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67:1-7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 칼빈
본 시편은 그 당시와 장래의 교회에 임할 복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유대에 안전하게 보존될 뿐 아니라 아직 전파된 일이 없는 새로운 지역에까지 확장될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세상에 세워질 주의 왕국에 대하여는 간략히 취급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고대 유대인들의 견해를 그대로 취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시편을 ‘앞으로 다가올 시대’ 와 앞으로 이루어질 세계, 곧 메시아의 시대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 여겼습니다.
이 시편이 쓰여진 시기나 그 당시의 형편은 단지 우리가 추측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Bishop Patrick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고 번제를 드리며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할때 15절로된 시를 지었다고 추측합니다(삼하6:17,18)
Horsley는 “장막절에 불렸던 찬송 중에 하나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세상의 보편적인 회개를 예언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Calmet 는 앞 두편 경우와 같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쓰였다고 봅니다.
또 그 당시의 특별한 형편은 학개 선지자가 기록한 대로(학1:10,11, 2:17-19) 오랜 가뭄과 궁핍이 지나고 토지가 비옥하게 되었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록 이 시편이 기록된 시기와 형편을 확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출현과 복음의 보편 전파를 위한 고대 교회의 기도였음은 분명합니다.
시 곧 노래,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시 또는 노래, 지휘자에 따라 느기놋에 맞춘 것 - 칼빈)
1. 본문 1절은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입니다.
이 부분은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에 선포하도록 배운 복에 대한 암시입니다(민6:24-26).
이 시편은 모든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과 더불어 특권을 누리는 관계로 택함을 받은 자들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예언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간구함으로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처음 난 자요(출4:22), 하나님의 복이 처음에 그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이 유대인들에게서 점차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시편 67 편
우리는 다른 번역가들이 사용하는 방법대로 본 시편 전체에 명령형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법은 히브리어에서 사용되는 미래 시제에도 매우 잘 부합되고 또 이렇게 해야 구절마다 주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 신뢰하고 더욱 그 도(度)를 높이는 용기를 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기도의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단지 그렇다는 암시를 주는 사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시편 기자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복이나 성공이나 부요함은 모두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깨달은 사람이면 어떻게 자신의 복이 자기 공로인 것으로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얼굴빛’(칼빈 ; 그 얼굴 빛 -한글)은 우리 마음 속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거나 실제적이고 명백한 사랑의 표현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 등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 양심에 두려움의 징계를 내리시거나 하나님이 그의 겉으로 드러난 은혜의 징표들을 돌이키실 때 흔히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고 말합니다.
2. 본문 2절은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확장되어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과 한 몸으로 연합되리라는 분명한 예언을 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보여진 은총의 분명한 증거가 이방인들도 동일한 복된 소망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시리라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주의 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하는데, 구원의 근원 혹은 구원의 샘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 방법으로 고대의 자기 백성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양자의 영이 보다 풍성히 여러 곳을 비춘 복음 아래서 하나님은 더 분명히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복음, 즉 하나님의 ‘도’가 보편적으로 확대될 것이 여기서 간구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도는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민족들과 족속들 모두에 대한 언급은 기도응답의 시기가 하나님이 더 이상 유대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될 때라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Walford
우리는 이 사실이 적합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발견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가 그것입니다(요17:3).
시편 67 편
3. 본문 3-5절은 “(3)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 송케 하소서
(4)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 위에 열방 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
(5)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민족들이 주의 구원의 지식에 참여할 사실을 말씀합니다
이 사실로서 시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며 감사 드리도록 권고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반복해서 언급한 것은 그 자체가 아직까지 전파된 일이 없는 새로운 사건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일상적으로 유대인에게 베푸신 은총과 같은 정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언급하려 했다면 우리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 표현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인이 처음에는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인은 이 사실을 4-5절에 반복해서 외칩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쁘다’ ‘즐겁다’ 는 말들을 적절히 사용합니다.
그 말은 각기 그 사람의 형편에 알맞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올바로 찬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인격이 하나님과 화목하여 구원의 소망으로 생기 차 있지 않거나 우리의 마음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4:7)으로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올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가져다 주는 그 원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인들을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치리는 본질상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치리는 교회를 다스리시는 특별하고 영적인 지배임을 참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어떤 일반적인 치리라는 말은 적당한 용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치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율법의 교훈에 따라 자신의 지배 아래 모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평’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치리의 제일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의 같은 용어가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구원의 말이 온 땅에 널리 퍼지게 될 사실을 말씀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사11:4, 미4:3).
시편 67 편
4. 본문 6절은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 시리로다” 입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언급합니다(1절).
다음에 시인은 하나님의 은총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대될 것을 말씀합니다(2-5).
그 다음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일시적인 복과 이 복이 우리들의 복에 필요한 모든 것이 됨을 주의하게 합니다(6절).
또 하나님께서 고대의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셨던 모든 복이 여기서 기억되는데 민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주의를 돌리도록 세계의 눈앞에 한 빛을 비추어 줍니다.
시인의 말은 하나님께서 자유로이 그의 백성들의 궁핍을 채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심을 높이도록 의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아버지처럼 보살피심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결국 땅의 모든 목적인 하나님의 치리에 큰 기쁨으로 스스로 복종토록 합니다.
5. 본문 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입니다.
본 시편의 결론으로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라는 말씀은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또 주시리라’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민6:24-26의 복주심의 형식에 대한 암시가 여기서는 계속해서 세 번씩 반복하는 방법으로 분명히 다시 나타납니다.
이 시인은 이스라엘이 받은 풍년의 복 한건(一件)으로 앞으로 그들이 받을 무한히 더 크고 영원한 복을 미리 내다 봅니다(6하반-7상반).
또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는 말씀으로 시인은 다시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의 세계적 팽창을 내다봅니다.
어떤 한 방면에 나타난 하나님의 친절하심도 모든 인류를 위한 사랑의 일부분입니다.
또 하나님이 한 방면에 보이신 은총은 하나님의 복에 대한 한 축도(縮圖) 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영을 받은 자는 이런 부분적인 것에서 전체를 통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으로 받은 은혜의 한 조각은 한 개인 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사들은 교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