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友新聞 윤승원 칼럼】 2025년 5월 2일
M 박사가 밥을 사는 이유
― 잊고 지냈던 옛 경찰 동지와의 반가운 만남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 경우신문 편집국장이 보내준 종이신문 파일을 받고(20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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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칼럼】
M 박사가 밥을 사는 이유
― 잊고 지냈던 옛 경찰 동지와의 반가운 만남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그동안 은혜 입은 고마운 분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있어요. 저는 요즘 그분들에게 한 분, 한 분 밥을 사고 있어요. 수첩에 적어 놓은 분이 30여 명 정도 돼요.”
뜻하지 않은 옛 경찰 동기생의 말이었다. 자신의 승용차로 ‘모시겠다’라면서 내 집까지 찾아왔다.
나이가 비슷한 처지이지만, 옛 동지는 내게 언제나 깍듯하게 높임말을 쓴다.
호칭도 그렇다. “반가워요. 윤 형! 너무 오랜만에 전화했죠?” ‘형’이란 호칭은 같은 또래끼리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옛 동지를 ‘M 박사’라고 부른다. 실제로 주경야독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옛 경찰 동지가 식사 자리를 마련한 ‘뜻밖의 사연’
갑작스럽게 내게 전화하게 된 경위부터 먼저 설명했다.
“퇴직공무원협동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윤 형이 쓴 칼럼을 보고 반가워서 전화했지요. 뵌 지도 오래됐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소식도 궁금했어요.”
대전에서 정갈한 맛집으로 유명한 유성구 전민동의 한 음식점. 마침 이 음식점은 시인(詩人)이 운영하는 인기 맛집이었다.
▲ M 박사가 필자를 자신의 승용차로 안내한 대전 유성의 어느 인기 맛집 - ‘밥을 사야 할 고마운 사람’ 명단을 수첩에 적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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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이 나를 시인에게 소개했다. 시인은 내게 등단 연도를 물었다. 30여 년이 넘는다고 했더니, 특별한 인연이라고 하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다른 여러 문인을 소개했다.
옛 직장 동지가 이런 특별한 시인의 맛집으로 안내한 것도 어쩌면 문학인 취향에 걸맞은 세심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옛 동지는 내게 막걸리 잔을 권하면서 정작 ‘밥을 사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유성지역에서 근무할 때 윤 형이 내게 밥을 샀어요. 그 당시 윤 형이 베푼 따뜻한 인정을 잊을 수 없어요.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런 잊지 못할 대접을 받고 이제껏 보답하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연유로 밥을 샀는지 내 기억 속엔 아무리 더듬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옛 동지의 수첩 속에 ‘밥을 꼭 사야 할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적혀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 인기 가수의 ‘밥 사는 사람’ 노랫말이 떠올라
문득 『밥 사는 사람』이란 노랫말이 떠올랐다. 가수 남진이 부른 노래다. 노래에 얽힌 사연은 경우신문(警友新聞)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와 재단법인 경우장학회가 주최한 ‘영일만 친구와 밥 사는 사람’ 음악회 관련 기사였다.
한평생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전·현직 경찰과 독지가, 일반 시민 등이 함께한 뜻있는 음악회였다.
▲ 대한민국재향경우회가 주최한 ‘영일만 친구와 밥 사는 사람’ 음악회(2023.10.12.) - 가수 남진이 ‘밥 사는 사람’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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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회의 주인공은 ‘영일만 친구’와 ‘밥 사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경찰서장을 역임했고, 또 한 사람은 경찰서장이었던 부친으로부터 “밥을 대접받는 사람이 아닌, 밥을 사는 사람이 돼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평생 70만 그릇의 밥을 산 사람이다.
‘밥 사는 사람’은 고 백용기 거붕그룹 회장이었다. 그분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말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잘 대접해야 한다”는 부친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철칙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선친으로부터 “밥을 사는 사람이 돼라”라는 가르침을 받고 평생을 나누고 베푸는 데서 보람을 찾았다고 한다.
고 백용기 회장은 생시에 “평생 밥 100만 끼를 사겠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70만 끼 밖에 못 샀다”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가수 남진의 ‘밥 사는 사람’(김동찬 작사·작곡)도 백용기 회장의 진솔한 삶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취입한 노래라고 한다.
고 백용기 회장의 인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눔과 실천의 삶이었다.
◆ 검소하게 살아온 옛 동지의 남다른 인정과 나눔의 철학
하지만 오늘 내게 밥을 산 옛 직장 동지는 기업인도,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부유층 가정의 가장도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검소하게 소시민적 삶을 살아온 퇴직 공무원이다.
▲ 각별히 인연 맺고 살아온 지인들에게 따뜻한 인정으로 밥을 사는 옛 경찰 동기생(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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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찰 동지는 정보관 출신답게 세상 돌아가는 것도 훤히 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무불통지(無不通知)다.
몸담았던 옛 직장 선후배의 근황도 소상히 알고 있다. ‘인물 정보’에 밝다는 것은 그만큼 ‘발이 넓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옛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들의 별세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부고(訃告)가 없었을까?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럴 수밖에 없는가? 오랜 세월 인연 맺고 살아온 수많은 지인에게 왜 부음(訃音)을 전하지 않는가.
혹시 고인이 생시에 “나의 사망 소식을 가족 외엔 알리지 말라”라고 유언이라도 한 것일까?
옛 동지가 말했다. 어느덧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 우리가 무슨 욕심이 있느냐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렇게 건강하게 막걸릿잔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고인이 된 옛 직장 선후배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경찰 동기생은 내게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라고 거듭 말했다.
살아 있을 때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첩에 ‘고마운 사람’,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 명단을 적어 놓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밥을 사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 ‘밥 사는 사람이 아름다운 정갈한 맛집’에서 막걸리 잔을 나누었던 옛 경찰 동기생(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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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산다는 것은 정을 주는 일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다. 감사의 표현이다. 옛정을 되살리는 일이다. 전래 미풍양속의 맥을 잇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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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M 박사가 보내온 답장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05.03. 07:13
아주 좋은 글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논지를 펴는 윤 선생의 글은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따뜻한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