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은사골 메아리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삶의 쉼터 스크랩 정의(正義) / 한국인의 마음
ysoo 추천 0 조회 51 15.10.30 12: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① 정의(正義) 옳고 그름을 바로 알고 실천하다

 

조선의 법제도와 인권의식, 사회정의를 구현하다

 

전통 법제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화가이자 여행가인 아널드 새비지 랜도어A.H. Savage-Landor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자에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 랜도어는 당시의 생활상과 풍물, 제도 등을 소개하고 있어 이 무렵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는 때때로 조선의 제도와 조선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예컨대 조선 사람들이 서양인 과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에 무감각해서 가혹한 형벌을 잘 견딘다는 언급이 그 한 예이다. 이처럼 한말 서양인들이 남긴 여행기를 읽다보면 조선 사회의 법제와 문화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동양의 전통사회 법제는 체계적이지 못했으며, 형벌 또한 서양에 비해 야만적이었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6세기까지 잔인한 형벌이 존재했던 유럽에 비해 중국은 그보다 한참 전인 7세기에 이미 우수한 당률唐律을 채택했으며,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발달된 법률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마치 서양은 우수한 법제도와 인권의식을 갖추고 있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은 그렇지 못했다는 식의 이해는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양 제국주의 국가가 만들어낸 편협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김윤보의 형정도(刑政圖)는 조선 말기의 형정에 관한 풍속화로 죄수 이송장면이 묘사되어있다.

 

 

법과 정의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를 유지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나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왔다. 조선의 사법제도는 나름의 제도적 체계성과 이념적 합리 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평등의식’ , ‘권리의식’ 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의금부를 묘사한 그림. 류운이 의금부 도사로 재직할 대 그린 계첩인<금오좌목>에 수록되어 있는 삽화이다.

 

삼군부 총무당. 삼군부는 조선시대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및 도적, 화재 예방을 위해 순찰등의 일을 맡았던 관서로, 일명 포청이라한다.

 

조선왕조 법전 편찬의 전통

 

정확히 언제부터 쓴것인지 알 수 없지만 ‘원님 재판하듯 한다’ 는 말이 있다. 원님 재판이라 하면 일정한 절차도 원칙도 없이 고을 원님이 제멋대로 판결을 내렸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사람사는 세상 에 그런 엉터리 같은 원님은 예나 지금이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소송제도 자체가 허술했다거나 법제도가 미비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선왕조는 건국 직후부터 법전 편찬에 힘쓸 정도로, 통일적 법전을 만들어 법치주의를 기본으로 할 것을 천명한 나라였다.『경국 대전經國大典』은 15세기의 끊임없는 법령 정비 작업의 결실이었다.

조선시대 법전은 이것으로 그친것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대전속록』, 『대전후속록』, 『수교집록』, 『신보수교집록』, 『속대전』, 『대전통편』,『대전회통』등 무수히 많은 법전과 법령집, 판결지침서 등이 계속해서 편찬, 활용되었다. 이들 법전에 애민愛民과 민본民本사상이 깊숙이 들어있었음은 물론이다.

 

법을 통한 지배라는 원칙이 세워진 이상 자연스럽게 민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과 갈등을 조정, 해결할 수 있는 통로로 소송제도도 마련되었다. 흔히 조선의 법은 백성을 통제하기 위한 형법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산권과 권리 실현을 위한 민법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또한 오해이다. 조선시대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소송이 매우 활발했다. 당시 사람들은 소송을 기피하거나 관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권리 의식 또한 발달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고문서를 조사해보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관아에 소장訴狀을 제출하여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수 있었다. 실제로 1858년 충청도 연기현(지금의 세종시) 소송기록을 보면, 양반뿐만 아니라 여성, 노비, 심지어 죄수들까지도 관아에 소송장을 제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재판 결과가 억울할 경우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에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고, 이어서 중앙 관청에까지 항소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안되면 신문고申聞鼓를 치거나, 상언上言·격쟁擊錚의 방식으로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도 있었다. 이처럼 조선의 소송 및 소원제도에는 백성들의 민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담겨 있었다. 중세적 민본의식이 근대적 민권의식으로 조금씩 진화해가고 있었다.

 

사형 판결 절차에 나타난 인명 존중 의식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명 존중 의식 또한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음을 형사 사법 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사극史劇에 나오는 것처럼 고을 원님들이 제멋대로 백성들에게 매질하거나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사법기관의 공권력 행사와 관련하여 주목 되는 사실은 각 기관별로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있는 형벌의 상한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형벌은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의 다섯 등급으로 나뉘는데, 지방 군현의 수령은 가장 가벼운 태형의 형벌을 스스로 집행할 수 있었고, 이에 비해 관찰사와 중앙의 형조刑曹는 유형까지 가 능했다.

이는 상부의 보고 없이 지방관이 행사할 수 있는 형벌권이 수령은 태형, 관찰사는 유형까지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살인 등 사형에 해당하는 안건은 반드시 조정에 보고해야 했으며, 오직 국왕 만이 사형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국왕은 당시 최고의 재판관이었던 셈인데, 이는 형벌의 남용을 막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사형 죄수에 대한 판결 절차를 살펴보자.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이 발생할 경우 여러 단계의 매우 신중한 조사와 심리를 거쳤다. 지방 에서 변사사건이 발생해서 관에 신고가 들어오면 고을 수령은 사건 수사를 맡았다.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시신의 검시 및 관련자들에 대한 신문을 종합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하면 1차 수사는 끝이난다. 하지만 수사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며, 수사의 공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웃 고을 수령이 2차 검시 및 수사를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수사결과는 관찰사를 거쳐 중앙의 형조에 보고되었고, 국왕의 최종 심리를 거쳤다.

 

그런데 국왕이 사건을 판결할 때에는 한 차례의 심리로 마무리하는 법이 없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수 안건은 법전 규정에 따라 조정 관리들의 입회하에 무려 3차에 걸친 논의 끝에 형을 확정하였으니, 사형 집행에 그만큼 신중을 기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에는 형사 재판에서 원통한 죽음, 억울한 죄수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적지 않게 제도화되어 있었다. 형벌을 삼가고 신중하라는 『서경書經』의 ‘흠휼欽恤’ 정신은 조선시대 형사 재판에서의 실천 윤리 였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오늘날 인권 의식의 연원을 추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법고창신法古創新의자세

 

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채택하였고, 조선의 지배세력은 유교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시에 조선왕조의 국왕과 관료 들은 유학적 수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본에 기초한 법제 정비에도 힘을 썼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지금까지의 부정적 편견을 걷어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선의 법제와 사법체계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선사람들은 공공의 이익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가? 이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것들이 있었고, 어떤 한계가 있었는가?

 

고금을 막론하고 법은 사람들의 삶과 매우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과거는 결코 현재와 동떨어진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다 나은, 공평무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훌륭한 전통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글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의義를 깨닫고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가, 정도전

 

백성이 가장 귀하다

 

정도전은 젊어서 백성을 이롭게 하는 정치를 하리라는 큰 꿈을 안고 정치에 입문했으나, 권문세가인 이인임의 친원정책에 항거하다 현재 전남 나주에 속하는 회진현으로 유배당한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면서 ‘백성이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다’ 라는 민본民本의식을 키워가게 된다.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백성의 삶과 괴리된 기득권의 이기적 행태에 신물이 난 그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세계를 직접 만들어보리라는 큰 뜻을 품게 된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맹자孟子』를 탐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맹자』는 동양의 정치이론이 집대성된 책으로, 서양의 ‘사회계약론’ 등의 민권사상보다 앞서 백성이 모든 정치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 영토와 곡식)이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 이 때문에 백성에게 임명된 사람은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임명된 사람은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임명된 사람은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임명한다.”

 

 

 

이는 ‘백성의 마음(民心)이 하늘의 마음(天心)이다’ 라는 동양의 오랜 가르침에 잘 담겨 있다. 천자天子는 말 그대로 하늘의 대리인이며, 천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이다. 그리고 하늘의 명령은 그대로 백성의 명령이니, 백성이 지지하는 이가 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동양의 오랜 정치이론에서는 궁극적으로 백성이 천자를 뽑고 바꾸는 주체인 것이다.

 

참된 리더의 길

 

그래서 맹자는 가장 존귀한 백성을 해치는 자는 천자로 보지 않고 ‘천하의 외톨이’ 라고 보았다. 백성을 사랑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리더는 이미 리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나라 선왕이 질문하길 “탕湯왕이 걸桀을 내쫓고, 무武왕이 주紂를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러자 맹자가 대답하길 “경전에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다시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하길 “사랑을 해치는 자를 ‘해치는 자’ 라고 하고, 정의를 해치는 자를 ‘상하게 하는 자’ 라고 합니다. 해치고 상하게 하는 사람을 일러 ‘홀로된 사내’ 라고 합니다. 홀로된 사내인 주紂를 주살하였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천자의 최고의 임무는 자신을 뽑아준 백성을 하늘로 보고, 백성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백성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비결이 담긴『대학大學』에서 이르길,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는 것’ 이야말로 참으로 백성의 부모가 되는 방법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리더의 길이니 정의로운 경영의 기본이다.

 

정의는 사랑에 기반을 둔다. 동양 고전에서 사랑이란 ‘남을 나 와 동등하게 배려하는 것’ 이다. 그리고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것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 이다. 이를 어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불의不義이다.

정의는 사랑에 기반을 둘 때만 진정으로 성립할 수 있다. 사랑이 빠진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논어』에서는 사랑을 구현하는 실천방법으로 ‘서恕’ 즉 정의의 실천을 제시한다.

 

자공이 “한 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행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서恕’ 이니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니 정도전이 유배지에서 깨달은 바는, 백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베풀어 줄 정의로운 정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부야 말로 사랑의 정부일 수 있는 것이다. 말 뿐인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 로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롭게 해주는 사랑말이다. 그러한 정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루리라 다짐한 정도전은, 위화도회군 이후 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이성계와 손을 잡고 그러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게 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얼개를 담은『조선경국전』에서 보위(寶位, 인군의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함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얻기 위한 구체적 방법도 제시한다.

 

인군의 자리는 존귀하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백성은 지극히 많다. 한 번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만한 것이 있게 된다. 아래 백성은 지극히 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으며, 지극히 어리석으나 잔꾀로 속일 수 없다. 그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고,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떠나버린다. 떠나고 따르는 사이는 털끝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미세하다. 그러나 이른바 그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심으로 구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도를 어기고 명예를 해치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이라 고 말할 따름이다.

 

백성은 지극히 약해보여도 힘으로 위협할 수 없다. 백성 개개인이 약해보인다고 하더라도 권력이 그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백성이 아무리 어리석어 보여도 잔꾀나 꼼수로 속일 수 없다.

진실이 아닌 것은 끝내 들통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애초에 무시하지도 속이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진심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백성의 영원한 지지를 얻고 싶다면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자신이 상대방이라면 원했을 것으로 상대방을 대하며, 자신이 상대방이라면 원하지 않았을 것 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이 정의이고, 이것이 사랑이다. 그 다음 구절을 더 들어보자.

 

 

 

"인군이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을 ‘마음’ 으로 삼아서, 남의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정책(不忍人之政)을 시행하여, 천하의 사방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여 부모처럼 우러러 보게 할 수 있다면, 장구하게 안락하고 부유하며 존귀하고 영화로움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며, 위태롭고 망하고 뒤집히고 추락하는 근심은 없을 것이다. 사랑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는가?"

 

인군이 백성에게 남의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마음(양심)을 바탕에 둔 정책을 시행하여, 자신이 백성이라면 원했을 것을 베풀고, 원하지 않았을 것을 가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최고의 정치이다. 그러면 백성이 모두 인군을 참된 부모로 우러러 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군의 자리를 보존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고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인 군의 자리를 잘 지켜가라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꿈꿨던 정의로운 정부, 사랑의 정부의 구체적 모습이었다.

 

글 윤홍식 (홍익학당 대표)

 

 

 

 

 

 

정의사회의 해법과 체득體得의 인성교육

 

정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의(justice)에 대한 서양의 고전적 정의에서 볼 수 있듯 정의는 ‘각 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to each his own)’ 이라 할 수 있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향유하는 사회가 정의사회라고 할 때, 우리 사회처럼 일부가 타인의 몫까지 탐식하고 다른 일부는 자신의 몫도 누리지 못 해 허덕인다면 이는 분명 부정의 한 사회임이 틀림없다 할 것이다.

 

필자가 수십여 년 간 정의론에 골몰하면서 얻은 결론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한 가지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의를 바라보는 다양한 정의관이 있으며, 하나의 정의관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이 같은 원초적 불평등(original inequality)을 우리가 인간적으로 시정하고 재조정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인생이라는 경주에 있어서 원초적 불평등은 태어난 사회적지위(social status)와 같은 인생경기의 시발점과 관련된 우연과 타고난 자연적 능력(natural ability)과 같이 경기력과 관련된 우연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우연들은 그럴 이유도 없이, 우리가 책임질 수도 없이, 단지 주어진 운명이요, 그런 의미에서 운運, 혹은 복福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이 같은 운이나 복에 대해 어떻게 해석 하고 재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같이 운이나 복의 결과로서 주어진 원초적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것인 까닭에 운이나 복을 그대로 방치한 ‘복 불복’ 의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라 할 수 있다.

정의론자 존 롤즈John Rawls는 운과 복을 도덕적 관점에서 중립화(neutralize)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시한 모든 사회 성원의 공동운명체 의식을 갖는데서 정의 사회에로의 해법이 찾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의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정의문제를 논의할 때면 의례히 ‘구조적 비리’ 나 ‘구조적 부조리’ 등 거대담론을 들먹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미 잘 알고 있듯 구조의 변혁이나 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은 백년하청에 가깝다.

우리가 혁명을 통해 구조를 뒤집지 않는 한 구조는 서서히 바뀌고 점진적으로 개혁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거대담론도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에만 몰두하다보면 세월만 공전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좀 더 소박한데서 정의사회로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서울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의, 시장 그리고 좋은 사회'란 주제로 독강하고 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릴 때 사용하는 법봉. 재판관은 어느 상황,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문제

 

근래에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130여만 부 이상 팔리면서 우리 지성계를 쓰나미처럼 강타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가 배운 게 무엇이고 샌델 신드롬 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 한낱 신드롬에 불과하다면 우리 지성계는 얼마나 천박하고 우리의 지적 내공은 또한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명품대학 명교수에 대한 쏠림이고 유행심리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사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즉 정의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기보다 아는 그만큼이나마 실행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너무도 식상한 이야기이겠지만, 뉴스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가슴 아픈 장면이, 속옷바람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가는 선장과 선원들의 비굴한 모습이다. 지금도 필자는 그 장면이 던져준 숙제와 고민으로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선장과 달리 행동했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선장과 선원들은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저마다의 몫을 내팽개친 채 양심의 가책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질했을 것이다.

 

앞서 우리는 정의가 각자의 몫이라 했다. 각자의 몫은 사회에 대해서 각자가 요구하고 주장할 ‘권리로서의 몫’ 이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 각자가 부담하고 져야 할 ‘의무와 책임으로서의 몫’ 이기도 하다. 권리와 의무는 서로 상관적 개념이다.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급부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것이 전제된다. 대체로 우리는 정의를 명분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대체로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면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해법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할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권리를 소리 높여 주장하기 이전에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볼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흔히 말하듯 우리 사회가 초위험 사회인 것은 우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챙기지 않는 부정의한 사회이기 때문이 아닌가. 인생이란 매사에 있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속에 내면화되고 체득體得되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의 선장은 그 순간 선장이 해야 할 책임과 책무의 매뉴얼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체득되어 자기화 되지 않은게 분명하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실천적인 해법

 

공자(孔子, BC 551~BC 479)의 어록인『논어論語』서두에서 공자는 성공 적인 인생이란 매뉴얼을 배우고(學) 그래서 단지 아는 것(知)에 그치지 않고 반복 훈련(習)해서 습관화되고 자기화되어 실행(行)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생활이 도덕적으로 합당하고 또한 즐거운(悅)삶이 보장된다고 강조한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매뉴얼을 단지 알고 있었지만 부단히 연습하여 자기 체내에 습득하지 못 해 몸에 익혀진 매뉴얼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임무를 파기한 실패한 인생이 된 것이다.

 

뇌과학에서도 알고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그것이 기억이 되고 자기화된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위기상황에 당면했을 때 표출되는 것은 그의 지식이 아니라 체화된 버릇, 습관이라 한다. 아는 것이 오랜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리의 몸에 익어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것이 무의식, 잠재의식에 내장되어 비상시에 우리를 지켜주게 된다는 것이다.

 

국회 윤리위원회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책으로써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예산도 지원할 생각이라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종류의 인성교육을 할 것인가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뉴얼을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내면화, 내재화, 습관화, 자기화, 생활화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덕한 행위를 강조하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난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속적인 반복학습 그것이 우리가 정의사회로 나아가는 해법으로써 요구되는 인성교육의 핵심이다.

 

인성교육은 사고교육으로 시작해서 덕성교육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매뉴얼을 익히는 반복학습 그것은 모든 전문직 종사자의 필수 커리큘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위험부담이 큰 선박이나 항공 등 종사자는 매일같이 매뉴얼과 관련된 행위들은 반복해서 연습하고 점검한다고 한다. 행위는 우리의 의도를 시행하고 실행하는 수행적(performative)기능도 있지만 그런 행위 결과는 다시 피드백되어 행위 주체의 성품과 성격을 공고히 해주는 형성적(formative)기능도 있다.

 

매뉴얼을 익히는 데에도 반복학습이 필요하겠지만 위험부담이 있는 직종에는 담력이나 용기 등의 덕목을 익히는데도 반복학습이 요구된다. 비굴하고 무책임한 선장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인성교육의 실패를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같이 전문직 종사자의 인성교육을 강조한다해서 법적, 제도적 조치가 소홀히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책임은 중형으로 다스려야할 것이다.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듯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자를 중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인성교육의 당위성과 심각성을 깨닫는데도 큰 파급효과가 있다.

 

흔히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으로써 구조개혁이나 제도의 혁신을 말하기도 하고 인간개조나 의식개혁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제도개혁과 의식개조는 부정의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해법의 두 가지 핵심요소로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하고 서로 요청하는 수레의 두 바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혁신의 의지를 갖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결국 열쇠는 인간이 쥐고있다 할것이다.

 

글 황경식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15.01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