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수,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김태수 지음|푸른사상 시선 98|128×205×10 mm|178쪽|9,000원
ISBN 979-11-308-1410-0 03810 | 2019.2.25
■ 도서 소개
베트남전쟁, 잊지 말아야 할 참상의 증언
김태수 시인의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가 <푸른사상 시선 98>로 출간되었다. 40여 년 전 낯선 타국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던 한국의 군인으로서 겪었던 참상을 사실적으로 증언하고, 상처를 보듬고 속죄하는 진심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승화시켰다. 시집은 이제 긴밀한 교류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사람들에게 역사의 엄중한 교훈을 일깨워준다.
■ 시인 소개
김태수(金泰洙)
1949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혼란기를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군 입대 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다. 삶이 곧 시, 한 편의 시에 한 편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생각으로 1978년 시집 『북소리』를 간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농아일기』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겨울 목포행』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가 수록된 『황토 마당의 집』 등이 있고, 현대중공업 및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시 창작을 강의하면서 집필한 『삶에 밀착한 시 쓰기』, 시인론 『기억의 노래, 경험의 시』 등이 있다. 울산작가회의 회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뒤 경북의 여러 교정시설과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 목차
■ 시인의 말:베트남전, 내 양심에 그어진 상처의 회복
■ 서시:지금 그 숲은
제1부
도깨비부대 / 베트남, 일천구백팔십사년 / 바렛호 선상에서 / 오징어와 멀미 / 오음리, 그 아침 안개 / 캄란만, 그 무더운 바람과의 만남 / 월남 신병 교육대 / 적이여 그대들은 어디에 있는가 / 전투서열병 / 무더운 한낮을 건너며 / 첫 번째 매복 / 죽은 자들과 산 자들 / 매복 후, 밝은 아침에 / 책상 서랍 속에 죽어 있는 동양인 / 오길동 상병님
제2부
내가 처음 만난 베트콩 / 케이레이션 유감 / 초병과 전갈과 청사 / 동남아 순회공연? / 친구야 네 가슴에 / 또다시 죽은 친구의 이름을 쓰며 / 포로가 되어 끌려온 어느 여자전사 / 닌딘 마을 / 붕로베이를 지나며 / 중대 기지의 병사들 / 편지 / 안남미 / 단 한 번 만난 협궤열차 / 무공훈장은 누구의 가슴에든 빛나리 / 시에스타, 베트남은 잠들고
제3부
아아, 638고지여 / 멸망의 무덤 / 젖은 눈빛의 여학생 / 머리칼과 손톱 / 나는 먼 여행을 떠납니다 / 사단 작전 / 비겁한 기도 / 땅에서도 구름이 피어오를 줄 / 캄란만 수진마을 / 우리에게 175밀리 곡사포만 주어진다면 / 우기가 끝나고 / 스팀베이스 / 사원에서 만난 월남 여인 / 조국 안부
제4부
피리는 불어도 가는 세월을 위하여 / 둑민촌의 폐허가 된 시골 국민학교 / 미군 헬기 장교들의 장례식 / 베트남의 아이들에게 / 농부와 시인 / 혼헤오산 / 송카우 계곡의 저녁노을 / 몽타냐족에게 / 포경수술, 드디어 귀국 명령 / 또이, 그녀의 일번 도로 / 귀국 준비 / 파병, 그 팔 년의 끝에서 / 다시 바렛호를 타고 / 에필로그
■ 작품 해설
베트남전쟁과 조국 – 김희수
제국주의 비판과 제3세계 연대의 리얼리티 - 하상일
■ 시인의 말
내 스무 살의 시작은 ‘자유의 십자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출정한 베트남전쟁의 참혹하고 황폐한 기억들로 출발되었다.
베트남전쟁으로 하여금 모국이 획기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며 미국의 대리전쟁에서 많은 전우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황색의 피부를 가진 동양의 젊은이들이 같은 피부를 가진 민족의 통일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가슴에 뿌린 수많은 총알들과 살상용 무기들, 결국 이 전쟁은 내 양심에 커다란 상처 자국으로 남을 수밖에.
가난한 나라의 용병 연 32만 명의 한국군이 8년 동안 버티었던 캄란(깜라인), 나트랑(냐짱), 닌호아, 투이호아(뚜이호아), 퀴논(꾸이년)과 다낭에 산재한 전승탑(戰勝塔)들과 대민사업으로 건립 기증했던 사원(寺院)들은? 정글, 황토색 밭, 넓은 바나나 잎에 뿌려야 했던 젊디젊은 청년들의 피와 남은 가족들의 통한! 전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죽고 죽여야 했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전사들과, 뜬금없이 학살된 베트남 인민들! 통일 베트남 역사책은 이런 사실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내가 베트남전쟁에 관한 시를 쓰게 된 것은 우리와 너무 닮은 그들 역사를 읽으면서 같은 약소민족의 정서를 노래하고 싶었고 중국과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얼룩진 내 나라 대한민국과의 동질성을 희미하게나마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시집 출간으로 인하여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과 전사자 유족들, 관심을 가지고 있을 이들과, 특히 전쟁에 오래 시달린 베트남 인민들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전사들, 이 모든 관계 사이에서 그어진 내 양심의 상처가 다소 아물게 되길 바란다.
■ 추천의 글
“일천구백칠십오년/우리들 스무 살 젊음이 피 흘렸던 베트남은/해방되었다”(「 베트남, 일천구백팔십사년」), “내가 두고 온 베트남은 통일되었다”(「에필로그」). 연작시로 노래한 김태수 시인의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다. 해방과 통일! 이제 베트남은 식민과 전쟁의 상처를 씻어가면서 당당한 이름으로 코리아와 만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에 이어 동남아시아의 네 번째 교역 국가로 다가선 인도차이나 반도의 리더 베트남과 베트남 인민들. 한때 그들 나라에서M 16을 들고 싸웠던 코리아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가고 있고,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지렛대 외교(Lever diplomacy)를 펼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만나게 된다는 뉴스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던 김태수 시인의 시집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은 다각적인 의미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시편들이 오히려 더 새롭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시인이 베트남전쟁에 대한 진실,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베트남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서 달성한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 평화와 통일을 체감,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베트남의 정글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마을 사람들과 지금도 부산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 코리아 병사들의 명복을 빈다.
― 김준태(시인, 전 조선대학교 교수, 베트남전쟁 참전)
■ 작품 세계
아시다시피 베트남전은 악질적인 제국주의가 자행하는 이윤추구의 전쟁은 아니다. 월남과 월맹이 동족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한 전쟁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처럼 식민지의 그늘에 덮여서 강대국의 술수에 놀아난 민족으로서, 참다운 해방과 민족통일이라는 인간다운 숙제를 풀기 위한 필연성과 함께 그 정당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전쟁이라고 해서 모든 전쟁이 폭력은 아닐 것이다.
이때 폭력이라는 말은 강대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확대될 때부터 사용되어야 한다. 당시 남의 사주에 의해 부득이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로서는 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김태수 시인의 고뇌는 남의 싸움에 뛰어들어 뒤통수가 깨지는 인간적 갈등 속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그는 월남전을 대리전쟁이라고 규정하고 분노하면서 그 대리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의 허위를 보는 것이다. 그의 주위에 많은 전우들이 하나하나 거꾸러질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하는지를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획득하고 그것만이 진리라는 확신이 서 있는 위대한 사상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장군도 아니다. 그는 다만 국가의 부름으로 3년 의무기간 중에 1년을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대한민국 육군 쫄짜로서 참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겪은 전쟁의 참상과 허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순수한 인간적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희수(시인) 해설 중에서
김태수 시인은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의 자서(自序)에서 “내 스무 살의 시작은 ‘자유의 십자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출정한 베트남전쟁, 너무나도 참혹하고 황폐했던 기억에서 출발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오래도록 내 양심에 커다란 상처 자국을 남긴 몹쓸 기억이 되고 말았다.”라는 속죄와 통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가 진정으로 괴로워했던 ‘양심’의 문제는 “황색의 피부를 가진 동양의 젊은이들이 같은 피부를 가진 민족의 통일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가슴에 수많은 총알들과 살상용 무기들”을 퍼부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데 있다. 그는 “이곳 병장 월급이/그곳 선생 월급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아주 재미있는 월남 생활”(「편지」)이라는 거짓을 합리화하는 위악(僞惡)의 시대를 용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의 위력 앞에서 식민의 기억마저 잊어버린 채 또 다른 식민의 폭력에 동조해버린 지난 시절의 생생한 기억은, 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양심’의 상처로 남아 뼈 속 깊이 사무치는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기모순과 상처의 기억을 씻어내기 위해 시인은 베트남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일관된 태도를 가지고자 했다. “은유와 직유로 망가진 세상”이 아닌, “빌어먹을 비유가 뭐냐/나는 그런 것 안 쓴다”(「편지」)라는 단호한 태도로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증언하는 리얼리티에 그의 시적 지향을 모조리 쏟았던 것이다. 그의 베트남 연작이 무엇보다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의 횡포에 희생당하고 이용당한, 그래서 식민과 억압의 기억을 함께 안고 있는 제3세계의 동질성에 스스로 균열을 가한 제국주의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부각시켰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적 지향을 올곧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중략)
김태수의 베트남 시편은 “타민족의 해방전쟁에 제국주의의 용병으로 참전한 병사가 느낄 수 있었던 적개심과, 같은 제3세계 민중으로서의, 또한 같은 동양인으로서의, 그리고 역사적 상황이 비슷했던 후진 식민지인으로서의 동질감, 즉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한반도 파월 장병의 정서를 거짓 없이 형상화”했다. 이러한 그의 시적 지향은 피해자로서의 기억을 앞세우기보다는 가해자로서의 속죄와 성찰의 목소리를 전면화하는 데서부터 진정성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제국주의의 폭력이 무참히 가해지는 전쟁의 현장에서 남성에 의해 대상화되는 베트남 여성의 성적 고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그의 시선은, 앞서 그의 시에서도 언급되었던 식민지 시기 중부태평양 남양군도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한 우리의 누이들과 온전히 겹쳐지면서 더욱 뼈아픈 상처로 각인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시기 위안부 여성들의 처참한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제국주의의 탈을 쓴 남성적 폭력과 언어적 유희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했던 ‘따이한’들로 인한 죄스러움으로, 지금까지도 그는 전장에서 만났던 베트남 여성들의 ‘광기 어린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상일(문학평론가, 동의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지금 그 숲은
지금 그 숲은 안녕할까
미국이 베트남 산림에 쏟아부은 3만 5천 드럼의
Agent Orange, 살아 돌아온 우리들의 살갗에
오래오래 산거머리로 진득하게 달라붙어
떠나가질 않는다
활엽수는 흉스러운 가시들뿐
왜 낙엽이 질까 그늘 하나 없던 수상한 계절을
알았어야 했다 돌아온 막사 간이욕실에서
물 몇 됫박 군용 철모로 뒤집어썼지만
등 허물 그 밑은 물집이 생겼고
더워 너무 긴 밤 군용 모포 속의 선잠
미치고 환장하던 그 가려움이
산거머리 잠시 붙었다 떨어진 자국 때문이리라
살아 돌아온 지 십 년이나 진득이 붙어
황색 피부를 흐물흐물 썩게 했다 많은 밤
아내 곁에 누워도 꼼짝 않던 하반신
뻣뻣하게 굳힐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그 숲은 안녕할까
정의의 십자군, 대리전쟁에 끼여
또 다른 황색의 가슴팍에 총을 겨눌 때
발밑에서 낙엽 소리로 부서지던 열대 활엽수
거대한 미국의 음모가 쏟아 넣은 Agent Orange
아름다운 이름들이 소낙비 되어 쏟아졌던
그 수풀의 나무들은 지금쯤 싹을 틔울까
베트남, 일천구백팔십사년
어린 내 아들은 무인도에 도착된 지 사흘 만에 죽었다. 나의 동료들은 죽은 내 아들의 살을 뜯어 먹어가며 죽어갔다. 이젠 내게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하느님, 하늘 아래서 이렇게 죽어가도 되는 건가요.
― 어느 보트피플 여성의 유서
일천구백칠십오년
우리들 스무 살 젊음이 피 흘렸던 베트남은
해방되었다 돈 있는 무리들은
비행기로 도망치고 일부 관리들은
군용선으로 흩어졌다
굶어 죽은 동료의 살을 뜯으며
또 다른 무리들은 탈출했고
몇 푼의 금 부스러기에 목숨 내건
보트피플 그들의 무덤은 바다였다
베트남이여 불러 정겨워
내 스물의 한때를 밀어 넣었던
한 맺힌 눈물 몇 방울 떨구었던 나라여
끝까지 흥청댔을 먼 이국의 호치민 시
정치 맛에 사족 못 쓰던 승려들은
어찌 됐을까 달러 맛에 취했던
관리들은 어찌 됐을까
어찌 됐을까 다시 십 년 후
빠른 세월 속으로 흩어진 희미한 기억을
쫓으며 장송곡 같은 그대를 시로 쓴다
얻은 무좀은 발가락을 시리게 하고
우기, 지긋지긋한 장맛비 내려
도랑까지 바닷물이 기어드는
코리아, 남쪽 바닷가 시골학교 사택
습진 방에 배 깔고
일천구백칠십사년 칠월에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눈물겨운 한때의 젊음을 힘겹게 퍼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