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이자 전투원이자 생존자인 식물들
목 말피기목 I 과 버드나뭇과 I
속 버드나무속 I 종 수양버들 I
학명 Salix babylonica I 원산지 중국I
유럽에서의 첫 출현 17세기
내게 '개척자'라는 단어는 미국 서부시대의 모험극과 대서사시를 떠오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개척자라는 단어를 말할 때면, 반사적으로 내 기억 속의 스위치가
켜지듯 <서부 개척사How The west was won>(1962년) 출연진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레고리 펙에서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엘리 웰라치, 리처드 위드마크, 리 반 클리프, 헨리 폰다, 데비 레이놀즈 그리고 굴곡진 큰 코가 매력인 칼 말든까지 놀랍도록 화려
한 캐스팅이었다. 내게 개척자란 이탈리아 출신의 뛰어난 모험소설 작가인 에밀리오 살가리Emilio Salgari와 서부영화를 의미한다. 그것말고는 딱히 연상되는 게 없다. 몇몇 사람은 개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대로부터 군대가 나아갈 길을 닦고 새로운 진영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던 전문 부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를 식물과 연관 짓는 사람은 거의, 아니 어쩌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개척자 하면 서부영화의 할리우드 스타나 전쟁 영웅 대신 식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청소년들이 존경하는 영웅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식민지화 능력 면에서는 그 어떤 유기체 그룹도 식물을 따라올 수 없다. 개척자라는 단어에 다른 생명체의 식민지화를 위한 터를 닦는 유기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식물은 탁월한 개척 유기체로 간주해야 한다. 지구상에서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살지 못하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유기체로 여겨진다. 극지방의 빙하에서 불같이 뜨거운 사막, 대양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이르기까지 식물은 이미 이 모든 곳을 정복했으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정복을 이어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느리긴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거나 이보다 자주 기존의 서식 지역을 탈환하고 단기간에 모든 지형을 장악할 수 있는 식물의 놀라운 능력을 관찰했다고 확신한다. 여러 해 전, 피렌체대학교 과학센터에 있는 내 실험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군 보급기지가 있었다. 잦은 군 조직 개편으로 어느날 갑자기 그곳에서 군 보급기지가 철수되었고, 이후 그곳은 하루가 다르게 폐허가 되어갔다. 내 실험실과 가까워 오래전부터 이곳에 눈독을 들이고 개인적으로 관찰• 연구해왔다. 나는 그곳이야말로 혁신적인 도시 농업을 연구하고 실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구조이자 세밀하고 주의 깊게 식물의 발달을 추적하기에 적격인 곳이라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곳을 실험실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못내 미련이 남아 한번은 그곳에 식물들을 옮겨 심고 자라는 속도와 효율성을 살펴본 다음, 어느 정도까지는 식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전략을 짜보기도 했다. 그렇게 돌보지 않은 채 2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곳의 막사 벽 전체는 20종이 넘는 다양한 식물들로 뒤덮였다. 거기에는 케이퍼, 금어초, 파리에타리아 유다이카[개물통이속의 종], 돌좀고사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풀어낼 작은 식물원 안의 수직구조 전시회나 다름 없어 보였다.
벽의 바닥면과 도로가 접하는 곳에서는 가죽나무와 참오동나무 같은 실한 수목 식물들이 힘차게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몇 년 전 내가 심은 씨앗이 발 아된 게 확실하다. 내 실험실 주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 나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가죽나무와 참오동나무는 단시간에 우람하게 자라서 둘레벽의 상당 부분을 무너뜨리면서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도 로의 아스팔트 균열 틈바구니에서 움이 튼 무화과나무는 이제 초소의 두꺼운 벽면을 완전히 뒤덮을 만큼 웅장한 나무가 되었다. 그 후 서양메꽃이 나타나 이곳의 모든 것을 조금씩 덮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히치하이커 우엉이 등장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군 보급기지가 방치된 지 15년이 흐른 지금도 철근 콘크리트 건물, (공격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광장, 거대한 금속 탱크 등 몇몇 구조물은 식 물의 맹공격에 끝까지 버티고 있다. 이들은 십수 년간 식물의 정복에 끈질기게 맞서다가 최근에 이르러서 투항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식물은 단시간 내에 불모지로 보이던 지역을 탈환하려는 목
적을 달성했다. 이는 확실히 괄목할 만한 성공이지만 그들이 주연을 맡았던 위대한 정복 서사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그리샤 피셔 삽화
첫댓글 멋진 이야기입니다. 식물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은 모든 지식을 다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강조하며 식물풀이를 하고 있구요.
카페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회원 모두를 살 찌우는 길이되고 있네요. 카페지기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