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2]
윌리엄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1867-1951)①
미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군인들과 민간인들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미국장로교 역시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1867년 12월 버지니아주 노포크(Norfolk, Virginia)의 한 기독교 가정에서 레이놀즈는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87년에 남부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사립대 햄든-시드니 칼리지(Hampden-Sydney College)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고전 언어학 교수가 되기 위해 존스홉킨스대학(The Johns Hopkins University) 라틴-그리스-산스크리트어 박사과정에 진학했지만, 아버지가 사업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연합국[남부연합]의 수도)에 있는 미국남장로교 산하 유니온 신학교(Union Presbyterian Seminary)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1891년 9월 학교에서 열린 전미신학교 해외선교집회에 참석했는데, 바로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가 윤치호(1865-1945)와 함께 한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에 가서 선교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이 강연을 계기로 이듬해인 1892년 10월과 11월에 7명의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레이놀즈가 포함되었고 나머지는 윌리엄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 루이스 테이트(Lewis Boyd Tate), 마티 테이트(Mattie S. Tate), 린니 데이비스(Linnie Davis), 메어리 레이번(Mary Leyburn), 팻시 볼링(Patsy Bolling)이었습니다. 이 중 팻시 볼링과 출국을 몇 개월 앞둔 5월에 결혼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