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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 주일설교 말씀| 말씀의 거울
오륜교회 김은호 담임목사님 미국 집회 중 주일예배 말씀은 류응렬 목사님과 함영주 교수님이 전하셨습니다.
말씀의 거울
설교 :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2022.9.11.
본문말씀 : 역대상 13:1~14
1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그들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5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세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9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여호와에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12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본문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인데 결과는 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으로 읽는 사람에게 의문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의도로 계획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맺을 때, 이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마음을 함께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기를 결심합니다. 현재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삼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동원하여 철저히 준비하였습니다. 사울은 관심도 두지 않았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 역시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다운 모습입니다.
법궤 운반이 시작되어 모든 백성은 법궤를 따라가면서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준비부터 진행까지 사람의 눈에는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법궤가 땅으로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수레를 몰던 웃사가 손을 펴서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습니다. 당연히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성경의 기록은 우리를 정말 놀라게 합니다.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10절)
웃사가 떨어지는 법궤를 붙드는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소들이 뛰고 법궤가 곤두박질칠 상황인데 그냥 지켜보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그를 쳐서 죽이셨습니다. 하나님 궤를 보호하는 일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인데 왜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웃사를 치셨을까요? 사람의 눈으로 해석하면 의문과 불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법궤를 옮기는데 세 사람이 나옵니다. 법궤를 집에 모셨던 아비나답, 그의 아들 웃사, 그리고 이스라엘 왕 다윗입니다. 세 사람 모두 의도는 선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줍니다.
먼저, 아비나답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그의 집에 법궤를 68년 동안 모셨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법궤를 모셨지만 하나님에게 받은 축복은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에 나오는 오벳에돔은 석달만 모셨음에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축복한 것을 보면 너무 이상한 일입니다.
아비나답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블레셋에게 돌려받은 법궤를 오랫동안 모신 일은 잘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궤에 대한 경외감은 사라지고, 법궤를 모시는 영광스러운 의미를 모르고 소홀히 여겼습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그 법궤의 의미를 전혀 가르쳐 주지 않은 것입니다. 법궤를 모신다는 것은 눈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그 능력을 확신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비나답은 그 영광스러운 법궤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가?”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비나답과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등장인물은 오늘 법궤를 옮기다가 죽임을 당한 웃사입니다. 웃사가 넘어지는 법궤를 손으로 잡은 사건, 사람의 눈에는 칭찬받을 일입니다. 하나님도 당연히 칭찬해야 할 일인데 왜 하나님은 그를 치셨을까요? 사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옮기는 것에 대해 이미 반복해서 매뉴얼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4:15) 하나님의 법궤는 아무나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구별된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메도록 정하셨습니다.
웃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의 집에 있던 법궤를 수십 년 동안 보고 자랐는데, 그에게 법궤는 하나님의 영적 임재를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닌, 늘 보던 평범한 궤짝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소들이 뛰어 법궤가 떨어지려 했을 때 당연히 손을 내밀어 붙잡았을 것입니다.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긴 웃사를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은 너무나 좋지만, 그것은 결코 익숙함이나 가벼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한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 가장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은 아비나답도 웃사도 아닌 다윗입니다. 그의 결단은 시작부터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을 불러 의견을 물었습니다.(1절) 의논하는 일은 좋지만, 영적 지도자들과 의논한 일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묻는 과정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시작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입니다. 이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결정적인 일에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기 위해 반드시 구별된 레위 지파 사람들을 세워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히오가 메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비나답과 웃사와 다윗의 범죄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앙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범한 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 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가 무너짐으로 이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버렸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신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궤는 무엇입니까? 십계명 돌판이 아니라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만나가 아니라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아니라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웃사가 법궤를 붙잡음으로 말씀을 어긴 것처럼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심판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이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는 바로 살아야 합니다. 열정도 헌신도 좋지만 내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더 깊이 발견할 것이고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조금 더 살아낼 것입니다.
[오륜교회 주일설교] 말씀의 거울 (류응렬 목사) 2022-09-11
https://youtu.be/mw-Q06HXTng
자카르의 하나님
설교 : 함영주 교수
-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2022.9.18.
본문말씀 : 창세기 8:1~5
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인생의 암흑기를 살아갈 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생의 황금기를 경험할 때도 있고 인생의 암흑기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생의 황금기보다는 일이 잘 안 풀리고 문제가 발생하는 암흑기를 보낼 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현실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해도 마치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며 자녀들의 장래와 신앙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암흑의 시기를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현실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 우리는 더 좌절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절망의 현실을 살아갈 때도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노아를 생각하시고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악독이 가득한 이 땅을 멸하시기로 계획하시고(창6:11~13), 40일 동안 비를 내려 노아의 가족과 정결한 짐승 7쌍, 부정한 짐승 2쌍을 제외하고 이 땅에 거하는 모든 것들을 멸하셨습니다. (창7:11~12) 이 땅은 홍수로 물이 넘쳐났고 노아는 그렇게 1년이 넘는 기간을 방주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라’(창7:1)고 말씀하시고 ‘방주에서 나오라’(창8:15)고 말씀하실 때까지 성경의 분량으로는 한 장 반에 불과히지만, 실제로는 1년이 훨씬 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더군다나 방주 안은 호텔과 같은 곳이 아니라 삼류 여관보다 못한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아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1절a)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자카르’입니다. 이 단어는 개역성경에서는 ‘권념하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단순히 인지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혹은 어떤 사건이 가슴 속 깊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직접적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기억하고 게셨으며 한번도 잊으신 적이 없으신 것입니다. 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집트 노예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기억하시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2:24~25)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던 기간에도 하나님은 한번도 자기 백성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의 장래와 신앙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들로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때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은, 그리고 애굽의 압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기억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기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8장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바람을 불게 하시어 물이 줄어들게 하시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을 닫으셔서 하늘에서 비가 그치게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렇게 하신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다윗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도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b)라고 외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동안에도 예정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위대한 역사를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자카르의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절대 잊지 않으실 뿐 아니라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기에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49:15) ‘자카르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현실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우리에게 피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도 누군가를 기억하기
이제 우리 성도에게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은혜를 입었으면 우리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이후에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창8:20) 성경에서 제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출17:14~15) 사무엘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를 되찾아 온 후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삼상7:12,17) 또한,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다가 돌아온 백성들이 제일 먼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스 3:2~3) 이처럼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로 제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순 모임 예배를 통해, 그리고 개인 묵상 시간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반드시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하나님의 자녀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억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자카르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심을 감사하고 이제는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할 뿐 아니라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기억하며 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륜교회 주일설교] 자카르의 하나님 (함영주 교수) 2022-09-18
https://youtu.be/4HRADKtqhMI
[오륜교회 금요기도회 김은호 목사 설교]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