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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 날 불광 법회 가는 날. 법회보를 받아들고 법당으로 향하는 보살님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한결 돋보이는 아침입니다.
얼마전에 개방된 사무국에서는 회의를 하시는 회장단과, 지장, 백중 기도 접수로 사무국 봉사자분들이 분주하십니다.
보광당 입구에서는 송파 26, 27, 28, 29구에서 찰밥과 생수를 준비하여 점심 공양으로 배분하시고 법당 내 봉사자들은 각기 자리를 지키시고 계신 불광 보현행자들의 모습
일요 법회 보광당에 자리한 이 많은 불광 형제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스님들께서는 알고 싶지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금주의 법문 : 퇴현 전재성 박사
금주의 법어 : 밀린다 팡하와 그레코- 부디즘(Greco-Buddism)
제가 여기 불광사에 와서 2년만에 또 설법을 하게 된 것을 무한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마침 밀린다왕문경이라고 밀린다팡하를 한역한 말인데, 이 경전을 제가 지난 달 완역했습니다. 내일 인쇄에 들어 가는데 밀린다팡하를 완역한 다음에 이렇게 법문을 하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밀린다팡하는 들어 보셨거나 읽어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밀린다팡하는 기원전 150년 경에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존자와의 대화를 경전화한 책입니다. 원래는 논장에 해당하는 것이지만은 그 내용이 참으로 출중하기 때문에 미얀마 같은 곳에서는 경장 속에 편입이 되어서 초기 팔리어 경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 경장에 속하는 바로, 대단히 탁월한 내용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밀린다왕은 불교가 아소카왕 이후에, 아소카왕이 돌아가시고 나서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아소카왕의 아들이 바라문교의 장로에 의해서 살해 당하고 나서, 마우리아 왕조가 몰락을 하기 시작해요. 그 틈에 바라문교를 지지하는 슈가 왕조가 등장을 하면서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에 슈가왕조와 전쟁을 해서 승리로 이끌고, 전인도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왕이 밀린다왕입니다.
밀린다왕은 원래는 메난드로스왕이고, 그리스 사람인데, 알렉산더대왕이 인도를 쳐들어 왔다가 나중에 알렉산더가 죽고 나서 방대한 인도의 서북부지방,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란고원, 중앙아시아 쪽에 박트리아라고 하는 그리스화된 거대한 박트리아 제국이 성립이 돼요.알렉산더 대왕이 남겨 놓은 장군들이 그 지역을 통치하게 되는데 그 중의 한분, 가장 영명한 군주가 바로 밀린다왕입니다. 메난드로스왕인데, 인도에서 부를 때는 인도식 이름이 밀린다왕입니다. 희랍 이름으로는 메난드로스왕입니다, 그 밀린다왕이 불교에 귀의를 하게 됩니다. 희랍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가 밀린다왕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어요. 경이로운 통치자요, 인도지역에 그리스화폐를 유통시켜요. 서북인도의 각 지역과 중부인도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파보면 메난드로스 왕의 동전이 발견되는데, 22가지 종류의 동전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메난드로스 왕의 청년 시절의 초상화, 장년 시절, 노년 시절의 초상화들이 새겨져 있는 수많은 동전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역사적 인물임이 증명이 되고, 이 동전 안에는 보면은 불교의 경전 같은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나가세나 존자하고 불교의 교리에 대한 문답을 하게 되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굉장히 궁금해 하던 것이 있었어요. 옛날부터. 인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금욕주의와 고행주의에 입각해서 생활하는가? 나체로 고행을 하고, 또 맨발로 다니고, 옷도 간단하게 입고, 그런 수행을 하는 사문의 전통들, 제사를 지내는 종교는 고대부터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파니샤드 당시부터 인도에서는 이상하게 사문, 부처님도 사문인데, 사문의 전통이 생겨 가지고, 말하자면 수행자의 전통이죠.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해서 도를 구하는 그런 전통들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희랍 사람들도 굉장히 궁금해 했던 모양이에요. 왜 도대체, 고행을 하는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수행을 하는가에 대해서 굉장한 궁금증이 생겼던 거에요. 밀린다왕도 그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린다왕문경에 보면, 희랍사람들이 품었던 그러한 궁금증에 대해서 여러 가지 대화들이 전개되고 있어요. 매우 재미있는 경전입니다.
그런데 희랍 사람들이 인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돼요. 이솝우화가 나온 것이 기원전 600년경인데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동물들 이름을 보면 희랍, 그리스에 있는 동물들이 아니고, 인도에 있는 여러 동물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인도하고의 긴밀한 연락, 그리스와 인도가 긴밀한 문화공동체가 아니었는가하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불교 경전, 마찌마니까야 같은데 보면은 부처님이 희랍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게 나와요. 그리스 사람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마찌마니까야 아쌀라라고 하는 경에 보면 어떠한 말이 나오냐 하면, 희랍사람들은 귀족과 평민 두 가지 계급 뿐이 없는데, 귀족이 평민이 될 수도 있고, 평민이 다시 귀족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가 나와요. 이것은 부처님이 희랍에 대해서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죠. 이러한 것들이 역사적으로 잘 조명이 되지 않아 가지고, 이것은 후대에 삽입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학자들이 하곤 하는데,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보면, 벌써 부처님 당시에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라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의 북부지역하고, 서북인도까지 전부 통괄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어요. 페르시아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의 치하에서는 희랍 사람들이 인도 이쪽으로 왕래할 수 있었고, 인도 사람들도 그 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문명공동체가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도 희랍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겁니다.
부처님 당대, 부처님 태어 나신 10년 뒤에 피타고라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수학자)가 태어났어요. 피타고라스가 모든 서양철학과 종교의 아버지이고, 원류라고 할 수 있는데, 피타고라스가 부처님하고는 십년 차이 정도가 돼요. 그 당시에 벌써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었지 않았나 짐작이 되고, 피타고라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피타고라스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는 젊은 청년이었어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라는 말이 실제로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말인데,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라고 하는 말은 이미 부처님이 하신 말이에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것은 법구경(담마파다)에 나옵니다. 담마파다에 등장을 해요. 그 전에는 희랍의 고전철학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자연철학이었고, 탈레스라든가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우주의 최초의 근원이 물이라든가, 불이라든가 하는 등, 철학의 대상이 자연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때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고 한 것은 인도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추측해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메난드로스왕이 인도에서 가장 영명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침입했기 때문인데,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그 다음에 인도까지 와서 방대한 영토를 확보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어렸을 때부터 스승이 누구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고, 소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의 제자인데,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았단 말입니다. 결국 이러한 관계가 성립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이미 페르시아가 깔아 놓은 동서양을 통합하는 그런 문화가 성립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렉산더대왕도 굉장히 궁금한 게 있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궁금해 했던 게 있었어요. 알렉산더대왕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인도의 고행주의자들을 만난 것이었어요. 알렉산더대왕이 네명의 철학자를 대동해서 동방원정에 나섰습니다. 하나는 칼리스테니스라는 사람인데, 칼리스테니스라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였습니다. 그 다음에 오네시크리토스라는 사람을 대동했는데,오네시크리토스는 디오게네스의 제자예요. 디오게네스는 여러분들이 잘 알 듯이 알렉산더대왕이 세계 정복 전쟁에 나가기 전에 만난 사람이 디오게네스예요.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 살고 있었잖아요. 개집 같은 곳에 살고 있었는데, 자기 스스로를 개라고 생각했어요. 개라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사람들이 디오게네스를 개라고 조롱을 했어요. 이 디오게네스가 고행주의자였기 때문에 알렉산더대왕이 꼭 만나고 싶었던 거예요. 꼭 만나고 싶었는데, 이 디오게네스가 재미있는 게 뭐냐하면, 이 분이 60세가 되었을 때 알렉산더를 만났어요, 그때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당신, 무슨 소원이 있느냐? 그 소원을 내가 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는 맨발로 다니고, 아주 간단한 옷을 입고, 자기 제자들 한테도 길거리에서 두리번 거리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고, 눈을 좀 내리 깔고, 치장을 하지 말고, 옷을 간단하게 입고 그렇게 돌아 다니라고 가르쳤어요. 이게 그 당시 불교 수행자들의 모습하고 거의 같았던, 비슷했던 거예요.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인도의 수행 전통이라든가 고행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을 합니다.
오네시크리토스가 알렉산더대왕을 수행해서 인도에 가가지고 다땀스라고 하는 인도의 수행자를 만나요. 다땀스는 대화를 하면서 인도철학하고, 피타고라스나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학이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서로 얘기를 나누어요. 알렉산더대왕 때 벌써 그렇게 했다면은 그 전에 이미 인도철학하고 희랍철학이 유사성이 많다는 것을 서로가 확인하고, 오네시크리토스가 그리스로 돌아와서 어떤 주장을 하는가 하면 “모든 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해요. 인간의 모든 삶도 그렇고 우주 만유가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철학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끝없는 윤회 속에서 해방, 해탈하는 것이다는 주장을 오네시크리토스가 하게 돼요. 그리고 알렉산더대왕과 동반했던 또 중요한 사람이 하나가 있는데, 피론이라고 하는 철학자입니다. 또 하나는 아낙사르코스라는 사람인데, 아낙사르코스의 제자가 피론인데, 이 두사람이 알렉산더대왕을 따라 갔다가 거기서 피론이 특히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게 돼요. 희랍에서는 인도의 고행주의자들을 짐노소피스트(gymnosophist)라고 말하는데, 아낙사르코스가 짐노소피스트를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피론이 당시에 알렉산더대왕을 찬양하는 시를 멋있게 써 가지고 바쳤는데, 그것을 본 짐노소피스트가 아낙사르코스에게 “당신의 제자 피론이 왕에게 아부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진정한 철학을 하느냐?”이렇게 물어 보는 겁니다. 피론이 그 얘기를 듣고 굉장히 부끄러워 했어요. 그후 피론이 고향으로 돌아와 가지고, 평생 성에서 떠나지 않고 철학을 했다고 그래요.
※그레코 부디즘(Greco-Buddism):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에 이르기까지 현대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의 영토에 해당하는 박트리아 제국과 인도 아대륙 사이에 발전한 그리스주의 문화와 불교의 혼합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알렉산더대왕 시대에서 인도에 그리스인 진출로 시작하고, 인도-그리스 왕국의 설립에 의해 추가로 이루어 지고, 마침내 그리스화한 쿠샨제국의 번영 기간 동안 계속된 인도와 그리스의 상호작용에 따른 문화적 결과물이다. (청명거사님 녹취)
그런데 이 피론이 서양철학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는데 피론이 주장한 것이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했어요. 모든 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건 무슨 말이겠어요? 불교의 무아사상입니다. 불교의 무아사상이 뭐냐 하면 어떤 것이든 그 안에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속하는 건 없다, 그것이 실체가 없다는 사상입니다. 우리 내부에도 영혼이 있지만 그 영혼이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겁니다. 영원한 것은 어떠한 것에도 없어서 모든 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을 했고 이 피론이 ‘무아설’에 대해서 아주 탁월한 통찰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어요.
피론의 철학에 또 ‘삼법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판단중지, 피론철학에서 핵심은 판단중지라는 건데 에포케라고 합니다. 근대철학 현상학이 판단중지의 철학입니다. 요새 모든 예술 철학이 판단중지에 입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판단중지를 함으로 인해서 있는 그대로 사실을 기술할 수가 있는 겁니다. 판단중지를 않으면 선호에 의해서 선호가 진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경전에 이미 다 얘기해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진리라 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부처님은 벌써 맛지마니까야에 설하고 있어요.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허망한 것일 수 있고 진리가 아니고 실재가 아니고 사실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진리일 수 있고 사실일 수 있고 참된 진리가 된다는 이야기는 벌써 맛지마니까야에 부처님이 다 설해놓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이 실체가 없다는 무아사상에서 나올 수 있는가 우리는 잘 판단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는 데에서 판단중지를 끌어낸 겁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일이건 또는 사회적인 일이건 모든 일에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죠. 섣불리 판단하면 그것이 모든 고통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허망하다는 것을 기본 베이스에 깔고 있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그 다음에 판단중지를 해서 진리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밀린다왕문경이 전체가 그런 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가세나 존자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특히 칠각지에 대해서 밀린다왕과 나가세나가 논쟁을 하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택법각지라고 얘기합니다. 택법각지라는 게 탐구하는 겁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판단중지를 하고 탐구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판단중지를 하지 않으면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거죠. 판단중지를 하고 그 대신 진리에 대해 깊이 탐구를 해야 된다.
서양에는 피론이란 사람이 잘못 알려져서 회의주의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회의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요. 판단중지가 회의주의에서 나오긴 하지만 인도에도 당시 회의주의 전통이 있었어요. 육사외도 가운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으로 나와서 뱀장어 통을 뒤집어 놓으면 미끌미끌거리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걸로 나오는데 이것을 회의주의라 합니다. 육사외도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거대한 집단을 이끄는 종교의 수장을 육사외도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회의주의가 있었어요. 그것과 부처님 가르침이 묘하게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피론의 철학을 회의주의라고 하지만 우리가 감각기관에 섣불리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감각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섣불리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서양의 이성주의 합리주의 철학을 태동하게 된 겁니다. 이런 것들이 불교와 인도철학 또는 희랍철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립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피론은 불교의 열반에 해당하는 것을 아타락시아, 아주 평온한 상태라고 했어요.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립을 하게 되죠. 밀린다왕문경이 그런 중에 태동하게 된 겁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BC 336년에서 323년까지 짧은 생애를 살았는데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스콜라 철학을 계승해서 살아보려 노력했던 사람인데 드넓은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에 사람이 교만해졌어요. 자기를 심복처럼 따랐던 친구가 페르시아의 왕처럼 굴지 말라고 하는 충고를 술자리에서 하니까 그 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여태까지 전쟁을 했고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대해서 은혜도 생각하고 희랍식의 민주적인 정치를 해야 된다고 충고를 하니까 여기에 분노해서 친구를 창으로 찔러 죽여버려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서 세계적인 최대 왕국을 세웠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 친구를 죽이고 나서 그 다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자살하려다 부하들이 말려서 살아나게 되었는데 정신을 잃었다가 차렸지만 결국은 열병에 들어서 죽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 철학적인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고 어겼던 겁니다. 페르시아를 점령하고부터는 페르시아에 절대왕처럼 군림하려다 죽은 거죠.
알렉산더가 죽고 나서 다음에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일하게 되어요. 알렉산더 대왕이 BC 323년인데 아쇼카 왕은 BC 304년에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알렉산더 대왕 사후보다 20년 후에 태어났죠.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거예요. 헬레니즘 문화가 만들어졌고 동서양을 통합했죠. 아쇼카왕의 몸에도 희랍의 피가 흐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남겨놓은 여러 장군들이 대왕이 불의에 요절을 하게 되니까 각 나라가 독립해서 여러 왕국으로 나눠져서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인도 서북부에 있다가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왕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 결국은 희랍 왕이 바친 여자와 결혼하게 되어서 피가 흐르게 되고 그래서 아쇼카왕도 희랍의 사상에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고 봐야 돼요.
아쇼카왕 당시에도 직접 시리아에 있는 그리스 왕 안티오코스에게 불교 사절단을 보내고 불교 교리도 하게 됩니다. 희랍사람들은 불교에 대해서 굉장히 친화적이어서 밀린다왕도 아쇼카왕이 죽고 나서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할 위기에 놓였을 때 불교를 지지했고 불교적으로 생활했고 나중에 인도에서는 거의 구세주처럼 불렸어요. 밀린다왕이 죽었을 때도 부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각 나라 왕들이 사리탑을 세운 것처럼 여러 사리탑을 세운 그런 것이 부타코스 희랍쪽 문헌에 기록이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밀린다왕이 알렉산더보다 광활한 지역을 정복했다는 식의 기록도 있어요.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존자가 문답을 한 것이 바로 ‘밀린다 팡하’라는 것이고 중국에서 번역된 것이 ‘나선비구경’입니다. 밀린다 팡하는 7편인데 한문경전은 앞의 3편만이 번역되어 있어서 굉장히 짤막합니다. 그런데 밀린다 팡하는 굉장히 방대해요. 제가 번역한 것이 46판으로 840쪽입니다. 내일 인쇄 들어가는데 840쪽 내용 가운데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몇 가지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밀린다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출가생활의 유용성’에 대해 물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출가하든지 재가로 있든지 모두 깨달을 수 있고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나가세나 존자께서는 출가하셨습니까? 이런 질문을 한 겁니다. 문제는 재가자나 출가자나 여법하게 살면 되는데 왜 출가를 하느냐, 출가생활을 하는 이점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합니다. 거기에 나가세나 존자는 대답합니다. “대왕이여, 출가하는 자는 욕망을 여의고, 버리고 없애는 삶을 살고, 두타행의 실천에 밝습니다. 그런 까닭에 출가자에게는 무엇이든 해야 할 일이 속히 성취되는 만큼” 그러니까 출가자는 무엇이든 속히 성취된다는 겁니다. 앞에 나가세나 존자의 스승이 되는 ‘아유빨라’는 이 질문에 대해 침묵을 지켰는데 나가세나는 이러한 대답을 명쾌하게 한 거죠.
여기에 나오는 두타행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한 장이 밀린다왕문경에서 배당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서북인도의 밀린다왕이 살았던 왕국을 ‘인도그리스왕국’이라 하는데 인도그리스왕국의 주요 관심사가 두타행입니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나 디오게네스의 전통을 타고 내려오는 스콜라 철학의 핵심 사상인데 이것이 두타행과 통하는 겁니다. 두타행이 경전에 보면 13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분소의를 입고 다닌다. 단삼의, 옷 세 벌만 입는다. 항상 걸식을 한다. 차제걸식, 걸식을 할 때 일곱 집을 차례로 돌면서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 없이 일곱 집만 돌아서 그날 먹을 음식을 구한다. 음식을 안 주면 굶는다. 일좌식, 한 번에 한 자리에서만 식사한다. 일발식, 발우 하나만 사용한다. 식후비식, 밥 먹은 후에 다시 밥을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만 먹죠. 아란야처, 숲속에서 살고, 나무 아래에서 살고, 총간주, 무덤가에서 산다는 것이고 무덤가에 산다는 건 죽음에 대해 명상한다는 겁니다. 상좌불와, 수행을 하는데 앉아서 하고 눕지 않는다는 건데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성철스님이나 기라성 같은 스님들은 잠을 자지 않고 수행했어요. 벽에 기대서 잠을 자든가 항상 앉아서 수행했어요. 그 당시에 이런 두타행의 전통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겁니다.
두 번째 질문은 죽는 순간에 부처님에 대한 새김, 염불을 하게 되면 좋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밀린다왕은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죽을 때 염불하면 극락세계 태어난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대답을 하겠어요? 죽는 순간에 염불하면 효과가 있느냐, 굉장히 어려운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들이 밀린다왕문경에 꽉 차 있어요. 나가세나는 굉장히 명답을 합니다. 불경에 보면 부처님은 그런 얘기를 해요. 돌을 물속에 던지면 가라앉는다. 기름은 물 위에 뜬다. 그래서 우리가 선행,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하면 기름처럼 뜨기 때문에 아무리 저주해도 하늘나라로 간다고 합니다. 악행, 악하고 불건전한 일을 하면 돌처럼 무거워서 물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곳으로 가라고 염불해도 지옥으로 간다는 얘기입니다. 맞는 얘기죠.
밀린다왕도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었어요. 희랍철학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게 전부 해결할 수 없는 난문, 딜레마라고 합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밀린다왕에게 나가세나는 아무리 무거운 돌이라도 배에 실으면 물에 떠서 가라앉지 않아서 그 배를 타고 하늘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것도 비행기에 실으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나가세나는 우리가 열심히 믿음을 가지고 수행을 하면 마치 배를 만드는 것과 같아서 배에다 싣고 하늘로 갈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밀린다왕은 ‘아주 현명하십니다’ 하면서 승복을 합니다.
나가세나가 경장이나 논장에 굉장히 밝은 사람이어서 어려운 문제들이 토론되고 있는데 현대에 여러분이 의문가는 점에 대해서도 다 해답하고 있어요. 인간의 영혼에 관한 문제인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우리 영혼이란 우리 몸, 신체와는 다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몸이 없으면 영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렇게 주장했어요. 그리고 ‘영혼이란 불멸하여 죽지 않는 것으로 우리 몸 안에 장착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희랍 대부분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또 인도의 바라문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영혼, 참나, 자아란 우리 몸 안에 분명히 있는데 인도에서는 한 발 더 나가서 우리 몸 어딘가에 초월적으로 궁극적으로 들어가면 진아라는 게 있는데 인도의 힌두교와 바라문교에서는 범아일여라고 해서 몸 안에 있는 이것이 결국은 이 우주 전체에 핵심이 있을텐데 궁극으로 들어가서 저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가보면 거기에는 범, 하느님, 브라흐마가 있어서 이 범과 참나는 똑 같은 것으로 만난다. 인도의 철학은 한 발짝 더 나가게 돼요. 그런데 서양 철학에서는 거기까지 못 나갔어요. 기독교 철학도 결국은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고 만들어진 것이라 인간의 영혼은 몸 안에 있는 것인데 영원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밀린다왕문경에 굉장히 긴 문답이 나와요. 이건 불교철학 전반에 걸쳐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무아론과 통하는 건데 결국은 인간의 영혼이란 것이 불교에서 보면 궁극적인 의미로 없는 겁니다. 정신 현상이 있는 것이지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현상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영혼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겁니다. 제가 작년에도 한 번 설법한 적이 있는데 서양철학은 고무줄 철학이고 인도 불교철학은 노끈철학입니다. 고무줄과 노끈의 대결인데 노끈은 여러 가지 정신 현상들이 꼬여서 우리의 영혼이란 정신 현상 느낌이나 지각,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등 여러 느낌. 의식에도 잠재의식 여러 의식이 있고 사물을 인식하는 것도 인식과 지각 여러 정신 현상들이 노끈처럼 꼬여서 노끈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없단 말입니다. 상호의존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인간이란 것도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주도 구성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지 고무줄처럼 하나의 질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건 없더라는 겁니다. 영원하게 의존하지 않고 존속하는 건 없더라는 겁니다. 철학을 설명하면 굉장히 복잡해지는 그런 문답들이 나옵니다. 이런 중요한 세 가지가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의 문답, 어떻게 보면 희랍철학과 인도철학의 대결이라 볼 수 있는데 여러 가지 문답이 나와 있어서 아주 재미있어요.
서양에서는 독일어본하고 영어판본을 다 비교해봤는데 대부분 독일 쪽이나 영국 쪽에서는 약간 인도나 불교철학을 과소평가하고 서양철학을 더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밀린다왕문경은 희랍사상에 대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서문에 써놓고 있는데 밀린다왕문경을 과소평가하고 동양의 불교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근에 와서 피론주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하고 불교가 서양철학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밀린다왕문경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문제는 이런 것들이 불행하게도 밝혀지지 못했어요. 서양에도 이집트에 보면 전세계에서 제일 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어요.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나서 대신 중의 한 사람이 이집트에 왕국을 세우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당시 무려 70만 권의 책이 있었어요. 나중에 화재가 나서 전쟁통에 분실되어서 중간에 여러 가지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희랍의 고대철학 많은 문헌들이 다 전해지지 않게 된 겁니다.
부처님 당대라든가 그 이후에 수많은 문헌들이 수집되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로마시대의 전쟁통에 불을 질렀다는 얘기도 있고 파괴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관리가 안 되어서 역사적으로 점점 분실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나중에 서양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이교도들의 문헌들이 분서되다시피 해서 전해지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깊이 고찰해보면 새로운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서양이 자연과학이나 합리적인 사상이 정리되어서 현대 문화가 이루기 까지 상당히, 르네상스도 희랍철학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희랍철학은 불교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시간이 되어서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보리광 보살님 녹취)
♬ 찬탄곡 : 사랑하는 우리 부처님( 천양희 작사, 김희조 작곡,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부처님 말씀보다 더 빛나는 것 어디 있으랴 중생을 제도함이 세상을 평등하게 하니
이 공덕 이 믿음 보배로다 부처님 생각하면 환희심 일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부처님께 가는 길
피면 지지않는 우담바라 같은 부처님 우리 부처님 중생이 사랑하는 우리 부처님.
부처님 가르치심 보다 더 거룩한 것 어디 있으랴 중생을 구제함이 세상의 번뇌 끊으시니
이 자비 이 은혜 광명이로다 부처님께 절하면 청정심 일어 절하고 절 해도 다함 없는 그분의 큰 뜻
열리면 떨어지지 않는 만년과 같은 부처님 우리 부처님 중생이 사랑하는 우리 부처님.
발원문 낭독 : 송파 30구 명등 금강원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정혜당 지오 스님 열반 1주기 추모 법회에 생전의 목소리를 듣고, 혜담 스님, 법회장님, 회장단, 보윤 혜은 전 법회장, 불광 형제들이 스님 영전에 절을 올리고 계십니다.
오늘도 제공 받은 찰밥으로 하나씩 가져오신 반찬으로 점심 공양을 하시며 법등 모임을 하고 계신 불광 형제들의 화기애한 모습
각자 뒷처리로 쓰레기도 말끔히 치우고 가시려고 법당 바닥에 식탁보 깔고 드시는 모습들 장관입니다.
일요 법회 후에 대웅전에서 많은 불광 형제들이 동참하여 금강경을 우렁차게 독송하고 있습니다.
주지 동명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저 글귀를 넣어 현수막으로 제작 설치하도록 이르셨을까요?
주지 부촉 받아 오셔서 불광의 현 상황은 헤아리지도 않으신 채 화합기도 하신다는 동명 스님이셨지만, 그래도 박사님, 시인님, 주지님, 유능한 세상사 타이틀을 두루 갖추셨기에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부임해 오신 날부터 이제나 저제나 한 번쯤은 일요법회에서 불광 형제들과의 대면식쯤은 하실 줄 알고 기대했던 저희들에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하시는 수행자께서 드디어 학식으로 배우신 경전 한구절로 마지막 기대마저 져버리게 하시는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사로 보자 해도 아무리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도 아이가 울면 배가 고파 우는지, 안아 달라 우는지, 어디 아파 우는지는 살펴서 헤아릴 줄 알더이다.
불광 형제들이 이처럼 긴 세월을 왜 이 고통을 겪어야하는지 헤아려 주실 수는 없으신 것일까요?
저 현수막을 보면서 언젠가 길에서 만났던 ‘믿음 천당, 불신 지옥‘ 외치던 분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능엄경 2권에 나오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한다” “견지망월見指亡月 견월망지見月亡指”
선사들께서 많이 사용하시는 이 법어 한구절이 귓가를 맴돕니다.
정혜당 지오스님의 열반 1주기 추모 법회 준비로 바쁘게 봉사하고 계신 거사님, 보살님들 모습입니다.
일요 법회 준비로 토요일 오후 보광당을 청정하게 하시고 의자 배치에 정성 쏟고 계시는 청정팀. 父子가 함께 봉사하시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지난주에도 조계사, 봉은사, 동명사에서 1인 시위 정진을 하고 계신 불광 형제분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토요일 이면 어김없이 집회 신고하고,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전달하고자 외치는 토요 시위는 불광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_()_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불광법회 역사의 순간 순간들을
여러 대행보현보살님들과
마음님의 세밀하게 편집하시고
청명거사님과 바라밀보살님 녹취하시며
불광일지 완성하시는데
애쓰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달을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스님, 과연 그러하네요. _()()()_
법회일지 작성하시느라 마음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법문 풀어쓰신 청명거사님 감사합니다.
사진 찍고 자료사진 챙기신 원각화보살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역사를 몰랐는데 오늘 법문은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여서 감사합니다._()()()_
전재성박사님 법문 힘들게 들었습니다.
희랍(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빌과 그리스 철학자 피란을 대동한 당시의
인도철학사상과의 연결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대부분 희랍 철학자들의 사상을 열거하는데
초점을 둔 법문으로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법문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으나,
편집한 내용으로 여러 불보살님 덕분에 다시
한번 더 공부 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