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7. 수
“나에게는 감동이었습니다”
이현아
가을이 참 아름다운 파주의 9월.
나는 사회복지사란 이름으로 보건소에 첫 출근을 했다.
예전에 나는 서울에 있는 노숙자,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곳에서도 보람을 느꼈지만, 집집마다 방문하며 각 가정의 상황에 맞추어서 맞춤형 예방관리를 해 드리고,
지역사회와 연계되어 꼭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해드린다는 것이 흥분도 되고, 긴장도 되며 설레임도 있었다.
내가 보건소에서 일하기 전에는 지금까지 방문간호실에 전담 사회복지사가 없었다고 한다.
간호사, 물리치료사, 운동처방사로 구성된 11명의 방문간호 팀에 ‘사회복지사’로 합류되어 일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교하읍 담당인 방문간호사 김 선생님에게 사회복지 관련 연계 의뢰를 받게 되었다.
‘김00’라는 78세의 어르신이었다. 김 선생님은 매일 아침이면, 그날 방문할 대상자와 방문 약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환인 대상자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는데, 마침 딱한 상황에 있으셨던 것이다.
어르신은 척추 연골이 닳아 통증이 매우 심하고, 걷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의사는 허리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MRI를 찍어야만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하였지만,
검사비가 70만원 정도 나온다고 하니, 없는 형편에 돈 부담이 크다며 1년 이상 검사를 못 받고 있었으며,
몸이 아픔으로 인해 크게 낙담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인 우리 대상자분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은 언제나 재정적인 부분인 것 같다.
쪼개고 쪼개서 아무리 아껴 써도 모자라고 또 모자라는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교하읍 상지석리로 길을 찾아 가야 되는데,
나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파주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서 파주 지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운동처방사인 지혜 선생님과 함께 2인1조가 되어 교하읍 대상자의 집을 향했다.
파주는 5읍 9면 2동으로 구성되어 생각보다 꽤 넓은 지역이었다.
허름한 연립빌라에 도착하니, 부인은 잠깐 옆집에 가고 없었고,
군대에서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지금까지 통증 악화로 계속 누워있는 40세 아들이 한명 있지만,
병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아직까지 중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했다.
김00 어르신을 만나 뵈니 오랫동안 언론인 편집장을 지내온 분으로써의 고집스러움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결의가
어르신의 맑고 깨끗한 눈빛과 주름이 깊이 패인 얼굴을 통해서 비춰지는 듯 했다.
그분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매우 가난했지만, 꼿꼿함이 배어 있었다.
80여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오셨다고 한다.
“이 병만 아니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자신을 매우 부끄러워하셨다.
정부가 하는 일을 그리 탐탁지 않는 야생초 같은 느낌이랄까?
병은 그분의 생각과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아프고 나니, 어렵고 나니, 파주시 보건소에서 나오는 방문간호사의 도움을 매우 고마워하셨다.
파주시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지 몰랐었다고 하신다.
‘문필’은 곧 그분의 삶이었다.
팔 다리가 마비가 되어 병이 온 이유도 20여 년 동안 ‘본서강목’이란 17권의 방대한 책을 집중해서 집필해 오다가
작년 출판기념회가 끝나자 마자였다고 한다.
80평생을 병원에 가본 적도 없고, 아프신 곳도 없으셨다고 한다.
병이 오고, 몸이 아프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해 본 것이었다.
병원도 가보았지만, 좀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통증이 심하시니 빨리 무료로 지원 가능한 의료연계서비스를 해드려야 했다.
파주는 지역사회연계가 타 지역보다 매우 열악한 지역이며, 재정적 후원과 자원봉사의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파주도립병원에서 공공의료서비스를 지원해 주지만, 서류상 시간이 소요되므로,
나는 바로 서울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료 진료하는 영등포 요셉의원 정형외과 선생님을 연계해 드렸고,
그분은 너무 고맙다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라며 연신 감사해 하셨다.
그러나, 파주에서 영등포까지 2~3시간 걸리는 거리를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고생하며 가실 어르신이 조금은 걱정되기도 해서, 불편한 마음이 한 켠에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관외로 가는 것이라 좀처럼 차량지원서비스가 어렵다고 하신다.
다음에는 이렇게 가시지 않도록 차량지원 서비스연계를 더 탄탄히 해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대상자 어르신이 알아주신 것일까?
방문간호실 내 책상위로 전화벨이 울렸다.
“저 이현아 사회복지사 선생님 계십니까? ”
“ 녜. 제가 이현아 입니다.
“ 아~ 선생님......” 하시고는 목이 매이시며, 우시는 것이었다.
“ 왜 그러세요? 어르신,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MRI 검사는 잘 하셨어요? ”
하고 물었더니,
대상자 어르신은 울음 섞인 목 매인 소리로
“ 나는 이제까지 눈을 뜨고 살았으나, 눈을 감은 장님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요.
선생님의 도움도, 여기 병원 사람들도, 모두가 잘 대해주고 친절한지...
나는 이제껏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나쁘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그런데...이 병원 분들은 다 자원봉사를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돈 많이 드는 검사에도 제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시니...저는 진짜 두 눈 뜨고 바보처럼...이제껏 헛산 것입니다.
허깨비로 살은 겁니다. 세상을 잘못 본 것입니다...흐흐흐. 오늘이야 말로 새로 태어났어요. 이 날이야말로 바로 제 생일입니다.
나처럼 병들고 돈 없는 사람을 위해 조건 없이 무료로 해주시니...너무 친절한 대접 받았습니다...흐흐흐.
평생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큰 감동은 없었어요.
나는 정말 당당한 사람이었는데...아프기 전에는 나 같은 사람... 남에게 도움 받을 필요가 없다고...병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데...
내가 난대 하며 살아왔었는데...헛살았어요...나는 장님이에요...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이런 세상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런 고마운 세상이 있다는 걸...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못보고 죽었을 겁니다.
얼마나 세상을 원망하여 죽었을까요? 선생님...평생 이 날을 기억할 거예요. 잊을 수 없는 벅찬 것을 받았고, 보았기에... ”
절절하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참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었는데, 따뜻한 세상이 두 팔을 벌려 어르신을 꼭 감싸며 환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날 이후로도 대상자 어르신에게 전화가 한 번씩 왔다. 요즘은 감사해서 너무 좋아서, 또 자신이 왜 그렇게 이런 세상을 보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왔는지 후회하는 회심의 눈물로 나날을 보내신다고...파주시장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너무 훌륭한 직원을 두시고, 좋은 일을 하신다고, 이 내용을 꼭 글로 적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가진 것이 ‘펜’밖이라 줄 수 있는 것은 ‘글’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어르신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 뒤로, 집에 찾아가 뵈니, 김00 어르신은 검사한 MRI 결과를 가지고 다니시는 병원으로 가져가서 진료를 받으셨다고 했다. 요즘은 몸도 좋아지고, 다리가 많이 호전되셨다고 한다.
이렇게 대상자에게 꼭 필요한 지역사회 서비스 연계를 나누고 나면,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스스로 뿌듯한 마음과 연계해준 곳에 대한 고마움으로 때때로 따뜻한 느낌이 가슴 깊이 스며들곤 한다.
독거노인, 한 부모 가정, 장애우 가정, 취약계층의 가정 등 평탄하지 않는 가족사가 묻어있는 우리 대상자들...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에서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과 절망을 느끼곤 한다.
맞춤형 방문간호의 매력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1:1로 대상자의 삶을 깊이까지 가서 공감하며 만날 수 있는“소통”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는 따뜻한 소통’ 말이다.
파주시에 방문간호사가 없었다면 어떨까? 한번씩 생각을 해본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맞춤형 방문간호실에서 일을 하다보니 이 곳이야말로 ‘파주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며 방문간호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이 일이 아니었다면, 만나보지 못했을 그늘 속에 숨어사는 우리 대상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찾아가지 않았다면,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잡을 방법조차 몰라 아파하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의 만남으로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기쁨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삶은 전쟁이라고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들꽃은 여전히 아름답게 핀다는 것을...

하늘 맑은 9월에... 남편과...
첫댓글 삶은 전쟁이라고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들꽃은 여전히 아름답게 핀다는 것을... 마음에 느낌을 심어주시니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