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깃을 비비며 / 이윤희
오늘도 손빨래다. 와이셔츠 깃을 맞대 비빈다. 회색 계열이라 살짝 문질러도 때가 금방 빠져 세탁이 쉽다. 흰색은 표백제를 끼얹고 솔로 박박 문질러야 때가 쏙 빠진다. 푸른색은 흰색에 비해 수월하지만, 회색보다는 더디기 마련이다. 신혼 초에는 벗어놓은 남편의 셔츠를 매일 빨아 다림질했다. 허구한 날 세제를 푼 대야에 푹 담갔다가 비벼 빨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틀에 한 번으로 일을 줄였는데 이제 와이셔츠를 빨아주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의 퇴직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행은 지났으나 버리기 아까웠던 옷을 과감히 정리했다. 오밀조밀 걸려 있던 묵은 옷가지를 걷어내고 나니 옷장 속이 휑하다. 여러 해 동안 입었던 와이셔츠도 네 개만 남겼다. 마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업무도 후임에게 물려주고 빈손으로 돌아올 남편의 자리 같아 가슴이 아릿해 온다. 다양한 구색과 변화를 추구하느라 옷장을 가득 채운 내 옷은 마치 배우의 드레스룸 같다. 얼마 안 되는 남편 옷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대부분 남자들 옷 입는 스타일이 단순하다. 철 따라 바뀌는 양복에 서늘하거나 추울 때면 사파리나 코트를 걸치는 정도이다. 편한 차림일 때는 면바지와 남방에 점퍼나 재킷을 입는다. 하여, 옷을 잘 갖춰 입는 건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으로 판가름 나기에 살짝 노출되는 와이셔츠나 넥타이 색상과 겉옷과의 매칭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게 사실이다. 비싼 여러 벌의 양복보다 와이셔츠를 매일 깨끗하게 빨고 다림질해 입히는 걸로 대신했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 내보내야 하는 봉급 생활자 아내로서 구김살 없이 다려 입히는 게 가장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위신을 세워주는 일이라 믿었다. 그런 연유로 자연스레 셔츠에 애정을 쏟았다. 어떤 때는 깃에 표백제를 뿌리고 잔뜩 힘을 실어 삭삭 비벼 빨고 있는 자신이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탁탁 털어서 널어 말린 후 다림질을 하여 걸어 놓고 보면 방금 느꼈던 생각은 오간 데 없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개운했었다.
동생이 선물로 받은 와이셔츠 몇 장을 주었다. 비싼 브랜드이다. 촉감이 좋아 다림질할 때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먹고 사는 일처럼 필수이었던 셔츠 관리에 가장의 자존심을 늘 염두에 두었다. 그토록 매일 손아귀에 힘을 모아 지아비가 입을 셔츠 깃에 정성을 들였던 것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을 위한 내 삶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에는 늘 희망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러 끼어들기도 하던 생의 곡선이 도드라진 날 감정은 시퍼런 날을 세웠다. 남편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용감하게 덤볐으나 매번 본전도 못 찾고 끝나는 싸움이었다. 심중에 가득한 것들은 시비도 못 가린 채 패배감만 맛봐야 했다. 잿더미 속에 남겨진 화기처럼 마음속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어느 날 옷장에 걸린 죄 없는 셔츠를 모두 끄집어내 중성세제를 풀은 물에 담가버렸다. 선물로 받은 새것까지 합쳐진 그 많은 셔츠는 허연 거품을 물고 물속에 갇혀버렸다. 어쩌나 볼 심산으로 다음 날 아침, 급히 볼 일이 생겼다는 글을 써 놓고 집을 나와 버렸다. 이후 길모퉁이에 숨어 출근하는 남편을 훔쳐보았다. 계절이 지나간 엷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보란 듯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 내 속은 전날보다 더 끓었다.
퇴근해서도 셔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속내도 드러내지 않는 게 더 불편했지만, 어쩌면 그이가 옳을 수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철 지난 윗도리로 입고서도 침묵하는 건 아내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야에 가득 담가놓은 옷을 손으로 빡빡 문질러 빨아 헹구어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쭈글쭈글한 옷을 다림질했다. 구김살이 쫙 펴진 잘 다려진 옷이 곱고 눈부시다. 빳빳하게 펴진 와이셔츠들의 간결한 실루엣이 우리 집 가장의 인품인 듯 수려하다. 배짱 따위는 애당초 생겨나지도 않은 안사람으로 사는 게 딱 맞은 거였다. 베란다 창 너머로 스쳐 가는 미풍에 살랑거리는 셔츠의 향연이 절묘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밥벌이에 매달리느라 허구한 날 목둘레에 생의 먼지를 덕지덕지 묻혀 들어왔다. 학연도 지연도 없는 타지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무던하게 견뎌온 사람이다. 그런 억눌렸던 자존심을 쫙 펴주고 셔츠 깃에 배인 얼룩을 지우느라 싹싹 비벼 빨고 말려서 다리미 손잡이를 힘껏 눌러 온 게 아니던가. 숱하게 반복되던 나날로 30여 년을 달려왔다. 사는 게 이런 거라며 행복해할 때도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들이닥쳤던 삶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절망할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걸었던 것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 다리미로 펴주던 나의 지원도 컸었다.
오늘도 가장의 땀과 때가 밴 와이셔츠 네 벌을 담가놓고 깃을 맞대어 비벼댄다. 가장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 언제까지나 손으로 직접 세탁해 주고 싶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 해뜨기 무섭게 현관문 밖으로 나가던 가장의 세월을 다림질해 온 나도 서운함이 밀려드는데 그이는 닥쳐올 미래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까. 얼마 전 구입해 이틀 입었던 회색 레이온 와이셔츠는 물을 잔뜩 먹었어도 싹싹한 여인네처럼 야들야들하다. 이 셔츠와 함께 구입한 큐빅이 몇 알 박힌 넥타이를 매면 엄청 멋스러울 것 같다. 오래도록 함께 걸어온 이 간결한 실루엣이 새삼스레 아름다워 보이는 시간이다. 자존심이 한껏 드높아진 남편의 와이셔츠에서 흘러나오는 향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