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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산꾼의 산행기와 지도를 바탕으로 '국수역 → 신촌 등산로 입구 → 샘터 → 형제봉 → 청계산 → 형제봉 → 부용산 → 부용사 → 신원역'의 11.78Km, 6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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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淸鷄山]
높이: 656m
위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양평의 청계산은 동쪽으로 용문산과 북쪽으로 중미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한강이 흘러 전망이 좋다. 그렇지만 산이 크지 않고 교통이 불편해 수도권 일대의 세 개의 청계산 중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산행은 양서면의 국수에서 북쪽의 능선을 따라가는 것과 청계리 반월형에서 북쪽 계곡을 따라 오르는 방법, 또는 목왕리에서 형제봉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세 가지 코스가 있다. - 한국의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한반도 남쪽 남한에는 총 4,440개의 산이 있다. 이후 그보다 더 많다는 보고도 있으나, 어쨌든 4,400개 이상이라는 소리다. 해서 동명이산도 많다. 그중 제일 많은 이름이 백운산!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전국적으로 70여 산에 이를 거라는 예측도 있다. 그리고 청계산, 삿갓봉, 장군봉, 국망봉, 가야산 등등 많다. 와중에 서울과 가까운 곳에 청계산이 세 개나 된다. 누구나 다 아는 서초구의 그 청계산과 가평 한북정맥 상의 청계산, 그리고 양평에도 있다. 물론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그 지역 주민이 청계산이라 부르는 산도 있을 거다.
어쨌든, 천고지, 대간, 인기 산 등을 거의 오르고 나니, 갈 만한 산이 없다. 안내산악회는 백두대간과 거기서 분기한 정맥, 지맥 등의 맥 산행 아니면, 인기 명산 등 인증 산행 위주라, 그걸 이용하는 산행도 한계에 달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많이 이용했던 대중교통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내산악회야 산행 계획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초면의 산이 있으면, 한국의 산하나 구글링으로 산에 관해 알아보고 신청 여부를 결정하면 되나, 대중교통은 먼저 산을 알고, 교통편을 확인해야 한다. 고로 익히 알고 있던 산은 안내산악회를 알기 전 이미 다 올랐다.
해서 안내산악회 산행 중 성원을 채우지 못해 취소된 산이 대중교통으로 당일 다녀올 수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세운 계획이 꽤 된다. 그리고 위 지도의 서울을 중심으로 점선 반경 내에 있는 산 중 아예 대중교통이 다지지 않는 진정한 오지를 제외하고, 80% 이상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 고로 이제는 교통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산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해서 여기저기 뒤적이며 미처 알지 못했던 산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알게 된 산 중 하나가 두물머리 최고의 조망처라는 양평의 청계산으로, 산행 계획을 세우고 딱히 갈 만한 산이 없을 때 가려고 목록에 넣어뒀다.
기회가 되면 가끔 다니던 대학 동기 산행이 2017년 이후 매월 한차례 진행하는 정기산행으로 바뀐 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 올랐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 내 산은 몇 번씩 오를 정도로 새로운 산행지가 고갈된 상태다. 정기산행 일이 다가오면 어디를 가야 할지 늘 고민이다. 그런데, 양평 청계산은 전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이라, 정기산행지로는 딱 맞다는 걸 깨닫고, 정기산행지 목록에 넣었다. 그리고 올해, 즉 2024년 중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작년 12월 87과 연합 산행에서 양평 청계산 얘기가 나와, 말이 나온 김에 2월 연합 산행으로 다녀오기로 해, 2월 등산방 정기산행 겸 87 연합 산행은 양평 청계산이다.
청계산과 가까운 용문산의 기상청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당일인 토요일 기온은 영상 1℃~6℃ 내외, 바람은 2m/s,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라는 예보로 최근의 봄날씨에 비해서는 추운 편이다. 다만, 미세먼지가 도와준다면, 두물머리 조망을 기대할 수 있을 거로 생각된다. 따라서 산행 준비는 만약에 대비해 여벌의 옷을 준비하고, 집합 시간이 애매해 불광역 직전 대조시장의 홍어 무침 가게가 문을 열었으면, 정상주 안주로 홍어 무침을 사 갈 생각이다. 나머지 준비는 평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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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역에서 8시 13분 열차를 타고 국수역으로 가면 되는 산행이나, 길목의 대조시장에 들러 홍어 무침을 사야 해 7시 50분경 집을 나섰다. 그런데, 시장의 단골 가게가 문을 아직 장사 전이다. 해서, 다른 걸 사 갈까? 여기저기 둘러봤으나, 안주할 만한 건 전부 아직이다. 상황이 이러니, 비상식으로 가져 다니는 육포 등으로 안주하기로 했다. 다만, 홍어 무침 대신 예정에 없던 김밥을 샀다. 그리고 역으로 내려가자, 열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야 다음 차를 타야 하니, 유유자적 승차장으로 내려가 가장 빠른 환승이 가능한 1번 칸이 있는 앞으로 가자, 순희 누님이 기다리고 있다. 연신내에서 타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방금 떠난 차를 타고, 같이 가기 위해 불광역에서 내린 거 같다. 사실 막 떠난 차는 대화에서 출발한 열차라, 거의 만원 수준의 승객이라 불편한 것도 있다. 해서 같이 다음 차인 구파발 출발 차를 타고, 옥수역에서 내려 경의·중앙선 덕수행을 탔다.
분명 오늘 산행에 참여하는 친구는 이 차를 타고 있을 확률이 거의 100%라, 텔레그램으로 옥수에서 탄 시간과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 그런데, 흥수가 '그럼, 덕소에서 갈아탈 예정이냐?' 묻는다. '응? 왜, 덕소에서 갈아타?' 깜짝 놀라,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국수역은 덕소에서 다섯 역을 더 가야 한다. 옥수에서 아무 생각 없이 차를 탄 결과다. 그렇다고, 덕소에서는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승차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 전인 양정에서 내려, 지평행 열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열차에서 87 수흔이를 만나고, 9시 55분경 국수역에 도착해 뒤를 보자, 흥수다. 그 뒤 조금 떨어져 영한과 87 둘이 같이 온다. 다 같이 아래로 내려가, 대기실을 보니, 익숙한 친구 몇이 보인다.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화장실로 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친구다. 선구다. 오겠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왔다. 당연히 대환영이다. 이후 모두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가, 연합 산행은 처음인 누님에게 87과 선구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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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가 끝나고, 국수역을 나오며, 등산 앱을 기동하고 시간이 좀 지난 뒤, 고도를 확인했다. 51.2m 도대체 믿음이 안 가는 높이다. 원래 지형의 특성상 해변, 강변에 있는 산의 들머리 고도가 낮은 건 잘 알고 있으나, 팔당댐 상류가 거의 북한산 들머리와 비슷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어쨌든 오늘 오르는 최고봉인 청계산 정상이 658m, 들머리와 정상의 표고 차는 600m가 넘는다. 설악산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의 표고 차와 비슷해 한국의 산 기준 높은 편이다. 국수역을 나와 청계산 들머리를 향해 가는데, 다행히 흥수가 10여 년 전에 올랐던 산이라, 길을 찾아 헤매지 않고, 바로 좌회전해 도로를 따라가다가, 철로 아래 터널을 지나, 300m가량 가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이정표에 의하면 직진은, 등산로 입구까지 490m, 우회전은 600m다. 당연히 우린 직진했다.
마을을 내부 도로로 들머리를 향해 가면, 동행한 친구들과 이번 산행 코스에 관해 얘기하다가, 초행이고 익숙한 산이 아니라, 전체 코스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는 하는데, 주요 지점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한 번에 죽 달리는 산행이 아니라, 왕복 구간이 있어, 갈림길에서 헷갈리면 산행이 엉뚱하게 진행될 수 있어, 통신 불량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산행 계획 중 코스 부분을 캡처했다. 하지만, 산행 중 한 번도 안 봤다. 다른 곳은 몰라도, 특히 부용산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는 한 번 정도 확인했어야 했다! 어쨌든 마을 내부 포장도로로 위로 올라가자,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이 등이 있는 들머리다. 물론 ‘청계산 등산 안내도’도 있다. 들머리에 이정표에 의하면 청계산까지 4.7km다.
먼저, 등산 안내도를 보며, 오늘 산행의 전체 코스에 관해 설명했다. 안내도에는 형제봉에서 청계산과 부용산이 분기한다. 그리고 청계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등산로가 보인다. 그런데, 부용산은 갈림길에서 왕복한 후, 신원역으로 내려가는 게 유일한 등산로다. 그 안내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했다. 조금 전에 캡처한 코스를 한 번만 봤어도, 아니, 조금만 기억했어도 우리는 갈림길로 돌아가지 않고 '부용사'로 하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을 거다. 원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왕복은 하지 않는다는 주의라 청계산이야 어쩔 수 없지만, 부용산은 왕복하지 않도록 코스 계획을 세웠었다. 설명이 끝나고, 문제가 많은 안내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10시 17분경 이정표가 가리키는 등산로로 본격적인 양평 청계산행을 시작했다.
해발 50m에서 시작한 산행이라 조망이란 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올라가는데, 집도 같이 올라간다. 그리고, 곳곳이 무덤이다. 양지바른 배산임수 지역이라, 훌륭한 무덤터이자, 집터다. 10시 33분, 청계산 3.9km 이정표를 지났다. 약수터까지 남은 거리는 550m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뒷산이라,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도 많고, 산행의 어려움 정도를 알기 위해 가끔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하다가, 길목에 샘터가 있는 걸 보고, 약간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공식 이정표에 약수터가 나타났다. 청계산의 산삼과 더덕, 도라지, 백사 등이 녹은 약수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완만한 경사를 등산로로 9분가량 가자, 30여 미터 앞에 약수터가 있어 동영상을 촬영하며 접근해 먼저 물맛을 봤다. 흙 맛이 강하고 미지근한 게 약수가 아니라, 물이 탁한 게 최근에 내린 빗물이다. 해서 웬만한 약수에는 있는 '음용 적합성 판정'을 찾아봤다. 기둥에 그걸 붙일 수 있는 나무판은 있으나, 정작 판정문은 없다. 의도적으로 붙이지 않은 거로 보인다. 고로 마시면 안 되는 물이지만, 그런 거 따지면 산에서 마실 물이 없다!
물이야 어떻든 주변 마을 주민을 위한 쉼터라, 평상도 놓고 나름 잘 꾸며 놨다. 평상을 본 김에 거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복장을 정비했다. 기온이 낮아 겹겹이 옷을 껴입었으나,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약수터에서 약간의 휴식을 겸해 각자 복장을 정리한 후 다시 길을 재촉해 가자, 민간에서 했는지 지자체에서 했는지 너덜지대 돌을 이용해 탑과 문 등을 만든 구역이다. 거기서 사진 몇 장 찍고 계속 가, 10시 57분 정자동 갈림길을 통과했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2.9km! 그런데, 그 이정표에서 10여 미터 위에는 산악구조를 담당하는 소방 당국에서 세운 이정표가 있는데, 타이틀이 지도나, 산 소개 어디에도 없는 '국수봉'이다. 이 급경사를 올라가면 ‘국수봉’인 거 같다. 형제봉까지 남은 거리는 1.4km!
가쁜 숨을 헐떡이며, 급경사를 올라가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어디로 가나 형제봉이지만, 직진은 0.91km, 우회전은 0.77km로, 좌회전이 100여 미터 가깝다. 고로 경사가 더 급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우리는 우회전해 급경사로 올라갔다. 거리가 짧은 것보다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주변을 조망하기 좋기 때문이다. 거리는 짧으나, 급경사라 어차피 소요 시간은 두 길이 거의 비슷하다. 좀 전의 이정표에서 550m를 15분이 걸려 올라오자, 다시 갈림길 이정표다. 직진이 형제봉으로 0.22km, 좌회전은 부용산으로 간다. 당연히 형제봉을 향해, 직진해 급경사를 올라가다 왼쪽 아래를 보니, 흥수가 부용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정표를 보지 못했을 리는 없고, 무언가 생각이 있어 그 방향을 갔을 거라 예상하고 계속 갔다. 그리고 조금 지나, 다시 아래를 보니, 가던 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거다. 해서 위에서 흥수를 불렀다.
흥수가 되돌아 나와 위로 올라오는 걸 지켜보다가, 다른 일행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어, 아래를 계속 주시하며, 왜 이정표를 보지 못했나, 추측해 봤다. 급경사라 아래만 보고 올라오다가, 이정표를 못 보고, 급경사가 끝나고 완만해지는 왼쪽으로 갔을 확률이 높다. 와중에 같은 열차를 타고 온 일흔이 넘어 보이는 세 명의 여성 등산객이 그 방향으로 갔다.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가는 급경사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실수다. 다른 일행이 정상적으로 직진하는 걸 확인하고, 다시 급경사를 올라가자, 11시 20분 앱이 형제봉이 멀지 않다고 음성으로 알려줘, 그 지점부터 앞서가는 한 쌍의 등산객 뒤를 따라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11시 27분 도착했다. 정상에는 두 개의 갑판 전망대 쉼터와 정상석이 있고, 먼저 도착한 한 쌍이 쉬고 있다. 그리고 갈림길로, 직진은 부용산, 우회전하면 청계산으로 1.82km다. 고로 왕복은 3.64km로 이렇게 멀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청계산까지 1.82km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다!
일단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변 관찰이 끝난 후 비록 날이 흐리고, 미세먼지로 보이는 게 없기는 하지만, 두 개의 전망대 중 동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데, 누군가 조각했나 의심이 들 정도로 티라노사우루스 꼬리를 닮은 나뭇가지가 보인다. 당연히 가까이 다가갔다. 누군가 나뭇가지에 고정한 티라노 인형이다. 이걸 여기다가, 왜? 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티라노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뭇가지에는 여러 종류의 공룡이다. 그리고 정상석 가까운 곳의 나무에는 고양이 인형이다! 뭔 생각으로 나뭇가지에다가 동물 인형을 고정해 놓았을까? 어쨌든 기념으로 그것 걸 기록으로 남긴 후 미세먼지로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전망대에서 보이는 것도 파노라마로 남겼다. 확대해서 보면 그나마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보인다. 이후, 힘겹게 정상으로 올라오는 일행의 모습을 찍었다.
순희 누님과 영한을 제외하고 일행이 모두 도착했다. 영한이야, 늦는 걸 알고 있지만, 순희 누님이 보이지 않아, 일행에게 물어보니, 좀 늦을 거라고 해, 일단 우리끼리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래가 잘 보이는 전망대로 가 누님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핸드폰을 꺼내 보니, 누님이 전화했다. 그런데, 통신 불량인지, 전화 울리는 소리를 못 들어, 전화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흥수에게 전화가 왔다. 뒤에서 혼자 오고 있던 누님이 갈림길에서 직진하자 않고, 좌회전한 거다. 되돌아 갈림길로 가기에는 좀 멀리 와, 그대로 가던 길로 가, 반대편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누님이 도착하고, 인증을 남긴 후, 점심은 청계산에서 돌아온 후 갑판에 판을 펼치기로 하고, 청계산으로 출발했다. 나는 왕복이라 당연히 배낭을 두고 갔다.
등산로 입구 안내도를 보며, 청계리로 하산하는 코스도 잠깐 검토했는데, 11시 54분 그 청계리 갈림길을 통과했다. 그리고 12시 1분, 활짝 펼친 가지가 뜨거운 햇살과 가랑비 정도는 막아 주는 소나무 쉼터를 지났다. 울창한 숲에 가린 능선이라 보이는 게 없어 그저 앞만 보고 가자, 앱이 청계산 정상이 멀지 않다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현재 시각 12시 10분! 11시 40분 정도 형제봉에서 출발했으니, 대략 30분가량 걸렸다. 고로 이정표의 형제봉과 청계산의 거리 1.8km가 맞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게 보인다. 막걸리 노점으로, 파라솔 테이블과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는 등산객 셋이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그럼, 막걸리로 정상주를 마시기로 하고, 마지막 깔딱을 올라 12시 13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헬기장인 정상에는 안내도와 두 개의 정상석이 있어, 먼저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안내도 청계산의 한자가 ‘淸溪山’이 아니라, ‘淸鷄山’로 계곡이 아니고 닭이다! 푸른 닭도 아니고, 맑은 닭? 어원이 뭘까? 뭐든, 일행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이후 두물머리 조망처라는 산 소개에 따라 ‘두물머리’가 보이는 아니, 보여야 하는 곳으로 갔다. 물론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보이지만, 그 이전에 정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관목이 가린다. 최소한 조망을 위해 관목 정도는 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사진 찍는 것도 포기하고, 반대편 등산 안내도가 있는 곳으로 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미세먼지를 뚫고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을 자세히 관찰했다. 정상에 철탑, 안테나 등이 있는 건 분명 용문산이다. ‘한강기맥’으로 두 산이 같은 맥상에 있다. 그럼, 그 왼쪽 옆은 마유산이다. 비록 관목이 방해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용문산에서 마유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높아, 아래에 있는 ‘두물머리’보다 잘 보인다. 앞으로 산 소개를 두물머리 조망처에서 용문산 조망처로 바꾸는 걸 권한다. 어쨌든 막 정상으로 올라오는 일행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정상에 도착한 일행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는 걸 도와주거나, 지켜보다가, 선구와 둘이 막걸리 한잔하기로 하고 노점으로 내려갔다. 다른 산의 노점이 막걸리와 생수 정도인데, 양평 청계산 노점은 장수와 지평 등 막걸리 두 종류, 소주도 있다. 처음 시작은 파라솔 테이블에서 간단하게 막걸리 한잔씩만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점심을 먹고 가자는 분위기로 바뀌어, 테이블 평상에 판을 펼쳐, 누님이 준비한 반찬과 밥, 그리고 각자 가져온 먹거리로 배를 채웠다. 87 경숙이 가져온 옌타이가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나, 아쉬운 건 형제봉 갑판 전망대 기둥에 걸어놓고 온 배낭에 든 김밥과 안주류다! 대략 40분 정도 걸려, 지평 큰 병, 장수 막걸리 각 1병과 옌타이 큰 병 하나를 비우고 자리를 정리한 후 다시 정상으로 갔다.
각자 또는 끼리끼리 인증을 남긴 후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일행이 모자란 사진을 찍는 동안, 흥수와 둘이 북쪽으로 보이는 능선과 봉우리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용문산, 마유산이야 딱 보면 아는데, 그 사이에 낀 봉우리와 마유산 왼쪽의 봉우리는 오락가락해, 일단 중간은 어비산, 왼쪽은 중미산이라, 결론 내렸다. 그리고 산행이 끝난 다음 날 지도를 찾아봤다. 마유산 왼쪽은 흥수가 찾은 소구니산, 중미산이 맞다. 문제는 용문과 마유 사이의 가운데 봉우리로, 내가 가진 지도에는 봉미산으로 보인다. 그런데, 앱의 지도는 어비산으로 보인다. 지도에 따라 표기한 산이 제 각각이라 그렇다. 흥수가 얘기한 용문산의 한 봉우리가 정답일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올봄에 가기로 한 용문봉 산행 때 확인하기로 했다. 끝으로 관목과 미세먼지가 방해하기는 하나, 두물머리 방향의 사진을 찍은 후 청계산을 떠나 형제봉으로 향했다.
청계산을 떠나, 형제봉으로 돌아가며 조망이 트인 곳에서 왼쪽을 보니, 미세먼지 속에 남한강과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뾰족한 봉우리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어, 메모리를 뒤졌다. 용문산 백운봉이다. 애초 이번 겨울에 갈 생각으로 산행 계획을 세웠지만, 다른 산행에 밀려 실행에 옮기지 못한 봉우리다. 고로 용문봉 산행, 백운봉 산행으로 용문산만 두 번 더 와야 한다. 머릿속으로 산행 일자를 계산하며, 형제봉으로 향하는 중 교행한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아, 청계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다는 것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막판 깔딱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 번째 형제봉에 정상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1시 42분! 우리가 청계산을 다녀오는 동안, 영한은 형제봉에서 인증을 남기고, 다음 목표인 부용산으로 출발했다.
형제봉에 일행이 도착하는 동안, 미세먼지 상태가 약간 좋아져, 아까와는 달리 조금이나마 보이는 전망을 다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모두가 도착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1시 46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나무문을 통과해 부용산으로 향했다. 이후 1시 54분 국수역 갈림길 이정표를 지났다. 다른 것과 달리, 산꾼이 만든 거로 거리 정보는 없이 방향 표시만 있는 이정표다. 어차피 거리 정보는 지자체 이정표도 정확하지 않아 참고만 하고, 방향 정보만 얻을 뿐이니, 저 정감 가는 이정표도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이정표를 지나며, 부용산으로 향하다가 무언가 이상해 하늘을 보니, 거대한 송전탑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고, 송전선이 우리와 함께 부용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 등산로로 가, 2시 15분 갈림길에 도착했으나, 이정표는 없고 등산로 표지를 좌회전해야 보이는 나무 기둥에 두 개의 못으로 박아봤다.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을 위해 직진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흥수 등이 길을 가로질러 나뭇가지를 놓는 동안, 누님에게 갈림길이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송전선을 따라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하자, 앱이 고지가 멀지 않다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조금 전 지난 이정표에 의하면, 부용산 정상까지는 2.03km나 남았다. 고로 부용산은 아니다. 그렇다고 중간에 다른 봉우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핸드폰을 꺼내 어떤 인증인지 확인했다. '비득재'가 멀지 않다는 메시지다. 요즘은 웬만한 작은 고개도 다 인증 대상이다. 하긴 인증을 위해 산을 다니는 인증꾼에게는 배지가 많을수록 좋다! 어쨌든 계속 길을 가, 2시 31분 신원역 갈림길인 비득재에 도착했다. 부용산까지 남은 거리는 1.93km!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앞서간 영한과 통화한 결과 앞에 갈림길이 또 있다. 안내도에 의하면 거기서 부용산을 왕복하고 신원역으로 하산한다.
왕복 산행을 하느니, 기회를 만들어 다른 코스 산행을 다시 하는 걸 지향하는 인간이 형제봉에서 청계산 3.6km를 왕복했는데, 다시 마지막 부용산 갈림길에서 부용산을 왕복하는 건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여기서 신원역으로 내려가자고 하자, 흥수와 87 몇이 일단 다음 갈림길까지 가서 내려가자고 한다. 아니, 어차피 부용산에 안 올라갈 거면 다음 갈림길까지 갈 이유가 없으니 바로 내려가자고 각자의 주장 떠들고 있는 사이 후미도 다 도착했다. 그러자, 흥수가 선두에서 부용산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어, 후미의 세 사람은 신원역으로 내려보내고, 나머지는 흥수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 끝을 내고, 이 산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게 흥수의 생각이고, 거기에 동의한다. 다만 왕복이 마음에 안 들 뿐! 그렇게 다시 부용산으로 향해, 2시 47분, 부용산 0.93km 이정표를 지나, 앱이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알려준다. 당연히 부용산은 아니고, 인증꾼을 위한 '샘골고개' 배지다.
고개가 멀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고, 4분가량 가자, 저 아래에 사거리로 샘골고개다. 끝이 멀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 이정표를 보니, 직진은 부용산, 좌회전 신원역, 우회전은 목왕리로 0.6km 거리다. 여기까지 왔으면, 산행 시작하자마자 캡처한 코스 계획을 한 번 정도는 확인했어야 했는데, 캡처했다는 사실도 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샘골고개를 기준으로 부용산을 왕복하겠다는 생각으로 배낭을 나뭇가지에서 걸어두고, 핸드폰과 삼각대만 들고 정상으로 향했다. 높이 366m에 불과한 부용산이나, 높이 200여 미터의 샘골고개에서 시작하는 거라 쉽지 않다. 그것도 이미 10km 이상 산행을 한 후다, 와중에 급경사 깔딱은 낙엽 쌓인 너덜지대다. 마지막 체력을 동원해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자, 3시 7분 앱이 정상이 멀지 않다고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동영상을 촬영하며 정상으로 향하며 보니, 길목의 정상 직전이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로, 좌회전은 ‘부용사 1km’, 우회전은 목동리 1km다. 당시는 그 이정표를 보고도 그게 뭘 의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자, 먼저 와서 여기저기를 둘러본 흥수가 부용사로 내려가자고 한다. 당연히 배낭을 짊어지고 왔다면, 흥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부용사로 갔을 거다. 어쨌든 정상에는 '부인당'이라는 명패를 단 이정표가 있고, 부용산에서 등산로가 끝나는 안내도와는 달리, 부인당 이정표는 계속 가면 ‘양수역’이다! 그리고 그 이정표 옆에 연꽃이 놓인 정상석이 있다. 고로 이 부근에 당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부용산에 도전한 일행이 다 도착하고 난 후, 삼각대를 이용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흥수가 앱에서 찾은 신원역 주변 유일한 식당이 있는 부용사로 내려가려고 했다. 애초 산행 계획도 정상에서 부용사로 내려가는 거다. 배낭을 샘골고개에 두고 온 나는 배낭을 가지고 신원역으로 가, 먼저 내려간 일행과 부용사 아래 식당으로 가기로 하고. 그런데, 흥수가 앱으로 식당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펜션을 식당으로 착각했다고 해, 다들 샘골고개로 내려가, 3시 28분경 다시 사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원역 방향으로 우회전해, 3시 36분 철책 문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섰다. 그때 신원역 옆에서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기다리는 수흔에게 전화해, 어떤 메뉴가 있는지 확인했다. ‘붕어찜’과 ‘매운탕’이 주고, 도토리묵 무침, 미나리전이 부메뉴인 식당이라, 묵무침과 미나리전을 주문했다는데, 혹시 다른 메뉴가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청국장이 있는 걸 확인하고 그것도 주문했다.
허허벌판인 신원역 주변에는 식당이 없을 거로 생각해, 서울로 들어가 하산주를 마실 예정이었다. 그런데, 먼저 내려간 일행이 유일한 식당이 역 주변에 있는 걸 발견했고, 딱히 마음에 드는 안주는 아니나, 안주 주문까지 끝냈으니, 식당에 도착해 하산주만 마시면 되는 상황이다. 해서 남한강 변을 따라 난 산책로로 유유자적 강을 구경하며 가는데, 앞에 정자다. 분위기로 봐서는 최근에 세우기는 했으나, 과거의 위치라,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강한정'이라는 정자다. 그런데, 그 안내문이 가관으로, 역시 최근 화제인 양평답다. '광해군의 폭정시대에 명사들이 은거해 풍류를 즐기던 곳'이란다. 인조반정을 정당화하는 문구인데,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이종(李倧)은 무얼 위해 반정을 꾀했을까? 마누라?! 양평의 놀라운 역사의식에 감탄하며, 식당으로 향하며 보니, 여운형 생가 멀지 않다. 생가를 다녀올지 잠깐 고민하다가, 오늘은 산행이 목표니, 다음을 기약하고 계속 가, 3시 57분 신원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길을 따라가면, 신원역 보다, 우리의 목표인 식당이 먼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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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입지 조건으로는 최악이라 생각되는 신원역 왼쪽 황금연못이라는 대형 식당이 있다. 신원역 주변 유일의 식당이다. 도대체 누가 올까? 더, 궁금한 건 여기다 역은 왜 만들었을까? 2층 식당 건물 옥상의 '40년 전통의 매운탕·붕어찜'이라는 광고를 보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사가 잘된다는 의미다. 주말에 가까운 서울에서 매운탕과 붕어찜을 먹으러 오는 건가? 어쨌든, 식당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수흔과 영한이 주문한 미나리전과 도토리묵 무침, 밑반찬 등이 세 개 식탁에 깔려있고, 속속 도착한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취향에 맞는 술을 주문해 마신다. 87의 기현과 흥수, 나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먼저 소맥을 한잔했다.
이후 바로 나온 청국장에 밥을 말은 걸 안주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해 다섯 병인가를 비웠다. 그리고 중간에 약속이 있던 순희 누님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는 5시 10분경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대략 1시간 10분 동안 술을 마셨다. 이래서 내가, 현지에서 하산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서울로 들어와 마시면, 어제 끝날지 모르고, 열차에서 자다가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는 게 일상이다. 이후 경의·중앙선을 타고 옥수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녹번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해, 7시 25분경 도착했다. 비록 전철 산행이지만, 이동에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원거리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그리고 마누라가 전철로 서해랑길 오이도, 대부도 구간을 달리느라 저녁 준비를 못해 햇반을 돌려 미역국과 저녁을 먹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부용산을 버린 '국수역 → 신촌 등산로 입구 → 샘터 → 정자동 갈림길 → 국수봉 → 형제봉 갈림길 → 신원역 갈림길 → 형제봉 → 청계리 갈림길 → 청계산 → 청계리 갈림길 → 형제봉 → 국수역 갈림길 → 비득재 → 샘골고개 → 부용산 → 샘골고개 → 신원역'의 15.4Km(램블러) 코스를 5시간 58분 동안 즐겼다. 이동 4시간 34분, 휴식 1시간 24분!
예상대로 가득한 미세먼지 덕분에 조망은 꽝이었다. 와중에 두물머리 최고의 조망처라는 명성과는 달리, 정상 주변을 정리하지 않아, 두물머리 조망이 쉽지 않았다.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용문산과 백운봉을 볼 수 있었던 거 큰 소득이다.
용문산과 유명산 사이로 보이는 산의 정체를 몰라, 산행 후 지로로 확인한 결과 봉미산이다. 고로 조만간 봉미산도 올라야 한다.
가벼운 전철 산행지로 추천할 만한 산으로, 정기 산행지 목록에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