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애스트로넛 astronaut)는 우주선을 조종하거나 우주에서 일하며, 특히 미국의 우주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러시아와 전 소비에트 연방 국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코스모넛(cosmonaut 우주비행사)이라 부른다. 코스모넛(cosmonaut) 계획은 1991년 붕괴되기 전까지 구소련의 계획이었다. 그 후, 러시아가 그 계획을 이어받았다. 중국은 2003년에야 자신들의 첫 번째 우주비행사를 우주에 보냈다.
애스트로넛(astronaut)과 코스모넛(우주비행사cosmonaut)은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을 작동할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수하며, 과학 실험을 진행한다. 애스트로넛(astronaut)의 단어 뜻은 하늘의 별 사이를 항해하는 ‘항해사’라는 그리스 단어로부터 왔다. 코스모넛(cosmonaut)은 우주의 항해사라는 뜻이다. 중국의 우주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우주 비행사는 가끔 타이코넛(taikonauts)이라고 불리는데, 그 뜻은 중국어 타이콩- 太空(우주공간)-에서 왔다.
대부분의 미국 우주비행사는 미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에서 일한다. 그들은 휴스톤의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서 생활하며 훈련한다.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비행사를 대기권 밖의 우주 왕복선으로 보낸다.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 비행을 위해 두 종류의 우주비행사를 뽑는다. 하나는 비행을 위한 우주비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이다. 대부분의 비행을 전담하는 우주비행사는 미국공군이나 해군 또는 해병대에서 온 시험 조종사이다. 그들은 군대 계급에 따라서 돈을 받는다.
특별 임무를 위한 우주비행사는 비행사들과 함께 우주선과 우주에 띄운 장비들을 관리 및 유지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하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또한, 우주선 밖에서 일하기 위해 우주유영을 하기도 한다.
특별 임무 전담 우주비행사들은 기술자, 과학자 혹은 의사로써 광범위한 연구 경험을 갖고 있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계급에 따라 돈을 받는다. 일반 시민은 공무원제도의 지위에 따라 동등한 봉급을 받는다. 이 제도는 거의 모두 연방정부가 선출한 것이 아닌 지명된 일반시민 피고용자를 말한다.
관측기기 전문가라 불리는 세 번째 종류의 우주비행사는 우주선에 탑재한 수송물을 이용하여 특별한 실험을 수행한다. 대부분 관측기기 전문가들은 관측기기 소유자를 위해 일하는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반드시 미 항공우주국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애스트로넛(astronaut)이라는 용어는 또한 미 항공우주국의 활동과 관련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960년대, 미 국방부는 50마일(80킬로미터)이상 높이 날아오른 군대 및 일반 시민 비행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일곱 명의 시험 비행사가 X-15 로켓 비행기에서 비행을 한 공로로 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비행은 1968년 끝났다.
코느모넛(cosmonauts)들은 스타시티라고 알려진 모스코바 근처의 스테리 마을에 있는 유리 가가린 러시아 과학-연구 테스트 센터에서 훈련을 받는다. 이들은 소유즈라고 불리는 우주선을 이용해서 비행한다. 우주 왕복선과 달리, 이 우주선은 재사용할 수 없다. 우주선 탑승자들은 카자흐스탄 중남부에 있는 아랄해(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대염호) 근처의 바코너르 코느코드롬에서 비행을 시작한다. 착륙은 멀리 떨어진 카자흐스탄의 평평한 지대에서 이루어진다. |
소유즈 TMA-6 우주선. (사진 출처 : World Book ) | |
소유즈호는 두 명 혹은 세 명의 전문 우주비행사가 탑승하게 된다. 지휘자는 거의 항상 군대 제트 비행사이고 비행 기술자는 거의 항상 일반 시민이다. 비행 기술자는 보통 우주선 담당 디자인 부서의 직원 중 한명이 된다. 소유즈호 비행의 중간쯤에 연구 우주비행사라고 불리는 제 3의 비행사가 탑승한다. 이 사람은 러시아 사람이 아닌 “객원 비행사”나 혹은 러시아 의사일 수 있다.
코스모넛(cosmonauts)은 1994년에 왕복 우주선에 탑승해 객원 비행을 하기 시작했으며 애스트로넛(astronauts)은 1995년에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코스모넛과 애스트로넛은 둘 다 국제 우주정거장을 짓는데 협력했고 그런 다음 함께 일하였다.
1990년대에 중국은 유인 우주 비행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선저우(Shenzhou)라 불리는 이 유인 우주선은 러시아의 소유스호를 닮았고 중국 북쪽에 있는 지우취안(Jiuquan)에서 발사되었다. 착륙은 내몽고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우주비행사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주에서의 성공)(우주에서의 사고)(우주비행사 선출)(우주비행사 바로보기)(우주비행사 훈련)(지상에서의 우주비행사)(코스모넛)
1961년 4월 12일,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첫 번째로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한 번 돌았다. 보스토크는 러시아 동쪽에 위치해 있다. 가가린의 비행은 1시간 48분 동안 지속되었다. 그로부터 23일 후인 5월 5일 쉐퍼드가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쉐퍼드는 15분 동안 머큐리 캡슐에서 비행했지만 궤도 진입은 하지 못했다. 1962년 2월 20일 존 글랜은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3바퀴나 돈 최초의 미국인이 된다.
우주항공 역사에서 첫 번째 여성은 코스모넛 발렌티아 테레쉬코바(Valentina Tereshkova)였다. 그녀는 1963년 3일 동안 우주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20년 후, 셀리 K. 라이드가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되었다. 1983년 6월에 라이드는 4명의 다른 선원들과 함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타고 6일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구 궤도를 돌았다.
1964년, 구소련은 처음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궤도에 정착시킨다. 이 우주선은 러시아어로 해돋이를 뜻하는 코스콕(Voskhod)이라고 불렸다. 1965년과 1966년에 미국은 10단계에 걸쳐 제미니호의 2인 비행을 시행했다. 이 10차례의 비행 동안, 우주비행사들은 작전을 수행하고 다른 궤도를 선회하는 우주선들과 결합했다.
1965년 3월 18일, 구소련의 알렉세이 레이노프는 우주에서 자유롭게 유영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도 지나지 않은 6월 3일, 미국의 에드워드 화이트 2세가 미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우주유영에 성공하였다.
1967년, 소련 우주비행사는 소유즈 시리즈를 이용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3인승 우주선이었지만, 첫 번째 비행에서는 단 한 명의 비행사만 탑승했고 다른 우주선들도 2명만 탑승했다. 구소련은 또한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후, 결구엔 달 착륙 계획을 취소했다.
우주인을 달에 보내기 위한 미국의 계획인 아폴로 프로그램은 1968년 10월에 시작되었다. 그 해 12월 24일과 25일 프랭크 보먼, 제임스 로웰, 윌리엄 앤더스는 20시간 안에 달 궤도를 10번이나 돌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궤도를 돈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인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은 달에 발을 디딘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아폴로 11호를 독수리라 불리는 달착륙선에 착륙시키고 과학 실험을 진행하는 동시에 암석 샘플을 수집했다. 그 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5명의 다른 우주비행사들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들은 달에서 과학적 실험을 위한 5대의 우주정거장을 쏘아 올려 달의 미세 먼지와 암석을 지구로 보냈다.
1971년 6월, 소련 우주비행사들은 샬루트라 불리는 첫 번째 우주 정거장을 세웠다. 1973년 미국은 첫 번째 우주 정거장 계획을 수행할 팀을 구성했다. 우주비행사 찰스 콘라드, 조셉 커윈, 콜 웨이츠는 우주실험실에서 거의 한달 동안 생활했다.
1975년, 미국과 구소련은 처음으로 공동 우주 작전, 아폴로-소유즈 시험 계획에 착수했다. 7월 17일, 토마스 스태포드, 반스 브랜드, 도날드 슬레이톤을 태운 아폴로 우주선과 알렉테이 레오노브와 발레리 쿠바소브를 태운 소유즈를 도킹했다. 이틀 동안, 다섯 명의 우주인들은 도킹 우주선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1981년 4월 12일, 미국은 최초로 재사용할 수 있는 유인 우주선인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을 발사시킨다. 콜롬비아에는 우주비행사 존 영과 로버트 크리펀이 탑승했고 2일하고도 6시간 동안 비행을 지속하면서 36번 이상 지구 궤도를 돌았다. 1983년 11월 28일, 콜롬비아는 우주실험실이라 불린 최초의 유럽인이 세운 연구 실험실을 우주로 옮겼다.
구소련 우주비행사인 발레리 폴야코브는 1995년 3월 우주에서 438일간 머무는 신기록을 세웠다. 폴야코브는 미르호에 탑승해 있었고 그의 임무는 과학자들을 도와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중력 기간을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1984년 4월, 미국 우주비행사들은 최초로 재생 불가능한 인공위성을 되찾고, 수리했으며 다시 발사시켰다. 챌린저호에 탑승하여 그들은 캐나다 제품인 로봇의 팔을 사용하여 인공위성을 잡았다. 1992년 5월 미국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탑승하여 자신들의 장갑 낀 손을 이용하여 인공위성을 잡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특별 장치를 인공위성에 붙여 로봇의 팔이 그것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1993년 12월, 엔데버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여 망원경의 주 거울에 있는 손상 부분을 보완할 장치를 정착했다.
2003년 10월 15일, 양리웨이는 중국의 첫 번째 우주인이 되었다. 그는 선저우호에 탑승하여 21시간동안 지구 궤도를 돌고 안전하게 착륙했다.
2004년 6월 21일, 미국 시험 비행사 미첼 멜빌은 사기업에 의해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멜빌은 캘리포니아 모자베의 스칼드 컴포짓이 세우고 모든 작업을 수행한 스페이스쉽원이라 불린 로켓을 조종했다. 멜빌은 이 우주선을 타고 62마일(100킬로미터)넘는 거리를 지구위에 있는 약간 궤도를 벗어난 곳에서 비행했다.
우주여행은 위험하기 때문에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비행 도중 목숨을 잃었다. 우주 계획 중 일어난 첫 번째 치명적 사고는 1961년 3월 23일에 일어났다. 구소련 훈련원인 발렌틴 본다렌코가 압력 참버에서 불이 나 사망한 것이다.
1967년 1월 27일 지상 시험 중, 아폴로 호에 불이나 안에 탑승해 있던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다. 이 세 명의 우주 비행사-버질 그리섬, 에드워드 화이트 2세, 로저 차피-는 첫 번째 아폴로 우주선을 비행할 예정이었다.
1967년 4월 24일 구소련 우주비행사인 블라디미르 코스마로브는 첫 번째 우주비행 중 사망한 사람이 되었다. 코마로브의 비행은 처음으로 소유즈호가 우주비행사를 우주에 태우고 갈 계획이었다. 코마로브가 목적지에 착륙하려고 시도했을 때,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코마로브는 소유즈호가 지구와 충돌하면서 사망했다.
사람들이 우주정거장을 점유하려는 첫 번째 임무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71년 6월, 죠지 도브로볼느키, 픽토르 파트사예브, 블라디슬라브 볼코프 세 사람은 그들이 타고 있던 소유즈 11호에서 실험적 정거장인 살유트 1호로 옮겨 탑승했다. 그들이 맡은 23일의 임무도중 그들은 서로의 의학적 검사를 실시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돌아오는 비행 중 갑작스런 소유즈호의 조종실 압력 손실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가 발사되자마자 산산이 조각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7명의 탑승 우주비행사 전원이 사망했다. 탑승했던 사람 가운데는 교사로서 이 우주 계획을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함께했던 크리스타 맥얼리피도 포함되어 있었다. 챌린저호 참사 후, 미 항공우주국은 이 계획을 취소하고 모든 우주왕복 비행을 중단했다. 우주비행사들은 1988년 9월 19일이 되어서야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로 갔다.
디스커버리의 로켓 부스터(엔진)와 많은 다른 우주선의 부품들이 챌린저호 참사로 다시 설계되었다. 2003년 2월 1일, 콜롬비아호가 지구 대기권에 재 진입을 시도하다 조각나며 부셔져, 일곱 명의 탑승인원이 모두 사망했다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강 유역 대략 6마일(10킬로미터) 상공에서 한 물체가 폭발했다. 이 물체는 혜성의 핵 혹은 가끔 소형 소행성으로 언급되는 거대한 운석으로 추정되는데, 이 폭발로 인해 생성된 먼지가 숲을 뒤덮었으며 대략 50마일(80킬로미터)가량의 면적이 불타버렸다.
목성과 다른 거대 행성들의 인력으로 인해 소행성의 궤도가 매우 천천히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한 궤도로 인해 소행성간의 충돌이 발생하여 더 작은 소행성 및 그 밖의 파편들이 만들어져 결국엔 더 많은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그 파편들 중 일부가 운석이 되어 지구 표면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머큐리 계획을 위해 선발된 최초의 일곱 명 우주 비행사는 왼쪽부터- 도날드 슬레이튼, 왈터 쉬라, 고든 쿠퍼, 스캇 카펜터, 버질 그리섬, 존 글랜, 말랜 쉐퍼드 (사진 출처 : World Book ) | |
항공우주국은 지속적으로 조종 전담 우주비행사와 특별임무 전담 우주비행사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인사 위원회는 보통 2년에 한번씩 15~25명으로 구성된 한 팀을 선발한다. 지원자는 반드시 미국 시민권자여야 하며, 학사 혹은 그 이상의 학위 소지자로써, 엔지니어, 생물과학, 자연과학 또는 수학 전공자여야 한다. 나이제한은 없지만, 모든 지원자는 반드시 미 항공우주국 우주비행체력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조종 전담 우주비행사지원자는 반드시 고공비행 제트기를 타고 1000시간 동안 비행을 완수해야만 한다. 그들은 5피트 4인치~6피트 4인치(163~193센티미터)사이의 신장이여야만 한다. 특별임무 전담 우주비행사 지원자들은 비행 경험이 있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3년 이상의 관련 전문 경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들의 신장 제한은 5피트~6피트 4인치(152~193센티미터)이다. |
|
1959년 이래로, 250명이 넘는 우주비행사가 우주를 비행했다. 미 항공우주국은 1959년 4월 9일 첫 번째 우주비행사로써 일곱 명의 시험 조종사가 선발되어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공군 장교였던 고든 쿠퍼, 버질 그리섬, 도날드 슬레이슨과 해군 조종사였던 스캇 카펜터, 왈터 쉬라, 알랜 쉐퍼드와 해군 조종사였던 존 글랜으로 구성되었다.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은 49명의 추가적 경력 제트 조종사를 선발했으며,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미 항공우주국은 17명의 과학전문 우주비행사를 뽑았다.
1978년, 미 항공우주국은 곧 있을 우주왕복 비행을 위해 선출한 우주비행사를 발표했다. 이 그룹에는 15명의 비행사와 최초의 20명 특별임무 전담 우주비행사가 포함되었다. 특별임무 전담 비행사 중에는 최초의 여성 비행사 6명도 포함되었다. 이들 여섯 명의 여성은 모두 박사 학위자였다. 그들은 의사인 안나 피셔, 생화학자 샤논 웰즈 루시드, 전기 기술자 주디 레스닉, 물리학자 셀리 라이드, 의사 마가렛 세든 그리고 지리학자 캐서린 설리반이었다. 1990년 미 항공우주국은 조종 우주비행사가 된 최초의 여성으로 에일린 마리 콜린스를 선발했다.
1983년, 캐나다는 미 항공우주국 임무 수행을 위해 훈련 받을 6명을 시민들 가운데 뽑았다. 그 다음해에 마크 가뉴 캐나다 해군 지휘자가 챌린저호에 탑승했다. 그렇게 그는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캐나다인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
미국 우주비행사인 샤논 루시드는 여성으로서 우주비행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6년 그녀는 188일 동안 우주에서 머물렀으며 대부분 러시아 우주 정거장인 미르에 탑승해 있었다.(사진 출처 : World Book ) | |
미 항공우주국에는 또한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전 서독에서 온 관측기기 전문가들이 있었다.
1985년, 유타주 상원의원인 에드윈은 공식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우주 비행 공직원이 되었다. 그는 미 항공우주국 자금 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상원의원 위원회 의장이었다. 에드윈은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하여 우주비행을 했다. 그 다음해에 미국 연방의회 의원인 플로리다주의 윌리엄 넬슨은 콜롬비아호를 타고 비행했다. 그 후, 1998년에는 미국 상원의원인 존 글렌이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로 갔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77세였으며 그것은 우주비행사 최고령 나이였다.
지상에서의 우주비행사 미 항공우주국은 연구 센터와 대학에서 강사를 초빙해 공기역학, 약학, 물리학, 컴퓨터 공학 및 여러 다른 과목들을 가르친다. 경력이 있는 우주비행사는 우주에서 비행사들 간에 어떻게 의사소통을 진행하는지와 같은 주제로 강의하기도 한다. 다른 미 항공우주국 구성원들은 우주 비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 장비, 그리고 자금에 대해 토의한다.
머큐리와 제미니호 우주비행사들은 로켓 엔진, 비행 기계학 그리고 항해학 과정을 통과했다. 이런 많은 과목들과 더불어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의 지지학도 공부한다. 그들은 또한 하와이, 아이슬란드, 알래스카 및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달 표면과 비슷한 화산암에 대해 공부한다. 우주실험실 선원들은 천문학, 지질학, 양자역학을 공부하여 실험을 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비행 훈련
비행 훈련은 T-38 제트 항공기에서 실시된다. 한 번 특별임무 지원자가 항공기 작동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그들은 한달에 4시간을 비행한다. 조종 지원자들은 15시간을 비행해야만 한다. 조종사들은 또한 왕복 트레이닝 항공기(STA)라고 불리는 특별 비행기에서 훈련을 받는다. 이 비행기는 착륙 시 왕복 비행을 위해 특별하게 디자인 된 것이다.
생존 훈련
생존훈련은 지원자들에게 물속이나 숲 속에 불시착했을 경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왕복 비행 전에 돌아오는 비행기는 해안에 착륙하게 된다. 우주 왕복선은 수로에 착륙하게 되지만 우주비행사 지원자들은 긴급 낙하선 탈출을 준비해서 물속에 잠긴 우주 왕복선과 T-38로부터 빠져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물속에서 낙하산 가죽 끈을 끄는 연습을 함으로써 실제 바람 속에서 낙하산 끄는 연습을 하게 된다. 또한, 지원자들은 황무지에서 생존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기본 작전 훈련
기본 작전 훈련은 우주선 조종실의 구조와 비행 제어 장치에 대한 학습을 포함한다. 이 훈련 기간동안, 지원자들은 우주 비행의 실제 조건에 대비할 수 있다.
조종과 특별임무를 위한 지원자들은 이틀 동안 무중력 상태를 대비한 훈련을 한다. 이들은 큰 비행기가 호 모양을 그리며 날아오르거나 낙하하면서 생기는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 날아오르고 낙하하기를 각각 30초씩 반복하면서 그들의 몸은 솜을 가득 채운 것처럼 솟아오른다. 물 위에 뜨기 역시 동일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훈련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탱크는 무중력 환경 훈련 장비(WETF)와 중립적 부력 실험실(NBL)로 알려져 있다.
실험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새로운 우주비행사들은 비행 임무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기술개발을 계속한다.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지원 혹은 작동에 관련한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상급 작전 훈련
한번 선원으로 선정되면, 우주비행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모의 훈련하는데 보내게 된다. 왕복 우주비행사들은 왕복 작전 모의훈련(SMS)에서 훈련한다. 이 장치는 전체 작전 과정을 모두 재생산 할 수 있다. 선원들은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을 모의훈련 하는데 소비한다. 교관들은 지속적으로 선원들에게 문제를 내주어 그들이 긴급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모의 상황에서 하는 훈련은 우주비행사들이 실제 비행에서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 상황을 대비하는데 아주 적합하다. 예를 들면, 1970년 아폴로 13호 우주비행사들은 폭발로 인해 우주선이 손상되자, 달착륙선에 있는 산소와 전기공급을 사용하여 집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선원이 모든 시스템에 대해 해박하기 때문에 수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주비행사들은 또한 실물크기의 모형, 즉 최대 사이즈의 우주선 모형에서 훈련한다. 실물크기 모형은 우주선 안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연습을 하는데 사용된다. 우주비행사들은 이 실물크기 모형에서 물품을 저장하고, 음식을 준비하며 장비를 점검한다. 또한 그들은 이 곳에서 우주선에 들어가고 나가는 연습도 한다.
상급 훈련은 모든 작전에 포함되지 않는 작업을 준비하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1975년 아폴로-소유즈 공동 프로젝트에 관련되었던 우주비행사들과 1995년 미르호를 방문했던 비행사들은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러시아 우주선의 작동법을 배웠다. 우주실험실에서 일했던 우주비행사들은 특별 장비들을 다루거나 실험을 위한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우주유영을 준비하는 우주비행사들은 WETF 그리고 NBL에서 별도의 훈련을 받았으며 실질적 현장 시스템으로 훈련했다.
우주 작전에 참가하는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서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일한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비행 관리자, 기술자, 과학자로부터 받은 정보를 비행기에 타고 있는 선원들에게 중계한다.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우주비행사들이 기술자가 해결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주비행사는 우주선의 디자인과 작동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머큐리호의 우주비행사들은 캡슐 안에 창문과 안에서 열 수 있는 갑판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들이 보여준 기술은 우주선 비행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이점을 주도록 디자이너들을 유도했다. 왕복 우주비행사들은 장비들이 있는 위치나 우주복 수정하는 일을 맡는다. 그들은 또한 인공위성 수리 도구와 같은 특별 장비들을 개발하는데 힘쓴다.
1961년 4월 이래로, 약 100명의 구소련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를 비행했다. 대부분은 구소련에서 그리고 1991년 이후에는 러시아에서 왔다. 첫 번째 코스모너츠(cosmonauts)들은 군대 조종사였다. 대부분이 20대 중반으로 우주 비행을 마친 후 다시 대학으로 보내졌다. 1964년 이후에야, 코스모너츠(cosmonauts) 선원들에 일반 시민, 기술자나 의사가 포함될 수 있었다.
첫 번째 코스모너츠(cosmonauts)는 2년 미만의 훈련 기간을 보냈다. 최초의 훈련 프로그램은 수영, 달리기, 사이클, 낙하 점프 등 지속적 체력 활동을 포함했다. 미국의 훈련 프로그램은 이런 활동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애스트로넛(astronauts 미국의 우주비행사)은 그들 스스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초기 구소련의 프로그램 역시 발열실과 독방에서 받는 훈련을 포함했다. 그리고 멀미에 대비하기 위해 급회전하거나 돌아가고 있는 의자에 앉아 훈련을 받아야 했다.
구소련이 우주여행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게 되면서 그들은 훈련이 그렇게 가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발열실과 독방에서 받는 훈련을 제거시키는 동시에 낙하 점프 훈련을 줄였다. 더불어 멀미에 대비한 훈련은 더 쉽게 바뀌었다. 오늘날, 코스모넛(cosmonauts)은 대부분의 시간을 복잡한 우주선 시스템을 공부하거나 모험 실험 장치에서 연습하면서 보낸다. 그들은 현재 여러 해를 우주 비행을 준비하며 보낸다.
구소련과 러시아는 1978년 객원 우주비행사를 우주에 보냈다. 이들의 고향은 아프가니스탄,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쿠바, 체코슬로바키아(현재의 체첸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전 동독,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인디아, 이탈리아, 일본, 카자흐스탄, 몽골,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시리아, 우크라이나, 영국, 미국 그리고 베트남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