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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스텔렌보쉬 화란개혁교회 Mother Church 의 강단 모습 |
2. 구문(syntax)
사전과 파싱까지만 해도 이미 설교의 내용과 깊이는 확 달라졌을 것이지만, 혹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원어의 구문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성경 원어는 문장의 어순이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아는 예로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문두로 내는 것이다. 명사문장은 동사문장과 구별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은 한글로 번역되는 가운데 다 사라져버려 한글 성경만 보면 어순이 강조하는 바를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역시도 이미 한국어로 출판된 히브리어 구문론, 헬라어 구문론이 있으니 설교를 준비할 때 옆에 두고 있다가 해당되는 구문이 나올 때 참고서처럼 펼쳐 보기만 하면 된다. 그 외에도 히브리어는 독특한 액센트 체계(분리/연결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문장 안에서 의미단위를 나누거나, 주제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 평행법적 표현 도 알고 있으면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경험상 파싱과 구문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다 보니 빈도가 높은 내용들은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는 유익도 있었다.
설교자는 신학생과 달리 히브리어, 헬라어의 언어와 문법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 이미 배운 경험이 있다면, 이제 관련 자료들을 활용해 본문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면 충분하다. 이것은 관심의 문제이며, 도구의 문제이다. 관심과 도구만 갖추어지면 우리도 얼마든지 원문을 담아내는 설교, 원문을 설명하고 증명하며 적용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 2차 자료나 예화로 설교를 구성하는 것에 목매지 않아도 설교자가 원문의 샘에서 얼마든지 직접 길어낸 생수로 교인들의 심령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눅 7:1-10은 예수님이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는 이야기다.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아주 칭찬하신 내용인데, 보통 이 본문을 설교하면 백부장의 믿음이 어떠했기에 예수님이 그렇게 크게 칭찬하셨는지에 초점이 잡힐 것이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을 추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3절부터 나오는 백부장의 행동과 7절에 나오는 백부장의 말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하고 유대인 장로들을 대신 보내고, 친구들을 대신 보내는 모습에 하나의 교훈이 있을 것이다. 이는 7절 상반절에서 정리된다.
문제는 7절 하반절이다.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칭찬하신 근거가 되는데 한글 성경에 원문의 디테일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면이 있다.
ἀλλ’ εἰπὲ λόγῳ, καὶ ἰαθήσεται ὁ παῖς μου.
ἀλλα는 앞의 흐름과 대조관계를 형성하는 접속사이다. '그러나', '오히려'라는 의미지만 화용적 관점에서는 '그러지 마시고' 정도로 볼 수 있다. 즉 '굳이 자기 집까지 오는 수고를 하지 마시고'가 된다. 그리고 εἰπὲ λόγῳ는 같은 의미가 중복되어 있다. 물론 이렇게도 자주 사용하지만 본문에서 굳이 εἰπὲ만 해도 될 것을 λόγῳ를 넣었으며, 더구나 여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많은 영역도 say the word나 say in a word로 번역해서 이 구문을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역하면 '말로 (말)해주세요'가 되고 화용적으로 이해하면 '말 한마디만 해주시면 충분합니다'가 될 수 있다.
"낫게 하소서"는 생각할 내용이 더 많다. 비잔틴 사본은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전하고, 일부 비평 사본들은 '내 하인은 나았습니다'로 전한다. 이중에서 무엇이 원본인지는 학자들이 찾을 것이다. 설교자는 이 둘을 설명하면서 공통점을 강조하면 안전한 해석을 할 수 있다. 다수 사본 기준으로 본문의 뉘앙스를 살려보면 ‘그러지 마시고 그냥 한마디만 해주셔도 제 하인은 나을 것입니다’가 될 것이고, 비평 사본 기준으로 보면 ‘한마디만 해주시면 이미 제 하인은 나은 것입니다’가 된다. 어떻게 보더라도 확신의 고백처럼 보인다. 이는 한글 성경처럼 요청만으로 보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설교 하루 이틀하고 말거라면 굳이 이런 내용들을 알 필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주님이 멈추라 하실 때 까지 우리의 설교 사역은 계속될 것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매주, 매일 반복되는 설교인데, 그동안 나의 설교는 횟수만 늘어날까, 아니면 바르고 깊은 설교로 자라고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말씀 전문가의 권위는 강단의 높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깊이에서 나오므로, 성경을 주신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나만의 도구들을 갖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코닷 webmaster@kscoramd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