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시각장애인 수필가로서 일상 글 담아내는 조승리 씨
- “움츠리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어요”
지난해 샘터 문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조승리 작가는 열다섯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었다. 눈앞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의 이름처럼 신나는 일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면서 마음 한구석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올봄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출간했다. 그는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쓴 글을 낭독하다 울컥 눈물을 쏟은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글은 결국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Q.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중증 시각장애를 앓고 있어요.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면서 안마업에도 종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샘터 문예공모전에서 수상한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를 시작했고, 첫 에세이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출간했어요. 일간지 칼럼과 소설 앤솔로지 집필에도 참여 중이에요. 도서관, 독립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기도 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하루하루 용기를 내고 있어요.
Q. 책의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A. 자전적 에세이예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제 삶의 궤적을 글로 쓴 것이죠. 제 안에서 영원히 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기도 합니다. 장애 여성으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는지에 대한 기록이지요. 출판사 편집자께 “잘 팔릴 것 같은 제목으로 지어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처음엔 ‘인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서른여덟 살인 제가 인생을 논하기엔 좀 이르지 않나 싶었어요. 다시 추천받은 제목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예요. 강렬한 단어가 들어가 있기에 이 제목을 이대로 써도 될까 싶어 주변에 물어봤어요. 다들 놀라면서 몇 번 입속으로 굴려보더니, 제목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면서 긍정적인 의견을 주더라고요. 이 책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글은 어린 시절 친척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끝까지 한 방’이에요.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한 인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Q.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뜨겁습니다.
A.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어요. 사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정리한 원고를 일주일에 4~5곳 출판사에 투고했어요. 연락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저와 제 글을 의심했지요.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28번째로 투고한 달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회신을 받아 계약했어요. “작가의 단단한 마음을 보며 위로와 자극을 받았다”, “남 일인데 내 일처럼 읽히는 책이다”와 같은 독자님들의 감상을 SNS로 접할 때마다 감동합니다. 자존감이 생긴달까요. 진솔한 글로 독자들께 보답하고자 요즘 여러 분야의 글을 집필 중입니다.
Q. 중도 시각장애인이라고 들었습니다.
A. 맞아요. 중학교까지는 일반 학교에 다녔어요. 문학에 관심이 많아 종종 콩트를 쓰기도 했어요.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고, 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건 열다섯 무렵이에요. 책을 곧잘 읽어서 눈이 약간 나빠진 게 아닐까 생각했던 터라, 뜻밖의 진단에 놀라기도 하고 충격도 받았어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더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점자나 점자책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실명하면 독서를 못하는 줄 알았던 거죠. 실명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가난한 미래가 더 무서웠습니다. 시각장애가 있으니 사회생활이 더 불투명하게 다가온 거죠. 서둘러 특수학교 고등부에 입학해 직업교육을 받았고, 꾸준히 안마사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작가의 꿈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삶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놔야 꿈을 향해 더 오래 달릴 수 있으니까요.
Q. 글쓰기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글을 꾸준히 써 왔어요. 2014년 장애인 고용지원 인식개선 문화제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지요. ‘내 글이 누군가에게 반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일은 만만치 않았어요. 한동안 의욕을 잃어 습작을 멈추기도 했지요. 그러다 2022년 하상시각장애인복지관 산문 교실에 참여하면서 동화 작가 박현경 선생님을 만났어요. 과제로 제출한 제 원고를 보시고 선생님께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감동하셨어요. 그 일을 계기 삼아 제 안에 고여 있던 이야기를 다시 쏟아냈습니다. 산문 교실이 끝난 뒤에도 박현경 선생님께 글을 보여드렸고, 퇴고 과정을 지도받았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 눈을 믿으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지요. 선생님의 권유로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에 응모했어요. 수상작 제목은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입니다. 동료 안마사의 부탁으로 대신 출근을 하던 길, 택시 안에서 불꽃축제를 감상하게 되면서 떠오른 일화를 풀어냈어요. 별 대신 불꽃을 보여줬던 동창생과 엄마, 재미있었던 불꽃놀이 등을 회상하는 내용이에요. 수상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Q. 글쓰기 외에 취미가 있다면요.
A. 춤을 좋아해요. 10년 전 영화 ‘여인의 향기’를 접하고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탱고를 배웠어요. 시각장애인이라 지도가 어렵다는 이유로 학원에서 여러 차례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기 위해 플로어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고 일상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에요. 최근에는 플라멩코에 빠졌어요. 동작을 익혀 곡 하나를 모두 끝냈을 때의 성취감은 원고를 완성했을 때의 기쁨과 흡사합니다. 여행도 삶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해 사람 구경을 하러 외출을 해요. 낯설고 생경한 환경은 그 자체로 영감을 주고, 글쓰기의 소재가 됩니다. 마음에 와닿는 소재나 영감을 얻으면 온종일 그것에 집중해요.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것으로 집필을 시작합니다.
Q. 글쓰기란 무엇입니까?
A. 저는 마음속에 있는 울분을 쏟아내고자 글을 썼어요. 몽땅 쏟아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고, 제대로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죠.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까지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글쓰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어 10여 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게 생생해요. 멋 부린 글, 완벽한 문장을 쓰려 욕심을 낸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엔 ‘일단 저지르고 수습은 이후에 하자’는 생각으로 씁니다. 그래서 처음 쓴 글은 투박해요. 문장은 오문 투성이고 내용은 갈팡질팡 어디로 갈지 모를 때가 있죠.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다 쏟아놓은 다음에야 천천히 문장을 읽으면서 다듬기 시작합니다. 유려한 문장보다 진솔함이 깃든 글이 더 훌륭한 원고라고 생각해요.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엉터리 문장이든 유치한 이야기든 상관없이 일단 써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글쓰기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니까요.
Q. 향후 계획을 들려주세요.
A. 내년 출간을 목표로 여행기를 작업하고 있어요. 장애가 있기에 이동이나 시설 편의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하고, 여행지에서도 돌발 상황을 만날 수 있지만 그런 점들이 여행의 또 다른 묘미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한 독자께서 “시각장애인이 ‘본다’라는 동사를 쓰는 게 어색한 것 같다”고 말하셨어요. 저는 “본다는 걸 반드시 시각에 한정 짓지 말고, 다른 관점, 이를테면 촉각이나 청각 등을 활용해 느낄 수 있다”고 말했죠. 음악가는 연주를 통해 자신을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내면을 표현하듯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교류하는 게 아닐까요. 제 글에서 “나의 새로운 장래 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작게는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글로 표현하는 것, 크게는 장애인의 삶과 사회적 시선을 개선하기 위한 메시지가 담긴 글을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문체부 발행, (주)도서출판 점자 제작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통권 205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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