9시, 파푸아 행 비행기에 오른다 . 새벽 4시에 도착 할 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레임 때문 이었는지 모른다.
스튜어디스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여인들의 배가 나보다도 더 나왔다. 그래도 이들은 미인에 속한다. -파푸아 뉴기니아 도착-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것은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국민의 90% 이상이 아직도 맨발로 다니는 나라이기도 하다. 면적은 46만 Km² (남한의 4.5배) 이며 인구는 500만 정도이다. 열사의 나라답게 자연의 힘은 대단한 나라이며, 부럽다.
새벽4시 수도 포트모르스비 공항에 도착!새벽 기온이 무지 덥다.
자연의 향기! 내게는 조금은 푸풋한 향기로 다가온다.
국제공항이 우리나라 작은 버스터미널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저런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부아이라는 환각성분이 있는 것을 먹어서 입이 빨갛다. 처음에는 역겹게 느껴졌지만, 이도 이들의 문화 인 걸 어쩌겠나. 우리나라의 여인들은 진짜 이쁘다. ㅎㅎ 남정네들은 행복한줄 알아야 한다. ㅎ
그곳 국내 항공기를 타고 뉴아일랜드의 도청 소재지인 케비엥으로 향한다. 2시간 30여분쯤 걸린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 다 보는 파푸아 뉴기니아의 전경은, 뭐랄까? 무한한 힘과, 가능성, 넓음 등이 대단하다. 사행천이 유유히 흐르고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이 잉태되고 있으리라....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 정글, 연녹색의 바다의 맑음....
중간 기착지인 마누스아일랜드의 전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낮 12시경 뉴아일랜드의 케비엥에 도착한다.
음식도 적응이 안 되고, 호텔은 너무 더워 잠을 이룰 수 없다. 비스켙 하나로 하루를 지냈다. 이곳 음식에 적응하려 노력중이다. -고속도로- 케비엥이 자리 잡은 뉴아일랜드는 길이가 300Km이상 되는 큰 섬이다. 그나마 섬 전체에 도로가 300여 키로 정도는 있다. 이들은 이 도로를 고속도로라 이야기하는데 사진으로 보시길 바란다.
케비엥에서 나마따나이 라는 곳으로 이동한다. 거리는 250km 라고 하는데 7시간이 걸린다. 이 도로는 그래도 하루에 차량 몇 십대 정도는 다니는 도로다. 포장도 거의 안 되어있고, 설사 포장되어있다고 해도 여기저기 파인 곳이 많아 달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이것도 없으면 배로 이동하여야 한다.
이 나라의 대부분은 도로가 없기 때문에 바나나 보우트라는 작은 배로 이동하며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익사 하곤 한다.
가끔 차를 세워 휴식을 취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에 발도 담근다.
물맛이 좋다. 남국의 정취가 느껴진다. 배가고프다. 드디어 이곳음식에 손이 간다.
중간에 고등학교를 잠깐 들렸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지만 잔디구장이 너무 좋다. 우리아이들도 저런 곳에서 뛰어 놀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해변 가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해변 가로 나오는 샘물로 목욕을 한다. 그것도 바닷물이 빠졌을 때만 할 수 있다. 샘이 내게는 뜨겁게 느껴졌지만 이들은 춥다고 한다. 물이 한없이 맑다. 물맛도 아주 좋다.
해변 가의 경치는 너무도 좋은데, 해변에 사는 이들의 생활은 궁핍하기 짝이 없다. 하긴 다 이런 과정을 격고,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이름 모를 풀 벌래 소리가 마음에 든다. 오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이 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간다. -아름다운 밤하늘- 이번 여행은 고생을 각오하고 온 것이기에 즐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영하 10도에서 영상 40도의 이동과, 식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어렵긴 하다.
또 이동을 해야 한다. 한 20년 쯤 된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 그래도 외국인이라고 운전석 옆에 태워준다. 이 도로는 트럭 한 대가 하루에 1회 왕복을 하는 도로다. 밖에는 비가 온다. 차라리 트럭 뒤에 타고 비라도 맞으면 시원하련만 문을 닫아 차안이 후덥지근하다.
하지만 항상 어려움만 있겠는가? 해변이 너무 아름답다. 야자수와 해변의 경치가 어우러짐이 환상이다.
목적지인 팔라봉 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이 나라의 대부분이 전기가 안 들어오지만 이곳도 마찬 가지다. 외국인이 자기 마을에 왔다고 난리법석이다. 우선 걸사랑맨 답 게 이곳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했다. 그래야 바나나라도 많이 얻어먹지 않겠는가? ㅎㅎ 다음날부터 이쁜 여인(?)들이 밤마다 나와 이야기 하려 숙소 앞이 문전성시다. 거기서도 여인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ㅎㅎ
이사람들이 불을 집혀준다 .불 소시게시 하나로 금방 불을 붙인다. 그래! 이렇게 불을 때서 밥을 해먹는 것도 추억이리라!
밥에 반찬은 고추장 한 가지뿐! 하지만 몇 칠 만에 먹는 밥이던가? 수라가 이만 하겠는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진짜 배불리 먹었다.
자연을 휴식과 휴양의 쾌적한 공간으로만 여기는 우리에게 자연과 온전히 관계하는 비결은 불편해도 그 자연을 편안하게 바라보며 그 자연을 기쁘게 즐기는 게 아닌가싶다.
밥을 지어 먹는 게 조금은 불편 하여도 즐겁게 즐긴 다면 이도 자연 속에 드는 게 아닌가? 문명은 파괴의 산물이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밤하늘의 달빛이 밝다. 정월 대보름쯤 된 것 같다. 밤하늘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감동이 자리한다. 내가 본 밤하늘 중에 제일 맑다. 그 흥분된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보고 싶다. 어두운 해변에 편하게 누웠다. 집이 그립다는 생각도 잠시, 밤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무박 중 바라본 설악의 밤하늘보다도 맑고 맑다. 별을 헤아려 보려 하지만 너무 많아 그리할 수가 없다.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내가 좋아하는 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곳에 있는 지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용기를, 어찌 보면 무모하리만치 대단한 용기를 지닌 의지의 한국인이다. 청국장이 제일 들고 싶단다.
편히 누워 남국의 밤하늘을 즐긴다. 야자수 잎을 사알짝 흔드는 바람 내음이 상쾌하다. 파도 소리가 정겹다.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반딧불이(개똥벌래)가 향수를 자아낸다.
사람들이 만든 어느 빛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축제다. 그 장관을 촬영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어찌 보면 반딧불이가 펼치는 빛의 향연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여행의 보람을 충분히 찾았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뉴아일랜드는 반딧불이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 한다. 맑은 밤하늘에 나의 마음을 그려본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같이, 아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아이들 울음소리를 좀처럼 듣지 못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잘 논다. 바닷물에 뛰어들고, 모래사장에서 뒹굴고 놀다 잠이 들고, 돼지, 개, 그리고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산다.
모든 게 자연이며 자연 속에 산다. 우리가 보기에는 동물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내들의 최선의 생활일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않으며 이들의 생활을 관찰해본다.
이 아이들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하교 길에 미역을 감던 생각... 수수깡을 씹으며 뛰놀던 생각...
이 곳 아이들은 사탕수수를 씹으니 나보다 더 좋을 것을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데서나 놀다 잠이 든다. 나도 어렸을 적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내게 잘 대해준다. 학교에서 같이 운동도 해보고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도 앉아보고 허름한 칠판에 낙서를 한다. 우리도 예전엔 이랬다.
여선생이 학교시설을 안내해준다. 작은 학교에 몇 권의 책을 갖춘 도서관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발전기를 돌려서 가끔 아이들에게 TV를 보여 준다고 한다. 학교 간판을 보시길 바란다.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교가로 들어갔다 한다. 동리 뒷산은 세계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동경의 대상인 듯싶다.
정글이기 때문이다. 그 정글에 들어서면 무한한 힘에, 어떤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 와서도 공부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뛰어 놀 뿐이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또 부러운 게 있다. 이곳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의 일을 한다. 남자들은 여인을 거느리는 것과 고기 잡는 게 전부라고 보면 된다. 남자들의 왕국이다.ㅎㅎ
한번은 집의 기둥이 썩어 여인들이 수리를 하고 있기에, 남자들을 데려다 같이 수리를 했다. 한국에서는 여자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 다고 하니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단다.”
진짜 남자들의 일인데 이곳에서는 여인들이 한다. 이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집에서 힘드신 남정네 분 들 고려해 보시길... 아픈 아이들도 많다. 눈병에 소위 말하는 흔디가 많다. 우리도 어렸을 때 저렇게 살았는데... 약도 없다. 그래!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 보거라. 나중에 추억이 되어 나 같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추억 이었다고...”
열심히 뛰어놀아라. 입시지옥에서 사는 아이들 보다 좋을 수 도 있다.
만날 때 마다 식기를 닦아주고, 밥을 할 수 있도록 불을 집혀주고, 또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우리말로 합창해준 팔라봉 커뮤니티스쿨(4,5,6학년) 학생들을 나는 사랑한다.
전통문화는 존중되어야...- 각 나라마다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다. 그 문화가 좋고 나쁨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기후, 토양 등에 의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틀을 갖는 것이라 본다. 2004년도에 이 나라에 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농사에 대하여 조금 알기에 고추, 열무, 배추씨를 가지고 가서 심었다. 날씨가 따듯해서 인지 삼일 만에 싹이 나왔다. 잘 자라겠구나 생각했지만 열대성 호우가 모든 걸 다 녹여버린다. 우리나라 한여름에 배추를 심지 못하는 이유와 같았다.
농사를 짓는 빌리지에 가서 고추를 따오라고 하니 숲에서 고추를 딴다. 무식한 사람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으면 더 잘 될 텐데.... 그랬다. 숲이 비를 막아 주는 것이다. 이들의 지혜다. 성급한 판단이 이들을 무식하게 본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을 보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들의 방식이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듯도 보였다.
지금 이들의 문화는 이러하지만 교육으로 점점 더 변화해가며 또 다른 문화를 만들 것이다.
덥기에 집을 높게 짓고 살며, 쓰래바퀴가 없기에 흔한 대나무를 깍아 서 대신하고 있다. 냉장고가 없기에 잡은 고기를 보관하기 위하여 연기를 쏘여 이틀간 정도를 보관했다가 먹기도 한다.
이들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문화다. 우리도 예전에 냉장고가 없어서 김칫독을 물속에 넣어 먹지 않았는가? 겨울엔 김칫독을 땅속에 묻고 살지 않았는가? 불과 40년 전의 일이다. 흑인의 잘 살지 못하는 문화라고 뒤쳐진 문화라고 판단하지 말아야한다. 전기가 없는 곳에서 몇 칠 지내지만 곧 적응이 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이러했지 않은가?
샤워장이 없으니 냇물에 가서 미역을 감으며 자연을 숨 쉴 수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도 이러했지 않은가? -이들은 언어의 마술사- 이 나라에는 800여개의 언어가 있다. 전 세계 언어가 2000여개가 있다고 하는데 500만 국민이 800여개라면 대단한 숫자다. 한사람이 보통 4개 정도의 언어를 구사 한다. 아버지 나라의 말, 어머니 말, 그리고 공용어인 피진어 그리고 영어 정도는 보통 구사한다. 특히 영어는 3학년 때부터 배우는데도 말을 잘 한다.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쓰지는 못해도 말은 구사한다. 나는 영어단어를 그들만큼 알지만 말은 어렵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영어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서 영어선생을 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수학선생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ㅎㅎ
오늘은 교회에 다녀왔다. 이들은 도둑질 하다가도 교회는 간다. 내가간 교회는 개신교이며, 설교내용은 잘 모르지만 찬송가는 같았다. 내가 “Amazing Grace"를 특송으로 부르니 다 같이 화음을 맞추어 찬송을 부르는 게 대단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는데 흑인 특유의 음악성이 있는 모양이다. -나뭇잎 한 장에 몸을 싣고- 해변에서 카누를 탄다. 아이들도 잘 타는데, 노를 하나로 짓다보니 나는 자꾸 배가 한쪽으로 쏠린다. 아이가 장난을 치느라 카누를 전복시킨다. 그 아이는 금방 카누위로 올라가는데, 이 육중한 몸은 오를 수가 없어 카누를 잡고 해변으로 나왔다. 이도 추억이다.
아침 7시경 이 나라의 옛 수도였던 라바울로 이동한다. 50여 키로 정도의 바다를 바나나 보우트로 이동한다.
이 배를 쉽게 설명하면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끄는 배와 같다고 보면 된다. 아니 조금 더 작을 수도 있다. 대단한 속도로 바다를 질주한다. 운명은 하늘에 맞길 밖에, 빠지면 상어 밥이 된다. 배가 파도를 넘어 떨어질 때는 허리가 아프다. 이네들의 교통수단이 주로 이 배다. 오늘은 바다가 잔잔하다. 이들은 이것을 잠잔다(sleep) 라고 표현을 한다. 그래도 명색이 바다인데, 망망대해에 나뭇잎 한 장에 몸을 언 져 놓은 기분이다.
어떻든 신기 하긴 하다.
한 시간 쯤 왔을까? 뉴코피오라는 아름다운 작은 섬에 도착하여, 한 승객을 태운다. 초등학교 선생 이라는 이 친가 이날 여러 가지로 내게 도움을 주었다. 점잖은 친구지만 부아이를 씹으며, 맨발이다. 이 선생에게, 학생들 에게 모범을 보이며 아이들을 지도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니 그렇게 해보겠다고 한다.
이 선생의 안내로 라바울에 도착한다. -일본군이 점령한 라바울- 이 나라의 옛 수도인 라바울은 호주를 점령하기위한 전초기지로 일본군이 점령했었다. 이 라바울은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춘 항구라 한다. 이 먼 나라까지 일본군의 힘이 미치다니, 태평양상의 대부분의 섬을 점령한 셈이다.
다음날 라바울 근처를 관광 하던 중 일본군이 만든 참호를 보았다. 안을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병사들이 시름을 달래기 위해 써놓은 여러 나라의 문자가 보였으며, 한글로 “김”이라는 글씨를 보며 70여 년 전에 이곳까지 우리 젊은이 들을 동원했구나 하는 것을 생각을 하며, 어떻든 대단한 영역을 점령한 일본군이 부럽기도 했다.
라바울 근처는 화산이 폭발하여 폐허가 되었으며 아직도 가스를 품어내는 화산이 있는 곳이다. 화산에서 1km도 안 되는 곳에서 화산재를 마시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야자수 나무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몸에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이틀간 이곳에서 관광을 하고 수도인 포트모스비로 이동한다. 서울에 바쁜 일이 생겨 귀국을 해야 하기 때문 이다. 라바울에서의 마지막 밤! 잠이 잘 안 온다. -흑인 친구를 만나다- 다음날 일본이 새로 지어준 라바울 공항, 즉 일본장군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도쿠아 공항을 떠나 수도인 포트모르스비로 이동한다. 이곳은 열대 우림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시원하다. 비행 중에 이 나라의 국토를 바라보며 드넓음에 부럽기까지 하다. 자연은 저렇게 힘이 넘치는데 국민들은 어찌 힘이 없는지 안타깝다.
도착 후 KARL이란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단숨에 마중을 나온다. 호주에서 공부를 했으며 변호사로 활동을 하며 수산업과 다른 사업을 왕성하게 하는 친구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상당한 위치에 속하는 친구인데 서로의 나라에 갔을 때 만나곤 하였다.
요즘은 라바울 화산의 열을 끌어 발전소를 설립하려 일을 진행 중 이란다. 우리나라에는 활동 중인 화산이 없기 때문에, 듣던 중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성공하기를 바래본다. 그 친구와 이도시를 구경하며 하루를 보낸다. 수 도지만 우리나라 작은 리 단위의 연속으로 보면 될 듯싶다. 인구는 20여만 명으로 추정 하고 있다. 낙후된 도시지만 앞으론 힘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도시다.
오랜만에 이곳의 마지막 밤을 호텔에서 편안하게 잠을 잔다. 이곳 시설로는 상당한 수준의 호텔이다. 포트모스비를 출발 일본에서 하루를 유하고 들어간다. 일본의 기후가 한국과 비슷해서 그렇겠지만 친근감이 든다.
한국으로 가던 중 일본 고산지대는 완전히 설산이다. 내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힘들었지만, 불편했지만, 힘 있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향기와 남극의 열기를 마음껏 담았으니 한없이 행복하다. 이것이 내겐 “행복한 추억”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다시 그 힘찬 열기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잔잔한 반딧불이의 향연이 그립다. 2000 03 산사랑맨 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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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한 여행이셨군요....
맞아요. 힘은 들었지만... 저는 성격상 불편함을 즐겁게 즐기려 노력을 많이 한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답니다.
부러울수밖에없는 여행을 다녀오심을 바라볼수밖엔없네요... 하지만 집떠나면 고생이라고... 애쓰셨습니다. 그래도 부러운것은 어쩔수없네요...다음산행에서 뵙죠.....
집을떠나면 고생 이죠. 음식도 안맞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하지만 생각 하기에 따라서는 물맑죠, 공기 깨끗하지요, 또한 사람들이 순박 하기에... 시간만 있다면 한달쯤 더 있다가 오고 싶었답니다. 위에 썻지만 반딧불이의 빛의 향연은 환상이었답니다. 다음두 산에서 뵙겠습니다.
사람이 사는 본모습을 보셨군요..아마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듭니다..놓인대로 보는것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글을 읽어내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에 모습이 생생하군요..글 잘보았고요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심 축하드립니다.....
머털이님의 표현은 진짜 멋있으십니다. 사람이 사는 본 모습이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불편하여도 뒤 떨어져있어도 불편한줄 모르고 이게 사람사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산다면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그 생활이 불편했고 힘들었다고 했지만 그들은 불편해 하지 않더이다. 그냥 그렇게 있는대로 사는게 사람이 사는 본 모습이 아닌가 생각도 했답니다.
어머니 자궁속에서 느낄수있는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오지로의 여행인간또한 자연의 일부 이기에 자연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는것이겠지요. 자연의 무한한 힘은 문명의 이기속에 묻혀 버리고 인간은 그안에서 본연의 모습을 잊어 버리고.. 사랑맨님의 여행기를 읽으니 저또한 까만 밤하늘 쏟아지는 들 바라보며 열대숲속 어딘가에서 풀냄새 벌래소리에 취해있는 느낌입니다 행복한 추억 가슴속에 간직하여 그추억 꺼내어 우리 은하수 산우님들께 돌려주신 사랑님께 감사를
이보다 더 오지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곳에서... 자연이 곧 사람 이려니, 사람이 곧 자연이려니 생각하며 즐겨보려 했답니다. 노력을 했다는 자체 부터가 저는 자연의 일부가 될 수없을 만큼 먼곳에 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답니다. 60년대에 우리의 생활이 불편했는지 모르고 즐겁게 지나온 것이 그립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래도 커다란 불편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답니다. 까만 밤하늘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어느 여인을 생각 했는지 아시는지요? 찬란한 반딧불이가 펼치는 빛의 축제를 바라보며 어느 여인을 생각 했는지 아시는지요? ㅎㅎㅎ 그 여인은 바로...
오빠!! 밤 하늘보며 날 그리워했나여~~^^ 넘~~(^^) 잘 보고가용 멋지네~~ㅎㅎ
어떤 여인이 저보구 오빠라고 하시는... 설레임에 몇날 몇칠을 잠 못이루는 날이 될 것같소이다. 그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느 여인을 그리워했답니다. 그 여인이 첼린여사 인줄은 모릅니다. 뉘 신줄 알아야...
힘든것만큼 행복한 여행이셨군요 여행기를 있는 그대로 잘 써주셔서 정말 편안하게 자유롭게 한번 가고싶은 맘이드는곳이네요 요 살아있는 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 영원히 간직하시길
아마 편한곳으로 여행을 갔다면 잔잔한 감동이 깊지는 않았을겁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생활을 같이 했기에 또 가고싶은, 다음에는 비상약 이라도 가지고 가서 흔디라도 고쳐 주고싶은 그런 생각이 든답니다. 또 가고싶은... 그런마음...
님이 무사히 돌아오심을 축하드리고,이제 산에서 뵈어야죠,..긴 여행기 읽다보니 앞에글이 잊혀지는군요,ㅎㅎㅎ,,,칼잡고 사진찍은모습에서, 우리 군생활할때 몇자루 남아있던 장글도 처럼 보임니다,묵근하고 잘들지않고,...그러던~~~~
그래요 정글도(부시 나이프)가 맞습니다. 이 친구들은 이 칼 한자루를 항상 가지고 다닌답니다. 어떤 때는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요. 하지만 이 나이프로 인한 사고는 없답니다. 무기가 아니라 생활도구일 뿐이지요. 이들은 화를 내지도 않는답니다. 그저 편안하게 물 흐르듯 그렇게 살아 간답니다. 다음 토요일 월출산에서 한번 조우를 하십시다. 감사합니다.
오메~~~~~~~부러워랑....
월출산이후 한번도 뵙지 못하는구려. 이젠 봄바람도 살랑살랑 부니 마음을 제게도 조금은 주시길 바라오. ㅎㅎ 재미있게 다녀 왔나이다. 여인이 옆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특이 소미님이 계시면....더욱 빛나는 여행일 터인데...
어릴적 동네 뒷산에 올라 친구랑 둘이서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적이 있다 별이 쏟아질것 같다가도 이내 캄캄한 우주속으로 빨려들것 같은 무서움에 재빨리 일어나 앉았던 기억이 난다 저녁을 먹고난후 친구들과 무리지어 개똥벌레 불빛을 따라 잡으러 좆아다니다가 두엄자리에 빠지기도 하고, 옆집 장독쪽으로 날아간 개똥벌레를 잡으려다 장독뚜껑을 깨기도 했었다 아~ 그리운 어린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신 님께 감사... 그리고 감격...부러움 까지 담에 가실땐 따라가고싶은데 어쩌지요??
산사랑님은 글도 참 잘쓰십니다 귀한 사진과 훌륭한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삼세번 읽었습니다 그래도 또 읽으려 올것입니다 수고많으셨어요 근데 제 생각도 많이 하셨는지... 들꽃사랑님만 생각하신것 같아서 질투나옵니다 궁금해 하시옵소서..
야! 보라매님 답글을 읽다 보니 진짜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그때 개똥 벌레가 어찌 그리 신기했던지, 잡으러 다니던 때가 그립습니다. 조금커서 형설지공의 뜻을 알고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러면 공부를 잘할 것 같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 그때로 돌아 갔다가 온것이지요. 글은 보라매님이 더 잘쓰시는구려. 그리고 닉네임으로 남정내 같은데, 그리워 해달라 하심은 여인이신가? 알앗수. 다음부턴 보라매님이 그립다 쓸께요. ㅎㅎㅎ 사실은 제가 들꽃님을 별로 그리워 하지는 안아요. 들꽃님이 이글을 안보겠지 ㅎㅎ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쯤에 정말 반딧불이를 네 다섯마리 잡아다가 문종이에 싸서 벽에 붙여 놓고 옛 성인을 흉내내어 책을 보려 하였는데 글씨가 보이지 않더이다 간신히 한두자 정도는 읽을 수 있었지만 밤새 읽는다 해도 한페이지도 넘기기가 힘들겠더라구요 그뿐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반딧불이가 응가를 해야해서인지 몰라도 불을 꺼버리던데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반딧불이는 죽어있고 난 내가 죽였다고 울고 말았지요 에~구 슬 포 라 ~
뉘신가 궁금 하구려. 혹시 보라매님은 저를 아시는지요? 저는...하긴 미인은 꼬옥 숨어 있다가 주인공으로 확 등장을 하더이다. 그래도 우린 개똥벌래의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보면 행복한 세대 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향수에 젖어시 이리 글을 쓰고... 보라매님이 아주 많이 보고싶구려. ㅎㅎㅎ
그러고보니 저도 꽤나 극성이었나봅니다 아주 어릴적 초등학교에 갓입학하고 난후 모내기를 마친후 마당한쪽에 남아있는 모내기용 모종을 뒤뜰 대밭아래 좁은 땅에 고랑을 만들어 밖으로 쌓고 바가지로 물을 길어다 붓고는 모를 심었어요 햇빛도 들지 않는 그곳에... 엄마는 야단치셨지만 아빠는 제법이다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뽑아내지 않고 키워보라 하셨지요 정말 가을에 벼꽃이 피었고 키는 잘 자라지 않았지만 시시컬렁해도 일부는 나락이 여물어서 제가 낫으로 베어서 수확하기도... 정말 그립네요 맨발로 흙속에 들어가 모심기위해 철벅거리며 흙을 고르기도 했었는데...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몇일간 죽는줄 알았답니다. 병원에 있느라... ㅎㅎ 보라매님 글을 읽다보니 자꾸 어릴적 생각이 난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산에 참꽃(진달래)잎을 따먹으러 갔는데 제 키 만한 향나무가 한구루 있더이다. 그래서 그 향나무를 캐다가 집 뒤뜰에 심었는데 그 이후로 20여년을 보았는데 그만... 나무를 좋아해서 결국은 조경수 농사를 짓는 직업을 간진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요 다 각자의 추억이 있는 모양입니다. 새록새록 그 생각이 난답니다.
뉴기니 씩이나...정말 부럽습니다. 문명의 오지...나이먹으니 ,오지가 더 좋아집니다..한번 뵙고 싶은데...토요산행 한번 가겠습니다. 강대장님...
ㅎㅎ 오지 좋아하다가 현재 병원에 입원중 이랍니다. 그곳의 풍토병 같은거 같구요, 많이 좋아지고 있답니다. 백두대간에 나오 시는거 같습니다. 은하수를 위하여 힘써 주시길... 토요산행에서 뵙기를 원합니다.
긴 글이었지만 지루한 줄 모르고 잘 보았습니다. 여행기에다 보너스 댓글까지......값진 여행기를 읽으면서 언제 한 번 나도 이런 여행 해봤으면 했습니다. 반딧불이 이야기에 어릴적 추억까지 떠올리면서 함께 한 여행이었던 듯 선생님의 글 속에 휩쓸려서......단숨에 읽어 내느라 숨을 몇번이나 쉬었는지 것도 잘 모를 정도로감하고 갑니다.
요즘 까페에서 박꽃향기님 시를 읽는 재미로 까페를 들어 옵니다.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타고난 재주도 없고 노력도 없으니... 그냥 많이 돌아 다니며 보고 들은 바를 편하게 적어 볼박ㄲ에 다른 방법이 없더이다. 들꽃사랑과 같이 재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고... 올해 다시한번 파푸아뉴기니아를 가려 합니다. 그때는 여행기를 시로써서...ㅎㅎㅎ
기대하렵니다. 건필하시옵길 바라면서......
아궁 전직이영어 강사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