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현 감독의 <26년>은 논쟁 중인 영화다. 감독과 주요 배우가 교체되고, 투자에 애를 먹으며 엎어질 뻔했던 만화가 강풀 원작 <26년>이 가수 이승환, 방송인 김제동, 그리고 수많은 자발적 개미 투자자들의 지원으로 4년간 산고 끝에 개봉된 것 자체가 화젯거리였을 뿐 아니라, 예매율 1위 영화가 개봉 직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아주 낮은 평점을 받은 것도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 우익 단체들이 광주항쟁의 후일담을 다룬 이 영화의 흥행을 저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폭탄 0점을 주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영화의 평점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평점 알바 의혹들이 영화 자체에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관객들이 역 선택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26년>은 개봉 6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앞으로 관객이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손익 분기점인 200만 명은 충분히 넘을 기세다.
더욱이 <26년>은 한국 정치 미래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2012년 대선을 몇 주 남기고 개봉되었다. 광주 학살 주범의 실체를 쟁점화하는 이 영화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다. 올해 개봉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용산 참사의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고, 함께 개봉 중인 <남영동1985>도 고 김근태 민주당 의원이 겪은 고문 실화를 다루면서 고문의 책임이 어느 권력에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26년> 역시 광주학살의 책임자에 대한 복수와 그 복수의 역사적 지속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의 정치적 선택이 어때야 하는 지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심미진의 저격 장면이 블랙 아웃된 후, 청와대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빠져나가는 VIP 차량을 신참 경찰들이 수신호로 통과시키는 장면은 <26년>에서 26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6년>이 상업적인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애초 제작 예산 80억 원에 크게 밑돌지만, 영화에 투여된 46억 원은 통상 독립영화나 저예산 예술영화가 가동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다. 출연진도 진구, 한혜진 등 스타급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26년>은 정치적인 영화이다. 다루는 내용도 광주항쟁에서 고통받은 세 명의 유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고, 주요 스토리가 광주 학살의 주범 '그 사람'의 뻔뻔한 인생에 대한 복수를 담고 있고, 여전히 계속되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냉철한 시선이 카메라와 배우들의 연기에 강하게 배어있다. 배우들 스스로 고백했듯이 진구, 한혜진 등 주요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에서 뭔가 잘못된 현실을 향해 실제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에 대해 보수 우익 단체들이 '좌빨, 빨갱이 영화'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만 보아도 이 영화의 정치적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26년>은 1980년 광주학살이란 팩트와 학살의 주범 '그 사람'에 복수하는 픽션이 결합한, 강풀 스스로 말했듯이 '팩션'의 장치를 가동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자의 뻔뻔함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광주 항쟁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당한 세 명의 유족들이 26년이 흐른 뒤 당시 시민군에게 발포를 명령한 주범에게 복수하는 허구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적 긴장감은 바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명의 등장인물이 광주항쟁의 희생자 유가족이라는 같은 아픔과 분노를 공유하면서 오로지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허구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에너지는 바로 1950년 한국전쟁 이래 가장 많은 무고한 시민이 죽은 광주학살이라는 팩트에서 비롯된다. 영화적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일부 연기자의 연기수준에 문제가 발견되고, 일부 대사들이 관객들을 오그라들게 하는 한계가 있더라도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바로 광주학살이라는 역사와 그 학살의 주범이 아직도 전 재산 29만 원 운운하면서 뻔뻔하게 살고 있다는 바로 그 팩트에 있다.
따라서 <26년>의 분노가 정치적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차라리 이 영화를 분노의 영화, 복수의 영화, 정치의 영화로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도 많은 영화제작자, 영화 관객은 영화가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정치적 효과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보인다. 그것은 상업적인 관심과 대립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제작자도 관객들도 영화의 정치적 이야기가 논란이 되면 자기검열을 한다. 오죽하면 영화의 주연 진구가 "'너 괜찮으냐'는 주변 분들의 말을 많이 들었을 때, 도대체 뭐가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나, 한혜진 소속사에서 '너 광고 그만하고 싶으냐'고 걱정했다는 이야기 모두 영화에 대한 정치적 공포증의 현상들이다. 물론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의 예처럼 우리가 연예인을 탈정치적 박제로 만드는 공포정치의 시대에 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화의 정치성에 대한 편견과 공포에 대한 극복은 영화 스스로 영화는 정치적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26년>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 "<26년>은 정치적인 의견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자체가 가장 정치적이다. (사실이라면) <26년>에 의도적으로 낮은 평점을 매겨 영화의 흥행을 좌절시키려는 보수 우익들의 행위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역사와 그렇지 않은 역사, 정치적인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역사와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이 영화는 가장 순수한 영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가장 정치적이다.
상업적 영화로서 <26년>과 정치적 영화로서 <26년>은 일견 모순되는 듯 보이지만, 대립하지 않는다. 정치적 영화는 상업적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상업적 영화는 정치적이면 안 된다는 생각은 바로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제5공화국과 같은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조작해 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관객들은 <26년>을 상업적으로 즐기고, 정치적으로도 분노하면 된다.
▲<26년>은 완성도 논란,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26년>을 좀 더 세련되게 즐기기 위해 우리는 이 영화 안에 잠재된 정치적 트라우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광주 학살에 대한 세 가지 다른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하나는 학살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부류로서 주인공 곽진배, 심미진이다. 광주 건달로, 국가대표 사격 선수로 살아온 과정은 서로 달랐지만, 둘 모두 '그날' 이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 자들이고 복수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분노하지만, 복수의 선택에서 갈등하고 있는 부류로 권정혁을 들 수 있다. 영화에서 권정혁은 복수에 동참하지 않은 배신자로 비치지만, 사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복수보다는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학살에 가담한 후, 자기 참회와 성찰을 하는 자들로서 당시 광주 현장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김갑세와 같은 인물이다. 김갑세 역시 역사의 희생자이며, 정치적 복수의 스토리를 스스로 완성시킴으로써 속죄하려는 사람이다. 김갑세와 달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각하의 정당성을 주장해야만 하는 경호실장 마정렬의 마지막 행동도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라는 관점에서는 김갑세와 유사하다. 전두환 군부 정권의 출발이 된 박정희-김재규의 궁정동 안가 사건을 연상케 하는 그 사람-마정렬 신(scene)은 독재 권력의 끈질긴 연속성과 광주학살에 가담한 자들과 희생당한 자들의 복잡한 트라우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더 잘 보여주었다면, <26년>은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사적 구도는 좋았지만, 묘사적 구성은 허점이 많았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가는 배우들의 열정은 빛났지만, 그 감정을 다스리고, 영화적 긴장감을 극적으로 배치하는 영화적 완성도는 충분하지 않았다. 감독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보다는 배우들의 열정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해도, 여러 번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영화적 가공이 덜 된 티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치는 광주학살이라는 역사적 팩트의 준엄함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뻔뻔한 권력의 재생산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는 데 있다. 부족한 점이 없진 않지만, 복수로 향하는 영화적 긴장감과 뻔뻔한 권력의 갈등이 제공하는 지속되는 정치적 분노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26년>이다. 그래서 다시 말하건대 픽션을 즐기면서 팩트에 분노하는 관객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