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에 오리사냥을 나가서 있었던 일이다. 오리들이 단체로 잠을 자고 있는 곳을 찾아 간다. 오리 한 놈이 보초를 서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보초 오리 눈앞에서 불을 번쩍하고 킨다. 깜짝 놀란 보초 오리가 다급하게 꽥꽥꽥 울어 댄다. 비상이 걸린 것이다. 곤히 자던 오리들이 화들짝 놀라 깨어나서 부산을 떤다. “야 보초! 무슨 일이야? 적이라도 나타났단 말이냐?” 그러나 보초 오리는 할 말이 없다. 금세 불이 번쩍 했으나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적막감만 돌 뿐이기 때문이다. 오리들이 다들 투덜대면서 들어가 잔다.
다시 보초 오리만 남는다. 사냥꾼들은 오리들이 다들 들어가 자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다시 보초 오리 앞에 불을 들이 댄다. 번쩍하고 눈에 불이 또 한 번 난 보초오리, 이번에도 얼람을 울릴까?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대장 보초가 잠자러 들어가면서 어떻게 보초 오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느냐에 달렸다. “너 다시 한 번 쓸데없이 우리 깨우면 그땐 죽는 줄 알아라!”라는 말을 들었으면 정말 헷갈릴 거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얼람이든 폴스 얼람이든 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것인가? 만약 대장이 보초 오리에게 “야! 너 밤에 보초 혼자 서다 보니 힘들지? 다음에도 혹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꼭 알려줘! 수고해라!”라고 했더라면 아마도 얼람을 울릴 것이다.
사냥꾼들은 영악하다. 보초 오리가 불을 볼 때마다 울어대도 계속 시도하면, 결국 어느 시점에그 보초 오리는 바보가 되고 만다. 다른 보초로 교대해도 마찬가지다. 보초가 더 이상 보초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사냥꾼들은 잠자고 있는 오리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자루에 쓸어 담는다. 이 오리사냥 이야기에서 문제가 가장 심각한 존재는 바로 위기를 발견한 보초를 사정없이 야단치는 대장이다.
옛날에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이웃 나라 사신이 와서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가 가지고 계신 옥쟁반을 가져오라는 분부를 받잡고 왔습니다. 여기 엄청난 보물을 가져왔으니 그것과 교환을 했으면 합니다.” 임금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옥쟁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웃나라 임금은 다시 두 번째 사신을 보내온다. 역시 똑같은 부탁을 한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흔쾌히 그 옥쟁반을 내준다. 왜 그랬을까? 옥쟁반을 가져가는 사신은 이웃나라 임금에게 총애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해 보이는 첫 번째 사신이 그걸 가져가면 그 나라는 융성해질 것이다. 그러나 바보 같아 보이는 두 번째 사신이 가져가면 그 나라는 서서히 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스토리다.
리더들은 누구나 어디 밖에 나갔다가 자신의 조직에 대하여 싫은 소리를 듣고 오면 몹시 기분 나빠한다. 조직 평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에서 들은 쓴 소리 때문에 조직 내부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직원들을 다 잡아 먹을 듯이 야단치는 리더는 사실은 자신의 체면이 깎인 것이 분해서 그러는 거다. 이런 태도는 진정으로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적들은 우리를 항상 속이려고 한다. 적들은 우리 내부의 분열을 노린다. 여기에 놀아나면 오리처럼 몽땅 다 잡아먹히고 만다. 우리가 무디어지도록 적들이 아무리 계략을 꾸며도 우리 사이에 ‘신뢰’ 가 있으면 다 잘 된다.
첫댓글 서로 한울타리에서 일하다보면 신뢰가 쌓이고 오랜시간 지나다보면 그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하게 되는거죠ㅋㅋ
멋진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