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윤 시인의 시집 『세렝게티의 자비』(푸른사상 시선 194).
시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현재의 세상은 물론이고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미래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묵시록처럼 보여주는 시편들은 혼탁한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2024년 8월 14일 간행.
■ 시인 소개
한국전쟁의 포연이 사라질 즈음 충청남도 금산의 한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동네에서 자라며 뜬구름 같은 희망을 키우다 대처로 나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30여 년을 설쳐대다가 어느 봄날 학교의 문을 나왔다. 퇴임 후 여전히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회의를 느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시를 만나 동행하는 중이다. 시집으로 『동행』 『염치, 없다』, 자전에세이로 『쓸쓸했던 기억들이 때로는』을 출간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많은 오해 속에 살아온 지난날들의 의미를 모르겠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절실한 이유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안다
나 아닌 사람들, 사람 아닌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자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그 어려운 길을 가는데 ‘시’와 함께하려 한다
■ 작품 세계
『세렝게티의 자비』는 가벼움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인간’이기에 가능할 법한 생각 거리들을 안긴다. 사사로운 경험에 착안한 시들과 거시적 안목을 지닌 시들이 상호 교환하는 감수성과 현실 진단 의지는 결코 단선적이지가 않다. 시인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황들로 유추해보건대 이 시집의 화자는 크게 세 개의 반경 ― 모성성, 신과 시인, 역사적 사건들 ― 안에서의 성찰적 주체다. 여기에 담긴 주제들이 그간에 우리가 당연시해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특히 타자와 견주어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꾀하는 이기적 개인에게 이 같은 발화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녔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전해윤 시인은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고요히 견디다가 뭇 꽃들이 피는 봄을 다 보내고 늦여름 무렵에야 꽃을 피우는 은목서 같은 시인이다. 스스로를 “바람이 불어도/나부끼지 않는 깃발”이라고 부르지만 “죽어서도 끝내/위로받지 못할” 시인이 되어 “잃어버린 내 그림자라도 찾아” “이 생을 견뎌”보자고 뚜벅뚜벅 걷고 있다. 그는 또 가슴을 두드리며 상처를 헤집고 다닌다. 녹두꽃 여린 꽃잎을 오래 바라보거나 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청맹과니들 앞에 통곡을 쏟는다. 자신의 시로는 용서를 청할 수 없는 참담한 세상을 “무릎 꿇고” “사방팔방에 사죄”하면서 “몹시 우울”한 “하느님”을 위로한다. 그의 시는 그렇게 사랑으로 회귀하는 지극하고 진솔한 고백의 비망록이다. 고요함이 지닌 커다란 울림을 시침 뚝 떼고 꺼내놓는 그는 삶을 의탁한 자신의 신 이외에 시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기꺼이 모시며 존재의 근원을 궁구한다. 전해윤 시의 지향점은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과거를 소환하여 미래의 자리로 함께 나가는 어울림의 세상이다. 그의 시가 “원두막 앞 토방에서” 작은 촛불로 타오르는 날을 믿고 기다리는 아름다운 기대를 적어둔다.
― 박미라(시인)
■ 시집 속으로
세렝게티의 자비
전해윤
세렝게티의 초원 한가운데
새끼 잃은 어미 하마의 시선이 지평선 너머에 머문다
그의 한숨은 분명 제 생보다도 길 것이다
생사가 출렁이는 세렝게티에서
사자의 이빨은 축복
기린의 목은 은총
가젤의 다리는 경이
약자의 비굴도 용기, 위태로운 삶을 지탱해주는
살아 있는 것들 위로 솔개처럼 죽음이 덮치고
붉은 주검들 주위에는 뭇 생명들이 넘실대는 세렝게티, 날마다
삶과 죽음이 화려하게 변주(變奏)된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글썽이는 눈망울
저녁노을은 오늘에 대한 뜨거운 위로
처연한 달빛은 내일을 향한 연민, 모든 생을 위로하는
세렝게티에서 죽음은 차라리 자비,
뭇 생명들을 살리는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