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6일(금) 인천공항이다.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날씨가 이런데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혹시 취소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런 안내방송이 없어 안심하고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체크인도 어렵지 않았다. 현준이가 미리 집에서 컴퓨터로 체크인을 해 주어 간단히 짐만 부치면 되었기 때문이다.
짐을 부치고나자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슬슬 공항 내를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문자가 들어온다. 가방 검색대로 오라는 문자였다. 가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검색대에 가니 옆의 방에 가보라고 하여 그 방을 찾아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내의 큰 가방이 있는 게 아닌가! 검색대에서 뭔가가 검사에 걸린 거였다. 직원은 화면을 보이며 여기에 이상한 물건이 있는데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열어보았더니 핸드폰 보조 배터리였다. 보조 배터리는 기내에 갖고 타야 하는 건데 급히 짐을 싸다보니 그만 잊어버린 거였다. 배터리를 빼고 다시 짐을 부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빈 의자에 앉아 어제 예술의 전당 연주회 때 아내의 제자가 선물한 떡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공항에 오래 있으면 주차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현준이를 집으로 보내고 우리는 탑승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지문인식으로 신원을 조회하는 게 신기했다. 베트남 항공을 이용하기 위해 셔틀 트레인을 타고 107번 탑승구로 가면서도 내가 지금 비행기를 타러 가는게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탑승구에 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하노이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베트남 항공권을 구입한 이유는, 비록 하노이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인천에서 하노이로 가고 거기서 약 아홉 시간 정도를 기다린 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여정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휴가 간다는 생각에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보잉 787-9 기종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왜냐하면 비행기표를 구입하자 마자 복도 쪽으로 자리를 예약 했는데 막상 기내에 들어가니 우리 좌석이 창쪽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 내가 너무 일찍 예약을 했거나, 아니면 비행기 기종이 바뀌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서 너 시간만 날아가면 되니 복도가 아닌 창 쪽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앉았다. 아내는 창쪽, 나는 가운데 그리고 내 오른쪽, 즉 복도 쪽에는 어느 중년의 남자가 앉았는데 그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손을 모으고 오랫동안 기도했다. 물론 나도 기도를 했지만, 이 남자는 목사인 나보다 더 오랫동안 기도하는 게 아닌가!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의 기도가 끝나는 대로 말을 걸었다.
그는 캄보디아로 의료선교를 떠나는 정동제일감리교회의 한의사였다. 그 교회는 우리나라 선교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교회인데 역사와 전통에 맞게 오랫동안 여름마다 해외로 의료선교를 나가 올해로 벌써 32회를 맞는단다. 정말 대단한 교회였다. 그 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방에 대해 궁금했던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사극에서 가끔 등장하는 장면으로 "실을 여자의 팔목에 묶어 실의 진동으로 맥을 짚을 수 있냐?"는 거였다. 그 집사님은 실의 진동으로 맥을 짚는 건 불가능하며 그런 장면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비행기는 오전 10시 반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오후 2시 반에 하노이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방송에 의하면 밖의 온도는 32도였다. 원래는 하노이에서 아홉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라도 시내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한국을 떠나기 전 베트남 예배를 담당하고 있는 웬캄빈(원경영)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그냥 공항에 머물기로 했다. 왜냐하면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1시간과 시내에서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1시간, 그리고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3시간 전에 공항에 있어야 하는 시간 등을 따져보면, 실제적으로 시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였다. 게다가 하노이의 교통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 혹시 공항으로 돌아 가려다가 러시아워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 낭패라는 말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하노이 시내 구경은 포기하고 그냥 공항에 머물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결정은 잘 한 것 같다.
하노이 공항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은 승객들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검색대를 통과할 때 신발을 벗는 일이었다. 예전에 독일에서는 경찰처럼 생긴 공항직원이 승객의 발바닥을 일일이 손으로 만져보며 확인했는데 여기는 아예 신발을 벗는 거였다. 우리는 독일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공항에 있는 <송 홍 라운지>(Song Hong Lounge)에서 머물기로 했다. 거기는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들어갈 수 있는데, 각종 뷔페가 잘 차려져 있어 아무 때나 맘대로 먹어도 되고, 또한 샤워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비행기에서 주는 식사도 맛있었지만, 라운지에서 맘껏 먹는 것도 좋았고 깨끗한 샤워시설에서 샤워하는 것도 좋았다. 특히 샤워시설에는 황금색 세면대가 있어서 신기했다. 라운지에서 머물면서 본전 생각이 들어 이것 저것 실컷 먹으며 여유를 부리다가 하노이에서 출발할 독일행 비행기 좌석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우리 좌석은 창 쪽으로 되어 있어 라운지 직원의 도움으로 창 쪽에서 복도 쪽으로 변경했다.
라운지에서 머무는 동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거 정말 지겹도록 봤다. 각종 음식을 종류별로 다 맛보며 놀다가 라운지를 나왔다. 그리고는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공항 끝에 환승객을 위한 넓은 공간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등받이를 조절하여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의자가 약 10개 쯤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한국인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비어있어 아내를 쉬도록 하고 나는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오던 '만보 걷기'를 공항에서 했다. 하노이 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그래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계속해서 걸으니 어느 새 만보가 채워졌다.
시간이 되어 아내를 깨우고 독일 행 비행기를 타려고 보니 전광판에는 20분 딜레이(delay)란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도록 하는 건데... 하는 수 없이 빈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한 마디로 하노이 공항은 한국인 천지였다. 심지어 비행 안내도 아예 한국어로 나온다. 원래는 독일행 비행기는 26일(금) 밤 10시 5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11시 20분으로 딜레이 된다는 안내가 나와 느긋하게 딴청 부리고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전광판을 보니, 조금 아까까지 딜레이라더니 갑자기 라스트 체크인(Last Check-in)이란다! '어라? 이럴 수가 있나? 불과 10여 초 전까지만 해도 딜레이라더니 이제는 라스트 체크인이라고? 무슨 공항이 이래?' 이러며 속에서 부글거리는 것을 참고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정작 탑승구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태평하게 앉아있는 거였다. 체크인은 탑승구 밖에서 하는 체크인을 말하는 거였다. 우리는 이미 안에 들어와 있으니 해당사항이 아니었고... 어허, 사람을 놀래켜도 이렇게 놀래키면 안 되지! 하여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의자에서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출발이 20여 분간 지연 되었는데 비행기를 타니 청소 상태가 별로였다. 바닥구석에 비닐 쓰레기가 있었다.
아무튼 자리에 앉아 무사히 비행기를 갈아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독일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기도한 다음 이륙을 기다렸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적정 고도에 이르자, 승무원들이 물수건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긴 원피스를 입은 어느 여자는 물수건으로 손과 팔뚝, 얼굴을 닦더니 이제는 종아리 이쪽 저쪽을 열심히 닦는다. 보기에 너무나 민망해 제발 그녀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며 고개를 돌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녀는 남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소설을 읽는 한국 여자였다.
좁은 공간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지루하여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미스터 빈’이 나오는 코메디 영화였다. 지루하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웃긴지, 모두가 곤히 잠든 조용한 기내에서 나 혼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아가면서 ‘킥킥’ 거리며 웃다가 결국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미스터 빈’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내는 이런 저런 영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지루한지 게임을 했는데 최고 점수(198,450점)를 기록했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20만점을 돌파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시간이 부족했던 이유는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25분 늦게 이륙한 비행기는 점차 속도를 높이더니 940~980km의 속도로 쉼 없이 날아가 프랑크푸르트 도착 예정시간(토요일 아침 6시)을 무려 30분이나 앞당겨 아침 5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25분 늦게 출발해서 30분 일찍 도착한 거다. 이건 거의 한 시간을 벌은 셈이다.
독일은 여름이 되면, 아침에 해가 일찍 뜨고 저녁에 늦게 져서 낮 시간이 무지 길다. 그래서 새벽 4시부터 한낮처럼 훤~하고, 밤 10시가 되어야 겨우 해가 질 정도인데 겨울은 그 반대로 오후 4시만 되면 어둑어둑 해지고, 아침 8시가 넘어야 겨우 훤해진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아침 5시 반이었지만, 밖은 대낮처럼 훤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우리는 예약된 고속 열차(ICE)를 타고 쾰른에 올라가야 하기에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공항에서 크로아상을 사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가 앉은 의자 근처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어느 할머니가 짐 보따리를 카터에 실은 채로 두고는 자꾸 자리를 비웠다. 짐을 보니 한글로 어느 남자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이 할머니는 한국인이 분명했다. 공항에서는 “도둑이 많으니 짐을 잘 보관하라”는 안내방송이 독어와 영어로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이 할머니는 안내 방송을 듣는지 마는지 짐을 두고는 자꾸 어디로 가신다. '이거 잃어버리면 어쩌시려고...' 이런 생각에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대신 우리가 짐을 보고 있었는데 한참을 지나서야 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 왜 짐을 두고 이렇게 다니세요?” 이렇게 물었더니 할머니는 한숨만 푹 푹 쉬신다.
이 할머니는 옛날에 간호사로 독일에 와 뮌헨에서 오래 살다가 나이가 들어 한국에 돌아갔는데 독일에 사는 아들 내외와 간호사 친구들이 하도 놀러 오라고 하여 이번에 놀러 왔다가 그만 프랑크푸르트 행 기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이리 저리 기차를 갈아타고 오다보니 아침에 타야 할 아시아나 비행기를 놓쳤단다. 그러면서 어찌어찌하여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24시간동안 여기서 뭐를 해야 하냐며 한숨을 쉬신다. 그래도 짐을 이렇게 방치하면 어떻게 하시느냐고 했더니,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이젠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고 지쳐 짐을 잃어도 괜찮단다. 하루를 공항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모든 걸 체념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들 집이 가까우면 잠시 다녀올 수 있겠지만, 아들 집이 멀어 그렇게 할 수도 없다”며 공항 지붕만 바라보신다.
그동안 내게는 독일이 정직하고 매사에 정확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게 기차 시간이다. 이건 뭐 들숙날숙이다. 제 시간에 도착하는 기차가 거의 없다. 무슨 파업이라도 있을라 치면 아예 기차 시간표는 무용지물이다. 어떤 경우는 기차가 연착되는 게 아니라, 취소되어 버린다.
또 하나는, 독일이란 나라가 공공질서를 잘 지키며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였는데 실제는 그렇지도 않다. 흡연에 무척 관대하다. 기차역을 보면, 한쪽 구석 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는 거기가 흡연구역이란다. 우리는 흡연실이 따로 있어 담배연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 않도록 하지만, 독일은 그런 것도 없다. 공개된 장소에서 바닥에 그어진 선 안에서만 담배를 피우면 되는 거다. 그 담배연기는 사방에 흩어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준다. 그게 무슨 공공질서며 남을 배려하는 문화인가? 물론 실내에서는 금연이지만, 실외는 어디서나 남자고 여자고,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흡연자로 그득하다. 심지어 길거리 까페에서도 남이야 어떻든 무작정 담배를 피워댄다. 나같은 비흡연자에게는 진짜 고역이다.
우리는 할머니와 얘기하다가 우리가 타야 할 기차 시간이 되어 할머니와 헤어져 프랑크푸르트역 승강장으로 갔다. 프랑크푸르트 역은 공항과 연결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예약된 1등석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 승강장에 비치되어 있는 열차편성 안내 그림을 보니 기차 맨 끝 칸에 있었다. 혹시라도 몰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그림이 맞고 그 그림대로 1등 칸이 열차 맨 뒤에 달려서 온단다. 그래서 맘 놓고 기다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속열차도 7분정도 늦게 들어왔다. 그런데 1등석이 안 보인다. 막 기차에서 내린 차장에게 물어보니 이런! 1등석은 맨 앞 칸이란다.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딸은 독일에서는 열차 안내 그림과 실제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니 그냥 그런 줄 알란다. 자기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당했다면서...
하여간 우리는 맨 뒤 칸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올라타는 사람, 자리를 찾는 사람 등 인파를 헤치며 그 좁은 공간에서 무거운 가방을 밀면서 맨 앞 칸인 1등석을 찾아 갔다. 그런데 열차 바닥이 카페트로 되어 있어 가방을 미는 데도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방의 바퀴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이리저리 제 멋대로 움직이고 어떤 때는 아예 멈추기도 하여 가방을 밀던 나는 그만 가방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질 뻔 하기도 수차례였다. 하여간 천신만고 끝에 기차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방을 밀며 이동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내가 아무리 목사라지만, 독일 철도청(DB)에 “야, 이 나쁜 ×들아!” 이런 욕이 나올 뻔 했다.
가방을 밀며 이동하는 도중에 아내는 더 이상 힘이 없어 가방을 밀지 못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겨우 우리 자리를 찾아 내 가방을 놓고는 아내를 찾아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아내의 가방을 밀었는데 이건 내 가방보다 더 말을 듣지 않아 정말 힘들었다. 아내가 중간에 가방 밀기를 포기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가방을 모두 가져온 우리는 자리에 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졌기 때문이다. 독일 방문 첫날부터 이렇게 고생할 줄 누가 알았으랴? 프랑크푸르트에서 쾰른까지는 약 200km다. 그런데 기차는 거의 40분 만에 쾰른 역에 도착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우리는 기차를 타자마자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한 채 바로 내려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