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 연휴입니다. 4일간으로 예년보다 길지 않기에 고향 오가는 길에 조바심을 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아직 양력설을 쇠기에 편안한 설 연휴를 즐겼습니다. 선후배님 만나 회포도 풀고, 본가, 처가 모두 인사드린 후 하루 반의 남은 휴일을 정말 휴가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참 좋은 휴식 방법 중 하나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외활동 얘기고, 책을 보다가 한 번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명상에도 들고 아련한 추억 속에도 빠져들며, 최근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즐거운 잡생각을 쭈욱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신과 함께’. 초등학교 입학 무렵 어머니 손잡고 예천극장에서 보았던 목련구모, 하숙생 이후 영화관에서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본 건 50여년만의 일이니 참 무심한 아들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도 영화관을 즐겨 찾으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가운데 언제 간 지 모르게 2시간 2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몇 몇 생뚱맞은 장면이 있긴 하였지만 전반적으로 구성, 내용, 연기 모두 좋아 몰입도가 높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대사 중 하나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돕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 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잘못을 했을 땐 바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다른 이의 잘못에 관대하여야겠다, 다짐하게 해주는 명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미진분식의 쫄면과 김밥, 동아백화점 골목 안 남도횟집의 무침회, 복해반점의 굴짬뽕, 미성초밥의 우동과 오뎅탕 등 먹고 싶은 음식이 넘치는 곳이라 선택이 쉽지 않았지만 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복해반점으로 향했습니다. 71년부터 반점을 했다니 사십 년 넘는 역사를 가진 화상이 하는 중국집, 손님에게는 한국말로, 그들끼리는 중국어로 대화하는데 귀를 쫑긋 세워 잘 들리는 몇 몇 단어를 중심으로 그들이 하는 대화의 맥을 짚어보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전통 길상문에 자주 등장하는 “수여남산(壽如南山)"과 “복여북해(福如北海)" 중 복여북해를 줄여 이름 지은 복해반점은 식사, 요리 전반적으로 맛있지만 가을, 겨울에 굵직한 생굴을 사용하여 내는 칼칼한 맛의 뽀얀 굴짬뽕을 제일 좋아합니다.(봄, 여름엔 굴짬뽕은 하지 않고 제철인 꽃게짬뽕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한 그릇을 남김없이 다 드시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한 곳입니다. 상호 그대로, 복이 북해처럼 넘치는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 끼 식사만으로도 말입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어머니께서 추억의 장소인 염매시장에서 장을 보고 가자십니다. 대학 다니실 때 계산성당 인근에서 자취를 하셨는데 땟거리 장을 보시곤 하셨던 기억이 서렸던 곳, 정감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전보다 많이 퇴락하였지만 아직도 떡집 등 이바지음식 전문점이 성업 중인 곳입니다. 설을 며칠 앞둔 때여서인지, 강정을 만들어 파는 집이 여럿 있었습니다. 단 맛을 덜 내고 국산 곡식을 썼다는데 제 입에는 꼭 맞았습니다. 보리쌀 강정을 한 보따리 샀습니다. 설 지나도 강정을 계속 만드니 지나가면 믿고 사가라며 주인이 한 줌 더 집어주었습니다. 전통 장은 이런 정이 있어 좋습니다.
어머니와는 이제까지 주로 대구수목원, 팔공산을 산책 겸 함께 다녔는데 영화 보고, 맛집 다니고 장 보는 재미를 새로 느꼈으니 앞으로는 이 또한 자주 해야겠다 싶습니다. 며칠 전 아흔 넘은 치매 초기의 모친을 요양원에 모시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친구의 넋두리를 들으며 공감하였기에 이번 어머니와의 나들이는 더 기분이 좋았고 행복감이 더 컸습니다. 여든 여섯, 적지 않은 연세이지만 아직 큰 병 없으시고 건강에도 신경 쓰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니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저 같은 생각이겠지요. 이번 설 연휴동안 가족들과 정을, 우애를, 사랑을 더욱 깊게 쌓으시길 바랍니다.
며칠 전, 임 태주 시인의 어머니께서 남긴 유언의 글로 알려져 있는 가슴 절절하게 울리는 글을 지인이 전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 임 시인의 신간 '그토록 붉은 사랑' 책에서 눈물 흘리며 읽었던 글입니다.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어머니의 편지'는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쓰신 편지가 아니라 평소 하시던 말씀을 시인이 편집하여 어머니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책의 말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부모님께 새삼 존경의 염을 품게 하는 명문입니다. 아래, 그 명문을 편집한 동영상 주소를 모셔왔습니다. 9분 넘게 걸리는 꽤 긴 내용이지만 가슴 따뜻해지고 눈물 나는, 전혀 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멋진 영상과 함께 시 낭송을 들으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http://m.blog.daum.net/ibg369/2184
아내와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수목원 산책을 했습니다. 설 연휴 첫날 봄맞이로요. 연이은 추위 탓에 봄을 알리는 꽃들이 예년보다 늦어져 아쉬움도 있었지만 온실에서 새로운 식물을 많이 만나 나름 행복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209523480
어머니의 편지(모셔온 글)==========================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임태주 시인의 <그토록 붉은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