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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언니는 10년 만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당신 딸보다 더 챙기고 정을 주셨던 언니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외가 쪽에 다니러 갈 일이 있으시거나 여행을 가실 양이면
자주 언니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던 저보다
언니가 오히려 그 여행에 많이 동반했더랬죠.
아마도 어머니께선 친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양어머니 품에서 자란 조카딸이
못내 애틋해서 그리하셨던 것이겠지요.
그 고모를 언니도 어머니처럼 따르고 사랑했던 것이구요.
그런 언니가 장례식 이후 10년의 세월을 두절하고 지내는 것이 전 섭섭하기보다는 무척 이상스러웠습니다.
고모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도,
그리고 졸지간에 어머니를 잃은 저의 충격과 슬픔을 헤아려려서라도
한 번쯤은 연락을 해올 만도 했는데 말입니다.
10년만에 연락을 해온 언니는 울면서 말하더군요.
고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고모부가 재혼을 생각하신다는 소릴 듣고 너무나 배신감을 느꼈다고,
고모부가 너무나 미워서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모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런 언니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언니, 언니도 이젠 늙는구나.......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죠.
사랑은 언니가 더 받았지만 그래도 조카딸은 한 다리 건너인 모양이라고,
딸인 나는 오히려 아빠가 재혼을 하시길 바랬노라고,
그래서 아빠가 금슬 좋던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잊고 여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랬노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딸의 효심이 부족했는지
아버지는 젊고 예쁜 할머니를 만나지는 못하셨고
대신 싸이클을 연인 삼아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내십니다.^^
그리고 나서 10년만의 식사가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어머니의 존재가 안 계시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는 여전히 삶의 한 복판에서 당당하게 그것과 겨루고 있었고
아버지는 예순셋이셨던 그때처럼 일흔 셋의 삶과도 여전히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넷이었던 그때처럼 마흔넷이 되어서도 여전히 삶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딸을 위해 지어오신 약을 두고선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고 나서 먹을 게요, 그렇게 철딱서니 없는 말을 뱉고 말았으니까요.
열심히 먹을게요, 그 거짓말이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처럼
마흔넷이 되어서도 삶을 모르는 딸은 기어코 아버지를 상심시켰던 것이죠.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10년 전처럼 시간이 아버지의 상심을 위로하도록 방치하는 무책임과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아서
얼른 아버지께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 쯤일겁니다.
저는 이렇게 아버지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열심히 먹을게요,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아빠,
마흔넷의 딸은 여전히 삶을 모르겠지만
삶이 더이상 즐기거나 혹은 견디고 겨루어야 하는 무엇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삶은 배워서 개선하려 해도 이미 제 앞에서 저를 앞서가는 무엇이고,
감히 얼굴을 들어 명확히 그 모습을 파악하려 해도 파악할 수 없는 존엄한 무엇 같아요.
일회성의 모든 것들이 가진 가벼움과는 달리
삶은 일회성이어서 더할 수 없이 무겁고,
그래서 그것과 겨루고 그것을 견디고, 혹은 그것을 배워 알려들기보다는
그것을 또 한 분의 압빠, 아버지께 그대로 봉헌하고 싶을 뿐이에요.
아빠를 통해 제게로 왔지만 아빠의 것도 제 것도 아닌 그것을 너무 오래 제 안에 가두어두었고
제 존재보다 크고 무거운 그것을 제 안에 가두려 했던 어리석음과 언감생심의 세월이 부끄럽고 버거워요.
그리고 아빠,
아빠께는 <가나 초콜릿>을 보냅니다.
꼭 1년 전, 작년 2월 아빠와 둘이서 함께했던 여행의 기록이고 아빠게 드리고 싶은 제 작은 사랑입니다.
책으로 엮어서 드리고 싶었지만 번듯이 그리 못해 드려서 죄송해요.
번듯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빠가 아니라 저인 것만 같아서,
휴대폰의 문자처럼 작고 사소한 것을,
휴대폰의 문자를 보내듯이 더 늦기 전에 보내드려요.
가나초콜릿
머리를 자르려고 결심한 손님의 눈과 결심 없이도 머리를 자를 수 있는 미용사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하나의 소망이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머리를 잘라주어야 하는 하나의 의무가 그 뒤에 서 있었다. 여자는 가위를 들고 있는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며 왼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거울에 비친 나의 소망은 매우 빈약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미약한 소망을 품는 것은 강렬한 소망을 품는 것보다 힘에 겨웠다. 강렬한 소망은 사랑처럼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나 미약한 소망은 미열(微熱)처럼 인간을 성가시게 할 뿐이다. 나는 나의 미약한 소망이 부담스러웠지만 작고 예리한 가위를 들고 있는 여자는 자신의 의무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듯했다. 자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삶을 선택한 그녀는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나의 미약한 소망을 품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를 잠시 고민하는 동안 여자의 의무는 씩씩하게 앞으로 전진해왔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미용사는 내 소망의 모양새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오른손을 들어 올린 몸짓, 그 안에는 이미 그녀만의 계획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길이만 잘라주세요. 3cm 정도.
소망의 강도가 미약한 것 이상으로 소망의 내용도 단순했다. 내가 나의 단순한 소망을 말하자 여자가 가위질을 시작했다. 그녀가 정확히 3cm를 잘라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말한 3cm의 길이가 내가 원하던 바였는지도 사실은 알 수 없었다. 3cm를 잘라내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와 3cm를 잘라냈다고 생각한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여자가 물었다.
-마음에 들어요?
지겨운 문장이었다.
마음에 들어요?, 이 질문은 늘 질문이 아닌 강요처럼 느껴진다. 미용사들은 의문형의 그 문장에서 물음표를 제거한 ‘마음에 들어요’, 그 서술형의 문장을 유순하게 되뇌어 줄 것을 무언으로 강요했다. 그들의 강요에 굴복할 만큼 나는 충분히 비열했다. 나는 언제나 내 안의 나를 거슬러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힘겹게 헤엄쳐 갔다. 그러나 내가 도달한 그곳은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이 아니었다. 길을 잃은 회귀성 물고기처럼 혼란스러운 호흡을 정돈하고 나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예, 마음에 들어요........
이를테면 나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관한 자신의 의지조차 미용사에게 관철시킬 줄 모르는 인간에 속했다.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고 나면, 미용사들은 늘 가벼운 손놀림으로 그들의 의지를 내게 관철시켰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 나의 어투, 나의 눈빛---나에게서 발산되고 노출되는 모든 것들을 그들은 재빨리 분석해, 내가 얼마나 손쉬운 손님인지를 간파해냈다. 그들이 간파했다는 표현은 그러나 진실에서 멀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 정보를 그들에게 흘린 것, 그것이 진실이었다.
헤어스타일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사소한 취향을 희생해 나는 보다 큰 것을 얻고 싶었다. 나는 나의 미약함과 유순함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싶었다. ‘마음에 들어요’라는 문장은 이를테면 화목제(和睦祭)의 제문(祭文) 같은 것이었다. 미약하고 유순한 통치자! 그는 만인(萬人)이 만인(萬人)과 투쟁하는 세상을 만인이 만인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낙원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법은 너무도 시대착오적이었다. 그 위대한 사랑법을 설파하고 몸소 실천한 한 남자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나는 세기가 스무 번 바뀐 시대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그 사랑법에 서툴렀고 그것이 힘에 겨웠다.
-저, 잠깐만요.
나는 거울 속의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자가 가위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뇨. 죄송한데요, 소파 위에 제 가방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아, 네.
여자는 내 입이 중대한 불만이 아니라 사소한 부탁을 말하자 흔쾌히 그것을 들어주었다. 나는 여자가 가져다 준 가방 안에서 초콜릿을 꺼내 종이 포장지를 벗겨냈다. 황금빛 속지로 싸여 있는 초콜릿의 고귀한 자태가 드러났다. 초콜릿이 황금빛 속지로 싸여있다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합당한 일이 또 있을까?
-제가 저혈당이 있어서요. 좀 드시겠어요?
나는 황금빛 속지 채로 초콜릿을 반으로 잘라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다소 엉뚱한 제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초콜릿을 집어 들어 미용구들이 놓인 선반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날씬해서 좋으시겠다. 초콜릿을 가방에 다 넣고 다니시고.
-저, 초콜릿 먹어도 방해 안 되죠?
-그럼요.
나는 초콜릿의 금박포장을 벗겨냈다. 가나초콜릿의 포장단위 당 그램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것은 내게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기 전에 혈당치의 하락을 의미했다. 그것이 47kg 육체의 혈당치를 상승시켜 줄 수 없게 되는 순간, 나는 소비자 고발을 하거나,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용량이 보다 큰 외제 초콜릿을 사기 위해 경제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초콜릿의 껍질을 벗긴 후 나는 그것을 쪼개지 않고 평소 습관대로 베어 물었다. 초콜릿이 발치(拔齒)한 사랑니의 동굴 같은 공허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초콜릿에 탐닉하는 여자의 눈과 초콜릿을 두려워하는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여자가 가위질을 멈췄다.
-마음에 들어요?
여자는 자신이 정확히 3cm를 잘라냈다는 전제 하에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당신이 말한 대로 3cm를 잘라냈어요, 마음에 드시죠?
거울 속에는 60년대의 귀밑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정확히 3cm를 잘라냈다면, 3cm를 잘라내고 싶어 한 나 자신에게 불만족의 책임이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칼에 자(尺)를 들이대면 이 불만족의 책임 소재가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머리칼을 집어 올리고 자를 들이대는 행위 대신, 사람들은 보다 교양 있게, 감정을 통제하며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너무 짧네요....... 교양과 자기 통제력이 결여된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 머릴 이 따위로 망쳐놓으면 어떡해? 그러나 내 입에서는 교양과 통제력의 유무(有無)와는 관련이 없는 엉뚱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초콜릿이 혈당치를 상승시킨 때문이었을 것이다.
-커트 머리로 잘라주세요.
조금 더 잘라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여자는 3cm의 길이를 어림하는 나의 눈썰미가 형편없는 것임을 나 스스로 인정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나의 눈썰미를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3cm 자른 거 맞아? 날더러 60년대 촌년 같은 귀밑 단발로 나다니란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여자는 3cm의 길이를 어림하는 그녀의 눈썰미가 모욕당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증명되지 않은 그녀의 오류 역시 추궁하고 싶지 않았다.
커트 머리로 잘라 주세요, 나는 그 제안을 통해 나 자신과 미용사 모두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 말 속에는 또한 나의 오랜 피로가 담겨 있었다. 나는 소요(騷擾)를 원치 않았다. 단발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전제로 벌어지던 모든 소요는 커트 머리라는 헤어스타일이 새로운 전제가 되는 순간 미용실 안에서 증발해버렸다.
침묵의 소요가 증발하고 난 후에 남은 침묵은 본래의 침묵보다 더 무거웠다. 여자의 가위질은 길고 무거운 머리채 같은 침묵을 잘라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숱 가위의 사용이 너무 잦았다. 여자는 경력이 미천한 미용사들처럼 손쉬운 방법으로 내 머리를 잘라나갔다. 숱 가위를 사용하면 절단면이 넓어져서 머릿결이 푸석해 보인다는 것쯤은 여자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미용지식을 말하지 않는 여자와 자신이 알고 있는 미용지식을 실행하지 않는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여자가 가위질을 멈췄다.
-마음에 들어요?
-조금 더 짧게요.
-지금이 딱 좋아 보이는데.......
-더 잘라주세요.
나는 내가 원하는 짧음의 길이를 더 이상 숫자로 말하지 않았다. 길이를 어림하는 눈썰미도, 자를 들이대는 천박과 노골도, 그리고 일반적인 형태의 교양과 통제력도 소지하지 못한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이란 모호함 외에는 없었다.
여자가 가위질을 멈췄다. 두발 자유화가 노예 해방 선언처럼 담임선생의 입에서 선포되던 다음 날, 나는 미용실에서 커트 머리의 자유를 구가했었다. 그 80년도의 커트 머리가 거울 속에 앉아 있었다.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들어요?, 여자는 가슴 속에 녹음기가 장착된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싫증난 장난감을 밀쳐내듯이 나는 그 말을 반복하는 여자를 밀쳐내고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의 커트 실력은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여자의 솜씨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도달해야 할 목표지점 전에 멈춘 것처럼, 무언가 부족했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짧게요.
자연스러운 단발머리에 대한 미약한 소망, 그 미열 같은 소망은 내 안에서 사라졌다. 미약한 소망이 사라진 자리에 강렬한 열망 하나가 열대의 수목처럼 빠르게 자라났다. 긴 머리의 전제로부터 떠난 내가 움켜쥐고 싶었던 것은 커트머리나 스포츠머리 같은 또 다른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지점은 절대적 짧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음은 삭발의 스타일 안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무엇이었다. 절대적 짧음이란 짧음의 절정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것은 기실 짧음과는무관한 전혀 새로운 무엇이었다.
-더 이상은 안 돼요. 그럼 스포츠머리 되는데.
-예. 스포츠머리로 잘라주세요.
-네?
-스포츠로 잘라주세요.
여자는 몹시 당황했다. 신앙의 대상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교주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여자가 물어왔다.
-괜찮겠어요?
-네. 잘라주세요.
여자는 단발에서, 커트로, 그리고 다시 스포츠머리로 급격히 변천하는 한 여자의 외모와 그녀의 변덕 앞에서 잠시 넋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자는 나의 변덕을 탓하지는 않았다. 물론 자신의 눈썰미나 커트 실력을 탓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용실 안을 지배하는 어떤 무거움이 변덕, 눈썰미 따위의 사소한 모든 것들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정수리의 머리칼이 천정을 향해 일어섰다. 도달할 수 없는 짧음의 언저리에서 슬퍼하는 여자의 눈과 자신이 도달한 짧음에 놀란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여자는 급히 내 목덜미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검은 스펀지로 내 이마와 목덜미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여자는 더 이상 ‘마음에 들어요?’라고 묻지 않았다.
-에센스 발라 드릴까요?
-고맙습니다.
여자가 투명하고 작은 플라스틱 병 안에 담긴 액체를 두 손에 비비더니 재빠르게 내 머리칼 위로 도포했다.
-실크 성분이 들어 있어서 손바닥에 금방 흡수되거든요.
여자는 나의 머리칼 이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진정시켜야 할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값비싼 실크 성분의 에센스를
연거푸 내 머리에 발라댔다. 여자가 차마 더 이상은 묻지 못하는 그 문장을 말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갑자기 나를
사로잡았다. 자기 안의 진실에 충실한 삶보다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대열 안에 합류하고 싶었다. 의무에
충실한 삶은 진실에 충실한 삶보다 수월할 것이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두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나는 여자가 묻고 싶어 한 말에서 의문부호를 떼어내, 여자가
듣고 싶어 한 말로 바꾸어 건네주었다.
-마음에 들어요.
손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여자의 눈과 미용사의 마음을 아는 여자의 눈이 거울 속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는 웃었다. 여자는 웃었지만, 우는 것처럼 보였다.
-사용하시는 에센스 있으세요?
-없는데요.
-그럼, 이거 하나 써보세요.
여자가 매니큐어들이 진열되어 있는 선반에서 매니큐어 병 크기의 에센스 샘플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혹시 블러셔 갖고 계세요?
-네?
여자는 줄거리가 없는 이야기의 예측할 수 없는 결말에 내내 귀를 기울인 사람처럼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 네. 잠깐만요.
여자는 계산대 우측의 캐비닛에서 핸드백을 꺼냈다. 그리고는 동그란 은색의 케이스에 담긴 블러셔를 내게로 가져다주었다.
-색깔이 어떨지 모르겠네.
은색의 케이스 안에 핑크빛 케이크가 담겨 있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케이크의 표면에 화장품 제조사의 로고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핑크빛 블러셔를 양 쪽 볼에 발랐다. 색이 다소 옅었다. 작은 휴대용 브러시가 여러 번 나의 뺨 위를 오갔다.
-좋아보이세요. 짧은 머리랑 잘 어울려요.
얼굴을 호위하고 있던 머리칼이 몽땅 사라지자, 단조로운 얼굴은 더 단조로워 보였다. 그 단조로움의 지대에 핑크빛 반란군이 진군하자 단조로움은 순순히 물러났다.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세요?
여자가 웃었다. 나의 귀가 나의 입에게 웃었다. 마음에 드세요?, 그 말을 늘 듣고만 살아온 나의 귀가 처음으로 그 말을 먼저 물은 나의 입에게 웃었다.
.
.
.
브라운 톤의 블러셔가 마지막으로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빠뜨린 것이 없나? 나는 잠시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빠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빠진 것이 없이 온전해진 여행용 가방 안은 그러나 여전히 넓고 공허해보였다.
어머니와 집을 그리워하던 여섯 살의 여름---내가 마지막 그리움으로 명명(命名)한 그것이 가방 속에 보였다. 나는 스물여섯 살의 그 여름에 여섯 살의 여름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이면 <흰 봉투> 같은 것들도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스물 여섯의 여름 이후 나는 그리움 같은 것을 가방 안에 집어넣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로, 그 어떤 것에도 나를 실어 보내지 않기로 작정하고 나는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그때는 한 인간의 삶속에서 수습되는 그리움들이야말로 성불(成佛)의 사리와도 같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스물여섯의 여름을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명명하고 그것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가방 속의 공허가 좋았다. 곧 서른셋의 이 겨울도 새로운 그리움으로 명명될 것이고 이 가방 안에 소중하게 담겨질 것이다. 나는 나의 무릎과 골반에서 수습된 그리움들이 작은 옥합 하나쯤은 채울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아버지는 대문 밖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멋지구나.
-마음에 드세요?
아버지는 대답 대신 웃었다. 아버지는 내 헤어스타일에서 흔히들 연상하는 실연(失戀)을 읽지는 않은 듯했다. 읽었어도 묻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어차피 그 아픔도 곧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될 테니까.
남포의 언덕---지하수를 발견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된 리조트 부지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잡
초들의 지대가 소나무 숲의 발치까지 뻗어 간 것이 보였다. 그러나 지엄한 존재 앞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듯 그것들은
소나무들의 발치에서 몸을 굽혔다. 잡초들이 몸을 낮춘 곳에서부터 붉은 융단 같은 소나무의 낙엽송이 두텁게 절벽 쪽으
로 이어졌다. 절벽 위로 불어오는 광포한 바람은 내가 그것을 처음 맛보았던 이후로 매년 나를 유혹했다. 해풍이 겨드랑
이 밑으로 파고들어 새의 날개가 감지하는 부력을 인간에게 선사하는 곳이었다.
-멋지죠?
-그래.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
-따뜻할 때 오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지금도 좋은 걸.
따뜻할 때를 기약할 수 없어서, 이 겨울에 나선 걸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질없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할 때를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무심히 그 말을 꺼낼 수 있었던 잠시가 좋았다. 아버지의 대답도 마음에 들었다. 기약할 수 없는 때를 갈망하지 않는 아버지의 평화가 좋았다.
2월의 바람은 날을 세운 칼과 같았다. 겨드랑이는 부력을 받아 펼쳐지기 전에 딱딱하게 오그라들었다. 날개를 펼치기 전의 어린 새처럼 나는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언덕을 내려왔다.
만대 포구는 맑고 고요했다. 섬들의 발치를 바다가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다. 그러나 시동을 끄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갈까요?
-그래.
포구의 축대에 와 부딪히는 파도는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정겨웠다, 승용차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멈췄다. 아버지 연배의 노인이 차에서 내렸다. 타지(他地) 사람인 아버지가 먼저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람 쐬러 나오셨습니까?
-만리포에서 오는 길이오.
나도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물이 맑네요. 어르신. 기름 유출 후에 바다가 궁금했는데......
-작년에도 여기는 온전했지유. 만리포에서는 프린스 호(號)가 처박힌 것이 저만치 보였지만 말여.
고깃배가 휘저어대지 않는 바다는 고요했다. 바람 속에서는 비린내 대신 간간한 해초의 냄새가 났다.
-지금 만리포는 난리여요. 물이 썰으니께 감태가 그득히 쌓였는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는 자루마다 미어지게 퍼 담드만. 마누라도 거기 냄겨 두고 왔슈.
-아무나 가져가도록 그냥 두나요? 협동조합 같은 데서 관리 안 하구요?
-워낙 많으닝께. 돈도 되지 않는 것이구.
-매생이는 비싸던데요.
-매생이? 그게 감태랑 같은가. 남쪽에서나 나지 여긴 있지도 않어유.
-그렇군요.
-귀허니께 암만혀도 비싸지. 왜, 매생이 잡술라구?
노인의 무엇이 내 심중을 꿰뚫어보았을까? 시인(詩人)이 노래한 그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노래한 그것, 미운 사위에게 끓여준다는 그것을 아버지와 먹고 싶어 한 딸을 노인은 어떻게 읽어냈을까?
-예.
-횟집에는 있을 겨.
-고맙습니다. 어르신.
나는 대천 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태풍이 왔던 해의 대천에서 종아리에 탄환처럼 박혀오던 모래알들이 떠올랐다. 그 고통조차도 그리웠다. 나는 아버지의 예정된 죽음을 대신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지나간 모든 것들을 무분별하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마치 오늘 태어난 아기처럼 자기 앞의 것들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바다, 하늘, 바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아기처럼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횟집의 납작한 수조 안에 매생이가 있었다. 매생이, 그 바다풀을 뭉쳐놓은 모습은 마치 낯선 바다생물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우럭 회와 매생이국을 먹었다.
서산(瑞山)이 지척이었다.
-아빠, 서산 들르셔야죠?
-그냥 가자. 명절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니.
아버지가 서산 행(行)을 원치 않은 것은 명절의 귀향이 가까운 과거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이 여행을 온전히 딸과의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서산을 들르지 않은 대신 서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섯 살의 그 여름과 이후의 1년이 기록된 곳이었다.
-아빠, 그때 있잖아요. 왜 저만 서산에 남겨두고 가셨어요?
-넌 학교에 다니기 전이었으니까........
나는 사촌오빠의 품에 안겨 떠다니던 저수지와 당숙 집 큰 언니가 이불 속으로 들이밀던 흰 소복의 귀신 이야기를 추억했다.
-감나무 위에 지어진 오두막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던 게 제일 좋았어요.
그 오두막에서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여름은 흘러갔다. 아버지는 자신의 유전자와 함께 자신의 유년(幼年)이 딸의 역사 안에도 고스란히 유전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모든 새로움과 즐거움들이 지루함과 그리움에 자리를 내어주고도 긴 시간이 흘렀을 때서야 삼촌이 나타났다. 오빠가 밀린 일기를 하루에 일주일 치씩 써내려가던 여름방학의 끝자락이었다.
-삼촌이 오빠 손을 잡고 생강 밭 옆으로 난 길을 걸어서 진고개를 넘어갔어요.
나는 두 사람 중에 하나라도 뒤를 돌아봐주기를 기대했다. 내가 남겨진 것이 일종의 착오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깜빡하
고 나를 잊은 걸 거야.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 서 있는 나를 발견하면 돌아와 나를 데리고 갈 거야....... 그러나 그들은 점
점 멀어져서 두 개의 점으로 변하더니 결국은 고개 뒤로 사라졌다. 두 개의 점을 삼켜버린 먼 고개와 매미도 기가 질릴 법
한 늦더위, 그리고 무거운 적막만이 그려진 목판화, 그 풍경만이 가슴 위에 조각도로 새긴 듯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남았
다.
-울었니?
나는 울지 않았다. 그때 눈물로써 자신의 고통을 위로해주지 않은 나는 잔인하고 어리석었다. 내가 울었다면 나는 자신에게, 혹은 그 누군가에게 위로받았을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고, 할머니는 내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여름 내내 자라난 손톱을 깎아주었다.
여름의 끝에서 중추(中秋)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장터로 가는 길을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장터까지 혼자 나가지는 않았다. 나는 여섯 살 박이 아이다운 겸손으로 열아홉 살 고모의 손을 붙잡고야 장터 나들이를 나서곤 했다.
-한번은요, 고모가 어떤 녀석이 장터 흙길을 파고 묻어둔 작은 똥독에 발이 빠졌어요.
고모의 뺨은 달궈진 조개탄처럼 붉어져서 뺨에 가득한 주근깨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열아홉 살의 고모는 늦은 사춘기를 맞고 있었다. 뱃속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내 얼굴도 고모의 얼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빨간 우체통이, 서울에도 있는 그것이 장터에도 있었다. 초로의 늙은이가 우체통 안으로 편지를 집어넣었다. 고모도 할머니의 편지를 우체통 안으로 집어넣었다. 서울의 아들에게,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엄마의 시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할머니가 제 기다림을 적어 보냈길 바랬어요.
-애초에 널 오래 시골에 둘 생각은 아니었어.
첫 결정의 권한은 서른다섯 살의 어머니가 행사했다. 첫 결정---두 아이 중에 한 아이만을 데려오라고 말한 선택에 대해 스물한 살의 내가 물었을 때, 어머니는 말했다. 왜, 너도 데려오라고 했었지....... 삼촌이 두 번째 결정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라면, 나는 삼촌의 그 놀라운 ‘모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삼촌에 대한 찬사 대신에 어머니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형수의 밥을 얻어먹는 스물두 살의 시동생은 감히 그런 모반을 꿈꾸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거짓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넌 별 걸 다 기억하는구나.......
-위로나 사과 같은 걸 하실 줄 몰랐기 때문에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랬을 거다.
여섯 살의 내게도 세 번째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나는 소리내어 울 수 있었다. 내가 울지 않은것, 내가 나의 권리를 포기한 것은 자신이 한낱 여섯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소심함과 수동성과 연관된 것이었다. 내가 선택되지 못한 것, 내가 남겨진 것이 누구의 의지였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의지였든 삼촌의 의지였든, 또 다른 타인의 의지였든, 나라는 아이는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흉터를 남기지 않고 잘 아문다는 것이 외과 의사의 소견이라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한 인간의 평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정신과 의사들의 소견이었다. 드러나는 상처를 다루는 사람과 감춰진 상처를 다루는 사람의 소견은 그렇게 달랐다. 그리고 그 둘의 소견은 모두 옳았다.
-제가 여름 내내 무궁화 꽃술을 뜯어 낸 거, 얘기 안했죠? 꽃술을 세면서 엄마랑 아빠가 오실까 안 오실까를 매일 점쳤어요.
여섯 살 박이 계집아이가 작은 꽃나무에 가하는 폭력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폭력 속에 감춰진 진실---슬픔이었던 그것은 점차 분노로 변해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진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물음은 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추억하기를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진실은 힘겨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오빠와 여섯 살 박이의 나, 그리고 세 살 박이 쌍둥이라는 힘겨움 중에 나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것, 그것이 어머니의 사소한 진실이었다.
-이듬해 추석 때 너를 데리러 갔었지.
-네. 아빠와 엄마가 진고개를 넘어오실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매일 매일 고개 마루를 지켜보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마치 매일 외운 주문이 드디어 엄마 아빠를 빚어내서 고개 위로 올려 보낸 것 같았어요.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왜 갑자기 멈췄니?
-아빠가 새엄마를 데리고 오는 줄 알았거든요.
새 원피스를 입고, 퍼머 머리를 한 어머니의 모습은 낯이 설었다. 나는 새 원피스의 낯설음 속으로 달려들어 얼굴을 묻었다. 그 낯설음 속에 그리움이 있었다. 숨이 막힐 듯 그리웠던 어머니의 체취 속에 나는 오랫동안 얼굴을 묻고 서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젖먹이도 아닌 내가 남겨진 것, 그것은 맏이나 막내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겪는 사소한 슬픔이었다. 그 사소한 슬픔, 둘째로 태어난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그 슬픔에 나는 처음부터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에게 일말의 이득을 나누어주지 않는, 그런 합리에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인간에 속하지 않았다.
-영안아, 올해 네가 서른셋이지?
-네.
서른셋---그 나이가 가당치 않은 작위(爵位)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거슬러 달려 나는 여섯 살 박이 아이로 축소된 것만 같았다. 여섯 살 이후로 나는 내 안의 내가 더 빨리 자라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그때 겉과 속이 모두 여섯 살짜리 계집아이에 충실한, 그런 아이였다. 말하자면 여섯 살의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나와 그리고 내 안의 나는 심한 분리불안과 발육부진을 겪었다.
-나이는 갑자기 왜요?
-27년이 흘렀구나.
나는 서른셋의 발육부진에 대해 아버지께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 그 여름 이후에 제 인생이 다소 고달파진 거 아세요? 또 남겨질까봐 무서워서, 언제나 환영받는 인간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넌 본래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본래부터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사랑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27년 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무엇을 손해 본 것일까. 아무 것도 달라지거나 손해 본 것은 없었다. 사소한 불행을 과대포장해서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싶어 하는 피해망상 환자가 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단지 27년 동안 사람들 앞에서 <마음에 들어요>, 그 문장을 우울하게 읊조리는 인간이 되었을 뿐이다.
-아빠, 다시 만날 걸 믿는다고 말해주세요.
-헤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아버지에게 믿음을 말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믿음이 내 믿음보다 컸다.
-아산으로 가실래요? 아니면 도고로 가실래요?
-도고로 가자.
우리는 동백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의 자세는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이 싫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세가 세련되었다면, 그 세련됨도 싫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기러기>나 <저어새>와 같은 이름의 파일 대신 <그리움>이라는 파일을 만들어 그 안에 아버지와의 1박2일을 모두 담고 싶었다. 21번 국도를 탔을 때,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피곤하면 말해라.
-피곤하지 않아요. 편의점 나오면 차 세울 테니까, 초콜릿 좀 사다 주세요.
줄리엣 비노쉬---순수와 절망의 상징이던 여배우는 이제 퍼머머리의 중년이 되어 초콜릿 가게의 계단 위에 서 있다. 그녀가 길을 가던 검은 두건의 여인에게 미소를 보낸다. 그녀의 미소는 쇼윈도우에 진열된 초콜릿들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검은 두건의 여인은 중세풍의 시골마을에 달콤함을 만연시키는 20세기의 마녀를 두려움과 적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올려다 볼 뿐이다.
친구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들고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초콜릿이 자신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때, 나 역시 검은 두건의 여인처럼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초콜릿은 이를 썩게 하는 나쁜 음식이랬어....... 그리고는 친구의 손에 들린 그 부드럽고 매력적인 검은 빛깔의 유혹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친구의 손으로부터 그것이 선뜻 내 손바닥 위로 전해진 순간, 나는 그 네모지고 조그만 초콜릿 조각에서 천국을 맛보았다. 내게는 더 이상 초콜릿에 대해 냉담을 가장할 이유가 없었다. 천국의 달콤함---그토록 간절히 소망하던 것이 내게 허락된 것이다!
아버지는 다섯 가지의 초콜릿을 내게 건네주었다. 크런치 타입의 것, 격자 모양의 넓적한 것, 막대 모양의 것, 우유 빛깔의 마블링이 있는 것, 땅콩에 색색의 초콜릿을 입힌 것....... 나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그 풍요로움을 받아들었다.
-당뇨가 외가(外家) 내력인 건 알지?
-내력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건강검진은 하고 사니? 요즘 혼자 사는 아이들은 제 앞가림을 잘들 하드라만.
-아직은 좋아요.
아버지는 일도, 사랑도 묻지 않고 나의 건강만을 물었다.
-그래. 특히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면 안 된다. 니 엄마처럼.
-걱정 마세요.
나는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아버지가 황금빛 속지를 벗겨 건네주는 가나초콜릿을 베어 물었다.
-잘라주랴?
-괜찮아요. 아빠도 드세요.
아버지는 봉지 안에 담긴 형형색색의 낯선 천국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 곧 천국은 아버지에게 익숙한 것이 될 것이다. 초콜릿을 입에 집어넣는 아버지는 천국의 삶을 예행연습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달구나.
천국은 초콜릿처럼 달콤할 것이다! 천국과 그것의 달콤함을 확신하는 순간, 나는 지옥이라는 단어를 내 사전(辭典)에서 지워버렸다. 지상에서 이미 지옥을 견뎌낸 이들에게 신(神)은 오로지 천국만을 준비해 놓았을 테니까.
-하나 더 주랴?
-네.
초콜릿의 신비로운 달콤함은 잠시 혀를 애무하다가 아쉽게도 미각세포가 존재하지 않는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크게 아쉬워 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위장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붉은 피 속으로 녹아들어 갈 것이다. 기대한 대로 포도당은 곧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나의 영혼에 도달했다.
오래 전, 친구가 한 조각의 초콜릿을 건네주었던 그날처럼, 나는 초콜릿이 인간의 우울함을 위로하고 고통을 희석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초콜릿---그 천국의 샘플을 나는 연신 입으로 운반했다. 아버지는 차창 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조각의 천국에 자족한 듯이 보였고, 당신이 향해 갈 천국을 어두운 차창에 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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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어요....행복한하루되세요...~~~^&^ 1004
그대의 글에 심오함이 내 머리를 쪼고 있다오.... -.-;;
언니의 유머는 제 우울함을 쪼아주네요^^ 바이올린 연주 한 번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