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이생진
오늘밤 반가운 것은
창문을 열자 눈이 내리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리는 것이다
가난하고 쓸쓸한 얼굴
그것은 백석의 얼굴이다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백석의 얼굴이다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겨울밤 창문을 열어놓은 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기다리는 것은
나도 가난하기 때문이다
시는 눈처럼 쓸쓸하고 눈처럼 가난하다
눈 오는 날
나와 나타샤는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같은 사람이다
* ‘ ’은 백석의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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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울릉도에 심은 꿈나무 / 이생진
-임보 사백님께
임보 사백님, 사백님의 편지를 받고 1987년에 펴낸 첫 동인지『우이동』을 꺼내봤습니다.
그랬더니 사백님의 ‘律•4’에 이런 시가 있네요.
철쭉도, 철쭉도 늦은 봄날/ 못난 詩人 서넛이 솔밭에 앉아/
소주로 소주로 세상얘기 하네/ 큰 세상 가는 이치 어이 알리요/
지는 꽃이 서러워 눈을 감으며/ 못난 詩人 서넛이 목을 부비네.
이 시를 읽으며 생각나는 것은 인수봉 아래 모여 살면서 서로(임보 홍해리 신갑선 채희문 이생진)를 격려하고 자극을 받아 좀더 분발하고 싶다던 소박한 소망,
그 소망이 사화집 25집을 펴냈고 더 나아가 <우이시>에서 <우리시>로 이어졌다는 거,
그러는 동안 북한산(삼각산) 계곡에 단 한 그루 뿐였던 복숭아나무가 30여 그루로 번졌다는 거.
이는 못난 시인 서넛 중에 임보 사백님과 홍해리 사백님의 치밀한 추진력의 결과입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늘 섬으로 떠돌아다니느라 너무 등한히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저는 지금(2007.5.25) 울릉도에 와 있습니다.
이곳 울릉중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과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를 샀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꿈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막연한 이야기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꿈이란 막연한 곳에서 막연한 곳으로 가는 것이어서 우리들이 20년 전에 꿈으로 여겼던 미래 같은 것을 떠올리며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관음도의 사진을 확대해서 칠판에 걸어놨습니다.
관음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5km 해상에 위치한 섬인데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입니다. 둘레가 800m 쯤 되며 울릉도 3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섬이죠.
제가 43년 전(1964)에 이 섬에 왔을 때 그 섬에는 대여섯 이랑의 고구마 밭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 섬’이 떠올랐죠.
관음도는 아일랜드 라프 길 호수의 섬(이니스프리 호수 섬)보다 아름다운 섬이기에 학생들보고 앞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이곳에서 쓰라고 권했습니다.
그 까닭은 아일랜드는 남한의 인구 1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며 8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식민지로 시달려 왔는데도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시머스 히니와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거.
그뿐 아니라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다섯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까지 합치면 무려 열 명이나 노벨상을 받았으니 학생들도 그런 꿈을 가져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사람이 나온다면 관음도는 한국의 영원한 다이아몬드로 빛날 것이라고.
이런 꿈은 이 아름다운 울릉도 소년들이 가져볼 만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울릉도에는 조용히 머물며 글(시) 쓰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와다리 천부 현포 태하 남양리 통구미 사동, 어딜 가나 시가 나올 듯한 곳이지요.
그리고 섬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보기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과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를 보여줬지요.
넓은 하늘과 바다에서 작품을 끄집어내기란 시운 일이 아니지만 다니다보면 섬만큼 작품성이 풍부한 곳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갈매기의 꿈』을 읽어본 학생은 손을 들으라고 했지요.
41명 중 반이 손을 들데요. 그래서 안 읽은 학생은 물론 읽은 학생도 다시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특히 이런 부분에 유의하며 읽으라고 했습니다.
사고 속도 비상(thought-speed flight), 즉 생각 자체가 바로 비상이 되는 것,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는 속담과 같이. 『노인과 바다』에서는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는 그런 꿈.
그런 꿈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얻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문학은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공부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우리시’ 모임에서도 저에게는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새로 참여한 젊은 시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인들의 시낭송회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공간시낭송회에서 배운 것은 구상 선생님의 말년의 모습입니다.
그분의 검은 고무신, 그것은 저에게 그분의 실존을 그보다 진하게 보여준 것이 없습니다.
검은 고무신을 신고 와서 자기 시를 읽고는 말없이 돌아가던 그 모습. 저의 말년의 모습도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시’에 대한 저의 게으름을 나이[年齡] 탓이려니 하고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젊은 시인들이 제가 하지 못한 것을 다 해낼 것입니다.
삼인조 강도에게 손발이 묶여 빈털터리가 되면서도 우이동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임보 사백님과 같은 좋은 시인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 봄 복사꽃을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에서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문학의 집 서울> 200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