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도, 큰 병에 걸려 6개월 동안 두 군데 종합병원에서 치열하게 앓던 때의 일입니다. 몇 달 동안 몸에 오줌 줄을 끼고 살았습니다. 병이 호전되어 오줌 줄을 뺐는데, 오줌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오줌 누는 일은 그야말로 쉬운 일이었는데, 오줌이 나오지 않으니 이거 큰일이구나 싶었습니다.
고민을 말했더니 수간호사가 와서 사람은 그럴 수가 있다고,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오줌을 눠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말을 듣고 그대로 해보았더니 정말로 오줌이 그런대로 나오는 거예요.
놀라운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강이나 저수지가 있는 곳으로 소풍을 가면 자주 남자아이들이 물가에 가서 오줌을 누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무척이나 자연적인 존재이고,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생명체인 것입니다.
흐르는 물 옆에 가면 오줌을 누고 싶은 마음, 그것은 물을 보면 물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때 떠오르는 시 구절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김영랑 시인의 작품 <물보면 흐르고>의 앞부분이었습니다.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느뇨
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시구입니까? 우리는, 좋아서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무치게 좋은 글이 있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 그런 시가 있다는 것을.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마음’이기에 우리가 인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자연의 마음이고 생명 그 자체의 발현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새를 보면 어찌할까요. 분명 날고 싶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구름을 보면 높이 뜨고 싶은 마음이 될 것이고, 나무나 산을 보면 우뚝 솟아오르는 마음이 될 것이고, 들판을 보면 열리는 마음, 꽃을 보면 피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아, 이 얼마나 좋은 마음입니까? 이 마음이 시의 마음입니다. 시를 부르는 시인의 마음이고 시를 찾는 독자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간 어디쯤에 은영 씨의 마음이 있고, 나의 마음이 오두막을 짓고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영 씨, 우리가 비록 멀리 떨어져 남남으로 살아도 그것은 하나도 억울한 마음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다시금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마음’입니다. 늙어도 늙지 않는 마음입니다.
은영 씨, 은영 씨의 마음속에 한 소녀가 살고 있음을 은영 씨는 믿어야 합니다. 그 소녀를 깨워 밖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갈래머리 솜털이 보송보송한 볼을 가진 아이입니다. 조그만 바람에도 얼굴 붉히고 고개를 돌리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나십시오, 비록 은영 씨의 길이 어둡고 멀고 힘들다 해도 조금은 그 아이가 옆에 있어 덜 고달프고 덜 힘들고 덜 어두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명이요,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책략입니다. 김영랑 시인의 나머지 시구를 읽어봅니다.
흰날에 한숨만
끝없이 떠돌던
시절이 가고 멀어라
안쓰런 눈물에 안겨
흩은 잎 쌓인 곳에 빗방울 듣듯
느낌은 후줄근히 흘러흘러가건만
그밤을 홀히 앉으면
무심코 야윈 볼도 만져보느니
시들고 못 피인 꽃 어서 떨어지거라 < ‘죽기 전에 詩 한 편 쓰고 싶다(나태주, 리오북스,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02.1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