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모임 양양베드로 집에 가는 날
은빛모임(역자 주: 은퇴자모임)의 4월 15-16일 양양을 향한 산돌버스가 30명(기사와 8살짜리
현지를 포함)을 실고 김 목사님 기도를 마친 후 고go go―.
이 30명의 기대를 실은 나들이는 이미 작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유비물산의 제2창고가 양양에
세워진지 오랜 후 기회가 있어 터다지기 공사를 한다는 소식이 작년부터 있었으니까. 언제나 좋
은 일 만들기 잘하시는 은퇴자모임의 이윤영회장님 그냥 지나 치 실리…….
“한번 견학기회를 마련하셔야지요?”
“적당한 날 오십시오.”
그렇게 해서 이 은빛모임의 부부봄나들이는 시작된 것이다. 첨엔 당일치기로 하려고 했다가 1박
2일로 바뀌면서 정인원이 정해졌다. “가게를 이틀씩이나 비울 수 없다.”던 고석인 장로님은 순전
히 타의에(총무 일을 보시려니) 의해서 천호동에서 일착으로 교회에 도착하셨다. 나는 다리가 저
리단 핑계로 앞자리를 잡았다.
여의도를 지나려니 벚꽃 축제 마지막 날인 게……. 밀려드는 차량행렬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여의도 벚꽃 때문에 탄성이 쏟아 졌다.
“어머나 저것 봐!”
“고와라.”
“와~!!”
꽃들이 우리의 탄성을 듣기라도 한 양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혼잡한 올림픽대로를 벗어나 고
속도로로 접어들 때쯤, 한분씩 고개를 떨 구고 꿈나라를 여행하신다. 바로 내 앞자리에 고석인
장로님과 이용행 집사님이 팔 장낀 모습으로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는 모습은 마치 ‘베어tm 트윈
스'가 한바탕 하고 등 돌리고 있는 모습 같아서 관람하는 우리를 즐겁게 했다.
입구 쪽에 자리 잡은 이윤영회장님의 조카의 선물이란 패션운동화가 눈에 띈다. 오늘따라 유난
히 발을 흔드시는 모습이…… 내 친구 병태 같다. 녀석은 공부를잘해서 그의 형과 친구인 형이
나를 앉혀놓고 “창피해서 못살겠다.”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는‘세상졸업식이 성적순이라는
듯’ 암으로 3년 전 세상을 떴다.
뒷동네 노친 네들이 급하다 해서 2시간간격으로 휴게소에 들리며 막힘없이 달린 버스는 베드로
의집에 12시쯤 도착했다. 초입에 있던 작은 언덕이 사라지고 마당에서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도
록 터다지기가 되었다. 아직 조경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여느 별장전망에 뒤지지 않는다.
원로목사님이 사정상 오시지 못하신 고로 졸지에 대타가 되신 회장님의 설교로 예배를 드렸다.
애베스의 기도(역대상 4;10)을 중심으로 한 ‘복 받은 자의 아름다운 손’이란 제목으로 하신 말씀
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신 박 장로님 내외와 또 초청받은 우리의 남은 날을 복되게 잘 마무리
하며 살라는 것 같아 은혜가 된다. 기대이상의 한편의 명 설교였다. 후배들이 들어야 할 대목도
있었는데 누구나 할 수 있는 리더 같은 ‘됨의 직분’보다는 ‘다움의 직분 자’가 되는 것, 그리고 직
분 자는 목사님 유고시 강단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말이다. 우리는 아름답고 복된 그 손이 되기
를 다짐하고 하나님은혜와 체험한 복을 감사드리는 마침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내가 아는 전은규 권사님은 언제나 철두철미, 일사철리로 일을 하신다. 전망 좋은 곳에 예배처소
와 그룹 실을 짓고 이름을 ‘베드로의 집’으로 한 것도 아마도 그분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오늘도
그 바쁜 와중에 언제 준비하셨는지 호박죽을 내놓으셨다. 그 호박죽에 조인순 집사님 손녀인현
지가 거의 한 접시를 비웠다던 함께 나온 강원도 고랭지 김치와 함께 먹은 그 맛은 뭐라고 표현
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잠시 동해비경을 내려다본 후 버스에 올라 양양으로 나왔다. 전 권사님이 점심으로 예약
해놓은 ‘입암 막국수’집을 향하여……. 암튼 우리는 관광도하고 대접도 받고 이 여행을 추진할 때
부터 회장님의 “안 가면 손해다.”하신 그 말씀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암튼
이런 게“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그 집이 양양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라는 것은 양이 많았음에도 소식하시는 **님도 남김없이 그릇
을 비웠으니 알만하다.
우리는 또 버스에 올라 박호진 장로님이 회를 겸한 저녁식사를 대접하시겠다하셔서 숙박지인 덕
구온천에서에 가까운 경북 죽 변 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기적이 일어났다.
출발할 때 ‘과연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할 정도로 약해보이시던 이흥종 장로님이 종래에 호
박죽도 못 드실 땐 더 걱정스러웠는데 이동 중 버스 안에서 즉석 ‘명심보감’강의를 하신 후 원기
를 회복하셔서 혈색이 돌아온 것이다. 죽 변 항에 식당예약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기 때
문에 명소인‘파도 속으로’드라마촬영지를 관광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느림보인 나 때문에 방
파제와 어촌 뒷골목만 돌아보고 왔다. 그 길을 걸으며 누군가“정겹지 않아요?”했다. 기억 속에
꼭 한번 걸었던 것 같은……,그래서 나도 “맞아요.”로 답했다.
식당2층에 푸짐한 상이 차려져있었다. 나는 생선요리의대식가인 이용행 집사님 앞에서 배꼽이
빠진지도 모르게 그 푸짐한 대접 상을 초토화 시켰다. 올라오기 전에 주방엘 다녀오신 그는 “먹
잘 것 없다.”며 귀찮아서 손 못 대는 생선뼈들을 코에 게 발을 끼우신 모습으로 발라드셨다.
그날 저녁 도착한 덕구온천호텔전망이 끝내주었다. 그 풍경에 취하신 이명숙 권사님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경치가 끝내주네요.”
“권사님 카메라 좀 가져오시지 그랬어요.”
“인생사 알 수 없으니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겠기에…….”
나는 그 말뜻을 몰랐는데 뒤에 내리신 김효자 권사님이 알아들으셨는지“까르르”하고 웃으신다.
암튼 그분은 일 년에 두고두고 웃을 웃음의 양(量)을 오늘 하루에 다 채우셨을 것이다.
자연난방이라서 그런가? 호텔방은 너무 덥다. 나는 사워 후 속옷 바람으로 누워서 소설 한권을
쓰느라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 얘길 들어보니 잠 설치신분이 많았다.
온천난방은 온도조절이 안 되나보다.
새벽녘 빗줄기 흩뿌리고 간 넓은 주차장 한편에 시골 할마시들이 토속나물바리바리 벌려 놓은
미니 장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신재수 장로님이 안동 권씨 라서 단박에 청혼을 했다던 권영희
권사님은 손자 뻘 되는 우리 준다고 이것저것 사서 않기셨다. 어제 내가 이집사앞에서 궁시렁 거
렸 던“챙겨주는 것 없이 할머니노릇만 하려 한다.”말을 어찌 알았는지 밤새 쥐 생원들이 고자질
했나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손자뻘이라니 애초에 35대손이라고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아침은 호텔 밑에 있는 ***에서 산채정식으로 간단히 했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쪽 테이블에서 반주(酒)문제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소문 안 나고 조용히 넘어갔다.
다음코스는 경포대를 거쳐 구령 사를 들러보고 사과 농원 집 큰딸의 로맨스 전설이 있다던 풍기
로 넘어 간다고 이병열 집사님이 안내방송을 했다. 그는 모르는 게 없는 정보통이다. 그는 아마
도 우리교회 누구네 집 수저 몇 개가 있는지조차 파악하고 있는 우리교회 ‘박힌 돌’이다. 그래서
뭔가 사연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런 사람이다. 암튼 그가 짬짬이 버스 안에서 ‘우리끼리만 알
아듣는 그 익살멘트’ 때문에 홍재희 권사, 진달래권사, 김효자 권사님은 눈물 닦아가며 웃었으니
이런 분들과 한 교회를 섬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모르겠다.
풍기의 사과만 먹고 자라 60을 바라보는 지금도 고운피부를 자랑하는 김명희 권사와 홍 총각의
러브스토리는 누가 딱히 전편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무줄 같다. 함께 하지 못한 김명
희 권사님 귀가 가려웠을성싶다. 버스 앞 동 네는 그 러브스토리로 즐겁게 웃는 동안 손원배-안
재현, 김학 수-이정희, 박정섭-홍재희, 지택윤-이춘금, 송인식-박경순 권사님이 계시는 뒷동네
는 조인순-이화자권사님의 손녀 현지양의 흥겨운 가위바위송이 여행의 마지막 흥을 돋운다. 그
런데 근엄한 분들이 박수를 쳤는지 뒤통수에 눈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좀 전에 슬그머니 앞
동네로 놀러 오신 바둑실력이 아마7단인 김학수 장로님이 그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복귀하셨다.
그러는 사이 충북 도담삼봉에 도착하였다. 여기선 둘러볼 코스가 힘든 데라서 주말 나들이 인파
만 구경만 하였다. 저마다 지친 듯 행복한 듯 종잡을 수없는 묘한 표정 들이다. 그 곳 명당에서
손 장로님의 카메라로 기념단체사진 한 장 찰칵--.
참 은빛모임의 이번여행은 복 받은 사람들의 여행이다. 갈 때는 가벼운 배낭이나, 한손에 비닐봉
투하나 달랑 들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양손에 빵빵한 짐 하나씩을 더 들고 왔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꽃구경을 한다고 곳곳을 고생하며 찾아다니는데 우리들은 편안하게 앉아 가
는 곳마다 만개한 꽃 축제와 그리고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카메라를 안 가져오신
그 권사님과 카메라 가져오신 걸 끝까지 숨기신 그 장로님 덕에 고운풍경마음에 그득히 담아왔
으니……,또 우리가 만난 꽃은 여의도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왔다는 자랑거리……,
그리고 난 궁금증 하나를 얻어왔는데 구릉계곡에 기온 차 때문에 때늦게 만발한 노란색의 신비
경에 뒷자리에 안 봉식 장로님의 영원한 헬 퍼 성 영숙 권사님의 소녀 같은 랑 낭한 “어머나!!곱
기도 해라.”탄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이분은 성악가의 꿈을 한번이라도 꿨을까?
두 분의 러브스토리는 어땠을까?
담 여행 때에는 꼭 이 집사에게 물어봐야겠다.
그 계곡을 넘어와 우리는 풍기에 도착해서 유명한 ‘약 선당’에서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맛 함
께 하지 못한 윤용일 목사님 때문에 송구스러워 생략해야겠다.
암튼 모 장로님은 이 여행의 감동 때문에 첨엔 ‘안 가시겠다’던 효도관광까지 신청하셨다나 뭐래
나…….
내 일찍이 가랑이 찢어지게 뛰어도 따라잡을 수없는 이분들의 아름다운 칭송받는 모습이 오래오
래 기억되기를 화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