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 위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바람에 밀려온 커다란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하얀 물결이 절벽 위까지 치솟아 오른다. 인적없는 해변이다. 나는 모래밭을 혼자 걸으면서 홀로 있음을 즐긴다. 고독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단련이 되어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내 유년이 세월 저쪽에서 시간을 타고 흘러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돈을 버느라고 겨울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외아들인 나는 텅빈 방에서 춥고 적막하고 무서웠다.
서민 한옥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동네였다. 가족이 떠드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이 비치는 쪽창을 보면 부러웠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소년 시절도 외로웠다. 혼자 방에서 몇 시간씩 상상 속에서 거닐 때가 많았다.
이십대의 청년 시절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눈 덮인 깊은 산속의 암자나 얼어붙은 강가의 방가로에서
혼자 겨울을 지내기도 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멀리 다리위로 지나가는 기차의 촉촉한 기적소리는 낭만이었다.
혼자 있어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꿈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나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화려한 나의 미래가 원래 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군대에 가서도 나는 복잡한 상하관계에 신경을 쓰는 곳보다 산 위의 브로크 막사에서 혼자 지내는 삶을 선택했다. 낡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 녹슨 철 책상 앞에 혼자 있는게 편했다. 적막한 시간을 소설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얼마간 지지고 볶으면서 살았다. 아내는 돈 걱정 아이들 교육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퇴근할 때 아이들이 먹을 아이스크림과 빵을 사 가지고 들어갈 때 즐거웠다. 딸과 아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면서 좋았다.
나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아내와 아이들이 유학을 절실히 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 바라는 걸 해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방의 스위치를 켜면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진 텅 빈 메마른 공간이 나타났다. 나 혼자였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토한 후 새벽까지 혼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적도 있다. 마루바닥에서 시큼한 토사물 냄새가 났다.
은행 대출을 받아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그 빚을 갚기 위해 굴욕을 견디며 돈을 벌어야 했다. 은행 빚을 갚지 못하면 나는 영원한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었다. 딸아이는 언제 돈이 끊길지 몰라 걱정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끝내고 돌아왔다. 십년간 헤어져 있었던 아이들과 정신적인 거리가 멀어진 걸 느꼈다. 정서도 달랐다. 다시 같이 있었지만 마음이 함께 있는 게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어떤 결락의 느낌이 존재했다.
나는 아이들이 진짜 배워야 할 걸 가르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명절이나 제사 그리고 장례식은 가족이나 친척이 모이는 축제의 명분이라는 관념을 알리지 못했다. 언론조차도 미풍양속을 귀찮고 괴로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새해가 되면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절을 했다. 세배라는 형식은 부모자식간의 윤활유역할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남에게 하는 간절한 절은 쇠도 녹인다. 그런 것들은 귀찮고 불필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 소중한 그런 것들을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고집불통의 아버지가 되어 동해 바닷가에 혼자 사는 노인이 됐다. 가족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소외된 느낌이 든다. 모든 게 나의 잘못이다.
이제 아이들은 사회인으로 독립해서 살아간다. 우리 부부의 삶이 벅찼듯 아이들 삶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줘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임종 때였다. 고요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기 직전 어머니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살아보니까 제일 힘든 게 고독이더구나.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너도 잘 참고 나머지 세월을 살다가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