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해인사 스님 설법듣고 삶의 나침반으로 불교 배우면서 집착 줄어…30년 공직생활 큰 힘
올해 예순일곱의 ‘사장님’은 날마다 캄캄한 지하철로를 누빈다. 안전모에 손전등을 들고 환풍기 배수시설 등 터널내 시설물을 일일이 점검한다. 어쩌다 궤도 곡선부에 마모된 흔적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손을 쓴다.
열차가 달려오면 몸을 바짝 벽으로 붙여 피한다. 그러면 몸은 열차와 불과 30cm 간격. 아찔하다. 귀를 뚫는 소음과 감당할 수 없는 먼지로 온몸이 녹초가 되면, 역무실서 냉수 한모금 들이키며 직원들을 격려한다. 지난 2002년 9월 공모를 통해 선출된 첫 서울도시철도공사 제타룡(諸他龍) 사장은 지금까지 지하철 5,6,7,8호선 철로를 모두 걸어서 순회했다. 총 148개 승차역에 걸친 이 선로는 서울~대전간 거리에 달하는 약 152km.
#사장실 풍경
3월11일 오후 3시경, 서울도시철도공사 5층 사장실. 문틈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십구칠은 백삼십삼, 십구팔은 백오십이, 십구구는……” 19단을 줄줄 외는 작업복 차림의 사장은 25단까지 적힌 손때 묻은 책받침을 들고 있다. 책상에는 수학지침서인 ‘정석’과 연필로 정성껏 풀어나간 수학문제도 보인다. 영문 시사잡지들도 최근호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각계각종 도서들로 들어찬 서재는 서점을 방불케 할 정도다. 한켠에 쌓여 있는 불교경전집도, 구석자리에 벗어놓은 인라인스케이트도, 낚싯대, 테니스라켓도 모두가 도무지 고희를 앞둔 사람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큼직한 지하철 노선표 하나 걸려있겠지’ 했던 예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 사장님은 ‘철혈사장’
“왜 지하철로를 걸어서 직접 순회하느냐. 직원들과 한몸으로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서지요.” 그는 낮은 음성이지만 강하게 말문을 열었다. “현장점검을 통해 얻어낸 아이디어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데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올라오는 결제서류에 사인만 해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쾌거죠.” 지하철 급커브 구간 궤도가 마모되면서 전동차가 탈선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안전의 핵심이란 것을 깨달았고. 전동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면서 몰고오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먼지 자동세척기계도 성공리에 설치.가동했다.
지하철로 순회뿐 아니다. 취임 후 그는 전동차 운전을 손수 배워 서툴지만 신호에 맞게 차를 세울 수 있는 실력도 갖췄다. 정비방법과 전동차의 각종 부품도 다룰 줄 안다. “도시철도공사 사장 이 전동차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아야지.” 그의 생각이다. 역사(驛舍)에 나가 표도 팔아 보았다. 차표를 사는 대다수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무임승차권 대상자라는 사실을 터득하고 ‘무임승차자 인식 기계 장착’도 고심하고 있다.
사장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부순 제 사장에겐 처음엔 전시행정이란 비난도 들어왔고, 한두번하고 말겠지 하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올해 9월 임기가 끝나는 그는 그러나 취임 후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종일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위험한 철로속으로 뛰어들어 끝도보이지 않는 선로위를 걸어다닌다. 직원들은 그를 두고 ‘철혈사장’이라 부른다.
# “지하철마다 108배 기도”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나고 사고수습을 마친 제 사장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충남 공주 갑사로 자동차를 돌렸다. 법당에 들어선 그는 고통과 아픔과 긴장이 뒤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108참회를 했다. 희생된 영가들을 위해 유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가해자로 낙인찍힌 모든 일꾼들을 위해서 참회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참회정진은 이어졌다.
지하철 5호선부터 8호선까지 각각 인근에 있는 절을 찾아다니면서 기도를 했다. 안전사고예방을 발원하는 108배로 시작된 기도는 자기를 돌아보고, 직원들을 하나하나 상기하며 경영 방법을 정돈해나가는 일종의 ‘거울보기’가 됐다.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 참선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오랜 공직생활을 불과 몇 개월이면 마감하는 그는 ‘무소유’의 진정성과 ‘다음 생애’의 자신을 쉼없이 생각하고 바라보고 또 되새긴다. 1965년부터 서울시 최하위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교통국장, 감사실장까지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로 정평이 나있는 그도, 삶에서 오는 아픔과 갈등이 없었을 리 없다.
“젊은 시절엔 해인사 일주문이 닳도록 틈만나면 사찰을 찾았습니다. 큰스님들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죠. 처음엔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도무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만, 불교를 접하면서 현실의 집착을 끊고 자유를 찾게 된 것 같아요.” 제 사장은 직원들이 자신이 불자란 것을 모른다고 했다. 리더가 한 종교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공무원’이 되라고 권고할 뿐이다.
# 사장님은 ‘독서광’
사진설명: 67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은 직원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도시철도공사의 변화를 이끌어온 제타룡 사장. 그는 안전사고 예방을 발원하고 자신을 바로보기 위해 108참회정진을 쉬지 않는다.
제 사장은 사내에서 ‘책 예찬론자’ ‘독서광’으로 통한다. 스스로도 공직에 있으면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하는 자세로 꼽을 정도다. 환갑 이후 서일대 사회체육과에 들어가 4년간 스포츠사회학을 공부하고, 이후 서경대 영어학과에 편입해서 영어공부에 주력했던 그다.
공부와 수행을 생활화하라는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일류대학 졸업증서 한 장으로 평생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살아가는 공무원은 공무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평생 꾸준히 닥치는대로 공부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면 언젠가는 꼭 자기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거든요.” 선진국의 개발정책 시스템을 엿보고 외국 CEO들의 수준높은 가치관을 배우기 위해서 영문 시사잡지를 탐독하고, 체계적인 정보활용을 위한 수학과 물리학 등 가리지 않고 공부에 임하는 이유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주목할만한 연구보고서를 스크랩해서 ‘지식과 경영’이란 책자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고위공무원들은 경륜과 연륜을 바탕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내는 책임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만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직원의 10%는 연수를 보내거나 프로젝트를 맡기는 등 공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브레인으로 키우는 제 사장은 최근 ‘수학의 나라’ 인도에도 직원을 파견, 기술교육을 도입해올 계획이다.
# 사장님은 ‘나무예찬론자’
“부처님은 항상 나무와 함께하셨습니다. 룸비니 숲속의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숲속의 궁궐에서 지내다 출가해 숲속으로 들어간 점, 부다가야 숲속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점, 녹야원 숲속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설한 후 숲을 찾아다니며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다 마침내 쿠시나가라 숲속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들은 점. 제가 나무를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고 나무와 인연도 많은 걸 보면 부처님을 닮았나보지요? 아, 농담입니다”
1950년대 경남 진주중 시절 비오는날 늦은 밤에 교정의 플라타너스를 몰래 뽑아서 집 뒷마당에 심어놓은 일이며, 30여년 전 월급 60만원으로 네식구 가장노릇을 했을때도 150만원이 넘는 모과나무를 사들고 귀가해 ‘사모님’ 속을 태우기도 했다. 오는 9월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제 사장은 남은 여생을 서울 외곽에 조그맣게 마련해둔 배나무 과수원에서 보낼 작정이다. “삼라만상에 있는 모든 나무가 내 손길과 내 마음을 받아 살아가고, 그 나무가 전하는 기운으로 30년 넘는 공직생활을 분에 넘치게 잘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다시 나무에 보답하며 여생을 보낼것입니다.”
제 사장은 누구…
34년간 서울시 근무, 공부하는 경영자…
1938년 일본서 태어나 경남 사천에서 자랐다. 진주중고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1965년부터 34년간 서울시에 근무했다. 1994년 교통국장으로 중학교 동기인 최병렬 시장을 보좌하면서 버스중앙차로제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교통국장 재식 시절 서울시내에 에어컨을 단 버스가 처음 등장했으며 남산혼잡통행료가 부과됐다. 양천구 부구청장을 거쳐 99년 서울시 감사실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이명박 후보 정책특보로 ‘청계천 복원사업’ 공약 수립에 관여했다. 감성경영을 강조하는 학자풍의 제 사장은 지난 1월 7호선 방화사건이 터지자 역장들을 조기출근토록 하고 3급 이상 간부들은 새벽 1시 막차를 타고 순찰 후 귀가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02년 행정자치부의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으며 고객만족도 3년 연속 1위 등의 성과를 올렸다.
첫댓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