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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의 계절 뜨거운 날씨가 연일 이어진다.
좋아서 걷는 길에 무턱대고 덥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무쇠솥에 감자를 찌는듯한 표현이 맞을지
그것이 아니라면 헤어 드라이기 20-30개를 얼굴에 맞대어 틀어 놓은듯한 날씨다
오늘도 그늘 없는길에 그늘을 찾아가며...
이번 하천은 전북 익산시 용화산 남쪽에서 발원해 충남 논산시 강경읍으로 흐르는 강경천이며
하천의 길이가 길지 않지만 서해로 흐르는 하천은 왜 죄다 이 모양 이 꼴인지를 읇조린 길이다
걷는 내내 하천 바닥이 수중보 영향으로 보였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으며
하천 건너편으로 붉은 양파자루에 양파 가족이 오롯이 담겨있는 모습이 정겨웠고,
땡볕에 언놈한놈 죽어도 모를 그늘이 없는 길이라 고생 좀 하고 온 하천이다.
전날 늦은밤 익산시에 도착해서 하루를 자고 동틀 무렵에 택시로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용하산 아래 마을에 도착해
전투복장으로 갈아입고 용화산으로 길 찾아 오른다.
등산로? 인지 아닌지 계곡으로 오르다 보면 오래전에 능선 아랫마을 산북리로 통하던 오솔길과 농사를 지었던 묵은 밭을 지나고
용화산과 신금강정맥길에 만나는 아리랑 고개 삼거리에 도착해서
오늘은 두개의 짧은 하천을 걸어야 하는데 점심 무렵에 강경천 끝내고
미륵산이나 이곳에 다시 올라야 한다
멀리 미륵산이 보이고 철조망 아래는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 출입이 금지된 곳이고
아!~ 미륵산(彌勒山)
전생과 현생은 관음보살님께서 이후 56억 년 뒤 나타나실 미륵부처
미륵이 있으면 미륵이 추구하는 세상인 용화세상이 필연적이라...
모든 존재가 신비로운 용(龍)과 같고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이 용화세상이다.
꽃처럼 활짝 핀 세상
남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곧 미륵이 구원한다는 세상이 바로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아닌가
용(龍)은 임금이나 제왕에 곧잘 비유하는데
용 꽃이 피는 세상 용들의 세상이다.
조선 영조때 성호 이익의 사설에는 용생구자(龍生九子) 아홉룡에 관해서 나오는데 다음편에 9마리의 용에 관해서 쓰기로 하고
그렇다면 용은 어디서 왔을까
머리는 낙타를 닮았고, 귀는 소를 닮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몸은 뱀, 비늘은 아로와나(잉어), 발톱은 매, 수염은 잉어?
여러 동물들의 좋은 점을 아주 잘 버무려 만든 신비로운 상상 속의 동물이다
잘 생기게 만든 것으로도 부족했던지 뭐든 오래 묵어야 좋다며 천년을 수행해야 용이 되는 전설을 만들어 버렸고
오래 수행의 결과로 날아다니며 비와 구름을 부르게하고 물을 관장하게 했다
현실 속에서는 조물주께서 다른 뭇 짐승들을 다 만들고 남은 것들로? 대충 만든 짐승이 있다
지금도 죽음을 무릅쓰고 케냐 마사이 마라강을 건너는 누우란 녀석인데
기다란 호박을 닮은 얼굴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병사들의 투구를 닮은 휘어진 뿔
툭 튀어나온 작은 눈은 금방이라도 얼굴에서 분리될 것 같고
어쭙잖게 달린 수염은 몇 가닥 되지 않아 보이고
말의 갈기를 닮은 듯 하지만 듬성 듬성하기만 하고
소를 닮은 듯 하지만 염소를 닮았고,염소를 닮은듯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달라다가 부러질듯한 발목에 태어나면서 노안이라
겁이 지나치게 많아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다
하지만 못생김을 조물주에게 물려받았으나 1000km를 이동해 마사이 마라강을 건널 때면
가장 먼저 악어가 우글거리는 속으로 힘차게 뛰어드는 녀석에게 first 누우라는 별칭이 주어진다.
상상곳의 신령스러운 용은 비(雨)와 불(火)을 부리지만, 못생긴 동물 1등인 누우에게는 진정한 삶의 용기(勇氣)를 주었다
잠시 상상 속의 용과 현실 속의 버무림이 만든 누우를 비교해 보았고
어쨌거나 저곳에서 오후에 산북천을 걸어야 하는데
날씨가 뜨거워 정신줄을 놓은 죄로 이곳 용화산에 다시 오르는 일이 생긴다.
미륵이 있으면 이곳은 용화세계를 상징하는 용화산이 있게 마련이다
이곳 용화산이나 저곳 미륵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산북천이 되어 익산시 용안면 상당포구까지 흘러가 금강에 안기는 하천이다.
용화산(龍華山) 정상 340미터
정상석이 없어 허전한 느낌이 들지만
다시 올랐던 길로 내려가 발원지라 생각했던 곳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니
용화산 정상에서 300미터 더 지나서 내려가는 계곡이 더 길어 보인다.
다시 빽해서 용화산으로 올라가
천호산-수봉산 방향으로 살펴보며
용화산 아래 용(龍)이란 지명(地名)의 동네가 있나 살펴보니 비슷한 이름도 없는데
원수리라는 동네가 있다. 시인 이병기 생가가 있고 원수 저수지도 있고...
오래전 용화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인 듯
이끼 가득한 돌들이 가지런하게 쌓여있다.
용화산 정상에서 300미터 더 진행하면
능선상에 어느 분이 잠들어 계시는 관리 안된 무덤이 있다
무덤 있는 곳에서 남쪽 계곡으로 무작정 내려서야 하는데
마침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가시는데 마치 도망가려는듯한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잠깐만 사진한 장 찍어 주시고 도망가라"니 한분이 뒤돌아서서 오시더니 한장 담아 주시고는 웃으며 제 빨리 도망을...
오랜만에 인증 사진 담아본다.
지나간 경로
한번 내려가볼까
오늘은 얼마나 깨끗한 물이 기다릴지
능선에서 20미터가량 내려오면 만나는 강경천 발원지 모습
두 손으로 받아 보았지만 먹을 수는 없고
묵은 밭으로 보이는 넓은 터가 나오고
뭔가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묏선생인가...
묏선생께서 진흙 목욕을 즐기다 도망을 간 건지
하늘나라 선녀님들께서 늦도록 진흙 팩하다가 올라가신 건지
아주 걸죽한 모습이다
하천 발원지를 찾으면 계곡은 대부분 정글이고
길 찾는 일에 체력 쓰지 말고 그냥 내려가면 그게 길이다.
마른 계곡으로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낙엽만 무성하다
한참 내려오다 보니 어디로 가는지 모를 임도가 나타나고
내려가다 보면 사람 사는 곳이 나오겠지
원수 마을에 도착해서
조그만 개인 저수지에 강태공께서 낚싯대를 드리워 물고기 밥 주다가 배고픔에 못이겨 아침진지 드시러 가셨나
맑은 물 위로 쟁반 같은 연잎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자라고 있다
원수 마을 경로당을 지나고
너를 가두리
하천가 옆 어느 집 담장 위로 장미가 푸른 하늘인양 고개를 들었다
원수 저수지에서 본 용화산 정상
이제 길은 좋아졌고 태양이 기승을 부리기 전에 좀 더 멀리까지 걸음해야 할 것 같다.
익산시 여산읍은 온통 붉은 양파망이 깔려 있으니
한 자루에 1만 5천 원
외국인 노동자분들 하루 인건비 15만원
남는게 없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야 하신다며
지나다가 인근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어 찾아가본다.
이병기 선생은 시조, 문학 부흥에 한 획을 그으셨으며 국문학자로써 현대 시조의 아버지라 부르는 분이셨죠
이병기 선생 생가와 선생의 고조부가 심었다는 200년 된 탱자나무가 그 곁을 지키고 있는데
탱자나무는 4월에 꽃을 피우며 가시가 대단하고 예전에는 시골 과수원에 철조망 대신으로 심었던 나무다
오래전 조선시대 때 중죄인을 달아나지 못하게 위리안치(圍離安置) 할 때 그 집 울타리에 탱자나무로 돌려 심었던 서슬 퍼런 나무이기도 하다
선생의 생가를 둘러보고
5대종교 순례길이 하천 따라 길게 이어진다.
강경천은 용화산 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수 저수지를 기준으로
논산이 보이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고
물은 서해로 흐르는 여느 하천의 물처럼 탁하고 간장색이다.
아래에 수중보가 있어 물은 고여있다.
익산시 여산읍은 온통 붉은 양파망이 점령을 했는데
양파밭에는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양파 수확에 한창이다.
길에 이어지는 하천길
하천에는 수량은 얼마 없고 겨우 자갈돌만 고개를 내민다.
지난 겨울 삼남길을 걸으며 찾았던 여산면이 지척이라
여산면은 조선시대 주요 길목으로 삼남(경남, 전남, 충남) 길에 위치하며 멀리 해남 땅끝-강진-영암-나주 -광주-장성-노령을 넘어 정읍-전주
그리고 경남 통영-고성-사천-진주-산청-함양-남원-임실-전주-삼례를 지나면 곧바로 이곳 익산시 여산면에 당도하는 주요 길목인셈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무렵에 자원수탈의 목적으로 대전에서 목포로 이어지는 호남선이 1914년에 개설되고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지금은 인구 소멸지역에 이른 곳이다
여산면 전통 시장에 들렀으나 장날이 아니기에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수백에서 천 단위를 넘어가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보면 너도 자전거냐! 할 정도로 시골 어르신분들이 타는 "나도 자전거"라고 불리는 삼천리 녀석
한낮에 동네 어르신께서 논에 물꼬 보려 오셨는데 길가에 멋지게 서있다
시골길에는 역시 우리나라 삼천리 자전거가 제일이며,자전거로써 가장 행복해할 때가 자신의 몸에 가로로 삽자루 하나 걸쳐
놓았을 때 아닌가 생각해 본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똑같은 자전거에 삽 하나 매달고 시골길을 다니셨는데
시골집 헛간에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게 날 때다.
논가로 허수네 부부가 외다리로 있지만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나
부인은 저짝에 등 돌리고 서 있으니 핑크한날이 없어 그런가 논가에 아들 허수는 보이지 않는다.
수중보의 영향으로 물이 가득 하나
마치 된장을 풀어놓은 물에 간장을 들이부어 놓은 듯하다.
배추만 썰어 넣으면 곧바로 배춧국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익산시 망성면...
서해라서 가능한 쓰레기 불 태우기
인근의 마을과는 거리가 500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헤어 드라이기를 30개 정도 얼굴 앞에 틀어 놓은 듯
아니면 감자를 찌나
그늘 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누구냐 넌!~
두 가마 분량의 벼인데 만져 보니 단단하게 여물었다.
정미소로 싣고 가면 쌀 한포대기는 그냥 나올 텐데...
이 녀석들이 뭔 잘못을 했는지 하천 제방 위에 버려져있다.
겨울이라면 배고픈 철새들이 아주 좋아했을 듯하다.
아!~ 깔끔한 사람들
불 태우고 나니 재와 구멍 뚫린 가스통만 있다.
이곳은 전북 익산시땅, 충남 논산사시는 깽이님께 뭐라 하지 못하겠고
논산 구역에 이런 것 있으면 빗자루 들고 좀 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깔끔하게 불태웠으니 남은 건 재만 있고
흙과 물 그리고 불이 도공을 만나면 도자기가 나오고
농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불을 만나면 인상이 돌아간다.
어디 가서 덥다고 말하지 마라
양파밭에 일하는 분들
제가 하는일도 그늘 없는 곳에 그늘을 만드는 직업이라 하루 종일 땡볕에 노출된 곳에서 일이라
밭일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쓰레기
한국산 샤넬 포대기에 정성껏 담아
서해바다 용왕님 면전에 다가갈 그날을 위해 고이 기다리는 중
포대기는 언제부터 길바닥에 나와 있었는지 샤낼 포대기는 너덜너덜해져 있다
이 정도 정성이라면 하늘도 감동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좌 용화, 우 미륵
둘은 서로가 닮아있고 같은 세상에 사는 산들이다.
산은 신선이 있어 유명해지고 물은 용왕이 있어 유명하다는 말이 맞는듯
하천길을 걸으며 그늘이 있다는 게 더 문제인가
아니면 없는 게 더 큰 문제인가.
아름다운 순례길
익산시에서 5대 종교 시설을 연결한 순레길인데
원불교 성지-여산향교-이병기 생가-두동교회-나바위성당으로 이어지는데 종교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 한번 걸음 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다만 요즘 같은 더위에는 가지 마시고 꽃피는 봄날이나, 가을날 황금 들판이 될 무렵에 가신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멀리 매화산이나 옥녀봉에서 흘러온 마산천이 강경천에 합수되는 곳을 지나
전국 3840개의 하천 중 국가하천은 73개
지방하천은 3767개다
그 외 짜잘한 지류까지 더하면...
비행기 활주로 같이 길게 이어지는 강경천
물의 근본은 맑음이나 서해로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맑음을 무시하고 흐른다.
새로운 용마을?
아니면 돈과 관련해서 신용이라는 마을인지
신용마을을 지나면서 드디어 충청도땅인 논산시땅이다.
이곳에서 논산에 사시는 깽이님을 만나서
인사 나누고
조선 영조 때 만들어진 아치형의 미내 다리
꼬맹이때 말 안 들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이야기는 다들 아실 테고
논산 강경천에 자리하는 미내다리에 진짜 엄마 찾으러 간다고 집 나간 애들이 숱하게 많았을 것 같은데
이곳 말고도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 옆 청다리도 이와 같은 유래가 있는 곳이다.
선비들과 기생의 사랑놀이에 애기가 태어나면 청다리 아래 버려졌고 애기가 없는 집에서 청다리에 버려진 애기를 데리고 와서
키웠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리
예전에는 군산 앞바다의 바닷물이 금강을 통해서 강경을 지나 이곳까지 조수간만의 차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강하구둑이 막혀있어 바닷물이 올라오던 이야기는 그저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논산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여기 오기전에 왕건이 창건한 개태사, 관촉사의 은진 미륵, 갱갱(강경)이의 미내다리에 가봤냐고 물어 본다는데...
안 가봤다고 하면 나찰들이 달려들어 물고문을 시켰던 듯
그리고 어느분께서 염라대왕을 만나고 와서 한 이야기니 믿어도 될듯하다
논산분들 참고하시고 한번 다녀오시면 극락에 갑니다.
하류로 내려올수록 낚시객들이 많이 보이고
깽이님을 만난 충청도 논산땅에서는 하천가에 쓰레기가 없었는데
하천가에 쓰레기 있으면 잔소리할 것 같아서
전날 와서 싹 치웠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젓갈 하면 강경이고 강경하면 젓갈인 동네인데 한국에서 남양주시 퇴계원읍 다음으로 두 번째로 작은 읍이다.
하지만, 한때는강경읍은 논강(논산, 강경) 평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군산, 공주, 부여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대구, 평양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시장이 이곳 강경시장이다.
강경천이 먼 길을 달려와 논산천에 합류되는 지점
강경천은 너무 억울하다고 말한다 700미터 정도 옆 금강으로 빗겨 났더라면 금강의 지류로써 힘 좀 썼을 텐데
그러지 못해 논산천 지류로 전략하고 말았다.
강경천을 마치고 논산천 끝자락인 낮아도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는옥녀봉에 오를까 했지만 그곳은 3번 다녀왔던 터이고
깽이님과 강경으로 가서 국수로 점심 먹고 다시 익산의 용화산으로 두번째 하천을 위해서 올라간다.
오늘 점심무렵부터 택배 하러 오신 깽이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영조때 만들어진 아치형다리 멋집니다
폭염속에 강경천 발원지를 찾아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익산이 교통이 대구서 가기가 참 예매합니다..
미주님 고향으로 가셨네요..ㅎㅎ
덥다고 쪽박들고 나섰구랴~
강경이나 익산이나 그동네 비닐펙쓰레기는 여전하시구만,
그림에 고도랑 주소찍힌 타임스템프가 없어서 아쉽네
익산으로 가시거던 양파밭이 아니라 생강굴은 조심하시라
물바가지 쪽박나블믄 만사 도루묵~
읍 면적이 최고로 적은곳이 퇴계원읍이지만
인구는 삼만오천명으로 많은곳에 속하지요.
내고향은 읍인데 인구가 줄어들어
이제는 일만명이 안된다고 하던데
그래도 면으로 강등은 안되더군요....ㅎ
또 한걸음 걸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니 아치형의 미내다리에 와서 딱 멈추게 되네요.
익산과 논산의 경계에 있는 강경천을 오래전에는 미내라고 불렀다죠..
그래서 미내다리라고 부르나 봅니다.
예전 아는 지인이 전북 익산에 미내다리가 너무 예뻐서 잠시 멈춰 있는데
마침 은하수가 환상인듯 펼쳐진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해서
미내다리에 대해서 검색해본 기억이 납니다.
다시보며 너무 반가운 맘이군요.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드는 음악 들으며 강경천 후기 잘보고 갑니다.
제집뒷산으로 넘어 가셨네요 그런 행색으로야산을 댕기시니 아줌마들이 도망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