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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에서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환자들이 쉬고 있는 시간이었다. 간호사실 앞에 있는 로비를 지나 복도 제일 끝에 있는 병실로 향한다.
병실은 4인실이었다. 마오는 병실에 들어서자 창가의 침대로 향했다. 커튼이 닫혀있다. 드려다 보듯이 커튼을 살짝 연다.
“엄마, 깨어 있었어?”
침대에는 엄마인 요코가 누워 있다. 요코는 천천히 눈을 떴다.
“깨어 있었어. 눈은 그냥 감고 있었지”
마오는 침대 옆에 놓인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이거, 엄마가 부탁한 거야”
요코는 응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마오는 핸드백 안에서 상자를 꺼냈다. 요코가 항상 마시고 있는 건강 차였다. 꽤나 구하기 힘든 물건으로 시내에서도 한약재를 팔고 있는 한 집에서 밖에 구할 수 없다. 담당의사에게 복용허락은 받았다. 요코는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러 번 시험해 봤는데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오줌도 잘 나오고, 잠도 잘 오고. 없으면 불안해서”
“열은 어때?”
마오는 상자를 열자 찻잔에 티 백을 넣고 포트에서 뜨거운 물을 따랐다. 찻잔에서 풀을 태우는 것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요코는 건네주는 찻잔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내렸어. 생각보다 빨리 퇴원할 것 같아”
“그래, 잘 됐네”
요코는 미안한 듯이 마오를 쳐다봤다.
“언제나 미안해. 바쁜데”
마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부장님도 이해해 주시니까”
츠츠이는 엄마의 병에 대해서도, 마오가 검사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츠츠이의 밑으로 배속되었을 때 함께 술 마실 기회가 있었다. 오래된 이자카야 (일본의 전통 서민술집)의 카운터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츠츠이에게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림자를 연상한 탓인지도 몰랐다. 마오의 이야기를 말도 없이 듣고 있던 츠츠이는 술잔을 카운터에 놓으면서 훌륭한 검사가 되겠네 라고 불쑥 한마디 했다.
마오는 창 밖을 내다봤다.
이번 재판의 변호사가 사카다라고 알았을 때 츠츠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표정에는 나타내지 않았지만 내심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옛날 부하와 현재의 부하간의 싸움을 츠츠이는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유리창에 츠츠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기는 츠츠이를 믿고 존경한다. 사카다에게 이기고 싶다. 이겨서 사카다를 넘어서고 싶다.
마오의 침묵이 피로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 요코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마오를 쳐다본다.
“미안. 내가 아프지 않으면 너한테 걱정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마오는 당황했다. 엄마는 원래 다부진 성격이다. 그런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 1주일 예정이었던 입원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 일로 마음이 약해진 듯 했다. 급하게 수습한다.
“퇴근길에 병원에 오는 건 아무것도 아냐. 집에 가도 남편이나 애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먹고 자는 것뿐인데, 뭐”
요코는 걱정스러운 듯 딸을 바라본다.
“적당히 라니, 밥은 잘 먹어야 해. 세끼 제대로 된 식사를 또박 또박 먹지 않으면 안 돼”
“괜찮아. 한두 번 걸러도”
가벼운 마음으로 말한 농담이 요코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했다. 마오를 바라보는 눈매가 험악해진다.
“몸을 망치면 아무것도 못해.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겨”
언제나 엄격한 엄마 말에 마오는 기가 죽었다.
요코가 신장병을 앓은 것은 마오가 고교생이었을 때였다. 보통 웬만해서는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 엄마가 몸에 힘이 없고 식욕이 없다고 한다. 감기라도 걸렸겠지 하며 심해지기 전에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권했으나, 엄마는 금년에는 더위가 너무 심했기에 더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몸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졌다. 손가락이나 다리가 부어 올랐고, 눈꺼풀도 부어 올랐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데도 배만은 이상할 정도로 항상 부풀어 있다. 만져보면 퉁퉁해서 마치 물 풍선 같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일을 쉴 수 없다는 핑계로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서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그렇게 병원 가길 거부하던 엄마가 가까이에 있는 동네병원의 진찰을 받았다. 혈뇨가 나온 것이다. 진찰한 의사는 곧 대학병원에 소개장을 써줬다.
검사결과 엄마는 만성사구체신장염으로 진단되었다. 더욱이나,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원인을 물어보니 현재의 의학으로 확실한 원인은 모르나, 피로나 스트레스가 하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의사가 설명했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오는 제일 먼저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마오의 아버지는 마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망했다. 보험회사의 영업 맨으로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학생 때 유도를 한 탓인지 몸은 탄탄했다. 밝은 성격과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상당한 고객을 확보한 우수한 영업 맨이었다고 듣고 있다.
그 날도 아버지는 회사에서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스크램블 교차로의 신호가 청색이 되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등을 나이프로 찔렸다. 흉기는 길이 37센티의 서바이블 나이프. 아버지는 곧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장기손상이 심해 2시간 만에 사망했다.
현장에서 광란상태로 나이프를 휘두르던 범인은 달려온 경찰에 의해 상해 및 총기도검류 취급법 위반에 따라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특정한 사람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그 학생 앞에 걷던 사람이 우연히 아버지였던 것이다.
대학생은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고, 사건 당시도 병원에서 처방 받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범행이 있었던 날도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대량으로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경찰에서의 조사에서도 범행 당시의 기억이 애매하고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증언했다. 정신감정 결과, 범행 당시는 알코올과 약에 의한 심신상실상태였었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마오로서는 불기소처분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부친의 사망 후 49일이 지난 때였다.
심야에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친구인 듯 했다. 엄마는 전화상대방에게 왜 사람을 죽이고도 벌을 받지 않는지, 이래서는 그 사람이 너무 가엽다고 말하며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범인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음을 알았다.
왜 사람을 죽이고도 범인이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는지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인은 범죄이다. 법원은 왜 범죄자를 벌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엄마에게 불어보려고도 했으나, 왠지 물어봐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마오는 도서관에 출입하면서 직접 알아봤다. 아버지 사건이 실려 있는 신문을 찾아내서 기사를 구석구석 다 읽었다. 그 기사 중에 심신상실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어 사전을 찾았다. 사전에는 정신장애 등에 의해서 자신의 행위결과에 대해 판단할 능력을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로서 형법상 처벌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범인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러나, 말의 뜻은 이해되었지만, 마오는 범인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되고, 사람에게 상처 주는 짓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물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죄를 범한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오는 집에 돌아오자 퇴근하고 돌아오신 엄마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벌을 받지 않는 건 이상하고, 납득할 수도 없다고 소리를 쳤다. 엄마는 아픔을 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렇네, 그렇네 만을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납득하기 어려웠던 건 엄마였었다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남편을 이유 없이 빼앗긴 슬픔과 이제부터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은, 애가 없는 마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원래 강인한 분이 아니었다. 마오의 임신 중에도 산후의 회복도 좋지 않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를 강하게 만든 건 역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엄마는 아버지 몫까지 일을 했다. 아버지 생존 시에는 아버지 다니던 회사가 빌린 사택에 들어 있었기에 월세를 낼 필요가 없었지만 아버지 사후에는 사택을 나와 엄마가 월세를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가 및 외가에서 집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엄마는 외가로부터의 이야기가 진실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때는 이미 양가가 모두 아들대로 가업승계가 이루어져 누굴 도와줄 처지가 아니었다.
일도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슈퍼의 시간제 일에서 안정적인 정사원으로 바뀌었다. 화장품 방문판매원이었으나 매월 목표가 있어 잔업이 많았다.
엄마는 피로가 쌓이면 감기에 걸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병이 서서히 진행되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마오가 고교 2학년 때 신장병이 발병했다.
마오는 엄마가 중병에 걸린 건 아버지의 죽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남편을 잃은 슬픔과 어린 딸을 데리고 둘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걱정이 엄마로 하여금 그런 병에 걸리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오가 다 자라서는 몸에 오는 부담을 고려하여 잔업이 없는 시간제 일로 바꾸었으나, 한번 걸린 병이 완치되지는 않고, 지금도 주 2회는 인공투석을 하고 있다. 투석, 투약, 식사제한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요코가 기침을 했다. 마오는 의자에서 일어나 요코의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요코는 병원 옷의 앞가슴을 여미며 고개를 끄덕인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기에 들었다고 입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장병을 앓고 있는 엄마는 다르다. 감기로부터 급성신장염을 일으켜 배뇨작용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이번과 같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더 좀 쉬어요. 회복단계가 더 중요해”
요코는 그렇지 하며 침대에 누웠다. 요코의 몸을 잡고 뉘어드릴 때 찜질 약 냄새가 났다. 열과 기침으로 몸이 아파서 붙이고 있는 것이다. 마오는 빈 찻잔을 치우고, 엄마가 잠든 걸 확인하고 병실을 뒤로 했다.
밖에 나오니 선뜻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차에 올라 엔진을 건다. 라디오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버지가 좋아했다는 영화음악이었다. 전쟁 중의 비련을 묘사한 영화로 주연 여배우가 무척 예뻤다고 아버지는 늘 이야기하곤 했다.
마오는 엄마가 있는 방을 올려다 봤다.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엄마가 처음으로 입원했던 때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는 팔에 링거를 꼽고, 배에 관을 연결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왜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 안 되었고,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쭉 생각해 왔다. 자신의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인간이 지금 이 시간에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웃으며, 태연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걸 용서할 수가 없었다.
분했다. 사람 생명을 뺏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 있는 범인이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죄인을 벌할 수 없는 법률이 미웠다.
처음에는 그 분노의 화살을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몰랐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오랫동안 봐오면서 분노를 터뜨릴 곳을 발견했다.
아무도 죄인을 벌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벌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느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아무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이유이던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평등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질서를 지키고, 나아가서는 나를 지키는 것이 된다고 굳게 믿었다.
---죄는 반듯이 벌을 받아야 한다.
마오는 힘 있게 액셀을 밟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옛 노래에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로 바뀌었다.
(다음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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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에 사연 없는 삶은 없지요.
아프면 아픈대로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생로병사의 삶속에 제 명대로 살고 가지 못하는 삶은 또 어떤 의미인지........................................!
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복수의 스토리. 삶이란 커다란 명제 속에 진행되는 이야기가 재미를 더 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우선 내 건강이 최고지요... 그러니 우리도.발도행에 나와 열심히 걸으며 체력달련을 하는것........ㅎ.
날씬녀님의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그래서, 발도행에 나와 걸어다니는 거지요.