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질캡슐 성형기는 약이나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말랑말
랑한 캡슐을 제조하는 기계다. ‘우루사’, ‘오메가3’ 등도 창성소프트젤(이
하 창성)의 성형기를 거쳐 만들어진다.
창성의 연질캡슐 성형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다. 뉴질랜드,
러시아, 일본 등 28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 건강식품 관련 설
비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북미와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이 빠르게 늘어
나고 있다. 김주수 대표는 “캡슐 제조 속도가 빠르고 가격 경쟁력이 뛰어
나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뜻하지 않은 회사 인수 후, 기술 개발과 수출에 박차
김 대표와 창성의 인연은 2002년 이 회사를 인수하기 몇 년 전으로 거슬
러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젤라틴 제조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연질
캡슐의 원료이기도 한 젤라틴을 팔기 위해 창성에 가끔 드나들었다. 당
시만 해도 창성은 창업자인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1972년부터 연질캡슐
성형기를 제조해 주로 국내 업체에 내다팔던 회사였다. 그럭저럭 짭짤하
게 사업을 해왔지만 미국과의 특허권 소송에 휘말리면서 창업자가 경영
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회사를 인수할 만한 사람을 찾던 중에 김
대표와 연결이 됐고, 고민 끝에 김 대표는 창성을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젤라틴 국내 영업을 하면서 조그만 무역회사도 경영하고 있던 터라
인수 자금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었다. 창성의 CEO가 된 후 미국인 변
호사를 직접 고용해 대응에 나서면서 미국 업체와의 소송에서 이겨 특허
관련 문제에서도 벗어났다.
하지만 창성이 개선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술연구소가 없
어서 도면을 현장에서 그리는 수준이었다. 김 대표는 부설 연구소를 만들
어 설계는 물론 연구개발을 주도하도록 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식물
성 연질캡슐 성형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본격적으로 출범
한 기업 부설 기술연구소에서는 차세대 캡슐 성형기 기반기술 개발은 물
론, 젤라틴 재생시스템을 개발해 내년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김 대표가 회사를 인수한 직후부터다. 창
성은 19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수출을 해왔지만 주로 국내 무역회사를
통한 간접 수출이었다. 김 대표는 “회사를 인수해 우선 품질을 높인 다음
수출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국내시장 평정한 창성, 해외에서도 인기
김 대표는 2002년 회사 인수 후 법인 전환과 대표자 변경을 마치자마자
미국 전시회를 시작으로 매년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4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전시회에 이어 5월에는 호주 시드니와 브라질
상파울루 전시회에 참가했다. 6월에는 중국 상하이, 10월에는 독일 프랑
크푸르트 등 올해만 6개의 전시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전시회 참가와 관련한 가장 큰 고민은 비용이다. 성형기라는 기계를 해
외 현지까지 가지고 가야 하고 직원들도 나가야 해서 한 번 참가하는 데
드는 비용이 6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수출이 목적인 만
큼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느 정도 경비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속내
를 털어놨다.
비용이 많이 드는 데도 불구하고 수출에 집중하는 것은 국내시장은 수요
가 거의 없는 반면에 연질캡슐 성형기 제작 업체는 도리어 늘어났기 때
문이다. 2000년까지는 창성이 국내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최근에
는 국내에만 몇 개의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도 공급이 치
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2개 사), 캐나다(1개 사), 이탈리아(1개 사)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사들 가운데서도 창성은 캡슐 제조 속도가 빠르고 가격 경
쟁력이 뛰어난 장점 때문에 바이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각 공
정을 고객의 입장에서 계획하고 실행함으로써 고객이 만족하는 완벽한
설비를 제공한다는 것도 창성의 강점이다. “특히 멕시코 기술자와 계약
을 맺음으로써 해외시장에서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곧바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단순한 기계적인 문제 해결은 기본이
고 고객사가 새로운 연질캡슐을 생산하려고 할 때 더욱 유용하지요. 영
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능통해 어찌 보면 저희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기술자는 스스로를 “연질캡슐 공장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
할 정도다. 3대째 같은 일을 해오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기계의 원리
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미 10년 가까이 손잡고 일하면서 창성의 경
쟁력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올해는 미국·남미 시장 개척에 주력할 계획
김 대표가 수출로 재미만 본 것은 아니었다. 잠깐의 시행착오로 수업료
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몇 년 전 미국으로 기계를 수출했을 때다. 미
국 업체와 약속한 생산성이 나오지 않았다. 큰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
다고 환호한 것도 잠깐, 미국 업체 측에서는 계약 위반이라고 문제 제기
를 했고 결국 가격을 할인하는 쪽으로 마무리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
한 생산성이었지만 기계 제작 후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게 실패
의 원인”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회사가 휘청거리기도 했다. 전해에 60억 원이던
매출이 금융 위기 이후 반 토막이 났다. 그런 와중에도 김 대표는 해외 전
시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전세 공장에서 벗어
나기 위해 자가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세계 경기는 분명히 다시 살아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일수록 역발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가 공장을 지
은 것은 ‘약 만드는 기계를 제작하는 회사니까 공장이 깨끗해야 한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한두 번의 위기 이후 창성의 매출은 안정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0년
63억 원, 2011년 98억 원에 이어 지난해 105억 원을 기록했고 수출 비
중은 95%를 넘어선다.
세계시장의 분위기도 밝은 편이다. 연질캡슐은 대부분 건강식품 제조
에 쓰이는데 세계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김 대표
는 올해 미국과 남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미국의 경우 다국적
기업과 협의 중인데 조만간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미 쪽에
서는 멕시코, 브라질, 칠레, 페루 등에만 이미 2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이 예정되어 있다.
김 대표는 “올해는 젤라틴 재생시스템 등 신제품 개발과 부대설비 사업
을 확장해 150억 원 매출과 1,4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함은 물론 고용도
전년 대비 15% 이상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일본, 캐나다 업체를 뛰어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
니다. 이미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에 돌입했으며, 내년 1월이면 일본산보
다 성능이 앞서는 기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는 작아도 기술
력이 뛰어난 강소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