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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히브리서 5:1~10
오늘 본문 말씀 이전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요 하나님의 본체시며 말씀으로 세상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어 통치하시는 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천사보다 더 크신 분이시요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들인 여호수아를 상기시키면서 가나안 땅보다 더 완전한 하늘의 안식으로 인도해들이신 분으로도 소개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해오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세우사 말씀하신 아들로서 소개하신 바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모세가 선포한 말씀보다 더 엄중하고 더 큰 구원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믿음으로 온전히 붙들어야만 하늘의 가나안 안식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본체로, 말씀하시는 자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자로 소개하였는데, 오늘 본문 바로 앞선 히브리서 4장 14절 이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향하여 격려하기를, 대제사장이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직분이 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그 다양한 직분 중에서 대제사장직을 매우 깊이 있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또 다시 깊이 있게 다루겠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히브리서 5장 1절로부터 10절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대제사장이심에 대한 히브리서 저자의 진술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먼저 함께 읽겠습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을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먼저 대제사장직의 조건 중 하나로 그가 사람 가운데 택한 자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 역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 동족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도록 택함을 받았음을 언급합니다. 이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의 대제사장 우리 구주 예수님 역시 천사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하신 사람의 몸을 입은 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대제사장의 또 한 가지의 조건을 2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제사장의 조건으로 여기서 언급된 것은 그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하여 동정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추상같은 올바름만 가진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추상 같이 올바르고 죄를 전혀 용납하지 않는 자라고 한다면,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범죄하고 연약하여 쓰러진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긍휼한 마음으로 드려줄 수 없습니다. 그들을 단죄하고 심판하고 물리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식한 인간 곧 깨닫지 못한 채 죄를 범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미혹된 자는 유혹을 받아 곁길로 미끄러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연약함 때문에 유혹과 시험에 흔들려서 범죄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자들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품고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구약 시대 대제사장 아론 자신도 연약하여 시내산에서 우상 숭배에 동참하여 큰 죄를 저지른 바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대제사장들이 이런 저런 연약함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긍휼한 마음으로 드려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물을 드려 속죄하곤 했습니다. 레위기 16장에 보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 아론은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한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자기와 자기 집안을 위하여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린 후에 백성을 위한 염소의 제물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제사장 본인 자신이 연약하고 범죄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연약하여 넘어지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꺼이 용납하고 그들을 위하여 속죄의 사역을 행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계시면서 육체를 입고 계시면서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많은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죄만 없을 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배고픔, 자지 못함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온갖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영적인 시험과 육적인 시험을 다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시험을 다 몸소 겪으셨습니다. 그러한 시험을 겪으시면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고난과 유혹이 얼마나 강렬하며 얼마나 매혹적이며 얼마나 달콤하게 사람을 사로잡는지, 그 시험들이 얼마나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사람을 뒤흔들어 넘어뜨리고자 압박하는지를 체험적으로 잘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싸움에 동참하시며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넘어지려 하고 또 넘어졌을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위로와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주님께서 이처럼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당하셨고 그것과 끝까지 처절하게 싸워 이기신 분이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시험과 유혹에 직면했을 때에 당황하거나 낙심하거나 쉽게 자포자기하고 주저앉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겪는 이 시험을 주님께서도 동일하게 겪으셨으며 지금 나의 모든 싸움을 주님께서 보고 계시며 이기기를 누구보다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끝까지 시험과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 앞서간 믿음의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에 우리도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음질치고 있는데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무거운 세상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버리고 보좌에 앉으신 우리 믿음의 주인님 되신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그는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죄와 대항하는 끈기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징계하실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채찍질하신다는 점을 믿고 기꺼이 징계를 달게 받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죄와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연약한 자, 흔들리는 자, 시험에 직면하는 자들을 우리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여 우리 주님께 중보 기도하며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 또 한 가지의 대제사장 자격 조건을 언급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불러 세웠기에 대제사장직에 오른 것입니다. 출애굽기 28:1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출애굽기 28:1,2)
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불신하고 스스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겠다고 나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250명의 명망 있는 지휘관들과 백성들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고라 일당을 땅을 갈라 삼켜버리셨습니다. 또한 아론의 살구나무 지팡이에 하룻밤새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표적을 보여주심으로써 아론과 그 자손들을 주권적으로 택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래도 항의하며 대드는 일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써 염병으로 만 사천 칠백 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아론의 대제사장 직분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된 것임을 확실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 후반부에 시리아 왕국과 로마 제국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임의로 대제사장을 임명함으로써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무시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나 분봉왕 헤롯 왕가나 혹은 강도떼들에 의하여 대제사장이 임명되는 비성경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셨으니 이는 인간의 대제사장 직분의 때가 그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대제사장 직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뜻대로 부르시는 것이지, 결코 인간 스스로 그 직분을 취하거나 사람이나 정치 권력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도 이러한 주님의 주권적 부르심이 없이 스스로 주의 종이 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의 바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권유나 본인 자신의 욕심으로 주의 종이 되고자 나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과정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아닐진대 그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도중에 그만 두고 맙니다.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고난이 있으면 도중에 그만 둡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섬기도록 부르심받은 그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은 친히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의 확신이 있어야 온갖 시험과 고난을 뚫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인간 대제사장의 조건들을 하나씩 충족시키는 것을 히브리서 기록자가 이어서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우리 주님을 대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을 말합니다. 5절로부터 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2:7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게로 부르심의 근거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시편 110편 4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으로 부르심의 근거로 언급합니다. 시편 2편이나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로서 다윗의 자기의 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왕으로서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메시야 시편입니다. 그런데 그는 왕이시면서도 동시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라고 그 두 시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제사장에는 레위 지파의 아론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제사장 직 반차가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왕이자 동시에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가 있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과거 아브라함이 동방의 연합군 그돌라오멜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맞이하여 축복하였던 살렘 왕 멜기세덱을 의미합니다. 그를 두고 모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전혀 뜻밖에 나타난 존재로서 왕인 동시에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장차 올 메시야가 아론의 반차 말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론의 반차가 불완전함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작정을 따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그리스도 예수를 세웠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왕중 왕이시며 동시에 대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대제사장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합니다. 시편 110편 4절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이르신 말씀대로, 우리 주 예수님은 다시는 폐하지 않는 영원히 존재하는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의 반열보다 훨씬 더 월등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 한 가지 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여기서 강조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하고 미혹된 자들을 능히 용납하고 도와주시는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7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로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대제사장의 조건 중에 하나는 무식하고 미혹된 자도 능히 용납할 수 있는 동정심을 가진 자라야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로 계시는 날들을 통하여 그렇게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경험하셨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고 하였는데, 원문 말씀을 보면, “그는 육체로 계실 때에”가 “그는 육체로 계시는 날들 동안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날에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린 것이 아니요 그가 육체로 계시는 모든 날들 가운데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리곤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울보처럼 지내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시면 그 성을 보시고 우시곤 하셨고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르다가 울면 함께 우시면서 나사로의 죽음을 인하여 통분해 하시며 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우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지내시던 많은 날들 동안 고난을 많이 겪으셨고 많이 우시면서 기도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그의 눈물과 통곡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사역하실 때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시며 놀라운 이적들을 그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가 육체로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겪으셨는데, 아들이실지라도 그에게 고난이 면제되지 아니하셨으니, 그 이유는 그가 받으신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우다’라는 헬라어 원문 동사 ‘만싸노’는 ‘머리로 깨달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여 하나씩 배워서 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진 이 땅에서 겪는 많은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시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 순종함을 하나씩 온 몸으로 배워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함을 고난을 통과하면서 온 몸으로 체득해가심으로써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고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아기로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우셨을 때에는 인간을 구원하실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그 고난을 통하여 대제사장으로서 더욱 온전히 구비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기에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의 고난을 온전히 온 몸으로 감당하시고 그로 인하여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7:28 말씀에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난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손종함을 배워서 그로 말미암아 온전해지신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믿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게 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10:14 말씀에 이르기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의 순종도 온전치 못하셨을 것이요 그의 대제사장 직분도 온전치 못하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육체로 계시는 모든 날들 동안에 온갖 고난을 겪으시면서 온전히 순종함을 온 몸으로 배우셔서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셨기에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시험 중에 우리를 돕기에 능하셨고, 그를 믿는 우리도 능히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게 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그 숱하고 끈질긴 고난을 우리 주님께서 견디시면서 이기심으로 인하여 온전한 순종을 배워서 마침내 그를 순종하는 모든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게 되신 것이니,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온전히 견디시면서 끝까지 순종하신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가 우리에게 남겨두신 고난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우리의 순종을 온전히 만드는 기회로 삼고 끝까지 잘 견디도록 합시다. 그 고난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믿음을 가진 자는 그 믿음이 곧 주님을 본받아 끝까지 순종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온전하신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요 그래서 고난 중에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이요 우리의 순종도 온전케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온전히 고난을 견디면 우리 또한 연약한 자들을 돕는 중보의 손길이 되어 넘어질 자를 세워가는 주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를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온 몸으로 배워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온전케 하시는 우리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